시시콜콜

colorcloud in München(1) 난생 처음, 홀리 크리스마스

작성자
채운
작성일
2019-12-26 14:44
조회
285
채운입니다.
저는 지금 독일에 와 있습니다.
굳이 말하면 목적한 바가 있기는 합니다만,
그러나저러나 간에 외유(굳이 먼 데까지 가서 놀기)입니다.^^
규문은 저 늙수발랄한 청년들이 잘 지킬 것이고,
저는 일월 중순 경까지 독일 미술관들을 어슬렁거릴 예정입니다.

일정이 그런 이유도 있거니와, 이번 여행에서는 몇몇 이유로 사진촬영은 안 하려고 합니다.
그 중 하나는, 도무지 실경(景)이 구글 등에서 본 이미지만 못하다는 것과도 관련됩니다.
최상의 여건에서, 최고의 기계를 가지고 찍은 사진들로 장소를 접한 후이고 보니,
정작 현장에서 보는 알록달록함은 감흥이 없을 뿐더러 작위적으로 느껴기지까지 하더이다.
예전에야 사진으로라도 남겨두자 싶은 아쉬움에, 혹 동행이 있으면 그들을 찍는 게 재미있어서 미친 듯이 찍어댔지만,
지금이야 혼자일 뿐더러 어떻게 찍어도 인터넷에 떠도는 '최상의 이미지'들만 못합니다.
이미지가 실재를 압도해버린 시대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또 하나, 이란처럼 잘 알려진 곳이 아니라면 모를까, 유럽은... 와서 보면 식상합니다.
지난번 그리스에 갔을 때도 느낀 거지만, 과거의 영광이 다 뭔가 싶을 만큼 쇠락의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과거를 뜯어먹고 사는 현대인들... 부디 우리 후세들도 우리에게 뜯어먹을 게 있어야 할 텐데요....^^
(=>공부하자는 얘긴 거 아시죠?ㅋㅋㅋ)
처음 들른 곳은 뮌헨입니다.
이곳 겨울 날씨가 '내내 흐리고 비'라더니, 과연 그렇습니다.
춥지는 않으나 비가 계속 추적추적 내리고 바람이 몹시 붑니다.
(니체는 이런 독일 날씨에서는 경쾌한 철학을 할 수가 없다며 유랑을 다녔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이런 날씨 때문에 독일에서는 철학이 발전했다고 합니다. 양자가 생각하는 철학이 이토록 다른 거지요. 귀하의 생각은 어떠신지?^^)
도착한 날은 이곳 기준으로 크리스마스 새벽.
북경에서 장장 7시간을 대기해서 그런지 많이 지친 터라,
대충 공간과 교통만 익혀 두고는 바로 숙소에 짐을 풀고 잤습니다.

(사진1) 독일 땅에서의 첫 식사입니다. 올곧게 밀가루와 소금으로만 이루어진 프레첼과 커피. 저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사진2) 숙소로 가기 위해 환승을 해야 하는 막스 베버 광장. 유럽에서는 로타리는 그냥 다 광장입니다.
모름지기 우리처럼 최소 10만 정도는 모여서 집회를 할 수 있어야 하거늘.ㅎㅎ
트램을 기다리는 벤치에 보니, 좀 전에 누군가 들이킨 다음 놓고 간 빈 맥주병이 있습니다.
아침 빈 속에 깡맥주 한 병! 대범하네요.
어딜가든 맥주와 소세지, 소세지와 맥주입니다.... 아침, 점심, 저녁, 마실 '때'라는 게 따로 없어 보입니다.
루터가 수도사가 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저 때문이라니... 이해가 될 듯 말 듯.



 

(사진3) 뮌헨 도심의 카를 광장에서 신시청사(라고는 하지만 19세기 바이에른 왕국의 건물)가 있는 마리엔 광장까지 가는 길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고 나는 건물이 있어 들어가 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16세기말에 지어진 성 미하엘 성당이더군요.
다소 북적이는 분위기 속에 크리스마스 미사가 진행중이었습니다.
명동성당 미사도 구경한 적이 있긴 한데, 크리스마스라 그런가, 본토라 그런가, 아님 소리가 공간 전체를 감싸는 성당 구조 때문인가...
우리 경우와는 다르게 전체적으로 굉장히 차분하고 소박하면서도 홀리했습니다.
제 50평생 이렇게 영적인 느낌으로 맞이한 크리스마스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4) 그런데 성당 내부는 이렇게 빛과 향과 소리로 가득찬 천국을 재현해 놓고는,
성당 외부 벽에는 고통을 호소하는 인간 군상들을 더없이 사실적으로 재현해 놓은 것이
유럽 성당건축의 특징입니다.(제가 첨부한 사진3은 미하엘 성당 내부, 사진4는 신시청사 건물 조각이지만, 중세 성당들은 대체로 그렇습니다.)
성당 바깥(세속)은 악과 고통으로 들끓는 세계지만, 이 안으로 들어오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 이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성과 속, 고통과 구원은 서로의 이면이라고.
안과 밖이 서로를 전제하듯, 고통을 자.각.하는 자에게만 구원도 있는 것이겠죠.
붓다의 말씀대로, 고(苦)의 자각, 즉 그것의 원인으로서의 우리 마음의 왜곡상을 이해하면, 그 자리가 깨달음=구원인 것.
종교는, 인간의 나약함과 강인함, 너절함과 숭고함,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듯합니다.



 

현재 시간 12월 26일 오전 6시 22분.
아직 바깥은 어둡습니다.
어제는 크리스마스라 인적도 드물고 슈퍼도 미술관도 모두 문을 닫아서 할 수 없이 잘 쉬었습니다.
오늘부터는 해가 머물러 있는 동안은 부지런히 걸어다닐 참입니다.
열심히 혈자리를 누르면서 해뜨기를 기다려야겠습니다.
돌아가기 전까지 문득문득 소식 전하겠습니다.
전체 3

  • 2019-12-26 15:12
    아이쿠 깜짝이야! 정말 글로벌이라더니,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시네요 쌤, 느무느무 부럽습니다~~~~몸 잘 돌보시며 흐뭇한 시간 되시길 ...

  • 2019-12-28 13:50
    구글에 돌아댕기는 '최상의 이미지'들은 기억에 별로 안남는데 아침부터 빈 맥주병이 놓인 정류장의 벤치, 빛이 가득한 크리스마스의 미사 장면은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바람 불고 비 내리는 날씨에 소금빵만 드시지 마시옵고 뜨끈한 국물이나 그런 거 드시면서 외유 중 스승님의 옥체를 보존하옵소서...

  • 2019-12-29 10:57
    스승님께서 외유를 떠나셨다니 맘 편히 규문에 놀러갈 때가 왔네요!!ㅎㅎ
    추운데 몸 따뜻하게 잘 챙겨드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야기 보따리 기대하고 있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