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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이야기] 어떻게 나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나와 잘 살 것인가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20-11-04 20:11
조회
251

어떻게 나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나와 잘 살 것인가 



글 / 복희



‘온갖 법이 화합하여 이 몸을 이루고서는 생겼다 사라졌다 하면서 유전한다. 생겨도 오직 법이 생기는 것이요, 사라져도 오직 법이 사라질 뿐이니, 이렇게 모든 법이 굴러가면서 서로 이어지면서도 서로 알지도 못하고 궁극적으로 사념의 활동도 없다. 법은 생겨날 때에도 내가 생겨난다 말하지 않고, 사라질 때에도 내가 사라진다 말하지 않는다.’
(110)


머리가 좀 아프거나 속이 좀 좋지 않거나 살면서 느끼게 되는 통증들이 있는데, 그때마다 ‘혹시 무슨 큰 병의 전조가 아닐까?’하는 마음이 반사적으로 올라온다. 혹시 하는 마음이 먼저 올라오고 그 마음을 붙잡지 않고 흘려보낼 정신이 드는 것은 늘 그 다음이다. 예전 같으면 잠깐이라도 더 그 마음을 붙잡고 걱정을 한 뒤에 놓아버렸다면 지금은 그나마 좀 더 빨리 내려놓는다는 것이 달라진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확장인 자식에 대해서도 똑같은 강도로 걱정을 한다. 병에 대한 그릇된 견해와 자식에 대한 집착, 몸에 대한 집착이 어우러져 번뇌를 지었다 허물었다 한다.

병을 걱정한다는 것은 병을 특별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몸에 생긴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병을 정의하는 한 두려워함을 떠날 수가 없을 것이다. 유마힐 거사는 ‘지금 나의 이 병은 모두 전생의 허망한 전도와 분별하는 번뇌가 일으킨 업보이다. 몸속에는 이 병을 받을 수 있는 어떠한 법도 존재하지 않으니 도대체 누가 이 병을 받는다 하겠는가?’(110) 라고 말한다. 전생에 허망하게 전도된 생각으로 분별하여 번뇌를 지은 결과로 내가 아프다는 말이 아니다. 이렇게 인과를 짓는 것은 번뇌도 병도 실체화시키는 일이다. 내가 있다는 생각, 번뇌가 있다는 생각, 즉 내적 주체, 외적 대상이 있다는 이분법적 생각이 병이라는 분별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라고 할 것이 없는데 하물며 병이라고 할 것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병도 건강도 모두 법이다. 법은 공하다는 의미에서 평등하다. 평등한 만법에 이름을 붙이고 좋고 나쁨을 붙이는 중생의 분별이 병이라는 이름의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내가 나라고 집착하는 이 몸도 천지만물의 작용 속에서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법이다. 통증이나 아픔이 있는 상태를 특별히 병이라는 이름으로 붙잡고 그 병을 없애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때 비로소 없애야 할 병이라는 것도 사라진다. 나의 병이 사라질 때 타인의 병도 사라진다. 병이라고 붙잡은 견해 자체를 바로잡는 것이다.

아픔을 부정하거나 아픔이 아픔이 아니라고 최면을 거는 것도 아니다. 나타나는 감각이 다른 현상들처럼 인연조건에 의해 나타나고 사라지는 현상일 뿐임을 자각하고 그 현상에 붙인 이름인 병에 좋고 나쁨의 분별을 덧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아픔을 ‘나’의 아픔이 아닌 나타난 현상으로 바라보는 힘을 키우는 것이 수행일 것이다.


병을 바라보는 시선은 만물을 바라보는 시선과 다르지 않다. 내적 주체가 있다는 견해와 외부 대상이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바라보는 한 어떤 법에 대해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내가 있고 내가 낳은 아이가 있고 나를 힘들게 하는 아픔이 있고 병이 있다는 생각은 세상 만물을 외부 대상으로 만드는 식 작용에서 비롯된다. 아상을 놓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심플하다.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것.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것을 데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 어떻게 나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나와 잘 살 것인가 그것이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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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04 22:35
    앞에 미숙샘글과 함께 샘글을 읽다보니 문득 오늘 만난 사람들과 글들, 생각과 느낌 등이 파도 같고, 물 속의 달 같고, 신기루 같은 현상들로 보입니다. 늘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