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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이야기] 시작하는 수행자의 어려움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20-11-04 20:02
조회
216

시작하는 수행자의 어려움



글 / 미숙


지난 목요일 출근하기 위해 길음역으로 걸어가는데 마주 오던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어떤 장소나 방향을 묻는 것 같았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모르겠어요”하고는 갈 길을 갔다. 그리고 그때 직감적으로 약간 모자란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뭐라고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지하철을 타러 가기 위해 걸었다. 그런 사람이 아주 낯설지는 않았고 저러다가 말거나 오가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같은 말을 건넬 뿐이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걷다보니 그 구시렁대는 소리가 작아지지 않는다? 헐 나를 따라온다. 잠깐 고민하다가 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자 “길음역은 어디로 가요?” 묻는다. “이쪽으로 쭉 가세요”하니 “이쪽으로 쭉 가면 돼요?” 또 묻는다. 이때 다른 분별은 다 치우고 과연 이 사람이 진짜 길음역이 궁금한 건가? 싶었다. 어쨌든 내가 “그럼 같이 가세요. 저도 길음역 가니까”했더니 이 남자는 느닷없이 “당신에게서는 좋은 향기가 나요”라고 말하고는 쓰지도 않고 손에 들고 있던 마스크를 마구 흔들며 길음역 쪽으로 팔랑거리며 뛰어가는 것이 아닌가? 어이가 없었다. 같이 가자니까 혼자 가버리는 건 또 뭐람? 나 참.. 알 수 없다. 마지막에 날린 남자의 대사가 웃겨서 피식거리며 길음역 쪽으로 걷다보니 그 남자는 이제 벽에 대고 혼자 열심히 뭐라뭐라 말하는 중이었다. 조용히 그 남자에 대해 가벼운 염려를 보내며 지하철을 타러 갔다.

어느 시점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따라오던 그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였을까? 지난주에 읽었던 『유마경』의 한 내용이 떠올랐었다. 장자의 아들 선덕이 유마힐의 ‘법 보시’설법을 듣고 기뻐서 보석 목걸이를 바친 부분인데 유마힐은 그 목걸이를 둘로 나누어 하나는 ‘가장 보기 싫고 빈천한 거지’에게 주고 또 하나는 난승 여래에게 바쳤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그날 아침에 만났던 남자를 모자란 사람으로, 보기 싫고 빈천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무시하고 있었다. 그때 『유마경』의 내용이 떠오르면서 ‘평등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올라왔던 것으로 추측한다.

세존께서 제자들에게 유마힐을 문병할 것을 권하지만 하나같이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전하는 유마힐의 설법 중에는 “마음이 안에도 머무르지 않고 밖으로도 행하지 않는 것을 좌선이라 합니다.”(p57)와 같이 ‘이러하지도 않으면서 저러하지도 않는 것을 ~이라 한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그런 표현을 보면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어 머릿속이 바빠지면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칠 수 없게 된다. <제6품 불가사의한 이야기>에서도 그렇다. “법을 구하는 자들은~”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들은, 해설에 따르면 “불교에 입문하는 자들, 즉 법을 구하는 자들의 기본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p.136) 알려 주는 것이라 하니 더욱 주목하게 된다. 그러나 “법을 구하는 자들은 불,법,승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고집멸도도 구하지 않는다”는 말은 불법승도 고집멸도도 다 부정하는 것만 같아 또 이건 무슨 의미인가 싶어 머릿속이 바빠진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만약 법을 구하고 싶다면 어떤 법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p.127)라고 말하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처음 법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불법승에 귀의하고 고집멸도의 사성제를 열심히 공부할 것을 강조하지 않나? 처음 공부할 때는 그래도 어느 정도의 집착과 욕망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가 어느 정도의 수준에 다다르면 불법승조차도 집착해서는 안 되고 고집멸도도 구한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것 또한 공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유마경에서는 처음부터 높은 수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처음부터 길을 헤매지 않고 갈 수 있기에 참 감사한 일인데도 “법을 구하고 싶다면 어떤 법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라는 말에 근기 낮은 사람은 바로 도망가 버릴 듯하다. 내 방 어딘가에 손바닥만 한 『유마경』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몇 년 전인가 그 책을 읽다 만 기억이 있다. 아마 그때 이 부분쯤 읽다가 뭔소리야 하고 덮어버린 것 같기도...

유마힐은 평등한 마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 이것이면서 저것인 것, 구하면서도 구하지 않아야 하는 것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문수사리에게 하는 ‘보살행’에 대한 설명에서도 그렇다. 어디에나 속하면서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라고 말한다.

불·법·승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불·법·승에 귀의하고, ‘구한다’는 마음으로 고집멸도를 실체화하지 않으면서도 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해야 한다. 법은 공하지만 중생의 몸으로 할 일은 있는 법이다. 그러는 와중에 무언가를 구하려는 마음이 작동할 때 ‘법을 구하는 자는 어떤 법도 구하지 말아야 한다’고 배운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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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04 22:09
    미숙샘의 담백함이 생생히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가보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