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문톡톡

민호의 '난중일기' 1화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16-08-04 09:22
조회
974
(자칭) "규문의 귀염둥이" 민호가 엊그제 8월 2일로 군대에 갔습니다.
듣자하니 저 강원도 산골짝 어디로 갔다 합니다.
음, "규문의 귀염둥이"를 어찌 국가에 뺏길쏘냐!=.=;;
한 번 공부한 이를 어찌 "혼자" "놀게" 내버려 둘 수 있나!
난중일기 코너를 마련하였습니다.
군대에서 겪은 크고 작은 사건들, 민호의 희노애락 등을 보내주리라 생각합니다.
잼나게 읽어주셔요! 늦게 올림 같이 독촉해주세요! 그럼 이만~

2016년 7월 29일 금요일 난중일기 성민호

아무리 자유롭고 편한 내용과 형식으로 쓰라고 하셨지만 역시 노트북 앞에 앉느니 뭐라도 써야겠다는 부담감에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더구나 이 글이 규문 홈페이지에 걸릴 생각을 하니 종결어미부터 ‘않는다’로 끝내야 할지 ‘않습니다’로 끝내야 할지 혼란스럽다. 그래도 제목이 일기이니만큼 독백체로 써보도록 하겠다.

올해 초부터 ‘군대 가고 싶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는데, 이렇게 이제 네 밤만 자면 온통 민머리 친구들 속에서 부대껴야 하는 상황이 오니 정말 아쉬움과 공허함, 조급함, 무기력함 등 여러 느낌이 섞여 올라온다. 군대를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애초 4월에 군대에 가려 했던 계획과 최근에 더욱 심해진 입대난, 그리고 친한 친구들의 입대를 보며 들었던 조급함 등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런 마음에 8월 입대 중 가장 경쟁률이 적으면서 모집인원이 많았던 최전방수호병에 지원했고 공교롭게도 동사서독 에세이 발표 후 9일도 채 남지 않은 8월 2일이 입영일이 되었다. 덕분에 입대 전 흔히 찾아온다는 ‘더 망가지고 싶은 증세’를 겪지 않을 수 있었고, 폐인처럼 흥청망청 놀아버리는 불행을 피할 수 있었다. 차분히 어른들께 인사드리고 더불어 이렇게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글을 쓰고 있다. 이는 대단한 행운이다.

군대는 자유와 창의성이 가장 철저히 무시되고, 제도의 지배가 가장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공간이다. 우리는 왜 국가의 제도에 순응해야 하고 21개월이라는 시간을 의무로서 헌납해야 하는가. 이런 고민은 오래전부터 여러 사람에게 있어왔고 나도 익히 들어왔다. 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넘겨왔다. 사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생각 없이 있었는데 이렇게 쓰다 보니 생각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다. 내가 군대를 간다는 사실과 그것에 대해 "왜?"라며 반항하는 입장. 나는 그런 입장에 비해 내가 군대를 가야 한다는 결정이 더 나은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납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군대를 간다는 것에 당위성을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안 갈 수 없기 때문에 간다? 국가라는 대상이 저항하기에 너무 거대한 것이어서 저항하지 않는다? 이건 너무 허무한 거 아닌가? 다들 가는데 나만 안갈 수는 없지, 비겁하게...? 그렇다면 왜 다들 가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어째서 “왜?”를 질문하지 않는 거지? 이런 저런 질문이 스쳐가면서 조금씩 흥분하기도 했지만 이내 가라앉았다.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군대는 가야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뚜렷하지는 않다. 군대는 국가가 개인을 희생시키는 곳이라는 생각도 있다. 그럼에도 군대는 가겠지. 이것을 순응이라고 할 수도 충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든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그저 또 당위성 부여하기 좋아하는 마음이 ‘군대에 간다’는 사실에 씰룩거린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으로 정리하려 한다. 내게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기 좋아하고, 미화하기 좋아하는 내 오랜 버릇이 또 고개를 들려 하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 성과라면 성과다.

지금 내 생각은 이렇다. 다들 힘들다 하는 곳에, 처음 들어온 어리벙벙한 까까머리 놈들과 같이 군대라는 곳에 놓이게 되는데 나만 괴롭고 나만 특이하게 힘들까? 그 안에도 다 소소한 재미가 있고, 우정이 있고, 희노애락이 있겠지! 나보다 마른 놈, 뚱뚱한 놈, 약한 놈, 강한 놈, 똑똑한 놈, 멍청한 놈, 어차피 사람 사는 곳이니 못 살 곳이야 될까. 뭐 가는 거니 다치지 않는 걸 목표로 “최선을 다해 중간을 하라”는 친구의 조언을 명심하여 다녀오려 한다. 2년이 길다고 하니 공부를 하며 현명하게 사용할 것이다. 아무쪼록 2년, 나라지키다 오는 것은 맞으니 그 정도 의미는 부여해 보려 한다.

+ (지난 동사서독 에세 발표 때 민호가 샘들에게 보냈던 인사 편지도 같이 올립니다.^^)

규문 선생님들께

안녕하세요 규문 선생님들? 규문의 귀염둥이 민호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8월 2일에 국가에 충성하기 위해 떠나게 되는데, 에세이 발표를 마지막까지 함께하지 못하게 되어 이렇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 섰습니다.
제가 규문에서 공부한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갑니다.
처음 와서부터 암송도 과제도 제대로 안 해오고 강의시간에 꾸벅 꾸벅 졸던 저를 보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생각해보면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예뻐해 주시고 관심 가져 주신 것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저희 아버지는 늘 우리 민호가 부모 복은 없어도 선생님 복은 많다고 하셨습니다.
작년 루쉰 공부부터 함께하면서 잘 알려주시고 도움주신 분들, 지금은 안계시는 완수샘, 현옥샘, 은남샘, 태욱샘, 옥상샘, 수영샘, 재원샘, 혜원누나, 소담누나, 그리고 이번 학기 때 새로 알게 된 락쿤샘, 윤진샘, 종은샘, 건화형, 지현누나, 소민누나, 민영누나 모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구박하시면서도 챙겨주시고 맛있는 밥도 해주시는 채운샘!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못 느끼셨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규문에 온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일기장 어딘가에 “내가 스무살에 가장 잘한 것이 있다면 규문에 가 공부를 시작한 일이다”라는 말이 써있을 정도입니다.
밥 먹여주면서 또 오라고 하는 공간이 어디 있을까요? 물론 놀고 싶은 때도 많이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겨났습니다.
특히 입대를 채 열흘도 안 남긴 시점까지 에세이를 쓸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입니다!
주위 사람들의 어이없어 하는 반응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번 에세이를 욕심내서 써보고 싶었습니다. 멋지게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별로 없는 법이지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난중일기’라는 코너를 맞게 되어 군대에서도 계속 공부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생님들도 계속 만날 수 있게 되었지요.
더 전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저는 이만 줄이고 물러가겠습니다.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선생님들 모두 늘 건강하시고 정진 이어가시기를 응원합니다.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더 커서 돌아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전체 3

  • 2016-08-04 19:09
    요즘 가만히 있어도 몸에서 물방울들이 나오는데, 건강히 훈련 잘 받아
    (잠꾸러기 동문으로부터)

  • 2016-08-04 13:46
    깔깔깔!!!

  • 2016-08-04 10:24
    유구무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