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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질 때 모으고 마디를 지키고 ' - 주역수업(11. 05)을 듣고

작성자
윤몽
작성일
2016-11-10 17:18
조회
394
오늘은 환괘(渙卦)와 절괘(節卦)를 조금씩 살펴볼게요!

 

먼저 환괘입니다. 환(渙)은 한자로는 ‘물 풀릴 환’이랍니다. 물이 얼었다가 서서히 풀려가는 것, 중심에서부터 주변부로 서서히 흩어지는(渙散) 모습을 상상하시면 되겠어요. 위에는 손괘인 바람이고 아래는 감괘인 물이니까, 물이 바람을 만나서 흩어지는 모양을 떠올릴 수도 있겠네요. 괘사에 보면 왕이 종묘(왕조의 구심점)를 세우는 데에 이르면 큰일을 해낼 수 있고(대천을 건넘이 이로우니) 굳건히 함이 이롭다(王假有廟 利涉大川 利貞)고 했어요. 여기서 흩어지는 기운들을 중심으로 모으는 역할을 군주가 해야 해요. 이 풀어지는 것이 마음(中)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보고, 백성들의 마음의 중심, 흩어지는 시공간의 중심을 잡는 것을 군주의 역할로 본 거죠. 단전에는 왕이 묘를 세우는 데에 이른다는 것(王假有廟)을 왕의 중의 자리에 있는 것, 즉 나라의 중심이자 백성의 마음에 있는 것으로 해석해요(효사의 자리로 생각하면 구오가 중정하다는 말로도 볼 수 있겠죠). 우샘께서는 사람이 모일 때도, 흩어질 때도 중심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백성들의 뜻이 흩어지기 시작할 때 각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내는 역할이 분명 쉬운 것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환의 시대의 군주에게 주어진 사명이기도 하죠. 이것은 큰 강을 건널 만한 어려운 일일 수 있겠지만, 배를 탈 수 있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죠. 여기서 손괘의 풍(風)은 음목이니 나무(木)로도 볼 수 있거든요. 단전은 이 상황을 물(감괘) 위에서 나무배(손괘)를 타는 것(乘木)으로 보았어요. 이렇게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성과를 이룰 수 있겠죠. 이것을 현실에서 선왕의 구체적인 역할로 풀면, 대상전에 나온 것처럼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종묘를 세우는 것(先王 以 享于帝 立廟)이 되는 거예요.

 

그럼 이제 효를 잠깐 볼까요. 일단 크게 봐서 효는 서로 뿔뿔이 흩어지는 분위기기 때문에 1과 4, 2와 5가 서로 정응으로 만날 수 없어요. 그래서 아쉬운 대로 가까이에 있는 애들끼리 힘을 합치게 돼요. 그러니까 1과 2, 4와 5가 서로 둘씩 만나는 거죠. 이를 테면 초육은 자신의 힘든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건장한 말을 필요로 하죠(初六 用拯 馬 壯 吉). 그러니까 초육에게 건장한 말은 위에서 내려온 보다 강한 기운, 구이가 되는 거예요. 초육은 구이를 따름으로써 양을 따르는 음의 바른 이치(順)로 길할 수 있게 돼요. 건장한 구이말을 타고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죠. 그렇다면 구이는요? 구이는 환의 시대에 처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곳으로 서둘러 가면 후회가 없게 돼요(九二 渙 奔其机 悔 亡). 구이에게 의지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초육이 됩니다. 초육은 구이와 아주 가까운(親比) 친구이고, 그래서 기댈 수 있는 곳이 돼요. 이것은 소상전에 보면 그 원하는 바를 얻은 것(得願)이라고 했어요. 흩어지는 시대에서 이들이 원한 것은 바로 안정감, 편안함이겠죠.

 

비슷한 분위기로 육사와 구오도 가까이 지내는데요. 육사는 흩어지는 시대라 사람을 모으기 힘들 때인데도 사람들을 잘 모으기 때문에 아주 크게 길해요(其群 元吉). 사람이 모인 것이 어느 정도냐 하면 언덕을 이룰 정도(有丘)라고 하니까요. 구오는 백성의 귀에 쏙 들어가도록 큰 호령을 하는데요(汗其大號). 그 시대의 왕의 자리에 제대로 거한 것으로 허물이 없어요(王居无咎). 원래 4와 5는 신하와 임금의 자리니 서로 밀접한 관계죠. 육사의 소상전에 대한 정샘의 해설을 보면 여기서 육사가 이렇게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내고, 구오인 임금이 그 공을 성취하는 것이 바로 군신지분(君臣之分), 즉 임금과 신하가 각자의 본분을 잘 해낸 것이라고 아주 긍정적으로 봤어요. 국가를 이끌어가는 입장에서 민심이 흩어지는 환의 시대는 대위기인 것이죠. 이럴 때 임금과 신하가 각자의 본분을 다 하고 뜻을 합치니 충분히 어려움을 극복하여 위기를 넘길 수 있게 되는 것이랍니다.

 

그럼 이제 절괘(節卦)를 볼까요. 절괘에서 절(節)은 마디이자 경계이고, 지켜야할 선, 한계(), 절제 같은 것을 의미해요. 절괘가 위에는 물(감괘)이, 아래에는 못(태괘)이 있는 걸로 보면, 연못에 물이 담겨져 있는 것, 즉 일정량의 물이 담긴 것으로 볼 수 있겠죠. 절의 괘사는 좀 알쏭달쏭할 수 있는데요. 절은 형통하니 고달프게 지켜나가는 것은 계속 해나갈 수 없다(節 亨 苦節 不可貞)고 했어요. 정샘의 풀이를 보면, 일에 절제가 있으면 형통함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형하다고 했지만, 적중(適中)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예요. 쉽게 지나치게 되고 금방 고달프고 힘들어지죠. 지키는 것이 고달프게 되면 항상성을 가지고 계속 해나가는 것이 당연히 어려워집니다.

 

가장 절(節)하는 것은 역시 천지자연이죠. 단전에 보면 천지가 절하여 봄여름가을겨울의 사시가 일어나니 인간은 그 절을 본받아 제도를 만들어요(天地節而四時成 節以制度). 그렇게 해서 바른 규정과 척도를 만들게 되면 재화를 낭비하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을 수 있죠(不傷財 不害民). 천지가 마디와 경계가 있어서 그 질서와 흐름을 따르는 것처럼, 인간도 그 각자의 상황과 신분(당시를 생각해 보면요!)에 맞는 예의범절, 규정 같은 게 있어요. 정샘은 사람의 사적인 욕심이 끝이 없기 때문에 제도로 한계를 지어주는 것이 사치하고 방자한 행동들을 막아준다고 본 것이에요.

 

이제 효를 살펴볼게요. 완전히 반대가 되는 얘기를 하고 있는 초구와 구이를 볼까요. 먼저 초구는 집안의 뜰에도 나가지 않는 것이 허물이 없대요(不出戶庭 无咎). 마당도 나가지 말고 집안에 콕 박혀 있으라는 건데요. 얘는 맨 아래인데다가 절괘의 처음이니까요. 그 시작부터 제대로 그 경계하는 것을 삼가 지켜야 해요. 절의 시대는 본분을 지키는 시대죠. 자신을 끌어준다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함부로 밖을 나가서는 안 되고 몸을 사려야 한다고 하고 있어요. 소상전에 보면요. 막히고 열리는 것, 즉 통과 색을 알아야 한다(知通塞也)고 했습니다. 평생 집안에 박혀 있을 순 없잖아요. 방을 나가야 할 때를 알아야 나갈 수 있겠죠. 그러니 방에 갇혀 있어도 세상일에 어두우면 안 된다는 거예요. 구이를 보면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해요. 문 앞에 나가지 않으면 오히려 흉하답니다(不出門庭 凶). 아까는 나가지 말라더니 갑자기 왜 이랬다저랬다 하죠? 구이는 강중인데도 그 강중의 덕을 지키지 못하는 애예요. 절의 시대에 일을 해야 하는데, 자신의 힘을 구오에게 보태지 않고 그 자리에 뭉개고 있으려고 하면 흉한 것이죠. 스스로 역부족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포기해서 눌러 앉은 것이에요. 그럴 땐 구오를 따라서 밖으로 나오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거든요. 여기서 둘 다 똑같이 집에 있는 상황인데, 초구는 나가지 말라고 하고, 구이는 나가야 한다고 했어요. 여기서 나가고 나가지 않는 것은 모두 때(時)에 달린 것이죠. 자신의 시대를 읽는 것, 그 흐름을 제대로 읽어서 나갈 때와 조용히 머물 때를 구분할 수 있는 것, 이것이 가장 큰 지혜가 되겠습니다!

 

와, 이제 벌써 64괘 중에 네 개의 괘만 남았네요. 건괘를 배운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에요. 물론 머릿속에 괘들이 착착 정리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단편적인 것조차 희미하죠;;) 그래도 한번 씩 전체를 훑어볼 수 있었던 것도 감개무량합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으니 모두 힘을 내서 끝까지 가 보아요. 지난 주 출석률 좋았죠. 요번 주도 빠지지 말고 모두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토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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