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문톡톡

유학일기 - 마지막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7-01-23 15:10
조회
506
안녕하세요. 드디어 마지막 강의를 듣고 왔습니다. 이전의 유학일기를 보면 유학일기 내용이 참 난잡하게 이 얘기 저 얘기를 넘나들었죠. ㅋㅋㅋ 강의를 다 들은 지금도 뭔가 복잡합니다. 결국 그래서 생명이란 뭔지....... (ㅇ_ㅇ) 강의 전체의 목적이자 이번시간의 주제는 “생명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가지기”입니다. 하지만 다른 시선을 가진다는 것이 말이야 쉽지, 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기가 어렵더군요.

이번시간의 얘기도 “다른 시선”을 중심으로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다른 시선에 대한 얘기는 처음부터 쭉 이어졌습니다. 첫 번째 시간에는 자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신비로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헤르메스주의나 낭만주의 자연과학을 얘기했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DNA부터 개체까지 ‘~하기 위해 이렇게 됐다’ 식의 목적론적 그리고 환원론적 설명으로 이해할 수 없는 ‘창발성’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세 번째 시간부터는 과학기술 전반이 사회를 초월한 분야가 아니라는 것, 오히려 사회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을 얘기했습니다. 네 번째 시간에는 좀 더 자세한 얘기가 있었는데, 유전자 조작이 어떤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정확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시장에 나오는 지를 봤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시간에는 상품이 시장에 나오기까지 과학이라는 학문을 어떻게 이용하고,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를 얘기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딱히 이전의 강의들을 정리하거나 “이거다!” 싶은 얘기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얘기하는 것은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다만 생명을 다르게 보는 시선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를 인물, 영화, 책, 다큐 등을 통해서 봤습니다. 그래서 이번시간은 인물과 작품 소개에 가까운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ㅎㅎ 재밌는 것들이 많더군요. 그게 잘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처음 얘기할 사람은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저자인 린 마굴리스입니다. 이전시간에도 여러 번 나왔었죠. (칼 세이건과 부부였던 적은 있지만 그와 정반대의 학문적 견해를 가졌다고 하네요. 그리고 아들인 도리언 세이건과 책도 썼더군요.) 그런데 같은 제목으로 슈뢰딩거가 이미 책을 낸 적이 있었습니다. 슈뢰딩거가 아마 최초로 생명에 대한 물음을 던진 것 같은데, 그때 슈뢰딩거의 책 제목역시 『생명이란 무엇인가?』였습니다. 린 마굴리스 역시 생명에 대해 물음을 제기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 ‘미토콘드리아 DNA’를 얘기합니다.

보통 세포에서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핵을 얘기하는데, 린 마굴리스는 핵 못지않게 미토콘드리아 역시 중요하다고 얘기합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아~주 예전에 박테리아가 원시세포에 흡수됐으나 사라지지 않고 남은 흔적이라고 합니다. 얘는 혼자서도 증식하기 때문에 세포내에서 여러 개가 발견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가 중요한 이유는 사라지지 않고 세포와 맺는 관계 방식 때문입니다. 세포는 미토콘드리아에게 양분을 제공하고, 미토콘드리아는 그것을 먹고 세포에게 에너지를 제공합니다. 이런 공생관계가 세포와 미토콘드리아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까닭을 “왜 그랬는가?”라는 질문으로는 해명할 수 없습니다.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된 것입니다. 린 마굴리스는 이런 공생관계를 통해 생명이 살아가는 방식은 단순히 경쟁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표트르 알렉세이예프 크로포트킨 (1842. 12. 9 ~ 1921. 2. 8)


흔히 다윈의 진화론을 떠올리면 개체 간의 경쟁, 무자비한 환경으로부터의 생존만을 생각합니다. 크로포트킨은 『만물은 서로 돕는다』라는 책을 통해서 생물을 경쟁하는 것으로만 살아가는 견해를 거부합니다. 그가 시베리아에서 목격한 바로는 개체들은 과잉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과소상태였습니다. 왜냐하면 혹독한 추위로 인해 살아가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크로포트킨이 보기에, 이런 환경에서 생물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다윈이 얘기한 것처럼 경쟁이 아니라 상호협동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펭귄들은 허들링을 통해 추위를 극복합니다. 허들링은 펭귄들끼리 죽지 않기 위해 서로 밀착하여 온도를 높이는 것을 말합니다. 안쪽에는 새끼들을 키우는 장소도 있고, 몸이 덥혀진 펭귄들은 바깥의 펭귄과의 자리를 교체한다고 합니다. 그는 다윈이 개체가 경쟁하기 좋은 열대지방만을 봤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협동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즉, 개체가 살아남는 방식에는 단순히 치열한 경쟁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따라서는 상호협동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다윈도 생물이 생존하는 방식에는 상호협동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만 개체 간의 치열한 투쟁이라는 내용이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너무 부각된 것입니다. 살짝 사족을 붙이자면, 생존방식이 다양하다는 질문은 결국 어떻게 살아가느냐, 어떻게 진화하느냐에 대한 질문과 이어집니다. 하지만 진화이론도 다윈의 점진적 진화론뿐만 아니라 굴드의 단속평형설, 라마르크의 획득형질 등등이 있습니다. 비약 가득, 느낌 가득한 추측일 뿐이지만,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은 “어떤 것이다.”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자연과 나의 관계 맺음에 대한 얘기일 것 같습니다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ㅋㅋ

다음은 블라디미르 클라우디에비치 아르세니에프의 『데르수 우잘라』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실제로 지은이가 데르수 우잘라라는 연해주의 원주민에게 그곳을 안내받으면서 기록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지도를 제작하기 위해 데르수 우잘라를 고용했는데, 실제로 같이 다녀보니 그의 철학이 너무 매력적이었다고 합니다. 구로자와 아키라라는 감독 역시 데르수 우잘라의 철학에 매료되어 1995년 영화로 제작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왼쪽은 구로자와 아키라가 영화를 찍으면서 당시 분장한 데르수 우잘라고, 오른쪽은 실제 아르세니에프(맨 오른쪽)와 데르수 우잘라(오른쪽에서 두 번째)입니다.

데르수 우잘라의 철학의 중심에는 공존이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자리를 떠나기 전에 모닥불을 피울 수 있도록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누군가 급한 상황일 때, 이것이 그의 생명을 구해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크~) 데르수 우잘라는 사라진 돌궐족의 몇 안 되는 후예였다고 합니다. 돌궐족하면 말 타고 침략하는 야만적인 이미지밖에 안 떠오르는데,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인디언, 유목민들의 철학도 궁금해지네요.

김동광 선생님은 근대부터 시작된 과학을 살펴보면, 남성중심주의와 자연에 대한 지배, 착취, 개발이 배경으로 있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첫 시간에 얘기한 프란시스 베이컨의 연구 방식, 실험실로 자연을 가져와 통제·지배하는 것이 있습니다. 김동광 선생님은 이성적, 논리적인 과학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이뤘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것들을 잃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번시간에도 등장했던 반다나 시바는 근대과학에 의해 착취되고 지배된다는 점에서 자연과 여성을 연결합니다. 굴드 역시 여성인권을 얘기하는 것은 결국 모든 약자들에 대한 수사학이 될 수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전통적 근대과학이 아닌 새로운 과학적 태도, 이름을 붙이자면 여성주의적 과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김동광 선생님은 지배가 아니라 공존, 공감, 배려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과학적 태도를 모색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바라 매클린톡(1902. 6. 16 ~ 1992. 9. 2)


『생명의 느낌』이라는 바바라 매클린톡이라는 과학자에 대한 책이 있습니다. 매클린톡은 옥수수에 대한 연구결과로 노벨상을 받았는데, 2가지의 이유로 30년이나 늦게 수상이 미뤄졌다고 합니다. 첫째는 그녀가 여성이라는 이유였는데, 같은 이유로 『침묵의 봄』을 쓴 레이첼 카슨 역시 과학자로 활동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둘째는 그녀의 연구방식이었는데, 왜냐하면 그녀는 옥수수와의 교감을 통해 연구했기 때문입니다. 매클린톡은 실험실에서 실험자가 피실험자를 연구하는 관계를 벗어나서 옥수수가 자라는 밭으로 연구 장소를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모든 옥수수에게 각각의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옥수수를 이해했다고 합니다.

“어떤 문제에 직면하지요. 그런데 문득 그 답을 알아요. 아직 말로는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데 말이에요. 무의식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거에요.”

매클린톡이 분석적 연구에 서툴러서 새로운 연구방법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실험실에서 하는 연구방법도 매우 뛰어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교감이라는 새로운 연구방식을 선택한 것은 단순히 분석과 논리만이 이해에 다다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교감을 통해서 생물을 다르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 것 같습니다. 시나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을 보더라도 때로는 직관이 논리를 앞서서 움직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해’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할 것 같습니다.

어슐러 르귄(1929. 10. 21 ~ )

다음은 어슐러 르귄이라는 작가의 『어둠의 왼손』이라는 소설입니다.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지만, 세계 3대 판타지 소설을 꼽으면, 톨킨의 『반지의 제왕』, 루이스의 『나니야 연대기』 그리고 어슐러 르귄의 『어스시 마법사』를 얘기합니다. 여기서 소개할 『어둠의 왼손』은 우리가 생각하는 성 고정관념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말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게센인’이라는 외계인들은 남녀라는 성적 구별은 가지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게센인은 생리가 가능한 주기와 가능하지 않은 주기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모든 인간이 수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의 주기는 평균 26일에서 28일이다. 21일 또는 22일 동안 각자는 성적으로 활동이 없는 잠재 상태의 소머이다. 18일째 되는 날 뇌하수체 작용에 의해 호르몬 변화가 시작되어 22일째 또는 23일째 케머 즉 발정기에 들어간다. (중략) 케머 기간 동안 성 역할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자기가 남자가 되어야 할지 여자가 되어야 할지 알지 못하며 실제로 선택의 여지도 없다. 이곳 행성에 도착한지 2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나는 이곳 주민들의 입장에서사물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특히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는 내 고정관념은 버리기 어려웠고, 때문에 이곳 게센인의 본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테두리에 그들을 끼워맞추는 실수를 저지르곤 했다. (중략) 내가 그를 좋아하지 않고 못미더워하는 것은 어쩌면 이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여성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왜냐하면 내 옆에 앉아있는 어딘가 우울하고 이해하기 힘들며 강력한 이 존재를 여자라고 생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목소리를 부드러웠고 약간 울림이 있긴 했지만 깊이가 없었다. 이 역시 남자라기보다는 여자의 목소리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보통 남녀차별을 얘기할 때,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은 안 된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이때 남녀의 차이란 것도 정말 원래부터 그런 것일지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여기는 남녀의 차이라는 것도 자연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근대 이후로 생겨난 개념 중 하나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많은 관계들을 남녀라는 성적인 관계로만 축소시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신을 평생 남자 혹은 여자로만 여기고 살아가는데, 게센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태도야말로 영구적인 장애일지도 모릅니다.

그밖에도 만화 이와아키 히토시의 『기생수』나 SF소설 조안나 러스의 『혁명하는 여자들』, 옥타비아 버틀러의 『야생종』, 다큐 황윤의 『어느날 그 길에서』, 『잡식가족의 딜레마』 등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많으므로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ㅎㅎ
전체 2

  • 2017-01-26 19:47
    와.. 유학생활을 잘마치고 임무를 훌륭히(!!) 끝낸 것을 축하!! 과학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도 후기덕분에 재미있게 접한 내용이 많으니 감사!!

  • 2017-02-03 00:41
    짝짝짝! 재미있었습니다. ^^ '공존, 공감, 배려'가 과학의 태도이자 방법일 수 있다니 놀라워요. 데르수 우잘라의 책도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