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후기

카프카 읽기 후기(5주차)

작성자
한역
작성일
2019-10-20 00:00
조회
190
<변신>에서 갑충이 된 그레고르가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창밖을 보기에 앞서 그레고르의 태도가 기억납니다. “그는 아까와 같은 수고를 한 후에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처음 위치에 누워 자기의 다리들이 더욱 화난 듯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다가 그렇게 멋대로 하는 짓을 막을 길이 없자 그냥 침대에 누워 있을 수는 없으므로 비록 성공률은 지극히 희박하더라도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침대를 벗어나는 일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때 그는 절망적인 결심보다는 침착한, 가급적 침착한 생각을 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다짐하기를 잊지 않았다.”(<변신 : 단편전집>, 솔출판사, p.114) 여기서 그레고르는 침대라는 공간에 갇히지 않기 위해 꿈틀댑니다. 그레고르는 “눈을 되도록 예리하게 하여” 침착하게 출구를 찾습니다. 시선을 돌리자 창밖에는 안개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카프카 소설 속 세계는 마치 안개와 같은 불확실함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아침에 누군가 갑충이 되었고, 이러한 상황을 설명할 마땅한 이유(‘왜?’)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갑충이 된 그레고르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명료히 감지합니다. “그러나 그레고르는 훨씬 더 침착해졌다. 다른 사람들은 그의 말을 더 이상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귀에 익은 탓인지 자신의 말이 아까보다 훨씬 더 명료하다고 여겼다.”(p.121) 주인공의 명료한 감각이 현상하는 불확실한 세계에서는 수만 가지의 이름들이 출몰합니다. 그곳은 자신만의 고유한 영토에 머물지 않는 변신체들의 땅입니다. 이들은 특정한 부류의 정체성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실종자>의 주인공 카알 로스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카알에게 이름을 묻고 그가 대답할 때마다 주인공은 변신을 거듭합니다. 소설에는 ‘야콥’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주인공의 이름을 묻고, ‘카알 로스만’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그는 자신이 카알의 외삼촌임을 자처합니다. 그런데, 야콥이 정말로 카알의 외삼촌인지는 불명료합니다. 단지 어머니와 같은 성씨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야콥 씨는 카알의 외삼촌이 되고 카알은 야콥 씨의 조카가 됩니다. 이민자 신분에 불과했던 카알은 상원의원인 외삼촌의 도움으로 신분이 상승됩니다. 그러던 카알은 외삼촌이 부여한 상류사회의 규율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했고, 결국 뉴욕에서 추방됩니다. 그는 자신의 이력과 신분을 속인 채 옥시덴탈 호텔의 엘리베이터 보이로 취직합니다. 여기서도 그의 정체성은 오래가지 않고 카알은 여러가지 이유로 호텔을 떠납니다. 마지막에 오클라호마 극장의 단원으로 취직하는 과정에서 카알은 자신을 ‘니그로’라고 소개합니다.

이처럼 카프카의 세계에서 주인공들이 자기정체성을 확정하려는 시도들은 실패를 겪습니다. 그런데 꼭 '실패'로 단정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하나의 정체성에 자신을 가두는 대신, 움직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자신을 이전과 다른 관계의 장에 기입합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릴 때마다, 그는 패착어린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시도를 계속 이어갑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속 인물의 정체성도 카프카 세계의 주인공처럼 모호합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소설에서 어느 선생의 일기를 훔쳐 읽는 발화자(고양이)의 말은 온전히 고양이의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인간인 선생의 말도 아닙니다. 선생과 고양이의 시점이 중첩되면서 주인공의 발화는 단선적이지 않습니다. ‘나는 ~이다’라는 규정에서 ‘분리 불가능한’ 개인을 출현시켰던 근대적 시선에서 벗어나, 소세키가 그리는 인물들은 ‘고유한 개성’을 거부합니다. 고양이-선생은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에서 등장하는 원숭이-인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카프카 세계의 인물들은 무미건조해 보입니다. 눈물 흘리지도 않고, 감탄을 남발하지 않습니다. 어째서 일까요? 정서가 표현되는 과정에는 좋고 나쁨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작동합니다. 그들은 특정한 정서에 예속되지 않고, 자신만의 도덕에 갇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절망에 빠지지도, 그렇다고 희망을 꿈꾸지도 않습니다. 아들과 갑충 사이(<변신>), 원숭이와 인간이라는 종種 사이(<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에서, 이들은 언제든지 ‘분할 가능한’ 존재들로 남습니다. 이렇게 보면, 카프카 소설에서 그려지는 남녀의 애정행각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약혼과 파혼을 오갔던 카프카 본인은 사랑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상상하기 어렵지만, 카프카의 연애관은 분명 독특했을 것 같습니다. 카프카 세계와 접속할수록 궁금함도 커집니다.

다음 시간에는 <소송>을 읽어옵니다. 관료제와 법이 어떻게 묘사되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눈여겨봅시다.
시간이 되는 분들은 <유형지에서>를 읽어오면 좋습니다. 다음 간식과 후기는 윤순 선생님이 맡아주셨습니다.
전체 2

  • 2019-10-20 19:27
    특정한 정체성으로 분할 불가능한 존재들이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세상. 후기 잘읽었습니다형님~

  • 2019-10-23 12:52
    카프카는 '어떻게 실패할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한 작가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역이형이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카프카의 연애관(?)도 궁금합니다. 정서의 일치를 끊임없이 지연시키고 서로 동일시하는 관계로부터 계속해서 달아나는 연애라니, 정말 지독한 사람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