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후기

카프카 읽기 후기(7주차)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9-11-06 13:53
조회
179
후기가 늦었습니다. 지난주 목요일에 7주에 걸친 "카프카 읽기 : 실패 혹은 시도로서의 글쓰기" 강의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마지막 시간에는 '단식', '글쓰기', '예술'을 주제로 「어느 단식 광대」, 「어느 개의 연구」, 「유형지에서」에 관해 선민샘의 강의를 듣고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굶기'는, 우리가 함께 읽은 카프카 작품들에서만 해도, 벗는다거나 소유물을 잃는다는 식의 다른 형태들을 취하며 반복되어온 테마이기도 합니다. 「시골의사」의 마지막 부분에서 의사는 옷이 벗겨진 채로 환자 옆에 눕혀졌다가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로 환자의 집을 떠납니다. 「소송」의 요제프 K는 채석장으로 끌려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고 개처럼 죽고요. 또 「변신」의 잠자는 인간이던 때에는 그에게 음식이었던 사과가 등에 박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어느 단식 광대」에서는 단식이라는 형태로 이러한 '덜어냄' 혹은 '비움'의 이미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카프카에게 굶는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흥미롭다고 생각한 것은 카프카의 소설 속에서 굶기가 순결한 금욕의 이미지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단식 광대는 욕망을 상실한 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단식을 강하게 욕망하죠. 40일 이상의 단식을 허용하지 않는 흥행주와 사람들에 불만을 느끼고, 마치 '극기'와 '금욕'으로서의 단식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단식을 끝낸 자신에게 주어지는 음식에 대해서도 혐오감을 느낍니다.

후두로 퍼진 결핵 때문에 말년에는 음식은 물론이고 물도 제대로 삼키지 못했던 카프카에게 단식이란, 감각과 욕망의 소멸이 아니라 오히려 습관으로 인해 패턴화된 감각과 욕망의 회로를 흐트러뜨림으로써 그것들을 예리하게 가다듬는 과정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 이미 자신과 동일화되어버린 것들을 덜어냄으로써 다른 모든 것들을 넓은 스펙트럼으로 감각할 수 있게 되는 것. 「어느 개의 연구」의 연구견은 말합니다. "지금까지 잠들어 있던 세계가 내 단식으로 눈을 뜨는 듯이 생각되었다." 실제로 단식을 하고 나면 혀의 미세한 감각들이 깨어난다고 하죠.

카프카에게 예술과 글쓰기는 바로 이러한 의미의 '굶기'였던 것 같습니다. 「요제피네」의 화자는 여가수 요제피네의 노래(휘파람)를 '호두까기'에 비유합니다. 호두를 까는 일이 그 자체로 예술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진지하게 사람들을 불러모아놓고 엄숙하게 호두를 까기 시작한다면 어떨까요? "그것은 절대로 단순한 호두까기에 관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술적인 의미와 가치를 담지하고 있는 행위 자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단식이 우리의 감각의 회로를 교란시키는 것처럼 어떤 행위가―그것이 가장 일상적인 행위일지라도―우리의 습관화된 인식과 감각을 흐트러뜨리는 작용을 할 때, 또 예술가 자신의 (카프카적 의미의) '단식'으로부터 비롯될 때, 우리는 그것을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단식광대의 단식이 예술인 것은, 그의 단식이 자기 신체의 조성을 바꾸는 시도인 동시에 그것을 보는 자들로 하여금 '인간'에 대해 질문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도 일종의 단식입니다. 포크를 쥐어야 할 손으로 펜을 쥘 때, 우리의 신체는 자기 보존이라는 주어진 목적에 따라 이러저러한 기능들로 분할된 유기체이기를 그치고 우리에게 닥쳐오는 낯선 감각들과 접속하는 글쓰기-기계가 됩니다(카프카에게 펜은 제 7의 감각기관이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아녜스 바르다와 함께『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연출한 사진작가 JR의 테드 강연이 떠올랐습니다(월요일 강의시간에 채운샘이 보여주셨어요). JR은 슬럼가에 정부 허가 없이 거대한 사진을 붙이는 작업을 했는데,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이게 왜 예술이냐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네가 지금 이 사진을 보고 잠시라도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하기를 멈추고 예술에 대해 질문하고 있지 않느냐, 그것이 예술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세계의 전부라고 여기는, 우리 자신과 동화되어버린, 가장 강력한 중력으로 우리를 잡아끄는 생각들과 관점들, 문제의 틀들로부터 이탈하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프카에게 예술은 '덜어냄'이고 덜어냄이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예술이란 우리가 지금껏 해보지 않은 다양한 생각들, 감각들, 행위들의 시도다, 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우리가 혀의 감각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온갖 다양한 음식들을 먹는 것이 아니라 단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카프카의 입장이 아닐까싶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우리가 지니고 있던 감각을 잃어버리는 과정도 포함될 것입니다. 문제는 자신을 덜어냄으로써 낯선 것들에 열려 있는 일이지 아무렇게나 다양한 일들을 시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극도로 루틴한 일과를 따랐던 카프카의 삶을 통해서도 우리가 알 수 있는 바입니다.
전체 1

  • 2019-11-08 08:43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하기를 멈추고 예술에 대해 질문"하고, 먹고사려는 손에다가 펜을 쥐어주는 것. 당연하게 쥐어진 궤도에서 슬그머니 이탈해버리기. 정말 욕망하게 됩니다!
    괴테가 찾지 못한 길을 찾아내는 것이 진정 괴테를 사랑하는 일이라지요. 하지만 그만큼 괴테가 찾은 길은 무엇인지 공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카프카를 공부하는 것도 이와 같겠지요! :) 카프카에게, 그리고 선생님과 건화님을 비롯해 함께 공부해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