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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30 동사서독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8-01-04 11:11
조회
168
대략적인 내용은 혜원누나가 정리한 것 같고, 전 제가 꽂힌 몇 부분만 정리해보겠습니다. ㅎㅎ

채운쌤이 동양의 3대 어부를 소개해주셨는데, 《장자》의 어부가 그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나머지 둘은 굴원의 《어부사》에 나오는 어부와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어부입니다. 이 어부들을 모티브로 《탈족도》, 《고사관수도》 등 많은 동양화가 그려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양화를 보기 위해선 그림에 쓰인 ‘초서’를 알아야 하고, 그 문장을 알아야 하고, 그림이 소재로 사용한 ‘화제(畵題)’까지 알아야 한다네요. 그래서 동양화를 흔히 아는 사람만 아는 그림이라고 합니다. ㅋㅋ;; 갈 길이 멀군요. 큰지은누나, 같이 힘내봅시다!

세 명의 어부는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이미지 자체는 비슷합니다. 대부분 눈 내리는 날 강에서 노인(翁)이 홀로(獨) 낚시(釣)를 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왠지 독거노인의 쓸쓸한 취미생활처럼 느껴지네요. 하지만 채운쌤은 이러한 어부라는 화재, 낚시를 하는 행위에서 동양에서 생각하는 삶의 이미지를 엿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낚시가 손맛을 느끼는 스포츠가 되었지만, 본디 낚시는 자신이 낚는 게 아니고 물고기가 와서 물려줘야 낚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낚시대를 드리우는 것은 내가 할 수 있어도, 그 다음 물고기가 걸리는 것은 명(命)에 맡긴다는 것이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다하되 결과에 대해서는 욕심내지 않는 동양 전반의 겸손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저는 특히 굴원의 《어부사》가 좋았습니다. 충신인 굴원이 모함에 의해 관직에서 쫓겨난 이후 어부와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거기서 굴원의 태도는 다음 구절로 드러납니다.

“온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 혼자만은 맑았으며, 세상사람들은 모두 취해있는데 나 혼자만은 깨어 있었소.(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거세개탁아독청 중인개취아독성)”

이에 대해 어부는 그러는 너의 뜻은 남들에 비해 얼마나 고고하길래 스스로 세상과 등을 졌냐고 얘기합니다. 어부의 말은,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더러우면 발을 씻으면 되는 것처럼, 세상의 수준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성인(聖人)이 아니냐는 것이죠. 그래도 마지막에 돌을 안고 물에 빠져 자살하는 굴원이지만, 이게 바로 굴원의 절개 혹은 지조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사실 후기를 쓰다가 《어부사》의 포인트는 굴원인지 아니면 어부인지 엄청 헷갈리더군요. 하지만 전 굴원이나 비간과 같이 형벌을 받더라도 끝까지 간(諫)하는 인물들을 보면 어쩐지 멋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전 장자가 충신들을 비판한 게 정말 그들이 자신의 가치를 좇다 죽은 것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긴가민가해집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에서 그려지는 어부는 좀 다릅니다. 거기선 무릉에 사는 한 어부가 어느 날 길을 잃었는데 어쩌다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곳을 지나게 됩니다. 그리고 걱정 없는 세상(?) 비슷한 곳에 다다르게 됩니다. 나중에 그곳을 무릉도원이라 부르는 것도 무릉이란 지명과 복숭아꽃이 합쳐진 것이죠. 여기서의 어부는 속세와 탈속(무릉도원)을 오가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장자의 어부에서는 살구나무 밑에서 제자들과 함께 하고 있는 공자와 홀연히 나타난 어부의 등장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장자에서 등장하는 어부의 말은 어떻게 보면 공자가 할 법한 말입니다. 그는 “천자, 제후, 대부, 서인들 이 네 계급이 각자가 올바른 도를 지키면 최선의 치세이고 네 계급이 각각의 자리를 떠나면 이보다 큰 어지러움이 없다.”라고 얘기합니다. 자신의 직분에 맞게 최선을 다하는 일, 이것은 유가에서 얘기하는 정명(正名)사상과도 통하는 것 같습니다. 공자를 까는 것 같으면서도, 그 논의를 살펴보면 《논어》 같은 곳에서 공자에 나오는 말들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글쓰기는 저번 시간 〈도척〉에서 봤던 것처럼 ‘우언(寓言)’적 글쓰기입니다. 그러니까 〈도척〉에서도 장자의 공자에 대한 비판은 정확히 말하면 논어와 역사 속 인물로서의 공자가 아니라 공자로 비유된 도그마화된 인륜이었고, 〈어부〉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채운쌤은 장자가 비판하는 지점을 꼼꼼히 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장자가 비판할 때, 대부분 그것은 분명한 선악의 구도에서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지점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러한 비틀기(?) 때문에 오히려 장자만의 문제의식을 볼 수 있습니다. 음....... 이전에 읽었던 내편이나 외편들을 다시 봐야겠네요. ㅎㅎ;;

〈설검(說劍)〉편을 읽을 때, 조에서는 이걸 “설검”으로 읽지 않고, 세검(說劍)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단 얘기가 있었습니다. ㅋㅋ 장자는 검사로 참전하긴 했지만 결국 그가 사용하는 것은 여타의 다른 유세가들과 같은 ‘혀’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조에서 토론할 때 이 편의 중심을 어디에 놓고 볼지에 대해서 얘기가 분분했습니다. 혜원누나 같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사람들이 죽는 것에 끌렸는데, 저는 그보다는 군주의 통치방식이 각각의 비유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대해 봤습니다. 얘길 하다 보니 두 가지로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혜원누나는 그 시대가 이미 싸우고 죽이는 것이 일상이 된 시대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장자가 무슨 말을 하고 왕을 설득해서 통치를 어떻게 바꾸려고 한들 이미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마지막에 장자와 군주의 장면이 하나 있고, 그와 대비되는 검사들의 죽음에서 그런 시대적인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저는 장자가 군주의 통치를 비판하고 그의 마음을 설득하는 것을 중심으로 봤습니다. 군주의 통치방식은 검사들이 칼부림을 해서 서로를 죽이는 것과 같았고, 마지막에 최후의 검사들이 죽는 것은 조 문왕이 만약 계속 통치방식을 똑같이 하면 그 역시도 그렇게 죽게 될 것이라는 예고로 봤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 시대적 고민과 연결해서 장자의 문제의식을 좀 더 살펴보면, 혜원누나가 본 대로 읽는 게 더 정확한 것 같기도 하네요. 어쨌든 채운쌤은 이만큼의 검사들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통해 출세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에 검사들이 죽는 것도 전쟁을 막기 위해선 또 다른 전쟁을 필요로 한다는 역설로 볼 수 있습니다.

〈도척〉편에서 무족(無足)과 지화(知和)의 대화 중 청렴(淸廉)을 추구하고 탐욕(貪慾)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구체적인 상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선택들은 자신이 받았을 때 좋고 나쁨의 시선으로 봤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청렴을 추구하고 탐욕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의식을 하는 것은 스스로를 타인과 비교하면서 명성을 추구하는 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자에서는 이처럼 다른 삶을 비판하며 자신의 삶을 특권화하는 삶에 대한 비판도 나옵니다. 이러한 차원을 넘어서 만족을 어떤 맥락과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을지에 따라 건강의 문제도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곧 에세이가 다가옵니다. 각자 만나신 나름대로의 장자를 어떻게 보여주실지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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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04 15:59
    장자는 멋있는 굴원의 직언도 공명심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보라고 말하는 걸까요? 아리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