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F절차탁마 10월 24일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8-10-20 16:30
조회
188
에세이 발표는 다가오고, 예정된 에세이 진도는 나가는데 어째 에세이는 항상 서론부터 문제가 끊이질 않네요. 어쩔 수 없이 월요일을 활성화해야겠습니다. 그래도 얘기를 나누다보니 뭔가 잡히고 그런 게 있지 않나요? 저만 그런가요? ㅎ

 

공지하겠습니다. 에세이는 계속 진도를 나가시면 됩니다. 주제 잡는 게 힘드신 분들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서 와주세요. 주제가 안 잡힌다면 월요일이 있으니 그때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할 수 있는 얘기들을 준비해주시고요!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는 〈오이디푸스의 지식〉을 읽으시면 되는데, 읽으면서 ‘담론적 사건’이 뭔지를 중점으로 정리해주세요. 에세이를 단번에 쓰는 게 아니라서 이 과정이 많이 힘에 부치실 텐데 그래도 서로 붙잡아줍시다! 모두들 힘내주세요~! 간식은 정수쌤과 영님쌤께 부탁드릴게요.

 

채운쌤은 니체와 푸코가 어떻게 질문을 던지는지를 보라고 하셨죠. 다시 읽으면서 보셨겠지만, 니체는 어떤 질문이 아니라 ‘누가’ 그 질문을 던지는지를 묻습니다.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를 보면, 푸코가 니체를 얼마나 철저하게 이해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푸코는 (플라톤을 살피면서) 지식이 진리와 관계를 맺고,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인식에 진리에 대한 방향이 내재하게 된 과정을 보여줍니다. 푸코에 따르면, 플라톤이 참지 못했던 것은 오류가 아니라 이데아를 닮지 않은 진리입니다. 플라톤의 세계에서 모든 것은 이데아를 본받기 때문에, 이데아에 근접할수록 더 아름답고, 참되고, 선한 것으로 여겨졌죠. 그런데 플라톤이 보기에 소피스트는 여러 진리를 인정함으로써 절대적 선인 이데아의 존재 자체를 뒤흔듭니다. 그러니까 플라톤의 담론에서 소피스트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푸코는 플라톤의 담론의 출현이 이데아를 진리로 용인한 것뿐만 아니라 소피스트의 담론을 배제했다는 데 주목합니다. 이렇게 푸코는 플라톤이 어떤 진리를 말했는가보다 진리가 작동하는 배치를 보여줍니다. “기원전 6세기의 사유에서, 참은 이런 배치의 일반적인 효과였다. 기원전 5세기부터 참은 조건이 된다.”(《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 217쪽) 진리가 효과에서 조건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의 결과로서 진리가 용인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절대적 선을 상정하게 됨을 말합니다. 《즐거운 학문》이나 《도덕의 계보》에서 니체가 의식의 전도 혹은 가치의 전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참고하시면 더 이해가 잘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니체가 강조하는 ‘누가’란 단지 정말 그가 누구인지를 살펴보는 게 아니라 그러한 인식이 작동하는 배치 전반을 살펴보라는 말로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 11장에서 특히 그러한 배치가 어떻게 바뀌는지 정치, 경제, 종교 의례의 변화를 통해 보여줬었죠. 저는 신에 대한 숭배가 바뀌는 게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호메로스 세계에서 신들은 각자의 질서를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트로이 전쟁처럼 어떤 신이 어느 부족(대개 자신의 자손)을 비호할 수 있었고, 이는 곧 어떤 신에 대한 숭배는 곧 어떤 가문의 일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숭배의 장소가 도시 밖에서 도시 안으로 들어오고, 신 역시 자신의 자손을 책임지기보다 도시를 책임지게 됩니다. 즉, 신들이 그 도시의 신들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죠. 이로부터 이전에는 문제 삼지 않았던 모든 일상을 책임지는 질서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는 전통적 규칙이 아니라 도시의 법이 그 범죄를 판단하게 되죠. 푸코는 “이 변환이 합리화나 개인화의 결과가 아니라 일군의 복잡한 과정의 결과임”(251)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죠. 즉, 계보학적 분석이란 어떤 것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논해지는지 그리고 그것은 어떤 것을 논해지지 않게 되는지, 사건들을 계열화하는 작업인 것이죠. 배제가 어떤 담론적 배치가 형성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단서라는 게 새삼 인상적이었습니다. “배제는 사회 공간이 자신을 소묘하고 끝내 자기 안에 스스로를 닫아버리게 만드는 최후의 결정적 요소로 나타난다.”(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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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23 10:44
    이번주도 무텩 기대가 됩니다.
    푸코는 오이디푸스를 늘 직접 물으면서 "몸소 진실을 발견하기를 원하는 자", "다수의 지식을 다루려고 하는 자"(<오이디푸스의 지식>, 347쪽)로 봅니다. 무엇보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했고요. @.@ 오! 오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