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F 절차탁마 11월 7일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8-11-04 17:28
조회
172
에세이는 난파해서 몇 주째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의식이 뭔지 아직도 명확하지가 않네요... 계획으로는 21일이 발표인데 어쩌면 그 다음 달 21일까지 이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문제에 달라붙어서 이렇게 끈덕지게 질문하는 게 처음이라 힘이 많이 드네요. 크흡!ㅠㅜ 아마 다른 분들도 비슷할 거 같은데, 이런 때일수록 중지를 모아봅시다. 월요일 오전 10시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이번 주 숙제는 니체와 푸코가 질문을 던지는 방식을 정리하는 것과 에세이 진행시켜서 쓰는 것(월요일까지는 3쪽, 수요일까지는 5쪽)입니다. 일단 채운쌤은 문제가 분명하지 않은 건 아직 니체와 푸코가 질문을 던지는 방식을 충분히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죠. 힘의지를 묻는다는 게 어떤 것을 문제시하는 건지, 주체화를 문제 삼을 때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 나름대로 정리해야 그들처럼 문제를 던질 수 있다는 것이죠. 기왕 철학을 공부하기로 한 거 내 문제를 다르게 문제화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간식은 건화형과 지은누나에게 부탁할게요~

 

《감시와 처벌》에서 감옥의 역사를 쓰면서 푸코가 던지는 질문은 ‘근대에서 주체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푸코는 주체가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계보학적으로 분석합니다. 주체가 등장할 수 있었던 담론적 지형과 권력의 작동방식은 무엇이었는지를 ‘사건화’해서 보여주고 있죠.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인과가 분명한 보편사와 달리 경제적으로 이런 일들이 있었고, 정치적으로 저런 일들이 있었다는 식의 파편들을 보여줘서 읽기가 참 어렵죠.^^;; 이런 얘기들을 통해서 푸코는 물질적 토대가 바뀜에 따라 어떤 문제들이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때 푸코가 보여주는 사건은 이전 시대와 불연속하는 지점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푸코는 ‘사건화’를 강조합니다. 일련의 물적 토대와 담론이 관계 맺는 양상을 드러내고, 특정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권력을 포착하는 것으로서의 사건화입니다.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에서 푸코는 오이디푸스 비극을 ‘사건화’해서 진실을 둘러싼 담론적, 비담론적 지형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여줍니다.

12강에서 푸코는 고전기에서 진실이 시민사회의 질서 위에서 성립하는 것에 주목합니다. 상고기에서 진실은 신에게 있었습니다. 인간의 역할은 신의 질서를 체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트로이 전쟁에 참여하는 아킬레우스는 이미 죽음이 예정되었고,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와 싸우면 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운명을 살아냄으로써 신의 질서를 공고히 했습니다. 하지만 오이디푸스 비극으로 넘어오면서 진실의 문제는 신의 질서를 체현하는 것 대신 시민사회(nomos)의 질서를 체득하는 것으로 바뀝니다. 여기서 범죄에 대한 처벌은 “제시된 진상과 정식으로 확인된 사실을 매개”로 일어납니다. 사건이 사실로 규정되는 데 무엇을 진실로 규명하는 의례 과정이 도입된 것이죠.

그러나 푸코는 단지 상고기에 진실이 이러이러한 것들에 의해 담보되었다가 고전기에는 바뀌었다는 정도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무엇을 ‘사건화’함으로써 어떤 진실이 작동하고, 그때의 진실은 어떤 권력을 동반하는지를 얘기합니다. 오이디푸스는 시민사회의 질서를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사회로부터 추방당했습니다. 푸코는 오이디푸스가 사회로부터 추방 받는 것을 진실이 부정하지 않은 무엇을 배제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무엇이 하나의 진실로 용인 받을 때는 무엇을 진실이 아니라고 배제하는 과정을 동반하는 것이죠. 푸코는 이런 식의 분석을 통해 진실이 어떤 구속체계를 표현하는 데 주목합니다. 이때 진실은 말한 것 속에 숨겨져 있는 무엇이 아닙니다. 말한 것들을 어떤 사건과 계열에 위치시키느냐를 통해 그 시대만의 진실이 출현합니다. 푸코는 여기서 역사가(혹은 철학자?)의 문제의식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어떤 질문을 가지고 문서고를 뒤지는가에 따라 같은 사건도 다르게 해석됩니다. 다르게 말하면, 사건은 그 자체로 특정한 담론과의 관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채운쌤은 이런 점에서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의 질문은 이미 하나의 사건을 어떤 구도로 보는지가 담겨있습니다. 에세이 쓸 때 계속 무엇이 좋다, 나쁘다 식의 대립구도밖에 세우지 못하고 있는데 그건 제가 아직도 푸코처럼 질문하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ㅜㅜ 그러나 푸코에게 진실은 그 자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언표의 계열화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진실을 문제 삼는다는 것은 말해진 것들이 어떤 효과를 동반하고 있는지, 어떤 구속성이 작동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푸코는 계보학적 분석을 통해 진실이 작동하는 체계들을 전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채운쌤이 고대 그리스인들이 건강에 대해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것들에 대한 일련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네요. 지금 우리는 진실(혹은 진리)를 전문가나 어떤 객관적이라고 할 만한 무엇에 귀속시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 나름대로 실험함으로써 자기만의 건강을 획득했습니다. 푸코는 이들이 자기 실천이라는 고유한 영역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때 자기 실천은 물론 내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개인적 차원은 아닙니다. 어떤 식으로 주체화되고 있는지 계보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새로운 주체화를 시도하는 차원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에세이도 자기 실천의 실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채운쌤은 꼭 맞지는 않더라도 나름대로 어떤 것들 속에서 주체화되고 있는지, 누구로부터 어떤 진실이 작동하는지 담론 분석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건 단지 이 시대가 이렇다는 걸 얘기하는 걸 넘어서 내 문제를 분석하는 새로운 틀을 하나 익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렵지만, 뭐 하나라도 하고나면 뿌듯할 것 같아요. 그럼 모두들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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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06 13:00
    니체와 푸코의 문제의식을 외우고 또 외워, , , , 야 하리. 아!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