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F절차탁마 에세이 후기

작성자
호정
작성일
2018-11-25 18:35
조회
282

트리플 텐의 위엄


만쉐이, 만쉐이, 만쉐이!!!

절로 콧노래가 나오고, 만세 삼창이 터져 나온다.

드뎌 에세이 발표가 끝났다.

10주 : 그 놈의 ‘문제 구성’이라는 문제

장장 10주의 과정을 거쳐 에세이를 쓰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처음에 제기한 문제를 붙들고 10주를 쭈~욱 간 사람도 있고, 10주 내내 문제를 구성하지 못 해 애를 먹은 사람도 있고, 처음에 제기한 문제를 계속 수정 변형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애를 먹은 사람 중 1인이었는데, 주제를 잡지 못 해서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다 보니, 참고한 도서만 해도 20권이 넘은 것 같다. 너무 많이 봐서 오히려 정리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매주 수요일의 정기 프로그램 외에 번외 프로그램이 하나 더 생겼다. 월요 에세이반. 에세이 쓰는 데 도움을 받고 싶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었다고 하자. ㅎㅎ. 우리의 성실한 선민샘을 필두로 하여 뜻있는 학생들이 매주 모여 서로의 처지를 동정하고 깊은 위로를 주고받으며 웃음과 한숨을 교환했다. 그 덕분인지, 다들 자기만의 문제를 발견하거나 창조하는 신통방통한 기술들을 발휘하여 에세이를 쓰긴 썼다.

10장 : 분량의 압박

뜨~~악. 10장이라니. 연 4회보다는 연 1회의 에세이가 더 좋긴 했다. 막상 에세이를 쓰려니 분량의 압박이 심했다. 5장 쓰는 것도 매번 애를 먹었는데, 10장을 채우는 건 정말 고생스러웠다. 내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문제를 니체와 푸코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풀어내기. 정말 다양한 내용들이 나왔다. 제주 4.3, 협동조합, 공부, 공동체, 육아, 노동윤리, ‘이상적인 나’라는 환상, 정치적 올바름, 여성.

우리가 이렇게나 다른 사람들이었다니. 그래도 우리의 문제의식은 크게 보면, 정치적 올바름, 정체성, 노동, 공동체 등의 범주로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교재 외에 우리의 문제의식을 펼치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 관련 자료들을 읽었다. 관심 주제라서 재미있게 참고서적들을 찾아 읽고 정리했다. 우리의 지력과 필력으로 10장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으므로.

나 같은 경우는, 미처 소화되지 않은 내용으로 에세이를 채우다보니, 남의 글이나 생각을 내 것으로 전유하지 못 하고, 날 것 그대로 내 글에 끼워넣어, 글이 누더기가 되었다. 아쉬운 대목이다.

10명 : 시작과 끝을 함께

3학기엔 개인사정으로 같이 공부하지 못 한 크느샘이 에세이 발표 시간에 떡 한 박스와 함께 나타났다. 쓰지도 않고 듣기만 한 크느샘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10장을 쓰는 것도 고생스러웠지만, 듣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힘들었다. 읽는 데만 30분씩은 걸린 것 같다. 듣다가 고개를 들어보면 누군가의 다리가 보였다. 다리를 따라 위로 시선을 돌리면, 크느쌤의 얼굴이 보였다. 오른쪽엔 규창이가, 반대편엔 건화가 보였다.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장시간 앉아있는 게 힘들어지면 일어나서 듣는 것이었다. 다들 정말 마지막까지 애쓴다.

각자 자기 방식으로 공부하고 글을 썼다. 하나의 주제의식을 가지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뚝심 있게 밀어붙인 사람,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을 수용하여 매번 글에 반영하는 사람 등등.

나를 떠나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조언으로 나의 문제를 정교하게 하고, 그들이 추천한 자료를 보며 나의 논리를 다듬었다. 10주의 과정을 거치며 한 사람의 문제의식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더 잘 이해햐게 되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고민이 다른 사람의 글에 영향을 주는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그 결과물이 에세이다. 결과물 자체는 성공과 실패를 가를 수도 있겠지만, 내 것을 밀어붙이는 것과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는 과정이 모두 공부고 그 과정에서 나의 길을 만들어내는 것이 에세이라면, 이번 학기에 공부를 제대로 한 셈이다.

올 해는 수업 들은 사람 모두 한 사람도 낙오 없이 10장의 글을 써냈다는 것으로 큰 위안을 삼으며(이 부분은 채운샘의 육성이 아니라, 제가 들은 채운샘의 마음의 소리입니다), 다음에 글을 쓸 땐 이전의 자기의 방식을 떠나 부족하고 잘 안 되는 부분을 더 연습하는 글을 쓰면 좋겠다는 채운샘의 말씀이 있었다.

모두모두 올 한 해 애쓰셨습니다.
전체 2

  • 2018-11-26 11:36
    뻘소리 10장을 채우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뻘소리만 가득한 10장을 채워버렸네요! ㅠㅜ 결과가 과정을 모두 설명해주진 않지만 제 경우에는 제가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돌아보는 결과였습니다. 뭐랄까... 개념 하나를 제대로 이해하기보다는 말에 휘둘린 감이 없지 않고, 그런 말들로 대충 꾸미려했었던 것 같아요. 하하;;
    뭐, 결과적으로 작년 처음 시작할 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프로그램에 도전하게 된 것 같아서 이걸 초심이라 해야 할지, 아님 제자리인 건지 모르겠네요. 어찌되었든 10장 꾸역꾸역 달리느라 모두들 고생하셨고, 내년도 잘 부탁드립니다~!

  • 2018-11-26 18:11
    새로운 문체의(?) 에세이 후기군요? ㅎㅎㅎ 제가 언젠가 공지에서 이번 에세이는 생각을 차근차근 하며 쓰는 것을 목표로 삼겠다고 했는데, 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허겁지겁 써버렸네요ㅠㅠ 에세이 후기가 반성문이 되지 않을 수 있는 날이 올런지...? 아무튼 에세이 발표 자체는 우리 사이에서 참 많은 문제들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모두 다른 문제들을 들고 왔는데 그것들이 서로 교차하기도 하고... 죽이되든 밥이 되는 자기 힘으로 문제를 구성하는 게 가능하구나, 라는 걸 확인하게 되어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