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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 자유, 능동적 책임과 의무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20-09-02 18:09
조회
279

자유, 능동적 책임과 의무


 

‘자유’  하면 먼저 특정 이미지가 떠오른다. 패러글라이드를 타고 하늘을 비상하는 이미지이다. 쓰면서도 웃긴다. 막상 패러글라이드 체험을 할 기회가 있었을 때는 무서워서 타지도 못했으면서. 어쨌든 이러한 이미지를 떠올린다는 것은 나에게 자유란 어떤 제약이나 강제, 의무가 없는 상태, 내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자유롭다고 느끼는가.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가. 누군가가 여행을 긴 기간 동안 간다고 하면 ‘나는 직장에 얽매여서 그렇게 못해.’ 또는 ‘나는 그럴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어.’라고 말할 때 가끔 제약을 느끼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딱히 자유롭지 않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때에도 여전히 자유롭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자유이므로 그것을 방해하는 제약, 강제, 의무가 있다면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니체에게 자유란 무엇일까? 그는 ‘자기책임에의 의지를 갖는다는 것’을 자유라고 말한다.(177쪽) 자기책임이란 무엇일까? 그는 제도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수세기 동안 지속되는 책임에의 의지가, 과거와 미래로 무한한 세대의 연속이라는 연대성이 있어야만 하며 그런 의지가 있을 때 로마제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신경쇠약상태인 유럽의 소국과는 반대인 국가들이 세워진다고 말한다.(179쪽) 여기에서 제도가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결혼제도에 대한 설명에서 그것은 ‘이룩해놓은 권력과 영향력과 재화를 생리학적으로 유지하고, 장기간의 과제와 수세기에 걸친 본능의 유대를 준비시키기 위한 것’ 이다. 반면 그는 사람들이 부르는 자유를 ‘오늘을 위해 살고, 아주 재빠르게 살아가며, 아주 무책임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179쪽) 추론컨대, 여기에서 자기책임이란 과거와 미래로의 무한한 세대에 대한 책임을 말한다.

모든 것들은 서로를 원인으로 하여 출현하므로 모든 것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갖고 있다. 이것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것이 자유다. 내가 과거와 미래 세대로부터 분리된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무한한 세대와 서로 연결된 채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것이 자유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어떤 제약이나 의무가 없는 상태를 자유라고 여기는 것은 이에 반한다. 현재 어떤 사건이 나에게 제약이나 의무로 온다면 그것 또한 과거와 미래로부터 온 것인데 그것들이 없기를 바란다는 것은 과거와 미래로부터 분리된 현재를 살아가겠다는 우매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내가 해석하는 자유 속에서 나는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무한한 세대에 책임을 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그냥 서로 연결된 것을 알고 살아가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반동적 힘 의지를 발휘하면서 유약함과 퇴락함의 본능을 축적하라는 의미도 아닐 것이다. 니체는 아름다움은 우연이 아니라고 말한다. 한 종족이나 가족의 아름다움, 그들의 모든 품행에서의 기품과 호의는 노력해서 얻어진 것이며, 좋은 취향을 위해서는 큰 희생을 치러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어서 최고의 지침으로서 자기 앞에서라도 자기를 “되는 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우리에게 요구한다.(188쪽) 자기를 포함한 무한한 세대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강함, 아름다움, 고귀함과 같은 좋은 취향, 본성을 취득하는 데에 의지를 발휘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를 되는 대로 방치하지 않는 것이다.

니체는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설득시켜야 하는 것이 몸이라고 말한다. 몸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의미 있고 추려낸 품행을 엄격하게 유지하는 것과 자기 자신을 되는대로 방치하지 않는 사람들과 같이 살고자 하는 일종의 의무가 있으면 충분하다고 한다.(188쪽) 즉 자유는 좋은 품행을 유지하도록 하는 강제와 자신을 방치하지 않는 사람들과 같이 살고자 하는 의무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상태이다. 이는 그가 자유를 ‘우리를 분리시키는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177쪽) ‘좋음’을 위해 스스로에게 강제와 의무를 부여하는 조건 속에서만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저항과 싸우는 속에서만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다.



자유와 강제, 의무는 분리될 수 없으며 그러한 강제, 의무는 외부로부터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의지한 것이다. 글쓰기 과제를 예로 들어보자. 강제, 의무에서 벗어난 상태가 자유라면 글쓰기는 나에게 자유로운 상태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수업 규칙을 통해 나에게 부여된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무를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므로 수동적으로 따라야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나태함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자기기만이다. 내가 수업을 원해서 듣는 것처럼 글쓰기는 내가 능동적으로 의지한, 스스로에게 부여한 의무이며 글 쓰는 순간 자체가 곧 자유이다.

글 : 권희진(절차탁마NY)

전체 3

  • 2020-09-07 11:14
    자유의 문제를 주어진 조건 속에서의 실천으로 사유하는 것은 정답처럼 되뇌긴 하지만, 그에 부합하는 고민을 담기는 참 어렵더라고요. 아마 여전히 당위적 명령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런데 '몸을 설득한다'는 얘기는 참신하네요. 나의 행위를 변화하는 출발점으로서 몸이 설득되도록 꾸준히 인식하고, 훈련하지 않으면 자유도 없겠군요. 희진쌤 덕분에 좋은 단어 하나 가져갑니다. ㅎㅎ

  • 2020-09-08 10:48
    자기를 포함한 무한한 세대에게 책임을 진다는 것이 자유라는, 이 역설적으로 들리는 말을 스스로를 분리된 존재로 여기는 사고 속의 우매함을 이야기하며 설명해주신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니체를 공부하면서 우리가 상상하는 자유의 편협함, 그 옹졸함을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되는 대로 방치하지 않기, 그리고 그렇게 되는 대로 방치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 있을 의무. 곰곰 곱씹게 됩니다.

  • 2020-09-09 14:39
    "모든 것들은 서로를 원인으로 하여 출현하므로 모든 것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갖고 있다. 이것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것이 자유다." 좋은 말인 것 같습니다. 저는 여기서 '이해'라는 말에 우리가 발휘할 수 있는 능동성의 실마리가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냥 사회적으로, 관습적으로, 수많은 분별 속에서 우리에게 의무나 책임으로서 주어진 것을 수행하는 게 아니라, 다른 모든 것들과 내가 연결되어 있음을 통찰하는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조형하는 것이 자유가 아닐까요. 그나저나 이제 글쓰기 과제에 기쁜 마음으로 임하실 수 있겠군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