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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읽기 공지(10.31)

작성자
하동
작성일
2015-10-25 17:36
조회
817

한 인간이 또 다른 한 인간의 삶과 그가 남긴 삶의 흔적들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요? 그리고 그가 남긴 글을 앞에 두고 문자라고 하는 기호의 더미들을 파헤쳐 또 다른 의미의 집을 짓고자 하는 독자라고 하는 자의 역할은 또 무엇일까요? 독자로서 자신의 삶의 넓이와 두께 정도만큼만 겨우 누군가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루쉰이나 니체들을 얼마만큼 이해하고 살 수 있는 것인지요. 나름 두근거리며 절망하고 놀라워하는 가운데 루쉰의 텍스트들을 더듬고 있는 저의 머릿속에는 내내 이런 질문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학인 여러분들께서는 어떤 경험을 하며 루쉰의 텍스트들, 그 무덤 자리들을 마주하고 계신지요.


이번 시간에는 루쉰 최고의 문제작이라 할 수 있는 <들풀(野草)>과 그것의 대척점에 있다고까지 보여지는 <아침 꽃 저녁에 줍다(朝花夕拾)>을 읽었습니다. 생물학적인 나이의 유사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만, 루쉰이 이 글들을 남겼던 40대 중반이라는 시기를 힘겹게 넘어가고 있는 저로서는 두 작품집에서 다루고 있는 방황과 고독, 죽음과 회상 등의 테마들이, 현재 제 자신이 겪고 있고 또한 피해갈 수 없는 문제들이라는 점에서, 좀 더 절실하고도 공감어린 심경으로 두 작품을 읽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그 강도의 차이는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지만요. 우선, 저희 조에서는 루쉰의 텍스트들 전반을 휩싸고 도는 그 ‘적막감’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진지하고 참신한 문제의식이 담긴 글을 준비해온 요순과 소담 두 청춘은, 루쉰이 느낀 적막감이 ‘쇠로된 방’과 같은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아무리 외쳐도 반향이 없는 상태에 ‘대한’ 분노와 무기력에서 적막감이 형성되었을 거라고 보았고, 이에 반해 현옥 샘께서는 ‘~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것들을 넘어서 근원적인 차원에서 적막감을 보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나의 기대와 희망에서 벗어났을 때 우리가 흔히 느끼게 되는 슬픔이나 외로움 같은 것과 달리, 그 어떠한 애증이나 애락, 그리고 색깔이나 소리에 대한 분별 같은 걸 넘어선, 니체가 말하는 고독이나 운명애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는 것이었지요. 제법 옥신각신이 오간 가운데, 저같은 ‘아이구-하하-hehehehe’주의자는 둘 모두 그럴 듯하다고 보고, 어쨌든 ‘적막감’이 루쉰의 삶과 글을 견인한 지배적 정서임엔 분명하다고, 외부에 대한 것이든 내부에서 비롯된 것이든 그 어찌할 없는 적막감을 감당하고자 하는 데서 삶과 글의 긴장감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고, 하나마나한 얘길 덧붙이기도 했지요.


채운샘께서는 <들풀>의 핵심적인 이미지나 키워드를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죽음’이라고 했지요. 근데, 루쉰에게서 특별한 것은 그 죽음이라는 것을 삶과 맞붙여 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이 ‘사’인 것처럼 ‘사’ 또한 ‘생’이라는 것인데, 전자(생즉사)는 우리도 경험적인 차원에서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지만, 후자(사즉생)는 생사의 문제에 대해 깊이 투시하지 않으면 납득하지 못할 불가해한 말일 수밖에 없기에 여기에 루쉰의 남다른 지점이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이뿐이 아닙니다. 그는 암흑과 광명, 절망과 희망, 민중과 지식인, 정치와 문학 같은 대립쌍들에 대해서도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서 경계를 넘나들며 근원적인 질문들을 유도하고 있는 듯합니다. 희망이나 절망, 그 둘 다가 인간의 자기기만에서 비롯된 허망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면,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것들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지에 대해 새롭게 문제를 던지지 않으면 안 되는 거겠지요. 아니면, 그야말로 루쉰처럼 ‘몸소 이 공허 속의 어둔 밤에 육박해 가는’ 방식으로 매번의 삶을 구성해가든지요. 어쨌든 우리는 양립하기 힘든 대립적이고 이질적인 것들이, 분리되지 않고 서로 뒤얽히는 밑바닥까지 내려가지 않고서는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뚫고 나갈 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래저래, <들풀>은 루쉰의 문학가적인 면모 뿐 아니라 사상가적인 면모까지를 함께 보여주는 근사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조화석습>은 제목부터가 참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과거에 대해 우리가 뭔가를 기억하고 붙들고자 할 때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을 시적인 이미지로 선연하게 포착한 듯도 합니다. 아침에는 싱싱하게 매달려 빛을 발했을 그것들, 이제 저녁이 되어 시든 채 떨어져 있을 그것들을 하나하나 주워올리는 자의 마음을 담은 글이라니, 이렇게 멋진 제목을 달고 있는 책을 여지 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나다를까 담고 있는 내용들도 여태 보았던 다른 글들과 질감과 색조가 상당히 다릅니다. 뭉클하기도 하고 유머러스하기도 하기도 해서, 누구에게나 공감과 웃음을 자아낼 법도 합니다. 그의 글들 중에서 거침없이 가장 잘 읽혔던 거 같기도 하고요. 키다리 어멈이니, 연부인, 후지노 선생 등과 같은 불후의 캐릭터들을 만난 행복감이라니요. 근데 루쉰은 루쉰입니다. 회고조의 글이 주는 아련하고도 포근한 느낌만 안겨주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이 작품집에서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의 개인적인 체험과 미세한 욕망들을 예리하고도 섬세한 기억력으로 되살려내는데,(소설가 박완서 선생을 보는 듯도~~) 이를 글로 옮기는 그의 태도는 아주 솔직하고도 주저함이 없어 보입니다. 과거의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연민조차도 없어 보인다는 거죠. 이로 인해 우리는 루쉰이라는 한 개인의 체험을 접하면서도, 독자 자신의 모습을, 나아가 ‘인간’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됩니다. <조화석습> 읽기가 주는 즐거움은 이 점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아가, 이미 생명 없는 꽃, 즉 과거의 기억들을 주워 담을 때 그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현재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아주 많습니다. 예를 들어, ‘24효도’ 같은 글을 보면, 과거가 어떻게 뜨겁게 지금의 문제와 만날 수 있는지를 리얼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배울 수 있는 거라면, 다른 건 볼라도 <조화석습>의 글쓰기 만큼은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


<들풀>과 <조화석습>이 비스한 시기에 쓰인 <외침>과 <방황>에 대한 주석이라고들 말합니다. 채운 샘께서는, 두편의 작품의 실린 각각의 글들을 소설 작품들과 연관지어가면서 읽어가봐도 재미있을 거라 하시네요. 허면, 좀 더 지금 우리가 힘들어하는 지점들에 대해서도 뭔가 길이 좀 보일 것 같기도 하고요. 여튼, 3주 후가 에세이 발표 주간이니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그의 글에 많이 익숙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루쉰과 함께 이 가을도 깊어가네요. 다들 열공하시길 바라며, 다음 주 공지 올립니다.


1. 읽을 책 : 루쉰 전집 3권 중 <고사신편>


2. 발졔 : 완수 샘(놀라지 않으셨죠?^^ 샘께서 이 사실을 아시라고 서둘러 공지 올린다는 사실!)


3. 간식 : 혜원과 전인선 샘


4. 다함께 : 공통과제와 암송

전체 4

  • 2015-10-25 18:17
    방가방가 후기에요!!! ㅋㅋㅋ
    '‘아이구-하하-hehehehe’주의자, 매우 인상적임-^-!
    저희조에서 했던 얘기 중에 : 세대별로도 희망/절망에 대한 감도 다른 것 같다. 초년(2-30대?)에는 막연하더라도 뭔가 기대를 품고, 목표도 좀 있고 그렇게 달린 것 같은데... 나이가 들면서 내가 꿈꾸던 여러가지 것들이 다 허상이고, 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고...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체념적인 정조 같은 것도 생기는 것 같다. "내가 뭘 희망하긴 하나?" 이런 생각도 들고. - 이런 이야기도 오갔습니다. 그러다 "나이들어 공부하는 건 정말 좋은 것 같다."는 이야기로 흘렀지만^^; 암튼 세대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희망/절망에 휘청휘청하는 건가 싶었습니다.. 문득 생각나서요;;. 담주에 뵈요~!

  • 2015-10-26 08:02
    헐~ 이리 스피디한 공지는 첨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다 완수샘 덕분인 거지요?ㅋㅋ 다른 글들도 마찬가지지만, 고사신편 역시 꼭꼭 곱씹어 읽어오시길~! (완수샘, 발제 기대함돠~)

  • 2015-10-26 14:31
    많은 게 겹쳐 너무 많이 빠지고선 새삼 중간에 들어가기가 어려워서 첫 에세이 끝나고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채운샘께 매주 몇 시간씩 구박받다받다 지쳐서(?) 다시 다음주부터 그냥 따라가기로 했어요ㅠㅠ 나머지 공부도 해야 하고, 공통과제 쓰는 것도 아예 감이 안와서 막막하지만, 아무튼 열심히 따라가볼게요. 같이 수업 들으시는 모든 샘들, 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일산에서 12시 40분에 과외가 끝나기 때문에 1시반까지는 무리예요. 2시까지는 꼭 맞춰 가도록 할게요. )

    • 2015-10-26 15:58
      참, 이게 얼마만에 듣는 말같은 말인고! 당연지사. 공통과제 미리 올리고, 끝나자마자 날아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