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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때 되면 그때 쉽시다. 지금은 일을 할 시간' - 주역수업(2.27)을 듣고

작성자
윤몽
작성일
2016-03-04 23:05
조회
816
이번 주의 괘는 고괘(蠱卦)와 임괘(臨卦)입니다!

 

먼저 고괘를 보면요. ‘일할 사()’의 뜻을 가지고 있다더니, 잠깐만 보셔도 아시겠지만 일이 줄곧 주구장창 많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말아드신(?!) 일을 뒷감당해야 하는 자식들이 잔뜩이죠. 사채를 끌어다 쓰고는 나 몰라라 하거나 대책은 없이 빚만 물려주고 돌아가 버리신 아버지라든가, 아무 도움이 안 되지만 아들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유약한 엄마라든가, 도박 빚이 있는 부모님 등등이 있는 집안의 장남이나 장녀를 생각하시면 되겠어요.

 

초육(初六)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요. 아버지가 어지럽힌 일을 주관(幹父之蠱)하지만 능력이 있는 아들이 있으면(有子) 그 아들 덕에 아버지가 허물이 없게(考無咎) 돼요. 그리고 또 하나, 이 아버지의 일을 해결할 때 전전긍긍하는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히 잘 풀어가야만 마침내 길하게 된다(厲終吉)고 했죠. 구이(九二)의 경우도 사고 친 엄마의 일을 처리해야(幹母之蠱) 하는데요. 이때 구이는 양이어서 좀 강할 수 있거든요. 그럴 때일수록 유약한 엄마(육오)에게 성질을 내거나, 엄마를 구박하면 절대 안 돼요(不可貞). 이미 주눅이 든 엄마에게 고집을 피우거나 자기 뜻대로 밀어붙이고 상황을 휘두르려고 하면 안 된다고 되어 있어요. 구삼(九三)의 경우도 아버지의 일을 처리(幹父之蠱)하는데요. 양이라 얘도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좀 과하거나 지나쳐서 아버지를 윽박지르는 둥 약간의 후회가 남는 짓(小有悔)은 할 수 있지만요. 그래도 하괘인 손괘에 속하여 그나마 겸손함을 갖추었기 때문에 간신히 수위조절은 할 수 있나 봐요. 그래서 다행히도 큰 허물은 없게(无大咎) 됩니다. 역시 겸손함은 모든 어려운 상황에서의 탈출구나 다름없군요. 육사(六四)를 보면요. 아버지의 일을 처리하되 넉넉하고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고(裕父之蠱)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 해요. 뭔가 크게 좀 바로잡아 보려고 욕심을 낸다거나 하면 바로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往見吝) 되기 때문에, 말 그대로 마음을 비우고 좋은 마음으로 천천히 움직여야 해요. 여기서 갑자기 중3 때, 잘생긴 체육과 담임샘께서 독단적으로(!) 만드셨던 급훈이 생각나네요. ‘어차피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 내가 웃으며 한다.’ 육사의 자리에서 아버지의 일을 처리해야 하는 자식이 바로 이렇게 웃으며 부드럽게 여유를 가지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잘생긴(?!) 자식인가 봅니다. 흠흠..

 

아무튼 보시다시피 고괘에서는 할 일은 가득이지만, 영광은 남(부모님이라든가)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대요. 결국 내가 열심히 일해서 끝내 허물이 없게 되는 것은 애초에 빚을 낸 아버지의 이름이죠. 그 영광을 내가 못 누린다고 해서 억울해 해도 안 되고, 일 하는 과정에서도 아버지의 이름에 누가 되어선 안 돼요. 아버지가 허물이 있게 놔두는 것 자체가 불효니까요. 어휴. 부모님의 일을 처리하는 걸로도 힘들고 짜증이 날 텐데,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이래저래 많으니 정말 쉽지 않겠죠. 이런 식으로 고괘에서는 계속 부모님의 일들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마주치게 되지만요. 이것도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다보면 마지막엔 더 이상 이제 부모님도 사고를 안 치시고 일을 안 해도 되는 때가 반드시 옵니다. 그때가 올 때까지는 일단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죠. 기다려야 할 때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해도 참고 기다리고, 일을 해야 할 때는 몸을 사리지 말고 뛰어들어 열심히 일해야 하고, 또 쉬어야 할 때는 편안함 마음으로 쉴 줄 알아야 해요. 세상의 모든 일에는 때가 있으므로 그 ()’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여기서도 주역은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지금이 쉬어야 하는 때인지, 일을 해야 하는 때인지를,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 시기인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지혜라는 건 말할 것도 없겠죠?

 

자. 이번엔 임괘(臨卦)를 볼까요. 임괘에서의 ‘임(臨)’이라는 글자는 처음 주에서는 ‘클 대()’ 자로 풀이된다고 나와 있긴 한데요. 전체 효의 풀이에서 보면 누군가에게 임하는 것, 그러니까 관계 안에서 상대에게 다가가는 것으로 더 많이 쓰여요. 그래서 효사들에선 함림(咸臨:두루 임하는 것/느껴서 임하는 것), 감림(甘臨:아부해서 가까이 다가가는 것), 지림(至臨: 지극히 임하는 것), 지림(知臨:현명하게 군림하는 것), 돈림(敦臨: 돈독하게 임하는 것) 등의 여러 림이 등장합니다.

 

임괘에서 제게 인상 깊게 다가왔던 이야기는요. 전체 괘의 형세와 시간의 흐름에 따른 괘의 변화에 대한 것이었어요. 임괘는 전체가 음괘인데 아래의 1, 2효가 양괘인 모양을 하고 있어요. 괘는 아래에서부터 위로 변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곧 아래의 세 개의 효가, 그 다음엔 네 개의 효가 점차적으로 양효가 되겠죠. 전체 여섯 개의 효가 모두 양효가 될 때까지요. 그러다가 모두 양효가 되면 다시 맨 아래의 효부터 하나씩 다시 음효로 바뀌고요. 이런 흐름이라고 볼 때 임괘는 1/3만이 양효인 상태이니까, 양을 군자(긍정적인 것)와 연결시키는 해석으로 보면 앞으로 군자의 시대(좋은 시대)가 점점 크게 열릴 날이 아직 한참 남은 거예요. 6효 전부가 양이 되는 걸 좋은 것의 최고점이라고 볼 때(물론 최고점이 지나면 다시 음이 자라기 시작하겠지만 아무튼!) 그 가장 좋은 것을 향해가는 길의 초반에 있는 거죠. 그래서 괘를 보는 전체적인 시각은 아주 긍정적이에요. 크게 형통하다고 하죠. 근데 재미있는 건요. 크게 형통하다는 말로만 끝내지 않고요. 8개월 후에, 그러니까 아까의 흐름대로 하나씩 양이 생겨나고 다시 음이 생겨나는 그 흐름을 따라간 후에는 지금과는 정반대로 음이 아래에서 자라가는 상황이 올 거라는 걸 상기시킨다는 사실이에요. 그때는 소인의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니 그때는 흉하게 될 거라고요! 주역의 사고가 재미있지 않나요. 지금 신나고 즐거운 시대이니 지금의 순간을 즐기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가장 좋은 것이 시작되려는 초반인데(나쁜 게 오려면 아직 한참 멀었는데!), 난데없이 언젠가 나쁜 것이 시작되려는 순간도 반드시 온다는 걸 기억하라는 거예요! 너의 젊음이, 부유함이, 지금의 컨디션 좋은 상태가, 건강하고 기운 넘치는 현재가, 따뜻한 봄날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어쩌면 기분을 잡칠(?)만큼 냉정하게 이야기해 줍니다. 가장 좋은 흐름 속에 한창 빠진 사람이 이런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긴 하겠습니까만, 들을 귀만 있다면 사실 이런 말은 오히려 따뜻하고 사랑 넘치는 조언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모두에게 하루 24시간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시간만큼은 공평하다고 하잖아요. 아무리 내가 똑똑하고 부유하더라도 시간은 잡을 수가 없습니다. 우린 음과 양의 자연스런 순환을 막을 도리가 없죠. 군자의 시간이 아무리 좋아도 우린 그 시간을 늘일 수가 없어요. 군자의 시간이나 소인의 시간이나 우린 모두 똑같이 겪어야 합니다. 임의대로 단축하거나 연장할 수 없이 모두 균등하게 주어져요. 각 효의 시기마다 1/n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그 시기만큼 겪을 건 겪어야 해요. 고괘의 시기에는 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요. 자기가 싫다고 해서 ‘빨리감기(▶▶)’를 할 수도 없고, 보기 싫은 광고를 치워버리듯 그냥 ‘스킵(skip)’ 버튼 하나 누르고 지나갈 수도 없어요.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어떤 상황이든 그 시기에 맞는 방식을 찾아서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수밖에요! 조급하거나 초조한 마음을 버리고 말이죠.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으며 변화한다는 것을 명심하고요.

 

이렇게 정리를 조금씩 하다 보니 다양한 괘와 다양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주역은 전체적으로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다양해 보이는 상황들이 있지만 그 상황들 속에서 인간은 변화하는 흐름을 잘 읽어내고 모든 순간에서 자신을 잘 지키며 주어진 시기를 온전히 겪어내야 한다는 거죠. 뭔가 문장으로는 간단하게 써 버렸지만, 사실은 정말정말 쉽지 않은 이야기들이네요. 그래요.. 결국 지금을 잘 사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에효. 효를 두 개씩 정리하려니 어딘지 질은 그닥 좋지 않은데도 힘은 두 배로 드는 이와 같은 상황이 이어지지만요. 그냥 나에게 지금은 주역을 읽고 괘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수록 좋은 때인가 보다, 하고 마음을 내려놓고(!) 늦을지언정 매주 꾸역꾸역 이렇게 후기를 올리고 있는 여기 윤몽이도 있지 않습니까. 또 생색을 냈다고 혼날 일이 눈에 선하군요. 흠흠. 아무튼!!!! 우리 모두 힘을 내어 끝까지 함께 가 봅시다. 당장 내일 다시 모여서 다음 괘를 하나씩 공부해 나가는 것부터요.

 
전체 3

  • 2016-03-04 23:30
    크흙 언니 기다렸습니다ㅎㅎ
    선댓글 후읽기;; 낼 봐유~

  • 2016-03-05 22:22
    뭐~~충분히 생색낼 만~~앞으론 등뒤에, 나가 주역후기 쓰는여자라오 라고, 아조 써붙이고 다녀도 좋을 듯~~ㅋ

  • 2016-03-10 21:18
    감사감사요. 답글을 등에 업고.. 마음을 다잡고.. 용두사미의 습속을 벗어던지고~~~~~~ 계속 GOGO.. 쉽지 않사와요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