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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촛불을 켜고' - 주역수업(01.30)을 듣고

작성자
윤몽
작성일
2016-02-11 21:52
조회
897
다들 설 연휴 잘 보내셨나요. 공사다망한 연휴 속에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했을지도 모르는 주역수업의 기억을 되살려드립니다~ 라는 넉살좋은 핑계를 대면서 늦은 후기 나갑니다.

지난 시간에 배웠던 동인괘(同人卦)를 기억하고 계신가요. 천지의 흐름이 꽉 막혔던 비괘(否卦)의 뒤를 이어서 등장한 동인괘는 ‘막힌 세상에서는 반드시 사람들과 더불어 힘을 합해서 능히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必與人同力乃能濟)’는 말로 시작해요. ‘동인(同人)’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이기심만을 위해서 사사롭고 협소한 인간관계로 끼리끼리 작당(私意所合, 偏私, 私狹, 宗黨, 私比)하는 소인의 사귐’과는 차원이 다른 ‘군자의 사귐을 지향합니다. 군자의 사귐은 어떤 것인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널리 사람을 사귀라’는 것이에요. 들판에서(野), 문밖으로 나가서(出門), 집안(宗)을 벗어나서, 즉 넓은 곳에 나가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형통하다고 했어요. 막힌 것(否塞)은 끼리끼리 작당해서는 풀 수가 없대요.

넓은 곳에 나가서 많은 사람들과 사귀라는 동인괘의 메시지를 듣는 순간 저의 좁은 인간관계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귐’에 대한 문제는 마침 최근의 저의 고민거리이기도 했거든요. (주역을 보면서 어떻게 내 얘기만 이렇게 계속 나오는지 놀라울 때가 정말 많아요! 옆에서 채운샘이 ‘어머어머, 네 얘기다! 또 네 얘기다!’ 하면서 옆구리를 쿡쿡 찌르실 때, 저도 오잉, 나를 타겟으로 쓴 글인가, 하는 생각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니깐요.) 저는 1:1의 끈적한(?) 인간관계는 무척 편해하고 좋아하고 잘합니다. 자주 만나고 친하게 지내고 오만가지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을 털어놓고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그런 절친들이 딱 몇 명 있는데, 서로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발 벗고 나설 ‘내 사람이다’ 싶은 사람들이에요. 전 친구는 그들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금만 친하다거나 별로 안 친하거나 편하지 않은 사람들은 점차 끊어내고 일부러 만나지 않았어요. 여러 명이 모인 모임에서는 깊은(?)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고 느껴서(이야기가 겉돈다고 해야 하나요), 그런 모임들을 점차 정리하기 시작했고요. ‘내 사람’도 안 될 사람들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이 낭비인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러다 보니 점차 인간관계가 많이 협소해 지게 됐는데, 문제는 그러면서 ‘모임’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들이 불편해 지는 거예요. 평소에 누군가랑 1:1로 대화를 하면 거의 모든 이야기를 편안하게 잘 할 수 있다가도 그게 모임이 되어 버리면 불편해서 자꾸 그 자리를 빠져나가고 싶어졌어요. 사실은 불편하면 그냥 안 해버리면 된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큰 문제라고 여기진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요즘, 여기 규문에서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너무 좋은 사람들인 것을 알게 됐는데도 그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모임’을 이루는 순간 제가 바로 불편해서 여길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게다가 그 관계가 불편하다는 것이 사람들이 바뀌는 학기 초마다 제 공부를 방해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한다는 것도 알게 됐죠. 저의 이 지극히 사사로운(私,偏- 소인의) 인간관계가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 거예요. 전에 누군가가, 제가 사주에 관성이라는 게 없어서 공동체나 사회생활을 불편해 할 수 있지만, 그럴수록 피하지 말고 낯선 사람들과의 장에 많이 자신을 노출 시키는 것을 용신으로 삼으라는 식의 이야기를 해 준 것이 기억이 나요. 최근에도 친한 몇 사람과만 지속되는 관계는 웅덩이에 고인 물과 같아서 썩을 수 있으니 새로운 물이 드나들도록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고요. 당시에는 그럴 수 있겠다고 끄덕이고 지나갔던 스스로의 문제가 주역에 딱 등장하는데 아, 내가 잘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한 번 제대로 들었어요. 아아, 저는 소인의 사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사롭고, 편협하고, 끼리끼리만 작당하는, 새로움이나 불편함은 조금도 감수하지 않으려는 게으른 관계예요. 그리고 이 관계는 막힌 것들(특히 저의 이렇게 꽉 막힌 최근의 삶의 환경들!!)을 풀어내는 데에는 아무 쓸모가 없기도 하고요.

그럼 군자의 사귐은 어떤 것인가요. 사사로움을 버리고 공정하고() 넓은 인간관계를 한다고 나와 있죠. 능히 천하의 뜻에 통할 수 있게 된다(唯君子 爲能通天下之志)는 군자에 대한 정샘의 설명을 살펴보면요. 성인은 오만 존재들의 마음을 볼 줄 알고 오직 한 마음으로 그 이치에 통할 뿐(視億兆之心 猶一心者 通於理而已)이래요. 이것은 촛불을 들어 주위를 비추는 이미지(燭理)로 표현할 수 있는데, 동인괘가 건괘와 리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밝게 비추는 것(,文明=)을 굳건히(=) 오래 해나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요. 이렇게 강건히(剛健) 자신의 사사로운 욕망을 이겨나가는(克己) 훈련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해요. 우샘께서 정리해 주시기를, 군자의 삶이란 것은 1) 학문에 뜻을 두고 2) 그걸 평생 해나가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결국 공부라는 것은 자신(의 사욕)을 이기고, 촛불 하나를 밝힌 채로 그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잘 지켜서 평생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의 경우도, 모두와 함께(자신의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사사로운 욕망을 버리고) 촛불을 켜서 내 자신부터 밝히는 공부를 계속 해나가는 것이 해답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올해는 촛불을 잘 켜서 잘 들고 있는 게 바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연약한 이 여인)가 간신히 켜서 들고 있는 요 작은 희미한 촛불 하나가 팔랑팔랑 바람에 언제 꺼질까 좌불안석이신 채운샘의 마음이 묘하게 잘 표현된 조용필의 ‘촛불’이라는 노래의 가사를 끝으로 후기를 마칩니다. 우리 모두 올 한해 각자의 촛불을 켜서 오래오래 꺼지지 않게 잘 지켜가 봅시다. 파이팅!

    <  촛불 >                                                    조용필

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 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

연약한 이 여인을 누구에게 말할까요

사랑의 촛불이여 여인의 눈물이여

너마저 꺼진다면 꺼진다면 꺼진다면

바람이 멈추어라 촛불을 지켜다오

바람이 멈추어라 촛불을 지켜다오

연약한 이 여인을 누가 누가 누가 지키랴

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

그대는 왜 촛불을 키셨나요

끝없는 그 이름을 누구에게 말할까요

철없는 촛불이여 외로운 불빛이여

너마저 꺼진다면 꺼진다면 꺼진다면
전체 2

  • 2016-02-11 22:54
    그 많은 날들동안 대체 뭘 하다가 개강을 코앞에 두고 후기라니!!! 나의 인내를 시험하는 거냐... 넌 정말 왜 촛불을 든거냐...

    • 2016-02-12 03:51
      어머, 모바일로 보니까 가사가 화면에 딱 예쁘게 가득차네요,쌤♡ 많이기다리셨어요?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