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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강독] 한유, '진학해'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5-10-28 19:56
조회
1310
강독 때 언급되었던 한유의  '진학해'라는 글입니다. 앞부분은 간단한 소개이고요. 뒷부분('國子先生~')이 본문 입니다.
심심할 때 함 읽어보셔요^^!  (저도 아직;;ㅋㅋ)


▣ 진학해(進學解), 한유(韓愈. 退之)

迂齋曰 設爲師弟子詰難之詞하여 以伸己志하니 機軸自揚雄 解嘲, 班固賓來라
○ 元和七年에 公復爲國子博러니 八年年四十六에 自博士로 除當書比部郞中史修撰하니라 唐史云 愈數黜官하고 又下遷일새 乃作進學解하여 以自喩하니 執政이 覽其文而奇之하여 以爲有史才라 故除是官이라 時宰相은 乃武元衡, 李吉甫, 李絳也라 按此則此篇이 作於元和七年爲博士之後라 設爲問答하여 以見己意하니 蓋有東方朔雖自責而實自贊之意라 當軸은 幸皆三賢相也니 宜其用之云이라 後段은 借匠氏醫師하여 以喩宰相하니 蓋本之淮南子라 淮南子曰 賢王之用人也 猶巧工之制木也하여 大者以爲舟航梁棟하고 小者以爲楫楔()하며 脩者以爲하고 短者以爲侏儒하여 無小大脩短히 皆得其所宜하고 規矩方圓이 各有所施라 天下之物이 莫凶於鷄(奚)烏頭也나 然而良醫而藏之는 有所用也라하니 公之論이 蓋取此意라 所謂窺陳編以竊盜者 此亦其一也니 盖自首其實云이라

우재(迂齋)가 말하였다. “스승과 제자가 힐난하는 말을 가설하여 자기의 뜻을 폈으니, 기축(機軸)은 양웅(揚雄)의 해조(解嘲)와 반고(班固)의 빈희(賓)에서 온 것이다.”
○ 원화(元和) 7년에 공(公)은 다시 국자박사(國子博士)가 되었었는데, 8년인 46세에 박사(博士)로 있다가 상서비부랑중(尙書比部郞中) 사관수찬(史館修撰)에 제수되었다. 당사(唐史)에 이르기를 “한유(韓愈)는 여러 차례 관직에서 축출되었고 또 좌천되자, 마침내 ‘진학해(進學解)’를 지어 스스로 비유하니, 집정대신(執政大臣)은 그의 글을 보고 기특하게 여기며 사관(史官)의 재주가 있다고 하였으므로 이 관직을 제수 하였다. 이때 재상은 바로 무원형(武元衡), 이길보(李吉甫), 이강(李絳)이다.”하였다.
이를 살펴보면 이 글은 원화(元和) 8년 박사가 된 후에 지은 것인데, 문답하는 내용을 가설하여 자기의 뜻을 나타내었으니, 동방삭(東方朔)이 비록 자책하였으나 실제는 자찬한 것과 같은 뜻이 있다. 이때 집정대신은 다행히 세 어진 재상이었으니, 그를 등용함이 마땅하다 하겠다.
뒷부분은 장씨(匠氏)[목수]와 의사(醫師)를 빌어 재상을 비유하였으니, 이는 《회남자(淮南子)》에 근본한 것이다. 《회남자(淮南子)》에 이르기를 “현왕(賢王)이 인재를 등용함은 훌륭한 목수가 나무를 쓰는 것과 같아 큰 것은 주항(舟航)[배]과 양동(梁棟)[들보와 기둥]으로 삼고 작은 것은 접습()[쐐기]으로 삼으며, 긴 것은 염최()[처마와 서까래]로 삼고 짧은 것은 주유(侏儒)[짧은 기둥], 계로()[가로보와 주두(柱頭)]로 삼아, 작고 큰 것과 길고 짧은 것을 막론하고 모두 그 마땅함을 얻으며 규(規)·구(矩)의 방(方)·원(圓)이 각기 베푸는 바가 있다. 천하의 물건은 계애(鷄)[부자(附子)]와 오두(烏頭)보다 더 흉악한 것이 없으나 훌륭한 의원이 이를 주머니에 보관함은 쓸 곳이 있기 때문이다.”하였으니, 공(公)의 이론은 이 뜻을 취한 것이다. 이른바 ‘묵은 책을 엿보면서 국록(國祿)을 훔쳐먹고 있다’는 것이 또한 그 중에 하나이니, 자신의 실상을 스스로 말한 것이다.
國子先生이 晨入太學하여 招諸生하여 立館下하고 誨之曰 業精于勤하고 荒于嬉하며 行成于思하고 毁于隨하나니 方今에 聖賢相逢하여 治具畢張하여 拔去兇邪하고 登崇俊良하여 占小善者率以錄하고 名一藝者無不庸하여 爬羅剔抉하고 刮垢磨光하니 蓋有幸而獲選이언정 孰云多而不揚고 諸生은 業患不能精이요 無患有司之不明하며 行患不能成이요 無患有司之不公이니라
국자감(國子監) 선생(先生)이 새벽에 태학(太學)에 들어가 제생(諸生)을 불러 관(館) 아래에 세우고 다음과 같이 훈계하였다.
“업(業)은 부지런한 데에서 정(精)해지고 노는 데에서 황폐해지며, 행동은 생각하는 데에서 이루어지고 태만한 데에서 무너지는 것이다. 방금에 성군(聖君)과 현상(賢相)이 서로 만나 다스리는 도구가 모두 베풀어졌다. 그리하여 흉사(兇邪)들을 뽑아버리고 준량(俊良)들을 등용하여, 작은 선(善)을 점유한 자가 모두 기록되고 한 재주로 이름난 자들이 등용되지 않은 이가 없어, 파라(爬羅)[널리 수집함]하고 척결(剔抉)[도려내어 뽑음]하며 때를 씻고 빛나게 연마하니, 요행으로 뽑힌 자는 있을지언정 어찌 훌륭함이 많고도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제생들은 업이 정하지 못함을 걱정할 것이요 유사(有司)의 밝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며, 행실이 이루어지지 못함을 걱정할 것이요 유사(有司)의 공정하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라.”
言未旣에 有笑于列者曰 先生이 欺余哉인저 弟子事先生이 于玆有(時)[年]矣라 先生이 口不絶吟於六藝之文하고 手不停披於百家之編하여 記事者는 必提其要하고 纂言者는 必鉤其玄하여 貪多務得하고 細大不捐하여 焚膏油以繼晷하여 恒兀兀以窮年하니 先生之業이 可謂勤矣요 排異端하여 攘斥佛老하며 補漏하고 張皇幽하여 尋墜緖之茫茫하여 獨旁搜而遠紹하고 障百川而東之 하여 狂瀾於旣倒하니 先生之於儒에 可謂[有]勞矣라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제생 중에 대열에서 웃으며 말하는 자가 있었다.
“선생이 우리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저희 제자들이 선생을 섬겨 온 지가 지금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선생이 입으로는 육예(六藝)[육경(六經)]의 글을 읊기를 끊지 않고 손으로는 백가(百家)의 책을 피열(披閱)하기를 멈추지 아니하여, 일을 기록함에는 반드시 그 요점을 잡고 말을 엮음에는 반드시 깊은 뜻을 찾아, 많음을 탐하고 얻기를 힘쓰며 작은 것이나 큰 것을 버리지 아니하여 기름을 태워서 낮을 이으면서 항상 부지런히 부지런히 해를 마치니, 선생의 학업은 부지런하다고 이를 만합니다.
이단(異端)을 배척하여 불(佛)·노(老)를 물리치며 틈과 새는 곳을 땜질하고 그윽함과 아득함을 장황(張皇)하여, 아득히 실추된 전통을 찾아 홀로 사방으로 수집하고 멀리 계승하며, 백천(百川)을 막아 동쪽으로 흐르게 하여 미친 여울물을 이미 거꾸로 흐르는 데서 돌리려 하니, 선생은 유학(儒學)에 있어서 수고롭다고 이를 만합니다.
沈浸郁하고 含英咀華하여 作爲文章하여 其書滿家호되 上規姚 의 渾渾無涯와 周誥殷盤의 佶(詰) 와 春秋謹嚴과 左氏浮誇와 易奇而法과 詩正而하며 下逮莊騷와 太史所錄과 子雲相如의 同工異曲하니 先生之於文에 可謂其中而肆其外矣요 少始知學하여 勇於敢爲하고 長通於方하여 左右具宜하니 先生之於爲人에 可謂成矣라 然而公不見信於人하고 私不見助於友하여 跋前後하여 動輒得咎라 暫爲御史라가 遂竄南夷하고 三年博士에 冗不見治하니 命與仇謀하여 取敗幾時오 冬暖而兒號寒하고 年登而妻啼飢하니 頭童齒豁하여 竟死何裨오 不知慮此하고 而反敎人爲아
농욱(郁)에 무젖으며 영화(榮華)를 삼키고 씹어서 문장을 지어 그 책이 집에 가득한데, 위로는 요(姚)[순(舜)], 사()[우(禹)]의 혼혼(渾渾)하여 끝이 없음과 주고(周誥), 은반(殷盤)의 문리가 굴곡하고 문장이 난삽함과 《춘추(春秋)》의 근엄함과 좌씨(左氏)[춘추좌전(春秋左傳)]의 부과(浮誇)함과 《주역(周易)》의 기이하면서도 법도에 맞음과 《시경(詩經)》의 올바르면서도 화려함을 엿보며, 아래로는 《장자(莊子)》와 《이소(離騷)》와 태사공(太史公)[사마천(司馬遷)]의 기록한 바와 양자운(揚子雲)[양웅(揚雄)]과 사마상여(司馬相如)의 공부는 같으나 곡조는 다름에까지 미치니, 선생은 문장에 있어 그 속[내용]을 넓히고 그 겉[형식]을 크게 했다고 이를 만합니다.
젊어서부터 일찍 배움을 알아 과감히 실행함에 용감하였고, 장성해서는 방법에 통달하여 좌우에 모두 마땅하니, 선생은 사람됨에 있어서 완성했다고 이를 만합니다.
그런데도 공적(公的)으로는 남에게 신임을 받지 못하고 사적(私的)으로는 벗에게 도움을 받지 못하여, 앞으로 가도 넘어지고 뒤로 가도 넘어져 언제나 허물을 얻고 있습니다. 잠깐 어사(御史)가 되었다가 마침내 남쪽 오랑캐 지방으로 좌천되었고, 3년 동안 박사(博士)로 있을 적에는 한직(閑職)이어서 치적을 나타내지 못하였으니, 운명이 원수와 도모하여 패함을 당한 것이 얼마동안이나 됩니까. 겨울이 따뜻한데도 아이들은 춥다고 울부짖고 연사(年事)가 풍년이 들었는데도 아내는 배고파 우니, 머리가 벗겨지고 이가 빠져 끝내 죽은들 무슨 도움이 있겠습니까. 이것을 생각할 줄 모르고 도리어 남을 가르친단 말입니까.”
先生曰 라 子來前하라 夫大木爲하고 細木爲하여 侏儒와 楔을 各得其宜하여 以成室屋者는 匠氏之功也요 玉札, 丹砂와 赤箭靑芝 와 牛, 馬勃, 敗鼓之皮를 俱收幷蓄하여 待用無遺者는 醫師之良也요 登明選公하고 雜進巧拙하여 紆餘爲姸하고 卓爲傑이라하여 較短量長하여 惟器是適者는 宰相之方也라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 자네는 앞으로 오라. 큰 나무는 대들보를 삼고 작은 나무는 서까래를 삼으며, 박로()[두공(斗)]와 주유(侏儒)[짧은 기둥]와 문지도리와 문지방, 빗장과 문설주가 각기 그 마땅함을 얻어 실옥(室屋)을 이루는 것은 목수의 공(功)이요, 옥찰(玉札)과 단사(丹沙), 적전(赤箭)과 청지(靑芝), 소오줌과 말똥버섯, 망가진 북의 가죽을 모두 거두고 아울러 쌓아놓아 쓰이기를 기다려 버림이 없는 것은 의사의 어짊이요, 밝은 사람을 등용하고 공정한 사람을 선임하며 공교한 자와 졸렬한 자를 모두 등용하여, <재학(才學)이> 넉넉한 사람을 곱다 하고 뛰어난 사람을 호걸이라 하여 길고 짧음을 따지고 헤아려서 그 기국(器局)에 맞는 직책을 주는 것은 재상의 방법이다.
昔者에 孟軻好辯하사 孔道以明이로되 轍環天下라가 卒老于行하시고 荀卿守正하여 大論是弘이로되 逃讒于楚하여 廢死蘭陵하니 是二儒者는 吐辭爲經하고 擧足爲法하여 絶類離倫하여 優入聖域이언마는 其遇於世何如也오 今先生이 學雖勤而不繇(由)其統하고 言雖多而不要其中하며 文雖奇而不濟於用하고 行雖修而不顯於衆이어늘 猶且月費俸錢하고 歲靡粟하여 子不知耕하고 婦不知織하며 乘馬從徒하여 安坐而食하여 踵常途之役役하며 窺陳編以盜竊이라 然而聖主不加誅하시고 宰臣不見斥하니 玆非幸歟아 動而得謗이나 名亦隨之하니 投閑置散이 乃分之宜라 若夫商財賄之有亡(無)하고 計班資之崇(卑)하여 忘己量之所稱하고 指前人之瑕疵면 是所謂詰匠氏之不以爲楹이요 而醫師以昌陽引年 하고 欲進其也니라
옛날에 맹가(孟軻)는 변론을 좋아하시어 공자(孔子)의 도(道)가 이 때문에 밝아졌으나 수레바퀴 자국이 온 천하를 돌다가 끝내 길에서 늙으셨고, 순경(荀卿)은 정도(正道)를 지켜 큰 의논을 넓혔으나 초(楚)나라에서 참소를 피하다가 폐출(廢黜)되어 난릉(蘭陵)에서 죽었으니, 이 두 유자(儒者)들은 말을 뱉으면 경(經)이 되고 발을 들면 법(法)이 되어, 보통사람보다 뛰어나고 무리에서 벗어나 넉넉히 성인(聖人)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었으나, 세상을 만남이 어떠하였는가.
지금 선생은 배우기를 비록 부지런히 하나 그 계통을 말미암지 못하고 말을 비록 많이 하나 중도(中道)에 맞지 못하며, 문장이 비록 기특하나 쓰임에 맞지 못하고 행실이 비록 닦아졌으나 사람들 중에서 드러나지 못하는데 오히려 달마다 봉급을 허비하고 해마다 창고의 곡식을 축내어, 아들은 밭갈 줄을 알지 못하고 아내는 길쌈할 줄을 알지 못하면서 말을 타고 하인들을 따르게 하여 편안히 앉아 밥을 먹어 평범한 길의 역역(役役)[쉬지 않고 일함]함을 따라 묵은 책편을 엿보면서 국록(國祿)을 훔쳐먹고 있다. 그런데도 성주(聖主)께서는 주벌(誅罰)을 가하지 않으시고 대신들은 배척을 하지 않으니, 이는 다행이 아니겠는가. 걸핏하면 비방을 받으나 명예도 또한 따르니, 한산(閑散)한 직책(職責)에 버려짐은 내 분수에 마땅한 것이다. 만일 재물의 있고 없음을 헤아리고 반자(班資)[반열]의 높고 낮음을 비교하여, 자기 역량의 걸맞는 바를 망각하고 전인(前人)의 하자(瑕疵)를 지적한다면, 이는 이른바 목수에게 말뚝을 기둥으로 삼지 않는다고 힐책하고, 의사가 창양(昌陽)[창포(菖蒲)]으로써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을 꾸짖어 희령()[저령()]을 올리게 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퍼온 곳 주소는 http://www.koreaa2z.com/gomun/cgi-bin/xjump.cgi?ssid=142845&dbid=../gomun/gomun&no=329 
*네이버 요 블로그에도 나름 이쁘게(?) 나와있는데 스크랩이 안되는군요. http://blog.naver.com/bgjeong45/22041886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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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29 00:11
    아유, 이 수고를! 감사감사!!

  • 2015-10-29 09:02
    제가 없는 새에 이런 보물을 또 선사하셨군요. 여튼, 빠지기가 무섭다니깐~~. 잘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