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규문 청년들, 밀양에 다녀왔습니다

작성자
손지은
작성일
2017-11-10 18:15
조회
290
규문, 문탁 네트워크, 우동사, 감이당에서 17명의 청년들이 밀양에 다녀왔어요.

규문에서는 혜원, 규창, 지은(손)이 함께 했습니다.

규창이와 혜원이가 긴 후기를 써주어서 저는 아래에 사진으로 소식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 혜원 편

밀양은 제게 먼 지방입니다. 막연히 송전탑, 영화, 몇몇 사건사고와 함께 떠올리던 땅이었지요. 생각해보니 정말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원자력발전 공론화 토론 뉴스를 들었을 때도 밀양 송전탑과 그 토론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이런 저는 정말 ‘어쩌다’ 밀양을 갔습니다. 이정도 이미지들만 갖고 있었으니 제가 거기서 한 말들도 정말 ‘처음입니다.’ ‘어쩌다 왔습니다.’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막상 밀양을 방문했을 때 들었던 느낌은 ‘생각보다 조용하다’였습니다. 그리고 ‘역시 시골’이다보니 별이 도시보다 잘 보인다, 공기가 좋다 같은 피상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옆집 개들이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짖지도 않고 절 보는데 정말 귀여웠지요. 오리백숙도 맛있고 술자리도 기분이 좋았고요. 그런데 막상 속사정을 알아보면 제가 ‘생각보다 조용하다’고 단정적으로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귀여운 개들이 사는 옆집은 송전탑 찬성파 중에서도 강경파였고 제가 머무는 집은 그 마을에서 합의하지 않은 세 집 중 하나였지요. 제가 ‘조용하다’고 느낀 것은 사실 떠들썩하게 무엇인가를 더 할 힘이 없는 상황의 ‘조용함’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게 되자 저도 밀양에 철탑 세우던 사람과 그닥 다르지 않은 거같아서 당황스러웠습니다. 밀양은 송전탑으로 인해 마을 공동체가 와해되는 한편 또 '탈핵'의 희망마저 공론화 토론으로 인해 꺼져가고 있는데 제가 밀양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 그리고 에너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피상적이기 그지 없으니까요. 생각없이 쓰던 에너지의 실체, 그 물질성을 경험한 것 같아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지금도 산으로 둘러싸인 밀양의 풍광과 거기에 여봐란 듯 서있는 송전탑이 떠오르네요.



- 규창 편

밀양 갈 때 궁금했던 건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밀양에서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었는지(사실 이건 당위로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비슷한 나이의 다른 친구들은 공부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기 잘한 것 같습니다. 왜인지는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지 않네요. 막 늘어놓겠습니다. ㅋㅋ

저도 고등학교 때 나름 뜨겁게 싸웠답니다. 광화문에서 경찰들이 길을 막으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길을 뚫어놓기도 했고, 살수차 앞에 당당히 서지는 않았지만 타이어 바람을 빼버리는 등 소심한 복수를 했었죠. 그러면서도 ‘나 하나 간다고 크게 달라질까’란 생각을 내내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번 밀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가는 게 농활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나름 짱구를 굴려봤지만 생각은 뭉게뭉게 복잡해지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밀양역에 도착했네요. 황송하게도 지원쌤이 한 시간 동안 기다려준 덕분에 편하게 동화전으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_ _)

동화전에 도착하자마자 술판이 벌어져서 약간 당황했습니다. ㅎㅎ;; 술을 즐기지 않는 저는 술보다는 오리백숙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도중에 고은이라는 저랑 동갑이고 동양고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친구를 만나서 재밌게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 친구는 삼경스쿨에서 우쌤에게 한문을 배우고 있는데, 강의 때와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이 무엇일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냥 지금 알고 있는 우쌤의 모습을 간직하겠습니다. ㅋㅋㅋㅋ

1차 술자리를 파하고, 2차에서는 문탁 청년들의 공부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문탁은 여러 사회적 이슈에 대해 몸이 빠르게 반응하니까, 공부가 어떤 식으로 접속됐는지 그리고 청년들은 그 과정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일단 사회문제와 내 문제로 구별해서 접근하는 건 아니라고 했지만, 처음에는 이 말이 잘 실감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이곳에서 생활하지 않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자기문제로 사유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지나고 보니 제가 오만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하 저는 그냥 제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으로 지레짐작을 한 거였지만, 밀양과 문탁이 맺고 있는 관계는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관계였습니다. 여러 쌤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같이 생활하는 게 아니어도 매우 밀도 높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쁜 일이 있을 때도 오고, 슬픈 일이 있을 때도 오고, 농사일이 바쁠 때도 오고, 그냥 오기도 하고 수시로 오고 있었습니다. 지원쌤은 이번에 여자친구도 데려왔더군요. (얘기해도 되는 거겠죠?) 그러니까 이미 서로가 서로의 일상에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5년이라는 긴 시간을 같이 생각해보면, 관계가 이렇게 깊어질 수 있었던 건 서로에게 뭔가 촉발되는 게 있어서인 것 같습니다.

둘째 날에는 감을 땄습니다. 일을 도와드린 영순누님은 송전탑 투쟁 이후로 생긴 후유증으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영순누님 댁 앞에는 합의를 한 사람이 신축건물을 세워져있다는 얘기를 듣고 속이 좀 부글부글 끓더군요. 이런 생각은 고등학교 때도 생각했었던 것 같고, 아마 전 여전히 밀양을 제 문제로 사유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아저씨들과 얘기하고, 거기서 차려주는 밥이 너무 맛있어서 그 경험 때문에 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전 어떤 정치적 현안이 부당하고, 그것을 이성이 부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마음과 몸이 반응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여태껏 저는 그냥 머리로만(사실은 입이겠죠.) 부당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오래 투쟁하지도 않고, 항상 회의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정말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 치열하게 했을 테고 회의를 할 순간도 없었겠죠. 많은 사람들이 밀양과 오랫동안 관계 맺을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이 먼저 반응하고, 나중에 생각하는 거겠죠. 밀양을 어떤 자세로 만날지 막막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밀양에 어떤 마음이 있지도 않으면서 어떤 관계를 생각하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겠죠. 하더라도 그 관계가 꼭 제 생각대로 맺어지란 법도 없고. 정리는 잘 안 되네요. ㅋㅋㅋㅋ;;

아직 저에게 밀양은 ‘잠시 있다 오는 곳’이지만 지금 이 관계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내년 5월에 콩을 수확한다고 하니 그 전까지는 빡시게 공부하고, 그때 가서 같이 콩을 털겠습니다.



11월 6일 월요일


감 따러 가기 전- 영순엄니네서 대추차로 몸 녹이는 중. 집 뒤로 찬란히 햇살을 받고 있는 감나무가 보이시나요. 조금만 걸어가면 저런 감이 사방 천지로 달려있어요. 저 감을 따러 갑니다. 모두 무념 무상으로 대추차를 홀짝홀짝.



가을하늘 사이로 비치는 감나무 빛깔은 정말 예술이였어요. 감 무게가 상당하던데 저 얇은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니!



오전에규창, 혜원, 고은, 해은이는 감을 따러 가고, 새은과 지은은 상자에 감을 포장했어요. 감을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포장하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상자 끝부터 1-2-4-6 순으로 상자 안에 감을 넣는 방법을 익히고, 3단으로 쌓아 무게를 맞추고, 감이 몇 개 들어갔는지 헤아리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감 따기 전에는 몰랐는데 한번 감을 따고보니 멈출 수 없는 즐거움이..! 고은은 지금까지 농활한 중에 이게 가장 재미있었다 하네요. 후둑 후둑 떨어지는 감들. 오후에 우동사 감이당 친구들까지 투입되어 대체 몇박스를 땄나 몰라요. 하루종일 감을 따고 사방을 둘러보았을 때 여전히 주렁주렁 매달린 감들을 본 누군가 소리쳤습니다. "감이 언제 다시 자라난거지?!"



기다렸던 점심시간.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국밥은 영순엄니 동서분이 준비해주셨어요. 영순엄니가 송전탑 투쟁 이후 몸이 안좋으셔서 일 도와주시러 부산서 오셨다고 해요. 일하고 먹는 밥이라 맛있기도 했지만, 이 국밥은 정말 최고였다는 ㅜ ㅠ ♡



오후에는 문탁 친구들의 바톤을 이어받아 문탁의 명식이, 우동사의 준영이, 감이당의 지혜랑 찬식이가 와서 같이 감을 선별하고 꼭지 따는 일을 했어요. 감따는 현장에서 처음 본 친구들도 있어 수줍 수줍- 하기도 했지만 저녁에는 고스톱과 별자리로 하나가 되었지요 ㅎㅎ


11월 7일 화요일


다음날, 명식이와 준영이는 강귀영샘 집 일을 돕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손선배네 깻잎 하우스에 갔어요. 깻잎 주변에 난 잡초를 뽑으며 밀양에서 투쟁하신 이야기랑 손선배와 귀영샘 러브스토리를 듣다보니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던지요. 중간에 참도 준비해주셔서 두부에 김치 얹어 먹고 든든한 속으로 일했습니다.



손선배네 하우스는 그림같은 산에 둘러싸여 있어요. 화장실 가는 길이 얼마나 멋진지, 가는 길에 온 몸 마음이 펴지고(ㅋㅋ) 일을 보기 전인데도 상쾌함을 맛보았답니다.



이것이 정녕 화장실 가는 길이련가! 기쁜 마음으로 이동중인 지혜. 돌아와보니 손선배가 '클래식을 듣고 자란 막걸리'를 사오셔서 한잔 들이키고 막 뽑아온 배추에 장 찍어 먹으며 즐겁게 점심을 먹었지요. 반갑게 맞아주셔서 감사해요. 또 찾아뵙겠습니다.


전체 3

  • 2017-11-10 19:05
    밀양을 다녀온 3인과 얘길 나눠보니, 거칠지만 다들 질문 하나씩은 품고 온 듯합니다.(세 사람이 모두 다른 곳에 다녀온 듯했습니다.ㅋㅋ) 다음에 갔다 오면 또 좀 달라질까요... 암튼, 또 가겠다고들 하니 두고볼 일이지요.^^

  • 2017-11-10 21:48
    오오... 사뭇 진지한 느낌...! 확실히 다들 뭔갈 겪고 온 모양이네요~ 다음엔 저도 같이가겠습니다ㅎㅎ

  • 2017-11-13 10:55
    밀양의 선물은 땡감만큼 땡글해진 삼인방의 몸과 마음? 밀양 햇빛으로 세 사람이 더 무르익는 중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