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후기

동물우화 세미나 3주차 후기 (민호팀)

작성자
김지현
작성일
2018-08-15 21:12
조회
143
공포, 미래로부터 빌려온 불안

정서와 이성의 관계를 반비례로 본 것이 데카르트라면, 스피노자는 이해와 정서가 함께 간다고 보았다. 스피노자는 생전에 겪은 정치적은 사건을 통해 인간이 자유만큼 예속을 갈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의 이해에 반하는 것을 욕망하는 인간의 정서는 스피노자에게 이성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인간의 정서 중에서 공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요즘 내가 주위에서 가장 많이 보는 공포는 노후 준비와 자녀 교육인 것 같다. 비혼 상태인 나를 두고 제일 많이 하는 걱정도 ‘너 그렇게 살면 늙어서 후회 한다’이다. 고독함에 대한 공포 못지않게 노후 대책으로 상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며 온갖 부동산 투자 관련 서적을 섭렵하거나, 아들의 형편없는 중간고사 성적표를 보면서 실업과 독신을 떠올리는 불안은 미래로부터 빌려온 감정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사교육이 ‘미신’인 것 같다. 당장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사회에서 대접받으며 살거나, 또는 그렇게 못사니까 자식만큼은 명문대학 졸업하고 전문직 종사자로 살았으면 하는 마음은 미래로 향하고 있다. 명문대학 못 가면 타인들이 함부로 대할 것 같고, 당사자는 주눅 들어서 살 것이라는 편견이 공포를 낳고 사교육이라는 ‘미신’을 점점 살찌운다.

뭔가를 달성할 때만 행위에 의미를 두는 태도는 결과에 예속되어 있는 상태이다. 미래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자신의 편견을 공고히 하면서 행위를 거기에 종속시키는 것은 결국 스스로가 공포를 키우는 셈이다.

 

경외감, 무지와 편견의 자식

인간은 자연과 신을 구분해서 신(神)의 역량을 자연을 뛰어넘는 것으로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일상적인 사건에서 벗어나거나 인간이 원인을 이해하지 못할 때 기적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모든 사건은 자연 속에서 벌어진다. ‘예외적인 기적’은 인간의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대상의 필연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처럼 떠받들게 되거나 정서에 구속되기 쉽다고 한다.

성서에는 온갖 놀라움과 부조리한 일들로 넘쳐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성서에 등장하는 놀라운 사건들에 사로잡히지 말고 그 안에는 ‘정의’와 ‘이웃에 대한 사랑’을 핵심으로 담고 있으니 이성을 발휘해서 잘 읽어보라는 것이다.

 

진리와 오류

진리를 추구하는 자는 절대적인 진리가 따로 존재하고 있고 나머지는 오류라는 입장이다. 영화 ‘라쇼몽’을 보면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주장하는 진실도 다르다. 우리는 모두 부적합한 인식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고, 논쟁은 부적합한 관념을 진리로 믿고 싸우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도달해야할 것은 누군가의 부적합한 인식(본인은 진리라고 우기는)이 아니라 적합한 인식이다. 부적합한 인식으로 세상을 살면 안 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가 그것과 함께라면 정서에 예속되기 때문이다. 설사 그것이 우리를 들뜨게 하는 기쁨이라 할지라도 정서에 사로잡히면 개인의 역량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부적합한 관념에 잡히지 않으려면 우리는 다양한 관점에서 사건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알지만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은 편견, 단편적인 앎에 대한 관성이 그만큼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진리와 오류에 대해 다루면서 ‘우정’을 언급하는 것이 흥미롭다. 나는 관계를 가질 때 특정한 보편적 성질들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부분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보편적인 성질을 어떻게 먼저 확인할 수 있는 지, 그리고 확인이 되어야만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타자의 범위를 축소시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공통성은 교집합의 확인이 아니라 나의 규정성을 내려놓고 경계를 느슨하게 해서 서로가 변용되어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타자와 보편성을 확인 할 수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나의 질문은 내가 나를 다 알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나에게는 이질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누구와도 변용이 가능하다.

철학에서 말하는 윤리는 내가 기존에 생각하던 ‘착한 사람’이 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기존의 관성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타자와 변용되고 그 속에서 기쁨을 찾는 이 모든 과정이 내가 만들어야할 윤리인 것이다. 아직은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의 윤리를 찾겠다는 말이 관념적으로 밖에 울리지 않는다.

 

상벌의 내재화(內在化)

아이를 키울 때 난감한 것은 이렇게 행동하면 너에게 위험하다는 것을 설명할 여유도 없이 아이들이 계속 사고를 친다는 것이다. 어질러진 바닥을 치우고 있으면 얼른 뛰어가 정수기에서 물이 나오게 해놓고 그것을 치우고 있으면. 몰래 블라인드 커튼 봉을 뽑아서 휘두르고 있다.(이런 몹쓸 짓은 쉴 새 없이 하면서 대소변을 못 가리는 인간의 발육 과정은 매우 이상하지 않은가). 계속 아이 뒤만 쫓아다니면서 ‘안 돼’, ‘하지 마’, ‘아빠한테 말할 거야’같이 금지와 앞으로 겪게 될 처벌에 대해서 주의를 준다는 것은 사람을 정서적으로 지치게 만든다. 그래서 빨리 아이가 자라서 뭔가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게 되기를 바라게 된다. 금지와 처벌을 생산하는 것은 그것을 강제하는 입장의 역량도 떨어지게 만드는 것 같다.

아담이 사과를 기어코 먹은 것은 사과가 나에게 어떤 식으로 해로운 지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과를 먹지 말라는 ‘금지’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처벌’은 아담이 자신의 조건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역량을 만들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외부에서 또는 강압적으로 주어진 법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나와 우리 공동체 모두에게 이롭지 않다고 생각하고 따른다면 처벌로 인한 공포 때문에 조심하는 것과는 다르다.

행위의 원인과 결과에 따라 충분히 사유하지 못하고, 명령의 기호들만 외우고 반복하는 것은 ‘앵무새’와 다를 바 없다.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유아적인 상태로 머물러서 지내는 것이 ‘처벌’이지 처벌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한다. 앵무새처럼 명령만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밖의 조건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가 ‘1종의 인식’이다. 반면 자기의 역량을 키우는 행위인지 아닌 지를 구분하고 처한 조건을 이해하는 이성은 ‘2종 인식’, 공통 개념 및 자연의 보편적 법칙을 구성한다.

 

자유의지와 필연성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자기가 처한 조건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물체의 힘이 다른 물체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인과율 관계로 생각한 반면, 스피노자는 우리가 단편적으로 인식하지 못할 뿐 다른 조건의 힘도 주고받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각자의 조건이 다 얽혀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너무 많은 원인을 사건과 연관 지어서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세월호 사건 앞에 필연성이라는 말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많이 불편하다. 배는 그 순간 침몰할 수밖에 없었다는 필연성은 책임져야할 사람들의 죄를 희석시키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부적합한 관념’은 이성을 조금만 사용하는 것이라면, ‘적합한 관념’은 이성의 능력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이성을 더 많이 발휘한다면 몇몇의 사욕이나 의도 때문이라고 분노의 대상을 협소하게 환원하지도 않을 것이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싸움 앞에 지치지 않도록 서로가 함께 힘을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처음 떠올렸던 필연성은 돌의 낙하 원인을 바람이라고 파도라고 말한 사람들과 같은 방식이었다. 단편적으로 떠올리는 방식의 필연성 말이다. 스피노자는 신중함을 강조한다. 기존에 인지할 수 없던 조건을 단 하나라도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만큼의 필연성을 이해하며 적합한 인식으로 나아가는 것이 된다.

 
전체 3

  • 2018-08-15 22:23
    후기를 쓰는 분들에게도 그렇겠지만, 후기를 읽는 저에게도, 후기를 읽는 일이란 참.....뭐랄까.... 벽을 마주하는 기분입니다ㅋㅋㅋㅋ지현이는 '지현이스럽게'(지현이의 역량과 실존 그대로!) 정리를 했네요. 모두들 그렇게 정리하고 계시겠지요? ㅋㅋ 녜녜, 그렇게 조금씩 가는 거지요! 토욜에 또 뵙겠습니다~

  • 2018-08-17 10:02
    스피노자가 말하는 공통성을 그냥 변용의 결과로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나와 빨간 공의 마주침에 대한 설명을 떠올려보세요. 그것은 나의 신체 변용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그 공(처럼보이는 물체)의 변용이지요. 그러면 그것은 상대와 내가 미리 가지고 있는 (내가 알고 모르고에 상괌없이) 특성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동일하진 않지만 유사한 신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사한 변용이 일어나고 거기에 형성되는 관념 역시 공통적이라고 보이게 되는...

    그리구 적합한 관념이 이성의 능력을 많이 쓴다는 부분은 설명이 필요할것 같네요~
    그 때의 이성은 신체와 상대적인 것인지 어떤 의미인지요. 저는 스피노자에게 신체는 관계성이고 그 관계성의 다양한 배치에 의해 보다 적합한 인식을 꾀할 수 있다고 알고 있거든요!!(물론 빈약하지만)

    지현샘의 꼼꼼한 후기 감사합니다~!!

    • 2018-08-18 07:28
      저도 이성을 많이 쓴다는 말이 너무 쉽게 퉁치는 것 같습니다. 적합한 인식으로 간다는 것을 스피노자는 더 많은 이성을 작동 시키는 것으로 보는 게 아닐까요.
      신체와 이성을 상대적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신체성, 관계, 다양한 배치를 통해서 적합한 인식으로 간다면, 신체성은 적합한 인식으로 가는 조건으로 봐야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