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후기

동물우화 세미나 3주차 후기

작성자
노을
작성일
2018-08-18 11:42
조회
98

공포감은 미신의 근원


이 장은 신학정치론의 서문을 인용한 내용이다. 신학정치론은 스피노자가 ‘왜 인민은 자유를 갈망하듯 예속을 갈망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쓴 책이다. 스피노자에게 자유란 아주 복잡한 관계속에서 능동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자유롭게 살기보다는, 즉 자신의 능동성을 발휘하면서 살아가기 보다는 예속되어 살아가는 것에 더 편안함을 느낀다. 스피노자는 이런 모순에 대해 정서의 매커니즘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정서와 이성을 반비례 관계로 생각했는데(데카르트), 스피노자는 정서와 이성이 비례관계라고 생각했다. 이해한만큼 행동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계속 미워한다면 진짜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포감은 무엇인가. 공포는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즉 불확실한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런 불확실한 것들은 사람들이 쉽게 부적합한 관념에 빠지게 만든다. 그래서 공포는 편견을, 이런 편견은 미신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불확실한 선들을 무절제하게 욕망하는 자들이 미신에 가장 많이 종속된다.


신앙과 이성의 관계


스피노자는 경외감은 무지와 편견에서 생기는 것이라며 경계한다. 경외감, 놀람은 기쁨과 슬픔처럼 역량의 증감을 가져오는 정서가 아니다. 그냥 새롭게 마주치는 것에 놀라는 것일뿐이다. 처음보는 것에 대한 변용이며, 상상의 관념일뿐이다. 처음 본 것이기에 관념의 연합을 형성하지 못하고, ‘처음’이기에 대단하다고 생각하여 그 대상의 이미지에 고착되어버린다. 즉 이미지에 대한 관념이 대상에 딱 달라붙어서, 우리는 그 정서에, 그 대상에 더욱 구속된다. 종교가 그렇지 않을까. 어떤 사람이 걷지 못한 사람을 갑자기 걷게 만들면,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기에 더 놀라고, 그 사람을 신처럼 떠받들게 된다. 그렇게 기적은 경외감과 연결이 된다.


기적에 의존하는 신앙이란 무지한 자들이 상상에 의지한 수동적인 정서에 따른것이다. 그런데 모든 신앙을 해석해보면 정의와 이웃에 대한 사랑이 핵심내용이다. 그냥 믿으라는 것은 이성을 배제하는 것인데, 이성을 배제한 상태에서의 믿음은 미신 아닐까? 미신은 종교핵심(사랑, 정의)을 무시하고, 이성을 편견으로 덮으려는 것이다.


진리와 오류


논쟁은 상대가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인데, 어떤 사유도 부조리하지 않다 각자의 말에는 그 말이 함축하고 있는 인식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 라쇼몽에서 산적이 사무라이의 아내를 겁탈하고, 사무라이를 죽인다. 그런데 하나의 사건에 산적, 사무라이, 그의 아내는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한다.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나 다른 사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모두 부적합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적합한 인식으로 이행은 어떻게 가능한가. 적합한 인식이란 하나의 사건이 여러 가지 조건속에서 발생하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인데, 정서와 이성을 일치시킴으로써 적합한 인식으로 이행할 수 있다. 즉 이해한대로 느끼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해한대로 느끼는 것은 참 어렵다.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이해했다고 했지만, 좋다고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해하는게 충분히 좋지 않기 때문에 이전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관성이 강해서,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때는 수행을 하는 수밖에 없다. 하루에 30분이라도 공부하는 것들을 곱씹는 것. 머든 일정하게 하는 것밖에는 없다.


우리가 적합한 인식을 하게 되면 정서에 예속당하지 않는다. 그리고 적합한 인식의 문제는 어떤 성격의 공동체속에서 살고 있는가의 문제이기에 필연적으로 공동체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텍스트 해석의 문제


모든 것은 해석의 문제다. 어떤 맥락속에서, 누가 말했는가에 따라 해석을 해야한다. 우리는 다 각자가 생성한 관녕들을 가지고 해석하는 것일 뿐이다.


법의 참된 목적


스피노자는 법의 목적은 삶의 규칙과 다르지 않다. 법의 목적은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이익과 관련된 것이다. 하나의 규칙일 뿐, 누구나 따라야 하는 법칙이 아니다. 그런데 현대는 이것을 초월적으로 사용한다. 이것은 나쁜 사회가 아닐까. 법이란 사회의 특정한, 상충한 이익을 조절한 결과물일 뿐이다. 우리가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어떤 특정한 이익을 가져오기 때문이지 상벌때문이 되어서는 안된다.


자유의지와 필연성.


스피노자는 어떤 조건과 관련없이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부정한다. 내가 자유로운 의지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때조차도, 어떤 조건속에 놓여진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어떤 관계속에서만 자유를 발명할 수 있을 뿐이다. 필연성이란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복잡한 인과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인데, 자유는 필연성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면 모든 것은 필연적이니까. 모든 것은 제한되어 있는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조건속에서 얼마나 많은 능동적으로 살느냐가 문제인것이다. 결국 자유롭다는 것은 자유 의지와 관련이 있는것이 아닌, 필연성과 연관되어있는 것이다.

전체 1

  • 2018-08-19 16:03
    아닛, 지난 시간 후기를 세미나 당일날 올리다뉘!ㅋㅋ 그래도 올렸으니 굳굳~! 어떤 정서에 휩쓸린다면 그건 충분히 적합한 관념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걸 보여주기도 한다는 말이 다시금 스미네요. 스피노자 철학, 아직 맛보기 단계지만 일상에서 깨알같이 스미는 문장이 느무 많은거 있죠. 일단 자신이 부적합한 관념을 형성하며 살고 있었다는 것만 알아도 큰 성과인 듯!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