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후기

겨울특강 '근세 일본의 불교문화' 후기

작성자
황지은
작성일
2018-12-17 15:30
조회
155
지난 목요일 저녁, 연구실에는 허남린 선생님의 특강이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연구실에 많은 선생님들의 방문으로 한층 열기가 뜨거웠는데요, 오랜만에 뵙는 선생님들도 계셔서 특히 반가웠습니다^^

저는 불교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일본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소생 프로젝트로 이슬람에 대해 배운 것과 좀 연결해볼 만한 것도 있는 것 같기도 해서 흥미로웠습니다ㅎ 선생님께서 다루신 일본은 17~18세기 중반(조선 후기)이었습니다. 근세에는 사원(절)이 10만 개가 넘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의 인구는 약 3000만 명이었는데요, 그렇게 본다면 3~400명이 한 절을 먹여살린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ㅎ 마을 단위로 보아도 한 마을 당 2, 3개의 절이 있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마어마한 숫자이죠? 그렇다면 이 많은 절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을까요? 첫 번째로는 일본에서는 장례식/제사/차례와 같은 죽음에 관련된 의례들이 모두 불교식으로 치루어졌고, 기도의례 또한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이렇듯 일본 근세에서는 불교가 종교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었는데요, 일본의 모든 가정은 관계맺는 절이 하나씩 있었다고 합니다. 이 제도를 ‘단가제도’라고 말합니다. 이 제도는 기독교의 탄압 시에도 아주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었는데요, 프랜시스 재비어라는 선교사가 1549년 일본에 상륙하게 되면서 기독교 인구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탄압의 도구인 종문인별장이 1600년대 중반부터 19세기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기독교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불교 신자 증명서를 가지고 있어야 했습니다. 자신이 속한 절에서 증서를 발급받아야 했죠. 여기에 등재되지 않는 사람은 인간으로 취급받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재밌는 것은 이 과정에서 전 세계를 통틀어 유례가 없는 정확한 인구조사가 시행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역시 권력욕의 힘은 대단합니다...ㅎ

불교 사원은 굉장히 독특한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우선 놀이가 허용되는 공간이었는데요, 그 놀이의 종류가 저의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술은 물론이고 사창가 또한 절 안에 있었다고 해요. 왜 그런고 하니, 불교 사원은 일본에서 일종의 ‘해방의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각종 사회 구조의 제약에서 오는 여러가지 불만들을 절에서 분출(?)하며 해소했다고 해요. 또한 어떤 사람이 죄를 범했을 때에는 절로 피신하면 더 이상 잡아들이지 못했다고 해요. 주지스님의 중재 하에 그 갈등이 해소되었다고 하는데… 신기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대사관의 느낌이 듭니다. 제가 중국 상해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탈북자 분들이 한국이나 미국 대사관으로 달려오시거나, 그것도 아니면 미국 학교에 발을 들여놓으면 더 이상 중국 공안이 터치하지 못했던 사실이 떠오르네요. 어쨌든 불교 사원은 이외에도 이혼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기관이기도 했습니다. 해방의 공간, 세속의 법이 통하지 않는 공간, 그러면서도 이혼을 허용하는 법적 공간… 일본의 불교 사원은 다양한 힘들이 넘나드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일본 불교의 독특한 점은 각 사원의 중심을 맡는 신이 다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부처님, 그리고 불상 하면 똑같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일본은 각 사원이 맡는 전문 분야(?)가 있었다고 해요. 어느 절에 가면 꼭 특정 불상에 대고 절하고 기도해야 원하는 효과(이 절에 가면 눈병이 낫고, 저 절을 가면 좋은 인연을 만나는 등)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문화’가 일본에서 불교가 융성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다고도 해요. 일본에서는 성스러운 징표나 물증을 찾아 각 절을 찾아가는 것이 오늘날에도 많이 남아있는 문화라고 하는데요, 그래서 일본에는 순례 코스가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일본의 신앙은 신체를 부정하며 정신적인 ‘순결함’을 얻으려는 대신, 신체를 통해 욕망을 추구했다고 합니다. 몸을 혹사시키면서 특정 형식을 체득하는 식으로요. 수없는 수련 끝에 욕망이 완벽하게 충족되었을 때에는 ‘신의 경지’에 다다랐다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의 감정과 욕망은 저마다 제각각이라, 신 또한 많은 수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해요. 신체의 고행을 통해 욕망을 만족시킨다는 차원이 무언지 궁금했습니다. 그것은 마지막 도달점으로서의 깨달음을 추구하며 신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수련과정 자체가 깨달음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끝없이 반복하는 그 과정 자체가 목표가 되는 것. 허남린 선생님께서는 20년 이상 빗자루를 만드는 어떤 장인의 예를 들어주셨는데요, 그 사람은 자신이 빗자루를 만든지 20년이 지난 후에서야 자신이 ‘잘 만든다’고 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신체에 빗자루를 만드는 과정을 각인시키는 것 자체가 수련이며 깨달음이라고… 너무 멋있었습니다. 따라서 욕망의 충족 과정도 그냥 하지 않습니다. 남녀의 정사에도 도가 있다고 하는데요, 그 방법들을 적어놓은 책이 어마무시하게 두껍다고 합니다. 욕망에 도가 있고, 그 도를 따르기 위해 어마무시한 수련의 과정이 있다는 것이 너무 신선했습니다.

여러모로 제가 알고 있던 막연한 종교 이미지와는 너무나 다른 일본 불교였습니다. 특히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깨달음의 과정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ㅎ 열정적이고 유익한 강의 재미있게 들려주신 허남린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다 담을 수 없지만 그 날의 열기를 사진으로 대신 전해드립니다!!ㅎㅎㅎ

  
전체 2

  • 2018-12-17 20:45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도가 있다니... 이 도를 수련하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었다니... 너무 신선하고 흥미롭네요~! 강의가 너무 유익했다는 소리를 듣고 일찍 간 걸 후회하고 있었는데..ㅎㅎ 후기로 그날의 감동을 살짝 맛보고 갑니다~~

  • 2018-12-18 11:29
    강의를 들으면서 예~전에 천주교 성지순례라는 이름으로 나가사키 일대를 돌아다녔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크리스천을 한자 발음으로 표기하다 보니 키리시딴, 길리시단 이렇게 부른 것도 신기했고, 그들이 박해를 받았다는 것도 참 천주교적이라 느껴졌었어요. 그런데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종교에 대한 국가의 태도는 역시 정치경제적인 맥락이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됐습니다. 천주교에 대한 박해는 보통 그들의 신앙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들이 이런 식의 형벌을 당했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데, 이번 강의에서는 물질적인 맥락이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아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일회성이라는 게 아쉽지만, 코가 간질간질해질 무렵 한 번 더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