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후기

카프카 세미나 9월19일 강의 후기

작성자
지현
작성일
2019-09-23 15:25
조회
190
변신한다는 것

공부를 하기 전 저에게 ‘변신’은 배트맨, 스파이더맨 같은 히어로 영화, 판타지 소설 속 인물의 ‘능력’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보기에는 재미있지만 나의 일상과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제가 공부하고 있는 『장자』의 첫 장은 물고기 ‘곤’이 새 ‘붕’으로 변신하는 에피소드로 시작됩니다. 하늘을 비상하는 커다란 새 ‘붕’은 자유에 대한 장쾌한 이미지를 선사하면서 현실의 나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합니다. 『장자』에는 ‘자유’라는 말도 여행 상품 광고 문구처럼 ‘떠나라’고 말하지도 않지만, 첫 장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를 제 멋대로 오해한 나머지 엉뚱한 열망이 생긴 것이지요.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끼리 ‘많이 달라졌다’, ‘어쩜 그렇게 하나도 변하지 않았니’라는 말을 주고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분명 시간이 지났으니 어디가 변해도 변했을 텐데, 달라진 것이 뭐 그리 새삼스러울 것이 있으며,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혹시 미숙한 채로 머물러 있다는 핀잔을 에둘러 말하는 것은 아닌지. 같은 사람을 두고 변했다는 평가와 변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공존할 수 있는지. 뭐 이런 것들이 저는 늘 헷갈렸습니다. 한마디로 저에게 변화는 외부의 평가로 확인 가능한 ‘대상’이었습니다.

저는 현재의 저에게서 떠나고 싶은 열망과 함께 기존의 저를 대면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이 밑바탕에는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깔려 있는데, 선민 선생님의 강의안에 있는 변신의 특징과는 아주 상반되는 태도입니다. 메리안의 관점을 빌어서 설명한 ‘변신’의 특징은 첫째는 다른 삶으로의 도약은 전체 자연의 변화에 감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 두 번째는 무목적성이라고 합니다. 히어로 무비 주인공들의 ‘변신’은 주변과 교감하지도 않고, 주인공이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 발휘하는 것입니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보여주는 ‘변신’은 메리안의 관점에 훨씬 부합하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아침에 눈을 떠보니 ‘갑충’으로 변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갑충으로 변신하면서 그가 가족과 맺고 있던 관계가 변하고, 세상에 대한 감각이 함께 달라집니다.

그것은 무슨 음식 냄새였다. 대접에 신선한 우유가 담겨 있었고, 그 안에는 흰 빵조각이 떠 있었다. 너무 좋아서 그는 웃을 뻔했다. 아침보다 훨씬 더 배가 고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당장에 눈 위까지 잠기도록 머리를 우유 속에 처박았다. 그러나 그는 곧 실망해서 머리를 빼냈는데, 그것은 거북스러운 왼쪽 옆구리가 아파서 먹기가 힘들었기 때문만이 아니라-그의 몸 전체가 헐떡거리면서 협조만 한다면 먹을 수는 있었다-우유가 그에게 맛이 없는 탓이기도 했다. 우유야말로 전에 그가 가장 좋아하던 음료였었고 그렇기 때문에 여동생이 그것을 들여다 놓은 게 분명했다. 그는 역겨워 대접을 외면하고 기어서 방 한가운데로 돌아왔다. 변신 단편전집, 2018, 128p~129p

왜냐하면 얼마 되지 않는 거리의 건물들마저 점점 더 분명하지 않게 보였던 까닭이었다. 예전에 너무 자주 보아서 지겨웠던 맞은편 병원이 이제는 통 볼 수가 없었다. (같은 책, 137p)

그런데 소설을 마지막까지 읽을 때쯤이면 ‘잠자’가 정말 변신한 것이 맞을까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음악을 들으면 인간일 때와 똑같이 감동 한다던가, 가족들을 관찰하면서 인간일 때와 똑같이 걱정하거나 여동생을 음악 학교에 보내려했다는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이런 상태를 ‘갑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잠자가‘갑충’으로 변신한 삶 속에서 재미를 느끼는 장면을 카프카는 아래와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심심풀이로 벽과 천장을 이리저리 기어다니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는 특히 천장에 매달려 있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마룻바닥에 누워 있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렇게 하면 보다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었고 쉽사리 몸을 흔들 수도 있었다. 그레고르는 천장에서 갖게 되는 거의 유쾌한 방심 상태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떼고 방바닥에 찰싹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가 자기 몸을 훨씬 더 잘 다룰 수가 있어서 그렇게 높은 데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았다. (같은 책, 140p)

존재는 놓여 진 공간에서 세계와 함께 계속 달라지고 있는데, 기존의 인식과 욕망들이 변신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카프카는 말하고자 한 것일까요? 감각이 달라지는 과정에서 잠자가 갑충의 유희를 발견했듯이 욕망을 충분히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어디로 훌쩍 떠나지 않고 놓여 진 공간에서 조금씩 욕망의 방향을 트는 단서들을 저는 이번 카프카 소설을 읽으면서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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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23 19:25
    덕분에 세미나 후기 재미있게 읽었어요! 카프카 해석이 너무 어려워서 끙끙댔는데 선민 선생님이 “카프카는 우리에게 ‘나의 작품을 해석할 수 있다면 이 글의 부분부분을 네 인생의 출구를 찾기 위한 하나의 조각으로 써 봐라’라는 메세지를 주는 게 아니겠니?” 하시면서 도전정신을 심어주셨어요. 매력 터지는 카프카+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