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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 則陽편 강의후기

작성자
김지현
작성일
2017-12-03 23:35
조회
163
나에게 『장자』는 언어와 도(道)같은 ‘근원적인 이야기’와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구분된다. 에피소드를 읽을 때는 공감하거나 ‘이게 뭔 소리야, 잘 안 잡히네’하며 읽고, 언어(言)와 도(道)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중요한 것 같기는 한데, 선뜻 주제로 삼아 공통과제를 쓰지는 않는다. 분량 면으로 보나 주제 면으로 보나 ‘칙양(則陽)’편의 핵심은 제 9장 ‘향촌의 말(丘里之言)’이라는 것을 알겠는데 공통과제 주제로 삼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세미나 시간에도 ‘향촌의 말’에 대해서 논의하기 보다는, 이런 주제의 어려움에 대한 하소연(?)이 주를 이루었다. 언어(言語)로 사물을 규정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태도와 근원적인 도(道)는 어렵지만, 자주 언급되었기 때문에 호기심은커녕 시큰둥하게 대하고 있다. 그러나 계속 드는 질문이 있는데,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전달할 수도 없는 도(道)를 왜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냐는 것이다.

1. 추상화하는 능력

철학의 제일 큰 특징인 ‘추상화’에 대한 설명으로 강의가 시작되었다. <규문>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지금과는 다르게, 궁극적으로는 잘 살고 싶다는마음을 갖고 공부를 시작했을 것이다. 선생님께서 존재에 대한 사유 없이는 외부에서 만든 도덕 준칙을 가지고 올 수 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제도권 교육을 통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뭐가 중요한 지에 대해서 많이 주입받으며 살아왔다. 가기만 하면 두 팔 벌려 환영할 종교단체는 또 얼마나 많은가. 종교, 교육, 책, 강의 등 우리에게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들은 많은데 나와 학인들은 이들의 도움 대신 ‘글쓰기’방법을 선택했다.

선생님께서 철학은 제약 속에서도 그 제약이 나를 구속하지 못하게 만드는 삶을 발명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ideal한 이상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례 속에서 그 원리를 추상(abstract)하는 것! 아무리 도(道)가 버거운 주제일 지라도, 그것이 구체적인 삶의 현장과 상관없다면 철학자들이 논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죽음이 삶의 끝이라면 철학자들이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삶 속에 포함된 과정으로 보았기에 죽음이 사유의 주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붓다가 ‘세상의 시작과 끝, 우리는 어디서 왔고 죽어서 어디로 가느냐’의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지 않은 이유도, 삶을 통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형이상학적 질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삶에 대해서 통찰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겪은 경험만으로 원리를 추출(extract)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을 관찰하여 도(道)의 원리를 추출한 장자학파처럼, 우리는 『장자』라는 고전의 글귀에서 삶의 원리를 추출하려고 에세이를 쓰는 것 같다. 장자학파들이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에피소드들을 취합하고 거기서 근원적인 이야기를 축출한 것이 도(道)이고, 도(道)의 작용을 이해하면 사건의 이면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토록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건의 이면을 이해하고 기존의 방식과 다른 식으로 사유할 수 있다면, 우리는 남들이 당연하게 추구하던 것들과 다른 식으로 삶에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2.   도()

칙양(則陽)편에서 도(道)를 언급하고 있는 구절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得其環中 以隨成 (고리 가운데를 얻어서 만물의 생성 변화에 그대로 맡김. 제2장)

與物 無終無始 無幾無時 (사물과 더불어 끝남도 없고 시작도 없으며 기일(期日)도 없고 때도 없이 함께 함. 제2장)

도(道)의 작용원리에 비추어 볼 때, 내가 내일 아침에도 오늘과 같은 형상으로 있다면 이만큼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사물과 함께 변화를 한 것이다. 도(道)의 추상적인 원리를 이해한다면 예의나 공동체 윤리가 아닌 방식으로 타자를 볼 수 있다. 타자의 생각이 나를 형성하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또 다시 타자를 형성한다. 타자는 나를 생성시키고 존재를 지속시키는 근거인데, 이런 방식으로 생각해볼 때 남을 괴롭게 만든다면 결코 내가 즐거울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3. 언어의 임시성

철학자들이 논쟁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공통된 특징이라고 한다. 말은 실재(實在)를 잠시 빌린 것이고 언어로 상대방의 논리를 격파할 때 느끼는 쾌감은 그저 논쟁을 통한 유희일 뿐 추구할만한 것이 아니라고 여긴 것이다.

유가(儒家)가 명(名)과 실(實)이 잘 맞아야한다고 보는 입장이라면, 장자학파들은 명(名)의 한계에 훨씬 주목하고 있는 셈이다. 장자학파들이 언어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언어가 사물을 잠시 규정하고 있다는 그 ‘임시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로 규정해서 인식을 실체화해버리면 한계가 만든 관념의세계가 힘을 가져서 유동하는 개체의 이면을 볼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4. 에세이는 보고서처럼!

형부가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내 글을 우연히 읽고 엉망으로 썼다고 화를 내셨다. 형부의 충고는 보고서처럼 쓰라는 것이다. 아는 것을 취합하고 분류해서 범주화한 다음 층위를 나누어서 그 뼈대를 가지고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형부는 회사원이며 보고서를 작성하고 결제하는 일을 항상 하다 보니, 나의 단점이 한눈에 보였던 것 같다.

제 8장은 사생활이 방자한 위나라 영공(靈公)이 시호를 얻게 된 이유를 두 가지 입장으로 정리한 에피소드이다. 첫 번째 이유는 현인을 대하는 태도가 조심스러웠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 하나로는 장자학파에서 운명을 어떻게 보고 있는 지 알 수가 없다. 선생님은 우리가 일관된 맥락을 꿰고 있어야 <잡편>의 에피소드들을 해석해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우선 주제를 정해서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장자』 전편에서 모조리 찾아서 정리 해보라는 것이다. 각 편마다 근원적인 부분과 에피소드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니, 그 미세한 차이를 또 분류하고 해석한 다음 내가 쓴 모든 문장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글을 밀고 나가서 완성해보라고 하셨다.

형부는 범주화해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보고서를 쓰지 못하면 아무리 서울대 출신이라고 해도 일을 맡길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공부, 동양 철학, 고전 이라는 말에 압도되어서 글 쓰는 것이 고차원적인 행위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어렵고, 원래 잘 안 늘고, 해도 금방 표가 안 난다는 식으로 글을 제대로 안 쓰는 것에 대해서 숨을 구멍을 미리 파놓고 있었던 것이다. 채운 선생님이 에세이 쓰는 방법을 말씀하실 때, 형부가 나에게 했던 충고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인 사례에서 도(道)의 원리를 추출하는 것과, 장자 전편의 구절에서 맥락을 추출하는 과정이 많이 닮은 것 같다. 공부가 원래 어려운 것이 아니라, 밥벌이만큼 공을 들이지 않는, 그 게으름을 넘어서기가 어려운 것 같다.
전체 4

  • 2017-12-04 07:09
    쾌속 후기 입니다. 언어? 장자를 읽으면서 나름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이번 주 통발과 올무 이야기에서 좀 더 이해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2017-12-04 09:35
    기다렸다는 듯 빠른 후기 업로드!! 믿고 있었습니다~ ㅎㅎ 보고서 같은 에세이라는 말이 콕 와닿네요~

  • 2017-12-05 14:42
    '구리지언'에 대해서는 더 많이 논의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내년에는 저도 지현님만큼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배우고 또 배우겠습니다. 늘 감사요. 축출 ->추출

    • 2017-12-05 19:35
      추출로 수정하였습니다. abstract도 누군가 수정해주셨네요.
      틀려서 죄송하고, 자세히 봐주셔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