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세미나

12.17 셈나 공지

작성자
수경
작성일
2015-12-12 13:18
조회
3656
<문학의 고고학>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드디어 마지막 챕터 <사드에 대한 강의(1970.3)>까지 읽었네요.
1장 2장이 너무 어려웠던지라 3장에서는 급 친절해진 푸코씨가 낯설 지경이었습니다.
이 책뿐 아니라 지금껏 읽어온 다른 글들에 비해 한결 문장이 간결해졌고 전하고자 하는 주제가 명확하게, 그리고 반복해서 설명됩니다.
첫째 둘째 강의로부터 5년 이상이 흘러 이뤄진 강의인데, 원고에서 확실히 시간차가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광기의 역사>나 <말과 사물> 등의 문체와도 확실히 다릅니다.
덕분에, 놀랍게도, 푸코의 책을 수월하게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

3장은 <신 쥐스틴느>를 중심으로 사드의 글쓰기, 그의 작품들이 되풀이하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신 쥐스틴느>는 읽어본 적 없지만 푸코의 글을 보고 있으려니 대~애~단히 힘겨운 책임이 분명한 듯합니다-_-
<미덕의 불운>이라는 또 다른 제목이 암시하듯, 이 책은 미덕의 무용함과 실패, 그리고 악덕의 승리와 번영에 대해 온몸을 다해 웅변하는 작품입니다.
선행은 무용하거나 더 나쁘게는 폭력과 죽음의 희생자를 낳고, 악행은 그와 반대로 원하는 것을 얻고 승승장구하지요.
하지만 여기에는 논리가 없습니다.
사드의 세계에서 미덕이 벌을 받는 이유는 비합리적이어서가 아니고, 존재하는 다른 합리성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악덕이 합리성을 이유로 승리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푸코는 사드가 한 이 말을 의심하지요.
"내가 말을 건네는 대상은 여러분의 감수성도 마음도 아닌, 여러분의 이성, 오직 이성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하나의 근본적인 진리, 악덕이 늘 보상을 받고 미덕을 늘 벌을 받는다는 진리를 증명하고 싶어요."

사드는 왜 썼는가?
감방 안에서 걸레짝이 되어버린 몸을 웅크린 채 그가 종이쪼가리에 매달려 글 쓰는 모습을 그려보고 있노라면 점점 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때 그가 깨알 같은 글씨로 써내려간 글은 항문성교, 자위, 고문, 살인 외에 없지요.
악덕을 거부한 자는 죽고, 악덕을 행하는 자는 거리낌없이 자기 논리를 펼칩니다.(물론 이게 악덕의 승리를 보장하는 건 아니고요)
자,  왜 쓴 걸까요? 혹은, 무엇을 쓴 걸까요? 더 정확히는 쓴다는 행위 자체가 무엇이었을까요?

푸코는 사드의 글이 극단과 과잉을 핵으로 한다는 점, 존재가 아니라 비존재로 이행시킨다는 점을 설득하기 위해 많은 페이지를 할애합니다.
다음 주에 확인하게 되겠지만 사드의 글은 리얼한 섹스와 폭력 묘사와 거리가 멉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난교와 살인은 독자를 흥분과 쾌락 상태로 몰고 가는 게 아니라(하지만 사드의 인물들은 쾌락 속에서 미친 듯이 질주합니다) 경악하게 하고 이윽고 냉정해지도록 합니다.
그건 아주 기묘한 경험이죠. 폭력과 살인과 기기묘묘한 성교 앞에서 읽는 이가 점점 냉정해진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이에 대한 푸코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글쓰기라는 사실로부터 산출되는 이 모든 무제한성의 결과로서, 욕망은 자신 안에 자신의 고유한 진실, 고유한 되풀이, 고유한 무한성, 고유한 검증의 심급을 모두 소유하는 하나의 절대적 주권자가 될 것입니다."
글쓰기, 사드의 글쓰기를 통해 이제 욕망은 더이상 진리(라고 상정된 외부)에 의해 재단되고 평가되는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거꾸로 욕망 자체가 이제 진리가 되어버리지요.
이를 두고 이렇게도 표현하더군요.
"사드는 진리의 욕망하는 기능을 복원하고자 했습니다. 사드는 욕망의 진리 기능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드에 대해, 라기보단 어쩌면 글쓰기 자체에 대한 인상적이고 감동적이기까지 한 구절이 있으니 통째로 옮겨볼게요.
"사드의 글쓰기는 외적인 진실을 통한 타인의 설득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사드의 글쓰기는 실제로는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는 글쓰기입니다. 사드의 글쓰기가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는 글쓰기인 까닭은 그것이 사드가 자신의 머릿속에 품고 있을  수도 있는 진실, 혹은 사드가 인정하는 진실, 독자와 마찬가지로 저자 자신도 설득되고 마는 진실을 통하여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의도를 조금도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드의 글쓰기는 어떤 의미에서든 아무도 이해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아무도 설득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절대적으로 고독한 글쓰기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드에게는 이러한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그 이유는 사드에게는 이 모든 환상이 글쓰기를 통해서, 글쓰기가 물질성을 부여받고, 글쓰기가 견고함을 부여받는 글쓰기 행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쥘리에트에 관한 텍스트에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읽고 교정하고 다시 취할 수 있고, 또 이러한 과정을 무한히 되풀이할 수 있는 것은 이 글쓰기, 이 물질적 글쓰기, 한 장의 종이 위에 배치된 기호들로 이루어진 이 글쓰기 덕분입니다. 그리고 욕망을 모든 외부, 시간, 상상력의 한계, 방어막, 허가가 완벽히 그리고 결정적으로 철폐된 하나의 공간, 어떤  한계도 없는 하나의 공간 안에 위치시키는 것이 바로 이 글쓰기입니다. 글쓰기는, 따라서, 극히 단순히 말하자면, 어떤 한계도 없는 지점에 결국 도달하고야 만 욕망입니다. 글쓰기는 진실이 되어버린 욕망, 욕망의 형식을 지닌 진실입니다. 글쓰기는 되풀이되는 욕망, 한정이 없는 욕망, 어떤 [금지의]법도 갖지 않는 욕망, 어떤 억제도 모르는 욕망, 외부가 없는 욕망이라는 형식을 갖는 진실입니다. 글쓰기는 욕망과 관련된 외부성의 철폐입니다. 그리고, 의심의 여지없이, 이것이 사드의 작품에서 보이는 글쓰기가 실제로 성취한 바이자, 사드가 글을 쓰는이유입니다."(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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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는 <소돔 120일> 읽습니다. 혜원, 소현쌤, 수경 공통과제.
간식은 은하쌤^^

제본책 안 받아가신 분들 어여 세미나 전에 오셔서 받아가시고요.

그리고 담주는 세미나 끝나고 함께 파졸리니의 소돔 보기로 했습니다. 어디 한 번 우리도 극한까지 가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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