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세미나

세미나 끄읏 & 담주 에세이 공지

작성자
수경
작성일
2015-12-19 14:15
조회
600
다음 주 에세이(24일, 홀리한 마음으로 서로의 에세이를 살펴줍니댜~)만 남겨두고 이번 시즌 셈나 무사히 마쳤습니다.
세미나 치고는 꽤 많은 인원이 모여 기대반 걱정반으로 시작했는데, 몇 분의 동지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인사말과 함께 사라지고 남은 일곱 사람이 어제 <소돔 120일> 읽기까지 마치고서 한낮의 햇살 아래서 밥과 소주를 즐기고, 그 뒤에 다시 모여 파졸리니의 영화 <살로 소돔>까지 보고 헤어졌습니다.  (이 얼마나 보람찬 반나절이란 말인가~ >0<)
알바 때문에 참석 못한 혜원이는 다음 주는 멋진 에세이 들고 나타나주길 ^^

은하쌤이 준비해주신 멋진 간식과 함께 시작한 세미나에서 모두 입을 모아 한 이야기 - 이 책은 야한 책이 아니더라, 폭력과 가학적 성행위로 넘쳐나는데도 책 자체는 엄청 건조하다...
네, 정말 그렇네요.
무시무시한 성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 벌어진 온갖 사건들은 마치 일람표처럼 나열될 뿐, 등장인물의 흥분이나 동요, 고통이 전해지는 대목이 없군요.
그래서 소현쌤은 이런 인상적인 감상평을 전했습니다.
“뭔가를 먹으면서 이 책을 읽는 나를 발견하고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잖아요. 사드를 읽으면서 이래도 되나? (웃음)
그런데 생각해보니 사드가 고문과 살인을 묘사하기 위해 이 책을 썼을 것 같지가 않은 거예요.
이 책을 읽는 건 뭔가 깨지고 생각하게 되는 경험이지 야하거나 폭력적이거나 더러운 걸 느끼는 데 있는 것 같지 않아요.”
미영쌤도 비슷한 생각을 하셨다고.
알바 때문에 오지 못했지만 과제를 올려준 혜원이는 글에서 이 책이 백과사전처럼 기계적 나열로 이루어져 있고 건조하다는 점에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는 1부 이후 점점 더 간략해지다가 나중에는 숫자를 매긴 사례 보고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지요.
이에 대해 혜원이는
“악덕을 행하는 네 친구의 편은 다름 아닌 자연이다. 그 지속적이고 기계적인, 그리고 점점 심화되는 악덕은 자연의 모습과 다름 아니다. 인간이 미덕이라고 여기는 것. 종교나 동정심, 은혜 따위는 분노를 부르고 쾌락을 억누를 따름이다. 자연은 쾌락의 편이다. 이것은 네 친구들이 유별난 것도 아니고 그들이 자연을 거스르는 혼돈이기 때문도 아니다. 사드는 그런 자연을 일관되게, 체계적으로 그 악덕이 이루어짐을 마치 백과사전처럼 보여준다. 나름 소돔 120일을 정의해보자면 사드가 쓴 <악덕경> 같은 거 아닐까? 나선형으로 갈마드는 악덕의 행진에 나는 마치 빨려들듯이, 그러나 그 반복에 지루함을 느끼며 책장을 넘겼다. 일일이 전율하며 감동하고 혐오하고 혹은 공감하기에 자연은 그런 것에 관심도 없다는 듯 그 다음, 그 다음 악덕을 계속해서 생성할 뿐이기 때문이다.”
라고 인상적인 해석을 붙여주었어요.

저로선 그가 혁명의 성공과 실패 그 모두를 감옥 안에서 지켜보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때 쓴 글이 다종다양한 방법으로 사람의 신체를 훼손하고 없애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연결해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성행위를 통해서건 고문과 살인을 통해서건 그 4개월 동안 고립된 성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우리가 인간이라 부르는 존재를 눈알과 두개골과 성기와 내장 등등으로 낱낱이 해체해버리는 것이었죠.
혁명 세력이 인간에 대한 믿음과 찬가를 부르며 바스티유를 함락하고 루이家를 단두대에 보내버리는 동안 사드는 차라리 인간을 해체해보기로 결심했던 거 아닐까요.
인간이 믿는 인간 - 신 / (어머니로서의)자연 / 법 / 양심 등등을 소거한 뒤 어떤 형상이 남을 것인가?
그래서 사드의 작품 안에서는 지하고문실에서 물리적으로 해체되는 인간들뿐 아니라 해체의 주체들 역시 비인간의 모습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낯선 손님의 실루엣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인간을 믿는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에게 사드가 감옥에서 보낸 편지의 전말이지요.
혁명세력도 왕당파도 로베스피에르 그룹도 하나같이 그를 미워하고 혐오한 건 이 때문일 겁니다.
그는 혁명파보다 더 위험하고 불온한 존재니까요.

가장 마지막에 읽은 사드가 너무 강렬한 탓에, 대부분의 학인들이 다음 주 에세이에서 <소돔>으로 에세이를 쓰시겠다 마음 먹고 오셨네요.
하지만 얼추 조정이 되어 아마 <소돔> 두 분, <율리시즈> 두 분, 그리고 <돈키호테>와 <리어 왕>을 한두 분 정도 다루실 것 같습니다.  (불쌍한 라모의 조카 ㅜ)
다들 한 학기동안 공부하시면서 가장 충격적이고 가장 오래 잔상이 남는 작품에 대해 다시 한 번 골똘히 읽고 생각하는 한 주 보내시길요.
다음 주 10시 반, 각자 준비한 에세이와 간식거리 들고 모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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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19 15:02
    오~ 드뎌 문학셈나가 끝났군요! 원래 마지막에 읽은 걸 가지고 글을 쓰겠다고들 하시지요. 딱히 뒤에 읽은 게 좋아서라기보단, 앞에 읽은 걸 다 까먹었기 때문에..ㅋㅋ 절탁에서 푸코를 공부하신 분이라면, <라모의 조카>도 한분쯤 상대해주시면 좋을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