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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 동사서독 공지 (자료 숙제방에 있습니다~)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10-22 19:48
조회
138
171028 동사서독 공지

1. <장자>의 공자

[산목]을 읽으면서 조별토론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었던 것은 이 <장자> 전반에 나오는 공자는 과연 어느 집(?) 공자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장자>에 등장하는 공자는 어느 때는 장자의 아바타 같기도 하고 장자에게 한수 배우는 사람 같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장자의 외부를 환기시키는 역할로 등장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공자와 장자 둘 다 사실 비슷한 이상을 원한 사람들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아니 그래도 공자님을 데려다 이래도 되는가...싶기도 하고...=_=
그런데 유(儒)-묵(墨)-도(道)의 세계관은 정말 다를까요? 좀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유가는 확실히 정해진 예악, 제도를 상정하는 것 같고, 묵가도 반전, 겸애 같은 슬로건이 있습니다. 도가 역시 자연, 무위 같은 떠오르는 이미지가 따로 있지요. 하지만 고대에는 지금처럼 유가-도가가 확실하게 구분되고 그러진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는 구분은 성리학자들이 확실하게 그어놓은 분할선을 따르는 것이라고요. 성리학자들은 무(無)나 허(虛) 같은 글자를 쓰면 주석에 바로 “노장에 물들었다” 라든가 하면서 더 구분을 분명히 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장자와 유가를 구분하는 기준은 분명히 있어 보입니다. 바로 문명이라는 범주입니다. 문명은 유가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죠.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 장자의 아바타처럼 <장자>에 빈번하게 나오는 공자이지만 결국 공자는 주공(周公)을 따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지요.
장자는 문(文)이나 예악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대한 역사인식이 빈약한 철학이라고 할 수 있지요. 왜냐하면 장자가 주목하는 것은 자연, 본성이기 때문이죠. 삶의 가치기준을 과거, 역사로부터 가져오지 않는 철학이 바로 장자입니다.
공자의 경우 주공으로 대표되는 전통에 대한 존중이 있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공자는 문명 자체를 절대화 하지 않았습니다. 예(禮)가 제아무리 엄격하다고 하더라도 그 시대에 맞게 변형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였고요. 이런 점에서 장자와 엄격하게 구분된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장자>의 공자가 특이한 점은 그래도 공자가 도가 사람들에게 한 수 배운다는 점 같습니다. 이번 [산목] 편에서는 정도가 심해져서 학문을 놓고 갈옷을 입고 지내게 되었다 하지요. 아니 우리의 ‘패피’ 공자님이... ㅇㅁㅇ 하지만 비판불가 반박불가 공자‘님’인 것은 어디까지나 유가의 영역에서 그런 것이고, 장자학파는 공자가 이렇게 소박하게 살게 되는 것이 맞다 여긴 것 같습니다.

2. 위(爲)의 수동성

우리는 노자와 장자를 읽으면서 여러 번 무위(無爲)에 대해 읽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째 무위를 말하자고 하니 또 뭘 안하는 것 같고...뭔가 정태적인 모습으로 생각되지요. 공부를 하고 많이 들어도 그대로 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해도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는 것 같습니다=_= 채운쌤은 공부를 했는데도 그런 것은 그것이 정말 좋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정말 ‘좋은 것’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스피노자는 이해가 내 정서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지요. 좋은 것을 이해하는 노력을 그렇지 않은 것에 드는 노력보다 더 많이 해야 한다고요. (우리는 행복하지 못해서 불행한 게 아니라 불행하기 위해 노력하기에 그렇다고 합니다.)
무위라는 것은 이 ‘좋은 것은 따로 있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것입니다. 스피노자는 신이 자연법칙에 따라 자신의 역량을 모두 펼친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신은 의도가 없습니다. 즉 ‘나중을 위해 힘의 30%만 쓴다’는 의도가 없지요. 온전히 자신의 역량을 조건 속에서 남김없이 표현하는 것입니다.
반면 함(爲)을 생각해 보면, 거기에는 의도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지식, 욕망을 투영하여 뭔가를 합니다. 목적, 계획에 따라 내 행위를 구성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말은 다시 보면 목적이나 계획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하고 수동적인 모습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고보면 왜 그렇게 뭔가를 하기도 전에 열심히 계획을 세우는 걸까요? 심지어 학교 다닐 때는 그런 것이 권장되기도 했고요. 그래서 지키지도 못할 생활계획표를 참 많이도 그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모두 주어진 가치가 없으면 행동하지 못하도록 우리 행위를 규정하고 다듬어가는 것 같습니다. 문명이, 제도가 딱 이런 역할을 하지요. 우리로 하여금 이미 정해진, 편한 길로 계속해서 흘러가도록 하고요. 이런 경우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는 능동성을 발휘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거기서 이탈하고 남들이 다 가는 길에서 멈춰야 하고 또 방황해야 하니까요. <장자>의 핵심 개념이 유(遊)인 것도 그런 이유겠지요.
이반 일리치는 <학교 없는 사회>에서 ‘먼저 보는 자’ 프로메테우스가 아닌 ‘나중에 아는 자’ 에피메테우스에게 주목했습니다. 형이 경고했는데 판도라와 결혼해 버린 그 못난 동생이요^^ 일리치는 판도라가 열어젖힌 항아리에서 나온 온갖 재앙들이야말로 사실 우리가 신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프로메테우스는 결국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신세가 되었지요. 그는 계속 미래를 내다보느라 지금 자신이 누리는 것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자인지도 모릅니다. 반면 에피메테우스는 미래를 알지 못하고,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일 뿐이죠. 일리치는 나약한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고 할 수 있는 것은 오늘 소박한 저녁식사를 함께 차리는 것 뿐이라고 했답니다. 이것도 결국 조건 속에서 뭔가를 함께 만드는 것이네요. 이것이 무위(無爲)가 아닌 것 같다면 무위(無爲)가 계획과 목적으로 점철된 유위보다 더 위대한 무엇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요?

후기는 완수쌤.
다음 시간은 채운쌤이 안 계신 관계로 은남쌤 주도로(!) 세미나를 진행합니다.
<장자와 문명> 읽어오시고요. (자료 숙제방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온 [외편] 정리할 예정이니 <장자 3> 가지고 오세요^^ 그 다음 시간에 시험 봅니다~
발제는 은남쌤.
간식은 각자 조금씩.
정상적으로 동사서독 진행하는 거니까 빠지시면 안 됩니다^^ 벌금이에요 ㅇ0ㅇ9
전체 2

  • 2017-10-23 11:39
    예전엔 봄만 되면 한 며칠씩 빌빌대더니, 최근 몇년 동안 가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네요. 심신에 무슨 큰 변화가 닥쳐오고 있는 건지~~ㅠ
    학인분들께 죄송하단 말씀을 ~~~~~~! 그나저나 저로선 채운샘 2주연속 못뵙게 되는 거네요. 아쉽지만, 그간 밀린 복습도 하고, 에세이 근심도 하면서 더 실속있는 시간 보내면 좋겠슴다 ㅎ~~.

  • 2017-10-23 15:31
    장자의 철학이 들어오지 않는 건 그의 얘기보다 '그래도' 다른 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그건 그동안 굳어진 습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아둥바둥인 것 같습니다.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와 결혼하고 그 불행을 당한 뒤에 생각이라도 하지, 전 곤궁해진 뒤에도 그게 곤궁인지도 모르고, 고쳐야겠다는 생각도 못하네요. 곤이불학 ㅎ..... 뼈가 좀 저린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