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F절차탁마 6월 6일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8-06-04 16:39
조회
100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얼른 공지부터 하겠습니다. 이번 주 공통과제는 2부를 읽으며 니체의 예술과 인식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니체에게 예술이란 무엇인지 정리하고, 예술이 인식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쓰시면 됩니다. 간식은 저와 건화형~

푸코 이후로 머리가 덜 아플 거라고 생각했건만, 니체도 머리가 너무 아파요! 도저히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ㅋㅋㅋ.... 관념을 전복시키는 게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ㅠㅜ 하지만 세미나를 하고 채운쌤 강의를 듣다 보니 니체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약간의 느낌은 알겠습니다. 앞으로의 내용도 궁금하기도 하고요. 다시 읽을 때는 마냥 머리가 아프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사실 이번 시간 채운쌤의 의도는 1. 푸코가 자신의 철학적 작업으로서 비판이 무엇인지 정리하고, 2. 니체에게 철학이 무엇이었는지를 나름대로 해석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의도를 읽지 못한 관계로 채운쌤이 수업 시간에 정리해주셨습니다. 하하하;; 후기는 푸코와 니체의 철학의 공통점을 위주로 쓰고 그 다음에 《즐거운 학문》을 정리하겠습니다.

푸코는 자신을 ‘비판가’라고 소개합니다. 자신의 작업을 굳이 철학이 아닌 ‘비판’으로 소개한 것은 이전의 철학자들과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서입니다. 플라톤 이후 서양철학은 제 1원리(모든 것의 근본이 되는 진리)를 두고 전개됐습니다.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본(本)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플라톤뿐만 아니라 많은 철학자들이 진리를 인식하기 위해 정신의 오류를 점검하는 것이 철학에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니체는 이성의 합리성 그 자체에 대해 의심합니다. 이성은 원래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환경 속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따라서 니체는 그동안 질문되지 않았던 노동과 축제와 휴일의 영향, 음식이 끼치는 도덕적 영향 등등을 연구함으로써 인간의 “실존의 조건”을 고찰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푸코 또한 진리를 획득하기 위해 철학을 전개하지 않습니다. 푸코에게 진리(지식, savoir)란 인식 효과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는 항상 어떤 권력과 관계를 맺고, 주체는 진리-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탄생합니다. 《광기의 역사》에서 푸코는 매 시대마다 다르게 출현하는 광인을 보여줌으로써 지식과 권력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합니다. 가령, 17세기 이전의 광인은 ‘보통 사람들이 듣고, 보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cf. 《바보배》, 제바스티안 브란트) 이들은 사회 구성원의 일부로서 공동체의 속에서 보통 사람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 광인은 ‘이성이 결여된 사람’이었고, 공동체로부터 추방되어 정신병원이나 감옥에 격리되었습니다. 푸코는 광인의 역사적 변천을 보여줌으로써 언어(대상에 대한 규정) 이전에 의미를 갖고 있는 대상(원본)은 존재하지 않다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어떤 대상에 대한 규정(지식)은 권력의 작동을 동반하죠. (푸코는 《비판이란 무엇인가》에서 “지식-권력의 결합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다시 말해, 대상은 오직 그 시대에 작동하는 권력과 관계 맺음으로써 출현하고, 권력은 대상을 출현시킴으로써 특정 지식을 재생산합니다.

권력은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고, 주체가 진리-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탄생합니다. 푸코는 저항의 지점으로 권력의 탈취가 아닌 ‘비틀기’를 말합니다. 비틀기는 권력에 대한 전면적 거부가 아닙니다. 복종은 어떤 주체에 대한 맹세가 아니라 진리와 권력을 내면화할 때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내가 어떤 방식으로 진리와 권력을 내면화하고 있는가를 문제 삼아야 합니다. 푸코는 “그것이 진실하다고 받아들이는 이유들이 자기에게 타당하다고 간주될 때”(47쪽, 《비판이란 무엇인가》)는 받아들여야한다고 얘기했습니다. 다시 말해 주체가 진리-권력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살핌으로써 진리의 가치를 의심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죠.

푸코의 ‘비틀기’는 니체의 희극 정신과 비슷합니다. 니체의 희극 정신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패러디(parodia)입니다. 패러디는 ‘반대되다’라는 뜻의 para와 ‘노래’라는 뜻의 odia가 합쳐진 글자로, ‘방향성을 분화시키다’라는 뜻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견유학파 철학자인 디오게네스는 사람이 어떤 것을 알고 그 앎을 바탕으로 실천하는 게 아니라 이미 실천에 우리의 앎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니체는 디오게네스의 행위와 앎의 관계를 전복시켰듯이 니체에게 패러디란 사람들의 관념을 전복시키는 것입니다. 《즐거운 학문》 1부 곳곳에서 니체는 사회에서 좋다고 여겨지는 여러 관념들을 뒤집습니다. 예를 들어, 1부의 ‘사심 없기를 가르치는 설교자들에게.’는 ‘근면’이라는 덕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근면한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일을 합니다. 그리고 근면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사람들이 애석해하는 이유는 청년 개인의 죽음이 아닌 사회에 헌신하는 도구를 잃어버렸다고 얘기합니다. 물론 근면에 대한 니체의 얘기는 그 자체로 진리는 아닙니다. 요점은 니체의 목표가 사람들이 있는 근면에 대한 관념을 스스로 뒤집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관념이 전복되는 순간 우리가 믿어왔던 가치의 무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그때 유발되는 것을 니체는 ‘웃음’이라고 얘기합니다. 채운쌤은 푸코가 철학의 이미지를 비판과 연결시킨 것처럼, 니체는 철학의 이미지를 웃음과 연결시켰다고 얘기하셨습니다.

《즐거운 학문》은 총 4부로 구성되어있는데, 채운쌤은 니체가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매 부마다 다른 톤으로 변주한다고 얘기하셨습니다. 지금쯤 다들 읽으셨겠지만 ㅎㅎ;; 연결되는 것 같으면서도 아예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부의 주제를 크게 3가지로 나누면, 1) 철학의 이미지로서의 웃음 2) 인식과 의식의 허구성 3) 고귀함과 비속함입니다. 1)은 니체의 패러디,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주제로 삶의 유의미함과 이성우월주의를 뒤집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절에서 니체는 이성이 충동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충동의 한 가지 형태로 이성이 있다고 얘기합니다. 니체에 따르면 삶은 원래 무의미합니다. 하지만 ‘해야 한다’라는 당위와 ‘그러므로’라는 근거가 외삽됨으로써 목적이 생기고 충동은 망각됩니다. 2)는 인간에게 주어진 의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니체의 계보학적 작업을 볼 수 있습니다. 3)은 행위양식에 대한 질문으로서 푸코 식으로 말하면 주체가 맺고 있는 지식-권력에 대한 문제 제기입니다. 3절에서 니체는 고귀함의 특징으로 ‘정열’을 얘기합니다. 이때의 정열이란 passion처럼 혼을 불태우는 상태가 아니라 힘이나 고통을 감당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채운쌤은 중요한 것은 힘과 고통의 양 그 자체가 아니라 힘에 대한 느낌이라고 하셨습니다.

채운쌤은 1부를 다시 읽으며 이 3가지 주제로 정리하라고 하셨는데, 1부뿐만 아니라 2, 3, 4부를 이렇게 정리하며 읽어야겠죠. 크윽... 다시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지난 시간보다는 더 재밌는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럼 수요일에 뵈요!
전체 1

  • 2018-06-05 13:53
    인식의 지평에서 행위를 판단하지 않는 자는 웃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