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세미나

1015 셈나 공지

작성자
수경
작성일
2015-10-09 14:41
조회
531
추석 지난지 얼마 안 됐는데 또 찾아온 황금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전 연휴고 뭐고 없고 걍 하던 일 하는 중입니다만^^;
긴 방학 끝이라 그런지, 아니면 연휴가 시작되는 때라 그런지 결석자가 좀 있었습니다. 돈키호테 1권을 이미 읽은 시점이라 그런가 싶기도... 끙.
암튼 지난 시간보다는 조촐하게 세미나를 진행했는데요, 그럼에도 우리끼리는 뭐 재미지게 이야기했다능!

이번에 읽은 2권에서 모두가 주목했던 것 몇 가지를 정리해둘게요.
일단 문정이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제기한 문제. 아니 돈키호테는 어째서  그렇게 신나게 모험을 해놓고는 죽기 직전에 그게 다 허송세월을 보낸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모든 기사도 문학을 부정한단 말인가!
은하쌤 의견은 "죽기 전에 한 말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게 아니고, 가장 올바른 생각도 아니"라는 것. 돈키호테라는 이름으로 그가 들판을 질주하고 싸운 것, 그것은 그에게 진짜 삶이었고, 그거면 됐다는 것.
현옥쌤은 (스피노자적 개념으로)자기원인이 끝장났을 때 인간은 죽는다고 하신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몇몇 분들이 입을 모아 한 해석은 돈키호테는 들판을 질주하던 시절이 제정신이었고, 실은 침상에서 자신을 부정하는 게 진정 정신나간 것이었을지 모른다는 것.
저도 비슷했는데요, 돈키호테를 부정하는 남자는 이미 돈키호테가 아니기 때문에 그를 부정할 수 있었다는 것, 그러니까 자신을 부정하는 자는 돈키호테가 아니며, 푸코의 말대로 둘(광기와 이성)은 더 이상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것, 돈키호테의 삶은 모험의 중단과 함께 끝났고, 침상에서 그때를 부정하는 자는 이웃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듣는 키하노 영감이라는것.

또 하나의 인상적인 것은 1권에 비해 재미없다!는 성토였습니다 ^^; 역시 속편은 1편을 따라잡을 수 없는 걸까요 >.<
패턴이 1권과 동일해서일 수도 있고, 돈키호테가 덜 돈키호테적이어서(즉 모험의 상황을 전만큼 주도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겠는데요.
혜원이는 이렇게 인상적인 말을 했습니다. "1권이 훨씬 나와 가깝다. 나는 그때 산초 옆자리(웃음) 정도에 있었다. 그런데 2권에서는 그 안에 내가 있을 데가 없었다. 작가를 믿고 가야 하는지, 아니면 돈키호테인지, 아니면 책 속의 돈키호테 독자들인지..."
모두 비슷한 의견이었던 것이, 내용면에서는 전작보다 재미가 떨어지는데 구조는 오히려 흥미롭고, 할 이야기도 보다 풍부한 것 같다는 것이었죠.
네, 그 말 그대로 구조 면에서 아주 흥미로운 텍스트였습니다. 1권에서 돈키호테가 한 모험이 그대로 책으로 나와 시중을 돌아다니고(즉 21세기의 우리가 읽고 있는 1권은 당시 돈키호테의 모험을 정리한 역사서일 수 있다는!),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돈키호테를 알고 그의 모험에 적극 동참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그때 돈키호테와 싼초의 상반된 반응이 재미있었습니다. 돈키호테는 오리지널한 1권을 아류작과 거짓소문들로부터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반면, 싼초는 '난 그런 거 걍 무시할란다, 지금 하고픈 거나 할란다'고 일관하죠. 저는 그게 2권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의 무게중심을 싼초 쪽으로 이동시키는 데 일조한 것 같습니다.
오리지널을 지키려 하는 돈키호테에게서 어떤 수동성과 무거움이 느껴지고, (돈키호테의 진실을 잠깐의 여흥으로 즐기고자 하는 주변인들이)벌여놓은 판에서 장기말이 될 수밖에 없었던(같은 목적 하에 동일한 패턴으로 운동) 이유를 본 듯합니다.
반대로 싼초는 총독 자리에 올라서는 지혜로운 총독이 되고,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거리낌없이 친구가 되고요.

<말과 사물>에서 푸코는 '돈키호테'라는 제목의 짧은 장에서 이렇게 정리하더군요.
1권은 유비를 좇아다니는(그러나 늘 미끄러지고 마는) 기사의 이야기, 왜냐하면 더이상 고전주의 시대가 아니니까. 돈키호테가 거인이라고 생각하고 달려든 것은 서사시 바깥에 만들어진 마을에서 돌아가는 풍차일 뿐이니까.
2권은 이 모험이 책이 된 다음의 이야기. 돈키호테는 이제 "이 책을 오류, 위작, 의심스러운 속편으로부터 보호하고, 빠져 있는 세부 사항을 첨가해야 하며, 이 책의 진실을 유지"하고자 한다고. 기호 자체의 문제가 대두된다는 면에서 <돈키호테>는 최초의 근대소설이 분명하다고.

한편 현옥쌤은 1권에 이어 2권에서도 돈키호테의 용기와 일종의 고행에 가까운 일련의 행위들에 집중하셨네요. 실제로 돈키호테는 어떤 상황들 앞에서는 놀랄 만한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하니까요. 사람들이 미치광이라고 부르는 데에서 우리는 돈키호테만이 지닌 투철한 현실성을 볼 수도 있으리라는 게 현옥쌤 독해.

자,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돈키호테> 읽기를 마쳤습니다.
이제 다음 시간에는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 미리 읽고 계신 혜연쌤은 꽤 어렵다고 겁을 주셨습니다만... 세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를 통과한 우리인만큼 이것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 ㅎㅎ

다음 주 <라모의 조카> 모두 재미나게 읽어오시고요. 공통과제는 혜연쌤, 혜원이, 또깡쌤. 간식은 미영쌤+소현쌤 준비해주세요.
절탁 에세이 발표 다음날 아침인만큼.... 몇몇 분들은 연구실에서 걍 밤샘을 하셔야 할 수도... 초췌한 얼굴로, 그러나 목소리만큼은 씩씩하게 만나요 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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