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세미나

1029 셈나 공지

작성자
수경
작성일
2015-10-23 22:11
조회
550
내심 걱정했던 <문학의 고고학> 두번째 챕터 "문학과 언어" 시간에는 놀랄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함께 모여 푸코가 주목하는 문학/언어란 무엇인가, 우리는 문학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요즘 유행하는 서평과 푸코가 말하는 비평은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가 등등에 대해 이야기했죠.
참고 삼아 함께 본 말라르메에 대한 자료(스티븐 컨,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블랑쇼과 말라르메가 사유하는 언어(울리히 하세, 침묵에 다가가기)에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죠.
푸코의 문장을 보다 간결한 글들을 보니 혼자 끙끙 싸매고 있던 지점이 확 풀리는 것도 같고 ㅋㅋ

일단 푸코는 문학이란 곧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작업, 그 자체라고 여기는 듯합니다.
만약 우리가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아직 문학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면 바로 이 때문일 텐데, 왜냐하면 그때 그것은 언어(그리스어)에 대한/향한 질문으로서의 글쓰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말과 사물>에서 푸코는, 언어가 대상을 재현하는 투명한 유리창, 재현의 기능을 수행하자마자 사라지고 마는 존재였던 시대를 지나(르네상스 시기) 근대(문학)의 언어는 언어 그 자체의 현존을 드러낸다고 했었죠.
'책상'이라는 단어는 정말 이 책상을 말하는가? 몇 개의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져 이윽고 책상, 이라고 발음되는 이 단어가 내 앞에 있는 이 책상과 어떤 연관을 갖나?
(근대적 의미로서의)문학적 행위란 '책상'이라는 단어를 우리가 쓰자마자 눈앞의 고유한 책상을 사라지게 하면서 동시에 관념으로서 남은 책상을 존재케 하는 것을 의식하면서 쓰는 행위랍니다.

뭘 이케 어렵게 생각한다냐, 싶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언어의 재현력을 매순간 의심하면서 언어/사유의 한계를 매번 절감하면서도 그것을 언어를 통해 기어이 넘어가려는 시도, 그것이 언어를 가장 정확하게 사용하려는 노력이 되겠죠.
매순간 사유의 불가능성을 절감하면서 사유하기, 진실로 문학을 한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느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진정한 책을 만들기 위해 거의 알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 것을 써낸 말라르메가 이를 잘 보여주죠. 다음 시간에는 그의 시를 몇 편 가져가볼게요 ^^

세미나 후반부에는 유독 우리들 각자의 글쓰기와 책 읽기에 대한 고민이 많이 나왔죠.
푸코의 말이 곧 해석 불가, 해석하지 말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닐 텐데, 그럼 어케 읽어야 하지?
언어가 늘 이런 한계에 부딪히는 것이라면 우리는 늘 모호하게 쓸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왜 에세이 발표에서는 좀 정확하게 쓰라고 말하지? 등등 ㅋㅋㅋ
일단 중요한 건 푸코, 블랑쇼, 그리고 그들이 사랑한 베케트, 말라르메, 카프카 등의 작가들이 확신이 없고 뭘 몰라서 글을 그렇게 쓴 건 아니라는 거죠 ^^;
푸코와 블랑쇼는 언어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고민한 철학자들이고, 언어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바로 그 글쓰기를 통해 그야말로 '그려'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언어가 쓰여지고 다시 흐려지고, 나아가고 이내 부딪히고, 책장의 앞면을 비추고 이내 그 뒷면의 먹지를 들춰보고.
그래서 그 글들이 우리에게 낯설고, 멀미나고, 조급증을 일게 하죠.
"그래서 요점이 뭐냐?!"라고 묻고 싶어지는 마음.
우리는 모두 앗쌀하게 정리된 줄거리를 원하고, 간명한 테마와 주제에 환호하니까요.
모든 문학작품을 읽을 때도 그렇죠.
시간 순서에 따라 이어지는 서사에 주목하고 눈앞에 펼쳐진 사건과 인물이 마치 현실의 그것인 양 품평하는 데 그치기 일쑤입니다.
이 사람은 이러저러한 성격이야, 이 일은 이래서 멋져 혹은 나빠 혹은 이해하기 어려워...
그런데 푸코가 말하는 '비평적 읽기'란 이와 전혀 다른 작업이었죠. 진정한 의미의 비평이란 언어의 공간화에 대한 형식을 탐구하는 것이라네요.
이를 우리들 고민에 가져와보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일단 언어에 대한 고민 없이는, 그러니까 내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들, 내게 익숙한 표상들을 점검하는 작업이 없이는 그 어떤 책도 새롭게 읽을 수 없고, 그 어떤 글도 정확하게 쓸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푸코가 주목하는 일군의 작가들은 언어를 의심하고 포기한 사람들이 아니라, 계속 시도하고 또 한 사람들이잖아요.
모든 언어는 살해한다, 는 명제는 그들로 하여금 언어를 버리게 하거나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마구잡이로 언어를 흩뿌리게 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한 단어 한 단어 하나의 여백과 구두점 앞에서 머뭇거리고 고심하게 했겠죠.
그 정도의 훈련이 없이 언어에 대한 민감성이 길러질 수 없지 않겠느냐... 이런 반성 모드 + 그러니 우리 이제부터 화이팅~ 대략 이런 분위기로 세미나를 끝낸 듯합니다 ^^

자 아무튼, 당장 다음 주 <오뒷세이아> 읽기와 공통과제에서부터 훈련을 시작해봅시다.
나의 표상과 습관적 언어를 버리기 위한 연습, 혹은 가장 문학적으로 문학을 공부하기!
공통과제는 미영쌤, 연실쌤, 현옥쌤.
간식은 혜원+수경입니다.
다음 주에도 재미나게 떠들어봐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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