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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전 시즌2 역사강의 1강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7-11-03 17:43
조회
81
수중전 시즌2 시작했습니다! 다른 걸 얘기하기 전에, 일단 재밌습니다! 그리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이건 저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자식을 위해 죽는 걸 납득한 조첩여의 모습이 대단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네요. 어쨌든 우쌤 덕분에 《사기(史記)》와 《한서(漢書)》라는 방대한 텍스트의 홍수에도 헤매지 않고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쌤은 이런 텍스트를 읽을 때 기록된 것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셨지만, 동시에 기록되지 않은 것을 읽어내는 시야도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시선 속에서 이번 1강은 《사기(史記)》와 《한서(漢書)》를 통해 한나라, 그 중에서도 전한시대의 기록되지 않은 그 생생한 현장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우선 《사기》와 《한서》를 좀 살펴보겠습니다. 《사기》는 역사서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심역사를 기록한 〈본기(本紀)〉, 제후의 나라를 기록한 〈세가(世家)〉, 당시의 제도를 기록한 〈서(書)〉, 도표 형식으로 사건을 기록한 〈표(表)〉로 정리했죠. 다르게 말하면, 기전(紀傳)체를 사용하여 중국 고대부터 내려오는 최초의 역사서입니다. 《한서》하면 흔히 반고를 떠올리지만, 그 시작은 반고의 아버지 반표입니다. 반표는 사마천이 무제 뒤를 기록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뒤의 역사를 보충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작업을 아들인 반고가 물려받고, 반고 사후에 흩어진 것을 다시 모아서 정리한 것이 반고의 여동생 반소입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게 《한서》입니다. 그런데 《사기》가 생각보다 ‘도발적(?)’이었던지라 부분부분 《사기》와 다르게 정리했습니다. 예를 들면, 《한서》에는 〈세가〉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기》가 전체 130권이라면, 《한서》는 전체 100권입니다. 30권의 차이가 〈세가〉의 유무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기》에 있는 8권의 〈서〉가 《한서》에서는 10권의 〈지(志)〉가 됩니다. 그리고 《사기》 〈본기〉 중 ‘진(秦)본기’와 ‘항우본기’도 〈한서〉에는 없습니다. 진나라는 원래 천자의 나라가 아니라 주나라가 임명한 서른 개의 나라 중 하나이기 때문에 넣지 않은 것이죠. 그리고 항우는 천하를 통일한 패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한서》에서는 전(傳)에 포함됩니다. 진승도 《사기》에서는 〈세가〉로 분류됐지만, 《한서》에서는 항우와 같이 ‘전’에 포함됩니다. 분류만 다르게 됐을 뿐 내용은 크게 다르진 않다고 합니다. 결정적으로 《사기》는 ‘자객열전’ 같이 평민의 이야기가 있었다면, 《한서》에서는 문인, 선비들을 중심으로 ‘전’을 만들었습니다. 또 《사기》에서는 ‘고조본기’ - ‘여태후본기’ - ‘효문본기’로 돼있지만, 《한서》에서는 ‘고제기(상하)’ - ‘혜제기’ - ‘고후기’ - ‘문제기’ 이렇게 돼있습니다. 《한서》는 《사기》의 ‘고조본기’와 ‘여태후본기’ 사이에 ‘혜제기’를 넣어서 그를 황제로 인정한 것과 《사기》에 있는 ‘여태후본기’를 ‘고후기’로 바꿨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죠. 제목을 바꾼 건 여러 이유를 추측할 수 있겠지만 표면적으로 살펴보면, ‘여태후’라고 해서 여씨 집안이 나라를 삼켰다고 대놓고 표현하지 않고 ‘고후기’라 함으로써 좀 점잖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체에서도 차이가 있었는데, 사마천은 감정을 토로하고 거침이 없었다고 합니다. 야(邪)와 같이 영탄적인 느낌을 표현하는 글자를 썼다고도 하네요. 반면에 반고는 전반적으로 차분하다고 합니다. 글자도 야(也)와 같은 걸 써서 감탄을 최대한 자제했다고 하네요. 이런 점에서, 우쌤은 사마천이 뜨거움이 있는 ‘열정’이라면, 반고는 차가움을 상징하는 ‘냉정’이라 비유하셨죠. 대략 이 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 당나라까지만 해도 《한서》가 《사기》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지난 시즌을 잠시 되살려보면, 그 이유는 시대적인 맥락 때문입니다. 《한서》는 《사기》에 비해 깔끔한 문체이고, 보수적인(?) 성향이 당시 귀족계층과 잘 맞은 덕분에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송나라에 이르면 《사기》가 《한서》보다 높게 평가받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왜냐하면 송나라 관리들, 사계층이 귀족계층과 관계가 틀어지면서 갖게 된 울분이 사마천의 울분과 통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주희, 사마광이죠.

이제 《한서》의 인물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우선 ‘사마천전’이 눈에 띄네요. 지금 사마천에 대해 글을 쓰고 할 수 있는 건 반고가 사마천에 대한 기록을 잘 정리하고 모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김일손전’. 김일손이란 사람은 흉노의 왕자였는데, 중국으로 귀화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 사람이 소제 치하 당시 권력다툼에서 도망쳤는데 혹시 경주에 정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도 있다 하는 군요. 그러니까 경주 김씨는 사실 흉노의 후손일 수도 있다는 거죠. 실제로 문무왕비에 선조 김일손이라고 되어있는데, 또 흉노왕자 김일손일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게 유서 깊다고 자부하던 경주 김씨의 뿌리를 뒤흔드는 문제인지라 한때 엄청 논란이 됐다고 합니다. 근데 어차피 우리는 다 오랑캐 아닌가요. ㅎ

이번 시간의 하이라이트인 ‘외척전’입니다. 우쌤은 양이 너무 많아서 굳이 하나만 읽고 싶다면 꼭 이 ‘외척전’을 읽으라고 하셨습니다. 일단 우쌤은 한나라의 권력은 대체로 왕이나 행정관료들이 아니라 왕의 여자나, 환관과 같은 비선들에게 좌우됐다고 하셨습니다. 네, 비선실세죠. 전한 때는 외척이 권력을 잡았고, 후한 때는 외척을 경계했더니 환관이 권력을 잡았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왕조는 200~300년의 수명이 보통이고, 그 사이에 누군가 나라를 망치는 건 똑같네요. ‘외척전’에서는 나라의 권력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여자들이 왕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아시다시피, 유방 사후 실권을 휘두른 건 여태후죠. 여태후는 자신이 낳은 혜제를 제외한 유방의 나머지 자식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죽였습니다. 그리고 유방이 총애하던 부인은 사지를 절단하고, 눈과 혀를 뽑고, 얼굴을 지져서 똥과 오물을 먹고 사는 인간돼지로 만들어버리죠. 이에 충격받은 혜제는 시름시름 앓다가 얼마 못가 죽는데요, 마땅한 적통이 없어서 여태후가 어디서 아이 세 명을 데려와서 허수아비 황제노릇을 시키면서 자신이 권력을 휘두릅니다. 그런데 마침 딱 한 명 여태후로부터 살아남았던 유방의 여자와 핏줄이 있었는데, 그게 박희라는 궁녀와 그녀의 소생인 유항입니다. 이 모자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박희라는 여자가 유방과 하룻밤만 자고 그 뒤로 어떤 연고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방의 아이를 가졌어도 멀리 귀양만 갔을 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이죠. 덕분에 나중에 여태후 사후에 유방의 신하들이 여씨 세력을 정리하고 유방의 핏줄인 유항을 데려와서 즉위시킵니다. 그가 바로 문제입니다.

문제의 눈에 든 것이 두의방이라고 하는 궁녀였는데, 이 여자가 나중에 그 유명한 두태후입니다. 먼저 있었던 황후와 그녀의 네 아들이 죽자, 두의방이 낳은 유계가 태자로 책봉되었고, 두의방은 황후가 됩니다. 문제가 죽고 유계가 즉위하자 두태후는 권력을 마구 행사하기 시작합니다. 여담이지만, 그녀는 도교에 심취해있었고 덕분에 《노자(老子)》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우쌤은 하상공주가 어쩌면 이때 궁궐에서 집필된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어쨌든 두태후와 말이 통해야 황제에 즉위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시 그녀의 권세는 막강했습니다. 율태자와 그의 어머니인 율희는 두태후와 손을 잡지 않아서 제거됐고, 대신에 유철의 어머니인 왕미인이 두태후와 손을 잡은 덕에 유철이 태자로 책봉됩니다. 유철이 경제의 아들 줄 열한 번째인데도 태자에 오를 수 있었으니까 말 다한 거죠. 그리고 유철이 바로 그 유명한 무제입니다. 이런 식으로 소제, 선제, 원제, 성제, 애제, 평제에 이르기까지 후계문제에 항상 외척이 관련됩니다.

번외편으로 아까 감동적이었다고 한 조첩여의 얘기를 해보면, 무제의 장성한 아들들은 이미 다 죽은 뒤였습니다. 남은 건 조첩여의 8살 된 아이가 유불릉인데, 무제는 조첩여가 여태후나 두태후처럼 어린 아이를 등에 업고 권세를 누릴까 염려해서 그녀를 죽입니다. 조첩여는 처음에 영문을 몰라서 애원했지만, 무제가 ‘왜 죽이는지 네가 알 것이다’라고 하자 이유를 알고는 순순히 죽었다고 합니다. 물론 픽션이겠지만, 조첩여의 이런 모습을 상상하니 뭔가 가슴이 찡하네요. 《한서》에서는 권력이 몰리는 걸 방지하는 게 아니라 그냥 우울증으로 자살했다고 기록돼있습니다. 이밖에도 소제를 업은 곽광, 왕망 등의 인물과 무고의 난, 곽광-김일제-상관걸의 권력다툼과 같은 사건 등등이 수두룩벅벅 남아있습니다. 정리하려니 눈이 핑핑 도네요. @.@ 우쌤 설명을 들으니 확실히 《사기》만으로는 전한시대 그 생생함을 다 포착하기에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다음시간은 열녀전과 열선전이네요. 또 어떤 파격적인 이야기가 있을지 기다려집니다. 다음 주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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