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후기

글쓰기의 정원 시즌 1. 후기

작성자
최경미
작성일
2018-03-08 20:32
조회
176

문제제기를  위한  좌충우돌


첫 날의 기억


1월 6일 토요일, 한 겨울이었지요. 글쓰기의 초식을 익히고 싶은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자, 규문 글쓰기의 정원이 활짝 열렸습니다. 8주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첫날, 먼저 “나를 쓰다”라는 주제로 채운 샘의 명쾌한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무엇이 나 인가’에 대해 <논어> ‘위정편’의 명문장을 들어 설명해주셨지요.

五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地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자립했으며,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 쉰에는 하늘의 명을 알았다. 예순에는 이치를 깨닫게 되었고, 일흔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공자는 이렇게 압축된 문장으로 자신의 70대까지의 삶을 표현했습니다. ‘나를 쓰는 행위’를 통해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스스로 규정해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라셨던 채운 샘의 마음이 글·정 시즌 1을 끝내고 나니 더 깊이 느껴집니다. 세상에 단 한 사람, 나라도 나 자신에 대해 명쾌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자기를 떠나는 글쓰기’에 대한 강의가 기억에 남습니다. ‘자기를 떠나는 글쓰기’의 대가인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를 예를 들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나는 관점을 전환할 근거를 가지고 있고, 관점을 전환할 도구를 가지고 있다 : 왜 오로지 나에게만 ‘가치의 전환’이 도대체 가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첫 번째 이유다.”(채운샘 강의안, 4쪽, <이 사람을 보라> 서문 중 일부) 니체가 말한 관점을 전환하는 근거와 도구란 무엇일까요? 아마도 자신을 밑바닥까지 들여다 보는 글쓰기의 과정이 관점을 전환하는 근거와 도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바닥을 치면 다른 방향으로 튀어오를 수 있지 않을까요?  채운 샘께서는 지금, 여기서, 온전히 자기에 대해 쓰고 미련 없이 이전에 나로부터 떠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음! 일단 우리는 글·정에서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해석해 보려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글·정 시즌1을 마치고 시즌 2로 가는 길목인데요. 글·정 도반들 중에 이번 글·정 시즌1에서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글쓰기’를 체험하신 분이 계실까요? 간증을 기다리겠습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글·정 시즌 1의 최대 유행어, 논증! 논증! 논증!을 탄생시킨 주인공, 오! 선민 샘과 도반들이 함께 했던, 쫄깃한 글·정 시즌 1의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볼까요?

세 권의 책


이번 글·정 시즌 1에서는 ‘나를 쓰다’와 관련된 세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톨스토이의 『참회록』,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호시노 미치오의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입니다. 이 세 권의 책에서 우리는 삶에서 질문하기, 자신의 일견을 펼치기, 원하는 세계에서 살다가 거기서 죽은 자의 체험을 배웠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2주 차에, 톨스토이의 『참회록』을 함께 읽었지요. 러시아의 대문호답게 ‘참다운 생을 사는 법’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부와 명예 같은 인간의 물질적 욕망을 채우며 살았던 자신을 바닥까지 참회했습니다. 이성과 지성을 극단으로 발휘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의 근원적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지요. 그러다 질문이 한계에 이르자 ‘자신의 무지’를 발견하고 부족할 것 없이 살아온 상류층의 삶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느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땀 흘리는 노동으로 하루를 사는 ‘민중의 삶’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들의 ‘비이성적 인식, 신앙’을 목격하게 됩니다. 자신만의 세계에서 한 발짝 벗어난 톨스토이는 ‘인간의 삶’을 보다 넓게 조망합니다. 시야가 확 트인 그는 어린 시절에 ‘신앙의 길’에서 벗어난 후로 이성적 판단을 앞 세워 인간의 동물적 욕망에만 충실했던 자신을 삶을 인식합니다. 이후로 신에 대한, 도덕적 완성에 대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전통 신앙에 대한 길로 삶을 전향하게 되지요. 왜 삶에서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톨스토이에게  배웠습니다.

3주 차에,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공부했습니다. 여성이 글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의 돈’이 필요하다고 그녀의 일견을 우리에게 소설처럼 펼쳐보여 주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물질적인 조건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무엇이 되기보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실상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의 현실적 토대가 요구 된다’는 표현이지요. 현실에서 실재(reality)을 파악하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그녀의 삶의 태도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들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돈을 벌고 자신의 방을 가지라고 부탁할 때 나는 여러분이 이 실재의 현존 안에서, 활기를 북돋워 주는 삶으로 보이는 그런 삶을, 그것을 남에게 전할 수 있든 없든 간에, 살아가기를.”(같은 책, 207쪽) 겨우 재산권과 참정권정도가 보장되던 그 시대의 열악한 여성의 삶에 비하면 지금은 여성의 위상이 훨씬 높아졌지요. 허나, 실재를 파악하고 생동하는 삶을 사는 방법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성이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요즘 안태근 전 검사장 성희롱 사건으로 우리 사회의 성범죄 문제가 촉발되어 미투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지요. 이런 시대적 호응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자연스레 페미니즘이 자리 잡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페미니즘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버지니아 울프를 통해 여성의 삶과 글쓰기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4주 차에는, 선민 샘을 감동시킨, 우리 모두를 감동케 한 호시노 미치오의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를 읽었지요. 광활한 알래스카의 대자연에 동화된 한 남자. 직업은 사진 작가였지만 그가 진짜 원했던 삶은 큰 까마귀 전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알래스카 원주민의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듭니다. 극북의 알래스카의 설원을 사랑한 호시노 미치오. 그 땅에서 고래를 찾아다니고 곰을 만났습니다. 결국엔 곰의 습격을 받아서 알래스카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만, 멋지지 않나요? 어차피 죽을 목숨,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좋아하는 땅에서, 그리 좋아하는 곰한테 죽었으니, 정말 그다운 죽음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이지요. 최후의 알래스카 인디언 인 피터 존에게 큰 까마귀 전설에 대해 호시노 미치오가 묻지요. 하지만 큰 까마귀 전설은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인디언만의 언어였습니다. 그저 피터 존의 음성에서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었지요. 이 때 피터 존은 인디언의 말을 하나 가르쳐줍니다. 죽은 그의 아내 엘시를 회상하며 ‘초우친......’ 사랑한다는 단어를 알려줍니다. 인디언에게 사랑이란 서로 도와주며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피터 존은 열여섯의 아내 엘시를 맞이하여 혼인한 후 곧장 피시 캠프로 가서 연어를 잡았다지요. 서로를 도우며 살아간 아흔여섯의 노인이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선했습니다. 알래스카의 대자연에 동화된 호시노 미치오의 삶을 느끼고 그의 세계에 대해 써보신 도반도 계시지요. 진정 ‘내가 살고 싶은 세계’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나’는 어떠한가요? ‘천지인상응’이 아직 살아있는 인간의 전형을 보여준 호시노 미치오를 글·정 시즌 1에서 만났습니다.

매주 글쓰기의 어려움과 즐거움


2주차부터 4주차까지 이 세 권의 책을 읽으면서 글감을 찾았습니다. 인생의 변곡점도 써보고 나를 이루는 타자와 세계에 대해서도 썼지요. 5주 차에는 핵심사건을 중심으로 글을 선명하게 표현해보려고 했고요. 목차와 개요도 짜고 초고가 나오기까지 7주의 글쓰기 과정을 거쳤습니다.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는 힘든 글쓰기의 여정이었지만 서로에게 공부에 대한 열정을 북돋우며 쭉쭉 밀고 나아갔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매주 한 편씩 글쓰기를 해보았는데요. 후반에는 체력고갈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만 다른 샘들은 뒤로 갈수록 탄력을 받으시기도 했고 쓰는 즐거움과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체득하며 지칠 줄 모르고 내달리신 샘들의 모습이 흥미진지 했습니다. 매주 쓴 글에 대해 오! 선민 샘께서 정성스럽게 첨삭을 해주셨지요. 15명의 글·정 도반들의 글을 매번 다듬어주신 노고를 아마도 모두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첨삭된 과제물을 돌려받고 다시 집으로 가면 어찌 다시 쓰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다들 줄탁동시의 마음으로 공부한 줄로 압니다. 얼마 전 8주차 ‘나를 쓰다’의 합평이 있었습니다. 전원 참석으로 각 자의 글을 발표하고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지요. 글쓰기 초식으로 서론 3문단, 결론 3문단, 3·3법칙을 전수하신 선민 스승님의 마지막 과제는 서론 다시 쓰기였습니다. 정확한 문제제기가 있는 글, 내가 알고자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분명한 글을 강조하셨지요. 서론의 자기 질문이 명확해야 그 다음 본론과 결론에 논지를 펼치고 변주가 가능해지니까요. 평소 문제제기를 못해서 늘 고민이었던 저는 글·정 시즌 1에 참여하면서 ‘나의 질문’을 좁혀가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알아가는 즐거움과 쓰는 성취감으로 글·정 시즌 1을 함께 했습니다. 이 리듬 그대로 글·정 시즌 2를 이어가 볼까요? 이번에는 문제제기를 위한 좌충우돌이었지만 다음에는 이 지점을 떠나 한 발 더 나가보자고요.^^
전체 7

  • 2018-03-09 17:14
    글정의 대표 공부성애자 최경미 선생님의 후기 글을 읽으니, 다시금 토요일 글정 수업 때가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일주일 기한으로 매주 글을 뽑아내어 제출하고, 휴일 이른 아침부터 수업에 참여하여 점심식사 시간을 훌쩍 넘길 때까지 오선민 선생님의 깨알 첨삭 및 도반들의 애정 어린 맹공의 합평을 거치면서, 정말 치열하게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금방 다가온 3월 1일 최종발표회, 각자 5페이지의 최종에세이를 발표하고 토론하며 공휴일 하루를 전부 쏟았던 그 날이 글정 1기의 절정을 이루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중국집 뒷풀이 또한 뜨거웠지요.^^ 저번주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앉아 글정에 안 가도 된다고 생각하니 뭔가 빠진 듯한 기분이 들더군요. 아직 글쓰는 신체까지는 안 되었더라도 글정 출석해 온몸으로 받는 지적질을 즐기는 신체까지는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
    도반님들과 7차례 글을 나눠 읽다보니 도반님들의 글쓰는 스타일에 익숙해지고 각자의 성격도 들여다 보이는 느낌이 들었는데, 특히나 공부에 대한 열정과 일상과 공부라는 화두를 살갑고 친근한 언어로 풀어내시곤 했던 최경미 선생님의 후기 글을 읽으니, 선생님의 글을 즐겼었던 팬으로서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네요. 감사드리고 불과 2주전까지 그 안에 살았던 글정의 열기가 다시 살아오는 듯 합니다.
    적어주신 것처럼 단순한 기술적 글쓰기가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화두를 글이라는 도구로 바닥까지 뚫어내고 그 바닥의 자리에서 자기 안의 균열을 발견하고 그 지점을 고민함으로써 기존의 자기로부터 떠날 수 있게 해주는 글쓰기, 온 존재를 건 글쓰기라는 과제의 무게 앞에서 무던히도 헤매였던 것 같습니다. 이 시대의 교양이라고 하는 글쓰기 기술을 스펙처럼 따러 온 저로 하여금, ‘아!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매주 하게 만들었던 글정 수업은 저에게 글쓰기의 의미 자체를 다시 고민하게 만들었던 소중한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선생님이 가르침 주신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글쓰기’를 어렴풋한 느낌으로만 이해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이제는 이 공부 저 공부 중에 거쳐 가는 글쓰기 공부가 아니라, 글쓰기 위해 공부를 하고 글쓰기 위해 경험을 하는, 글쓰기 중심으로 삶을 재편하고 글과 삶을 일치시키는 공부가 맞는 방향이 아닐까 하고 조금씩 생각해보게 됩니다.
    글정 텍스트로 읽었던 세 권의 책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꿰어나가신 최경미 선생님의 후기 글을 보며 뒤늦은 반성을 했습니다. 텍스트로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끌어냈던 다른 선생님들의 글과는 다르게, 책 따로 과제글 따로 놀던 제 글이 기억나네요. 다음 시즌은 그야말로 외부 텍스트를 재료로 하는 수업이 될테니 바짝 긴장해 준비해야할 것 같습니다.
    후기글 선뜻 자원해주시고 맛깔나게 써주신 최경미 선생님께 감사드리는 마음 및 글정 1기를 온몸으로 통과해내신 선생님들에 대한 찬사의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15건에 가까운 글을 매주 짧은 시간 내에 검토하시고 컬러풀 첨삭해주시면서 눈이 빠질 것 같으셨을 듯한 오선민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간단한 소회 겸 감상 댓글 남깁니다. 다음 시즌에도 더많이 고민하고 더많이 방황하며 그만큼 성장하는 시간을 다같이 도우며 갔으면 좋겠습니다. 3월 하순에 뵙겠습니다. ^^

    • 2018-03-10 00:38
      반장님 이것이 후기인지 댓글인지 헛갈리나이다. 저의 부족한 필력으로 규문 홈피에 글을 남기는 우를 범한것 같아서 살짝 부끄러워질려고 했는데 댓글 감사합니다.^^

  • 2018-03-12 00:16
    최경미 선생님도, 한경석 선생님도 이제 진짜로 시작이신가 봅니다. ^^

  • 2018-03-13 18:44
    12명 각각 어떤 주는 머뭇거리기도 하고, 어떤 주는 확 치고 나가기도 하며 글쓰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시영샘 : 역시 창의력이 좋은 걸로(성당 과자는 먹지 맙시다).
    승연샘 : 글정의 모범생(선생님이 이야기하면 다 고침) 그리고 시즌제 기획의 선두주자
    현주샘 : 미세먼지에서 잠시 방황했으나 빈틈없는 정확함으로 직진
    연주샘 : 돌쟁이 딸 독박육아 와중 틈틈이 풀기 어려운 가족의 문제(체조 양학선 난이도)를 시종일관 유지하는 저력
    경미샘 : 후기를 저요!할 줄이야. 역시 적극적임. 경미샘 너무 바쁘게 살지 말고 쉬엄 쉬엄해요.
    정옥샘 : 동지에서 남편이 된 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매주 변주된 이야기를 펼쳐주셨죠
    윤현정샘 : 바쁜 일상 중에 감이당에 대학원에 글쓰기까지. 너무 바쁘게 살지 마세요^^ 대형 주유소 화재 보험 계약 축하합니다
    순화샘 : 고모 이야기에서 헤어스타일에서 마지막 번외편에서는 딸 이야기가 나왔죠. 앞으로의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최선미샘 : 황량한 감정에 대해서 썼던 글이 기억에 많이 남네요. 과거의 일 이번에 정리하시고 좀 더 촉촉해지실듯
    이현애샘 : 성동구 행당동에서 탑3 공인중개사를 하고 계시죠. 남동생과의 관계에서 가족의 문제를 파고 드셨죠
    한경석샘 : 독립이고 뭐고 걍 나와 사셔도 될 듯. 밖에 나와도 사람들이 안 물어가요

    오!선민 선생님 감사합니다. 꾸벅.
    시즌2에서 만나요^^

  • 2018-03-13 22:24
    그간 날림 공부를 한 느낌이었지요. 선민샘의
















    글정을 하고나니 그간 날림 공부를 한 것 같았습니다.처음부터 다시 시작! 선민샘의 꼼꼼한 지도... 관심.... 사랑... 이 온몸으로 각인되었지요. 평창올림픽 컬링경기에서 영미야!로 메달을 따냈듯이 논증 논증 선민샘 외침에 도반들이 한마음으로 달린 것 같습니다. 채운샘 선민샘 울 도반님들과의 소중한 인연이 행복합니다. 그럼 이만 총총

  • 2018-03-15 06:37
    경미샘 꼼꼼하고 애정어린 후기 감사합니다. 글쓰기와 공부에 대한 샘의 열정이 후기를 쓰면서도 잘 드러나 있어 읽으면서 반성모드로 진입했었네요. 경미샘을 비롯여러 샘들의 글에 대한 애정을 보면서 저는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책을 읽고 지식을 얻는 것에 대한 욕구만큼 글쓰기를 좋아하거나 욕망하지는 않았던 것이지요. 저에게도 글에 대한 태도가 바뀐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를 쓰다>가 자신이 이런 사람임을 확인 하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일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알게 해주었다는 면에서도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시즌2를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른 프로그램에서 더 반갑게 만나요.
    정원에 싹이 났네요. 잘 보듬고 가꾸어 꽃 피우고 열매 맺은 정원지기들이 되실 것 기대하겠습니다. 그래도 샘들~ 옵저버로 끼워 주실거죠. 특히 회식이라든가...... ㅋㅋㅋ 열독자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 2018-03-15 18:07
      정옥샘의 에세이 애독자로서, 샘께서 삶과 글쓰기를 함께하고 계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들뢰즈의 개념을 접목하여 글을 완성하시고 공부의 힘을 보여주셨지요. 시즌 2를 함께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샘의 글쓰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