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후기

글쓰기의 정원 3주차 후기

작성자
최선미
작성일
2018-04-08 13:13
조회
102
글쓰기의 정원  3주차 후기

오늘 수업 끝나고 나오는 길에 몇 몇 선생님들이 책도 어렵고 요약은 더 어렵다고 한숨을 쉬면서 애기를 나누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도 챕터별로 읽어가면서 먼저 내용을 파악해야 했고 그 중에서 주요한 핵심어나 핵심문장은 무엇인지 고민해야했습니다. 마지막 5장을 읽고 요약할 때쯤에는 시간에 쫓겨 머리가 마비되고 눈이 읽어주는 대로 손이 그냥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꽃피는 봄날의 외출과 약속의 유혹에도 저항해야 했습니다.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갔다 오느라 예기치 않았던 시간을 쓰면서 계획했던 것보다 과제를 하는 시간이 걸어져 체력적으로 지치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고 요약하는 공부 가운데 일어나는 이런 일 저런 일 모두를 처리하는 것도 공부에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의 승진이나 생계를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닌 나를 알고, 사회속에서 내 삶의 방향을 알고, 내 생각을 바꾸고, 내 선택을 바꾸기 위해서 해야 하는 공부도 어쩌면 인생에서 꼭 겪고 넘어가야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길을 안내해 줄 스승이 있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도반이 있다면 힘들어도 끝가지 갈 수 있습니다.

오늘 수업은 각 챕터 별로 요약을 발표하면서 핵심어를 찾아보았습니다. 핵심어가 글에 나타나 있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그것에 해당하는 단어를 도입해가면서 전체적으로 내용을 다시 파악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요약을 하다 보면 모두가 다 중요한 말 같아서 요약이 너무 길어지는 경우가 있는 데 그런 경우는 자신의 말로 핵심을 배짱 있게 줄여보는 것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3장에서는 일상생활에서 형성된 일상어를 잠식한 모어의 발생으로 인한 교육의 제도화, 언어의 상품화, 언어의 자급과 권력의 분화, 일방적인 상품과 서비스의 ‘필요’의 강제와 그 해결을 위한 전문가의 발생 등의 중요한 개념들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이와 반대로 ‘토박이’라는 말 속에는 항상 공생공락과 호혜성이 포함되어있다고 합니다.

4장의 과학과 도구의 관점에 관한 부분에선 민중에 의한 과학의 원조인 위그의 사상을 살펴보았습니다. 위그는 앎이라는 것을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조화와 치유를 위한 것이며 도구조차도 삶의 관계 속에서 창출되면서 도구의 사용조차 철학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위그는 길쌈, 도구의 제작도 재미있게도 치료제로 보았습니다.

5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그림자 노동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성차별적이며 발탁에 근거한 임금노동과 그 보완물인 그림자 노동은 같이 동시에 발생하며 공식 경제에 기여합니다. 그림자 노동은 임금 노동의 전단계이며 이전에는 여성들의 가사노동으로 대표됩니다. 여성의 가정에서의 그림자 노동을 가리는 5가지 학문적 이론, 여성의 ‘가정주부’로의 ‘지위박탈’ 같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재미있는 일리치의 개념 도입도 있었습니다. 여성을 돌봐주어야 하는 감상적 연민주의, 실업의 발생으로 남자들도 그림자 노동에 많이 편입되어 가는 추세로 인간의 상품화, 소외화되는 문제도 얘기되었습니다.

챕터별 중간 중간에 질문과 토론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가난한 사람들이 토박이말의 바탕을 지키는 데 필요한 침묵을 빼앗긴다고 했는 데, 왜 침묵이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통용되던 것들이 밖에서 주입되는 말들로 인해서 점차로 사라지고 상투어만이 남지 않음을 빗댄 말이라는 선민 샘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또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걸려있던 현판의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문장은 그림자 노동을 하던 유대인들을 절멸시켰던 나치즘이 결국 그림자 노동의 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암울한 해석을 하였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우리 모두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던 문제 또는 명확하지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느꼈던 상품 집약적 사회에서의 삶의 문제를 표면으로 끄집어낸 이반 일리치의 책이 조금은 불편하고 한편으론 신선함도 느꼈습니다. 그것은 편안함과 상품과 임금 노동에 길들여진 우리는 그림자 노동의 불편한 진실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밑바닥에 묻어두었지만 화폐와 상품의 소비에 쫓기듯 살면서 느꼈던 허망함을 동시에 알겠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급자족적인 삶은 무엇인지, 내가 하는 노동 중에 그림자 노동은 어디까지인지 하는 의문도 떠올랐습니다. 선민샘 말처럼 우리 모두 그림자 노동에 편입되어 있는 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알고자 질문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그림자 노동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내 삶에 필요한 노동을, 내가 삶에 필요한 도구를 결정하는 실체적 인간으로 사는 첫걸음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주는 더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내 문제의식을 가지고 어디를 더 볼 것인가 이반 일리치의 생애며 그가 살았던 시대, 왜 이 책을 썼는 지 등등, 자율적으로 자료와 책을 찾아서 정리하는 것입니다. 항상 할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처음에 할 때는 그 숙제가 가장 어려운 것 같은 데, 그 다음번에는 더 어려운 숙제가 주어집니다. 자율에 익숙하지 않는 저로서는 요약이 더 쉽게 느껴지네요. ‘자율’적으로 ‘필요’를 결정하는 날까지 공부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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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08 16:29
    최선미 선생님께서 변신하셨군요. 1학기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글쓰기를 하고 계십니다. 이반 일리치의 책에 대한 선생님의 진지함은 수업시간에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어요.
    불편함, 낯섬, 신기함, 그리고 어떤 선택. 이 모든 것이 휘몰아쳤던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과연 어떤 서평을 쓰게 될지 참으로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