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F 절차탁마 3월 28일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8-03-23 11:27
조회
99
지난 시간, 채운샘께서는 〈지식의 고고학〉을 다시 읽으시며 생긴 질문(혹은 화두?)에 대해 이야기하시며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각자 앞으로 〈지식의 고고학〉을 읽는 동안 고민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① 주체 없는 역사 서술이 가능할까? 생각해보면 그동안 우리가 역사라고 불러온 것들은 모두 주체의 역사였던 것 같습니다. 인물(왕, 정치인, 사상가, 작가 …)이나 집단(국가, 정치세력, 세대 …)의 행위와 의지를 역사의 동력으로 보는 것. 이런 식으로 역사를 구성하는 한 역사에서 시원과 목적을 배제하기란 어렵습니다. 푸코의 작업은 선험적인 주체를 전제하는 대신 주체를 권력이나 배치의 산물로 보는 것이죠. 여기서 채운샘이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데, 단순히 ‘주체란 결과물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방식으로 역사를 사유하고 또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선험적 주체를 부정하는 철학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으면서도, 실상 그런 방식으로 사유하는 데에는 조금도 익숙해져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푸코를 따라가면서 주체 없는 사유란 무엇이며 주체 없는 역사란 어떤 것인지 확인해봐야겠습니다.

② 탈주선(생성 및 창조)의 문제. 우리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정치적 국면이 전환되고, 새로운 사조가 탄생하는 것을 주체중심적으로밖에는 사유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세력들이 기존의 것에 반발하여 뭔가를 바꾸고, 새롭게 만들어 낸다는 생각. 군부독재에 반발한 386세대가 민주화운동을 일으키고, 이명박근혜 정부의 부패에 반발한 촛불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키고 ……. 이러한 변증법적 구도로 생성과 창조를 생각할 때, 우리는 생성에 발전이라는 표상을 덧씌우게 되고, 창조의 동력으로 다시금 선험적 주체를 소환하게 됩니다. 어떻게 우리에게 익숙한 변증법적 틀을 떠나서 생성과 창조를 사유할 수 있을까요? 그때 생성과 창조란 무엇일까요?

③ 담론의 문제. 어떻게 ‘담론’에 접근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대개 ‘담론’이라는 말을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과의 관계에 국한시켜 사용합니다. 무언가에 ‘대한’ 담론. ‘세대담론’, ‘페미니즘 담론’, ‘통일 담론’ ……. 이때 담론이란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이나 사건 등에 대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언어가 대상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상과의 지시 관계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면? 이때 담론을 분석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대상이나 사건을 둘러싸고 누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아닐 겁니다. 말해진 것들 사이에서 말해지지 않은 것을, 대립되는 주장들이 공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들을 분석해내는 일이겠죠.

또 채운샘은 푸코가 니체의 강력한 영향(영향이라는 말을 쓰기가 망설여지지만?) 아래에서 책을 쓰고 철학을 했다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에 나눠주신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에서 푸코는 니체를 인용하며 ‘인식은 발명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네 가지 이유를 들어 이를 설명합니다. 인식은 인간 본성에 새겨져 있는 무엇이 아니고, 인식은 (신적 지성과 같은) 모델을 갖지 않으며, 인식이란 사물의 본질이나 해독해야할 숨은 의미를 파악하는 일과 무관하고, 그런 모든 의미에서 인식이란 “복잡한 조작의 결과”라는 것. 아마도 니체와 푸코는 인식을 ‘인간 본성’이나 ‘신적인 지성(모델)’, 대상세계(실재)’, ‘유용성’ 등으로부터 분리시켜서 그것을 하나의 힘으로 사유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볼 때 ‘진리’란 인식 앞에서 그것의 목표를 설정해주는 무엇이 아닙니다. 인식은 발명되었으며, 진리는 그보다 늦게 발명되었습니다. 진리는 인식의 목표가 아니라 인식이라는 과정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니체는 진리나 진리의 인식가능성에 대해 묻는 대신, 인식자의 힘의지(누구의 진리인가?)를 묻습니다. 이를 계승한 푸코의 작업은 “진리에 관한 모든 문제틀에 앞서는 역사적 과정으로 인식을 사고”하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주 과제입니다. ① 언설적(담론적) 사건들을 기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책에 나오는 세 가지를 들어서). ② 언설적(담론적) 형성(물)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우리가 지니고 있는 네 가지 가설들에 대한 푸코의 비판을 따라가며 ‘진리 게임’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서). ③ 2장 〈언설적 규칙성〉의 3, 4, 5, 6번을 읽고 각각 한 문단으로 정리하기.

 

간식은 영님샘과 봉선샘~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
전체 1

  • 2018-03-25 18:41
    딴소리지만, 공자나 장자, 노자 등의 철학자들은 모두 주체를 해체하는 가르침을 내려주고 있는데, 그것을 모두 무화시키는 저의 사유! 푸코의 문장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건 그 때문인지도 ㅋㅋ;;
    책 읽는 것 자체로도 신체적 반동이 일어난다는 걸 푸사마 덕분에 절실히 깨닫고 있네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