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F절차탁마 4월 4일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8-03-30 15:00
조회
94
다음 주 숙제와 간식부터 공지하겠습니다. 숙제는 3장 언표(言表)와 문서고(文書庫)1) 언표의 정의와 2) 언표의 기능을 A4 한 페이지 분량으로 요약·정리해오시면 됩니다. 3장을 읽으실 때는 이번 시간에 나눠드린 들뢰즈의 《푸코》의 부분을 복사한 “새로운 고문서학자-《지식의 고고학》”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간식은 크느쌤과 윤순쌤께 부탁드릴게요~

푸코와 즐거운 시간들 보내시고 계신가요? 채운쌤이 말씀하셨듯, 아무리 어렵더라도 이렇게 역사를 읽는 것이 어떤 점에서는 유용하다고 생각돼야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정수쌤은 “푸코를 통해 사건을 좀 더 정확하게 보는 안목을 갖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사건이 구성되는 방식, 조건을 안다면 지금 나와 관계되는 조건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실천의 지평도 더 넓힐 수 있다는 얘기였던 것 같습니다. (잘못 들었다면 댓글로 누군가 수정해주세요. ^_^;;) 전 아직 이렇다 할 유용성이나 즐거움을 찾지 못했습니다 ㅋㅋㅋ만, 푸코를 읽다보니 동양사를 다양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양의 역사는 거칠게 말하면 난세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나라들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해 싸우고, 통일이 되면 외세와 싸우고....... 태평성대든 난세든 결과적으로 전쟁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논어》, 《장자》, 《도덕경》과 같은 텍스트부터 위진시대에 출현한 고고한 선비들까지 모두 난세라는 시대적 맥락 속에서 얘기됩니다. 하지만 만약 푸코처럼 그것들을 난세로 환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역사를 서술할 수 있다면, 난세로 점철됐던 동양사를 아예 다르게 그릴 수 있을 것 같고 텍스트들도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어질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 논어도 떼지 않은 제가 이런 말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구만리지만, 일단 지르고 가는 거죠, 뭐!

 

전쟁 모델로서의 역사

푸코는 역사를 ‘전쟁 모델’로 보고자 했습니다. 보통 역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힘과 그것에 저항하는 힘의 대립하는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진행된다고 생각합니다. 헤겔의 정반합! 하지만 이러한 역사관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유용함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요? 채운쌤은 이상주의가 왜 허무주의로 귀결되는지 생각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역사 속에서 이상적인 방향, 모습을 설정하는 것은 끝내 닿지 못하기에 우리에게 짐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역사가 무수히 많은 힘들의 국지전이라면, 지금 당장 어디서 무엇을 가지고 싸울 것인지 등등 좀 더 적극적으로 나의 실천적 지점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이 점에서 푸코의 역사적 작업은, 정수쌤이 얘기하셨던 것처럼, 현재를 사유하게 만드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푸코의 고고학적 작업

수업은 《말과 사물》의 서문을 읽는 것부터 시작됐습니다. 아침에 모닝빵 팔리듯 팔렸다는 그 책을 이렇게 보게 되네요! 저는 맨 처음 보르헤스가 인용한 “어떤 중국 백과사전”에 있는 동물에 대한 분류가 재밌었습니다.

a) 황제에게 속하는 것, b) 향기로운 것, c) 길들여진 것, d) 식용 젖먹이 돼지, 기타 등등........

이러한 기준들을 보더라도 우리는 이것이 어떻게 동물을 분류하는 기준이 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만약 저 사전을 집필한 중국인이 지금 시대의 동물을 분류하는 기준을 본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인식은 인간에게 원래부터 부여된 본능 같은 것이 아닙니다. 니체가 말했듯, 그것은 발명된 것입니다. 따라서 매 시대마다 인식은 다르게 구성되고, 푸코는 다르게 구성되는 지점을 ‘단절’, ‘비약’, ‘불연속’이라고 얘기합니다. 푸코는 그런 지점들을 분석했으며 《말과 사물》 역시 이러한 작업에 속합니다.

《말과 사물》이란 책 제목에서부터 암시하듯, 푸코는 언어와 사물 사이의 관계를 문제시합니다. ‘언어는 과연 사물을 투명하게 지시할 수 있는가?’, ‘사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와 관념으로 역사 속에서 동일하게 존재해왔는가?’

푸코는 고전주의 시대와 근대를 구분합니다. 그러나 푸코가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은 우리가 서양 역사를 중세, 르네상스, 근대, 현대와 같이 경제 혹은 정치의 관념으로 구분하는 것과 다릅니다. 푸코는 인간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지식을 의심하는 것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는 고전주의 시대의 ‘일반 문법’, ‘부의 분석’, ‘자연사’라고 불렸던 범주가 근대에 이르러 어떻게 ‘언어학’, ‘정치경제학’, ‘생물학’으로 불릴 수 있었는지를 분석하고, 그 결과 관념은 구성되는 것이고, 관념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초험적인 사물이란 없음을 밝힙니다. 이것과 비슷하게 《지식의 고고학》에서는 “출현의 표면들을 지표화해야 한다”고 얘기됩니다. 지표화한다는 것은 대상이 출현하는 표면이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를 살피는 것을 말합니다. 대상이 각 시대마다, 사회마다 다르게 출현한다는 것을 밝혀서 사물은 인식의 지반에서 규정되고, 규정과 관련 없이 출현한 수 있지 않다고 얘기하죠. 푸코의 고고학이란 언표를 문제 삼고, 어떻게 그러한 방식으로 인식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 조건을 살피는 일입니다.

 

토론 내용(담론적 차원에서의 분석, 외재성의 장, 실천으로서의 담론)

토론에서 나왔던 얘기 몇 가지만 정리해보겠습니다.

우선 담론적 차원에서 분석한다는 것과 외재성의 장을 사유하는 것에 대한 얘기가 있었습니다. 담론적 차원에서 분석한다는 것은 우선 주체나 초월성을 상정하지 않습니다. 푸코의 작업은 말해진 것들을 통해 그것이 말해질 수밖에 없었던 조건을 분석하고, 동시에 어떤 것은 말해질 수 없게 만들었는지를 분석하는 것입니다. 푸코는 담론적 차원을 연구하다 보니 자연스레 비담론적 차원과 연결하게 됩니다. 푸코는 이를 ‘외재성의 장’이란 단어라고 말합니다.

외재성의 장에서 핵심은 언표와 언표가 아닌 것들과의 관계입니다. 들뢰즈는 푸코의 작업을 라보프가 파롤을 분석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얘기했습니다. 라보프는 언어를 발화되는 그 순간의 상황과 연결합니다. 가령, “어서 오세요,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동일한 문장도 상대방의 옷차림, 성별, 나이, 인종에 따라 다르게 나온다고 합니다. 즉, 언어는 이미 언어가 아닌 것과의 관계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죠. 푸코 역시 담론을 비담론적 차원과 연결한다는 점에서 라보프의 연구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계맺음을 지표화하기"의 원문을 보면 "repérer les mises en relations"입니다. repérer는 '표를 찍다', '위치를 탐지하다'라는 동사입니다. mise는 '(어떤 장소에) 두기', '(새로운 상태나 상황에) 넣기, 되게하기'라는 명사입니다. 종합하면, "어떤 장소에 놓여진 관계들의 위치에 표를 찍다"입니다. 채운쌤은 미술사에서 ‘미술(美術)’이란 단어가 번역되고 그것이 처음 사용되었던 박람회장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등등 미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여러 층위와 연결된다는 얘기도 덧붙여주셨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주체를 상정하지 않는 역사서술이 무엇인지 감을 잡기가 어렵네요. 주체가 없다고 하면 나도 없고, 행위도 없어지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이에 대해 주체에 우월을 두지 않는다 혹은 외재성의 장에 자리한다는 말을 염두에 두면 좀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담론이 그 자체로 실천이라는 얘기도 있었는데, 이것도 아직 이해가 안됐습니다. 담론은 그 자체로 대상을 출현시키면서 다른 것은 배제하는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핵심인 것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 이건 읽으면서 계속 생각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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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30 18:58
    지난 수업에서 가장 충격이었던 점은, 이상주의가 갖는 허무주의를 던져버리고 난 뒤에 벌어지는 '전쟁'이었습니다.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과 싸우는 도처의 전쟁'. 담론은 바로 그런 전쟁을 포착할 수 있게 하는 개념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