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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의 관찰 일기> 1화 "철봉과 민호 그리고 나의 장애"

작성자
김훈
작성일
2020-11-09 00:00
조회
295
  • "훈이의 노동일기"에 이어 "훈이의 관찰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4n세 훈님이 연구실의 친구들과 세미나들 관찰을 빙자하여 자신의 얘기를 하는 코너가 될 듯합니다.^^



<훈이의 관찰일기> 1화

_철봉과 민호 그리고 나의 장애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 한 개라도 더 하려고 애쓰는 민호샘의 얼굴을 떠올리면 되려 철봉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봉의 무게는 기껏해야 2~3kg되지 않음에도 자신보다 수십 배의 무게를 견디고 있었다. 철봉 자체도 힘겹게 양 문틀에 지탱하고 있는데 말이다. 아무도 사용 않을 때조차 공중에 매달려 있는 철봉의 처지를 민호샘이 안다면 그 무게만큼은 아닐지라도 조금은 동병상련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재작년 그가 학교를 관두고 규문에서 공부하기로 마음먹기까지 얼마나 고심했을지 헤아려보면 그에게 규문에서의 공부란 서투르게 대할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나름의 고심 끝에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연구실에서 공부하고 있다. 나는 이 결정에 후회가 없고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좋다. 그런데 이러한 결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종 일 년 전의 그 고민, ‘공부를 지속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반복하게 된다. 다만 그때는 대학이나 취직과 같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때문이었다면, 지금은 공부를 하는 나의 상태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성민호  <허영자의 지속가능한 공부> 中

'멀쩡히 다니던 학교를 관두다니!' 여느 부모 같으면 허락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달랐다. 얼마 전에 둘이 산책하던 중 민호샘이 '같이 살 수도 있는 사람이라며 아버지에게 <훈이의 측량일기>를 보여드렸더니, 이런 사람이면 괜찮다며 좋아하셨다'라는 것이었다. 뜻밖이었다. 그냥 소소한 나의 일기로 그는 아버지와 소통하고 있었다. 보통의 아들들에게 아버지는 적대적이거나 둘이만 있으면 서먹서먹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남보다 조금 더 나은 관계다. 그런데 이런 일례만 봐도 그와 그의 아버지의 관계가 얼마나 살가운지 알 수가 있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대학교를 그만두고 규문에서 공부하겠다고 상의 드렸을 것이 아닌가.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자식이 비싼 등록금을 내고 다니는 학교를 그만 두겠다고 말하면 속상하실 것을 그도 알았을 것이다.

“아버지도 이런 거 배우는 거 좋아하시거든요. 그래서 규문에서 공부하는 것도 허락하셨어요.” 그는 가볍게 아버지가 허락해줬다고 말했지만 그의 심성을 잘 아는 아버지가 믿고 응원해 줬으리라 짐작이 갔다. 그리고 보면 학교를 그만둔 게 재작년이라면 같이 학교를 다니던 동기들은 지금쯤 졸업을 해서 회사에 취직했거나 취업준비를 하고 있을 터였다. 규문에서의 공부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일도 아니고 취업에 플러스가 되는 스펙도 아니지 않는가. 그는 아직 젊고 이제 사회가 하고 싶은 게 많을 나이였다. 연애는 또 어떠한가! 내가 그 나이 때는 들끓는 젊음을 주체하지 못해 매일 광란의 밤을 보냈는데, 그는 대신 심오한 철학과 불교의 세계를 공부하며 독서 삼매경의 밤을 지낸다. 가끔 글이 잘 안 써진다고 괴로워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술과 담배도 하지 않고 늘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려고 한다. 오죽하면 그는 일찍부터 내복을 챙겨 입으면서 ‘우리 아버지는 9월 달부터 내복을 입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겠는가. 역시나 그는 아버지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아주 보기 드문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애초 나는 '그와 주변인들에게 묻고 캐는 방식으로 관찰 일기를 써볼까'라고도 생각했었지만 관찰 일기를 쓴다고 요란스럽게 굴기가 싫었고 혹시 그가 그의 관찰일기를 읽고 기분을 상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규문 사이트에 올라온 그의 글을 읽는 것이었다. '민호샘에 대한 관찰 일기를 어떻게 쓸 수 있을까'라고 3일 동안 고심하던 끝에 떠오른 이 아이디어였다. 그가 쓴 글에는 평소 말로는 하기 힘든 그의 고민들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가 글에서 인용한 니체의 문장들을 읽으면서, 니체의 책을 읽고 싶던 나에게 '아침놀을 같이 읽으면 어떻겠습니까?'라고 제안했던 며칠 전의 일이 떠올랐다. 민호샘에 대해 알아보려고 읽었지만 스스로도 충분히 숙고해 볼만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술술 읽혔다.

철봉이 '언제 설치된 거냐'고 물으니 예전에 '규문 식구였던 누구가 달아 놨다'고 한다. 그도 민호샘처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인상이 찌그러질 정도로 턱걸이를 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이제는 그 철봉의 원(原) 애용자는 없고 대신 그 자리에 신(新) 애용자 민호샘이 있었다.

"사람 앞일 알 수 없다잖아요. 어떤 변수로 인해 규문에서 공부할 수 없는 사정이 생길 수도 있고 규문이 영원할 순 없으니까." 몇 달 전 어떤 이야기 중에 나는 민호샘에게 이렇게 물었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그럴지도 모르죠. 채운샘 건강도 안 좋으시고 가끔 공부하러 어디론가 떠나신다고 농담처럼 말씀하시는데, 그래서 채운샘 계실 때 조금이라도 더 공부해둬야죠." 당시 그의 대답에 무게가 느껴져서 더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규문에 매일 와서 공부하는 것을 망설이던 때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처음 공부하러 온 날 너무 편해서 책은 몇 장 못 읽고 종일 졸다만 갔기 때문이다. '이곳의 기운이 책읽기에는 나와 맞지 않는다' 생각했다. 나는 사람들이 많고 익명이 보장된 장소일수록 책이 솔솔 잘 읽혔기 때문이다. 지하철 플랫폼 벤치나 규모 큰 커피숍, 공공도서관 등이 그랬다.

어려서부터 나는 유독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이제는 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스물 살 때 겪었던 정신적 장애가 아직도 남아있는 것인가. 나는 군중이 많은 곳이나, 특히 낯선 사람이 많은 좁은 공간에 있으면 다리에 힘이 풀리고 손에 땀이 흥건할 정도로 긴장을 했다. 그리고 자의식이 강했던 탓에 눈을 떠서부터 잘 때까지 머리 속의 혼잣말이 끊기지 않았다. 대학교 1학년 때가 제일 심했다. 부모님한테 말을 한다 해도 이해할 수 없을 거 같았다. 그냥 낯가림이 심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지만 점점 심해져서 내 방은 잠자는 곳만 빼놓고는 온통 잡다한 쓰레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나 이외에는 전부 신경 쓰기 싫었던지도 모르겠다. 유독 거울을 자주 봤는데 얼굴에 작은 뾰루지라도 나는 날이면 밖에 나가지 않거나 외출 시에는 더욱 남의 시선을 의식해, 지하철을 타면 고개를 숙이거나 창가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사람들과 혹시나 눈이 마주쳐서 나의 흉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무서웠다. 그래서 머리가 길었음에도 모자를 항상 쓰고 다녔고 실내에서도 모자를 벗을 수가 없었다. 간혹 ‘잘 생겼다’는 말을 들으면 당장은 기분이 좋아졌지만 다시 거울을 보면 금세 침울해졌다. 얼굴의 모공들은 실제보다 커져보여서 마치 곰보처럼 흉측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간혹 용기를 내 모자를 쓰지 않고 외출할 때는 머리를 만지는 시간이 보통은 1시간 이상 걸렸다. 다시 머리감고 만지고 그래도 마음에 안 들면 한시 간 걸린 머리를 헝클고 침울해져 다시 모자를 썼다. 그리고 자주 가슴에 돌멩이가 들어차서 죽을 것 같은 불안을 느꼈는데 저녁이 돼서 집으로 귀가하는 날은 더 심했다.

나의 정신적 장애와 싸웠던 역사는 길다. 나이 서른이 됐을 때 연극을 했던 이유도 그런 장애를 극복하고자 했던 방편이었다. 하지만 하다보니 욕심이나서 일년동안 노력해 주인공까지 따냈지만, 연기를 못한다는 악평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결국 연극도 그다지 나를 변화시켜주지 못한 채 재능에 대한 회의와 상처만 남겼다. 나이가 들수록 한정된 몇몇 외엔 타인과의 소통이 어려웠다. 그래서 낯선 나라에 여행을 다니고 더는 외모에 신경 쓰는 일이 없도록 머리를 밀었다. 한때는 히피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어 그런 친구들과 어울렸지만 그들 또한 여행에서 돌아와 사회 속에 섞이면 나보다 더 생활에 어려움을 느꼈다. 나는 언제부턴가 화장실을 제외하곤 거울을 두는 법도 없고 거울을 보지 않는다. 셀카도 찍는 법도 없고 독사진이 있다면 그건 누군가 찍어줘서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나의 정신적 장애가 아직도 유효한가 보다. 예전보다야 많이 좋아졌지만 가끔 군중 속에도 타인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자신에게 빠져들 때가 있다. 이런 장애가 아마도 규문에서도 작동했을 듯 싶다. '편했다'라고 표현했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니 산만해져 책이 읽히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듯 싶다. 지금은 사실 장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덕에 규문까지 이르는 긴 여정에 도달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잊고 있던 개인사가 이렇게 글쓰기를 통해 다시 상기되니, 이것을 공부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민호샘의 몸짓과 얼굴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삐에로 같은 이미지가 있다. 가끔 그가 웃긴 농담이나 얼굴을 찡그려서 웃긴 표정을 지을 때면 '삐에로는 날 보고 웃지'라는 김완선 노래가 생각난다. 그의 표정이 나에게 마냥 웃기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 표정이 자신의 슬픈 감정을 감추는 행위예술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는 것일까. 그가 단순히 다른 사람을 웃기려고 할 때도 있지만 남의 시선에 자신의 그늘을 들키기 않으려는 수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이면에는 인정욕이 있다. 하지만 인정욕이 강할수록 타인의 기대에 맞추어 살기 십상이기 때문에 항상 자기 부재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때는 서점의 진열장에 흔하게 보였던 ‘자기찾기’의 계발서들이 놓여있던 풍경처럼 자신의 진열장에도 타인의 기대에 빚어놓는 자기의 여러 모습들이 놓여있는 것은 아닐지 의심해 볼 일이다.

다시 철봉으로 돌아와서, 저 철봉이 규문에 와서 쓰여지기까지 수많은 과정이 있었던 것처럼 민호샘도 규문에 오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가 이전의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물어보는 일은 조심스런 일이었지만 그의 글과 대화를 통해 조금 알게 된 바로는 어릴 때 교회 공동체에서 생활했고 이후에 아버지와 그 공동체와 빠져나와 둘이 줄 곧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의 삶도 녹록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민호샘을 봤을 때는 단란한 가정에서 착하고 곱게 자란 범생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오늘도 분명 철봉에 자신의 무게를 실고 광란의 턱걸이를 할 민호샘을 생각하고 철봉을 보니 그 처지가 나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대형트럭을 운전하시거든요. 거기에 핸드폰만 몇 톤씩 실고 간다는 거예요. 그것들이 다 재활용이 안 되는 폐기물들이예요."
얼마 전 비기너스 세미나 때 민호샘은 그의 아버지가 싣고 다니시던 핸드폰 폐기물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오래전 낡은 폰을 정리해 집 앞 동네 쓰레기장에 버렸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민호샘 아버지님의 트럭에 그 버렸던 핸드폰이 실려 가는 상상을 했다. 어쩌면 정말 그랬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누가 알겠는가. 우리 각자는 사실 한번쯤은 어디에서 스쳐지나갔거나 사실의 그가 아는 어떤 지인과 가까운 사이였을 수도 있고 얼마 전 당했던 작은 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었을 수도 있으며, 지금도 그것이 유효한 상태일 수도 있다. 더구나 가깝거나 먼 미래에 원수지간이거나 은인이 되지 않을 법도 없는 것이다.

민호샘과 나의 장애 그리고 철봉까지도 결국 삶이란 고통에 기반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사실 평소에는 밝은 모습의 민호샘이지만 그런 나의 느낌으로 그가 어둡게 비춰졌다면 어디까지나 나의 좁은 관점에서 비롯된 일이니 이해를 구한다. “사람들은 민호에 대한 객관성보다는 훈이가 사람을 보는 관점을 보고 싶어 한다”는 채운샘 말에 힘을 얻어 거둬들였던 나의 이야기를 다시 싣고 수정하느라 다소 지체돼 약속 시간보다 늦게 올리게 된 점, 애독자분들께 ‘꾸벅’ 이해를 구합니다.
전체 4

  • 2020-11-09 09:09
    4번째 문단에서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차태현이 아련하게 전지현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이 오버랩됐습니다. 흡사 반려자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처럼 읽혔네요. ㅋㅋ
    아무튼 계속 같이 생활해왔던 사람의 눈이 아니라 이제 함께하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철봉'이 가장 눈에 띄는군요. 철봉처럼 살아가는 민호와 훈쌤을 모두 응원합니다.

    • 2020-11-11 13:57
      ㅎㅎ 그랬던가요. 그 응원 받아서 다음 회에는 좀더 심도 깊은 관찰일기를 써보겠습니다. ~^^

  • 2020-11-13 09:43
    훈샘...언제나 썰렁한 개그를 하는 민호에게서 슬픔을 읽어내셨군요. 삐에로에 민호를 비유하는 훈샘 특유의 통찰에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다음편도 기대됩니다!!

    • 2020-11-14 10:00
      민호샘의 관찰일기를 발판삼아 다음회 정진하겠습니다. 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