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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의 관찰 일기> 3화 "규문과 규창"

작성자
김훈
작성일
2020-11-23 00:18
조회
265
"훈이의 노동일기"에 이어 "훈이의 관찰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4n세 훈님이 연구실의 친구들과 세미나들 관찰을 빙자하여 자신의 얘기를 하는 코너가 될 듯합니다.^^



<훈이의 관찰일기>3화

규문과 규창

규문에 처음 당도한 것은 올해 봄이었다. 어떤 연유로 이곳까지 이르게 됐는지 기억해내려고 하니 단 2년 전의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의 나라 신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처럼 낯설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는 일이 어떤 보탬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글쓰기를 통해 내가 살아온 일들을 스스로 재조명해보고 공부로 삼을 줄이야 어떻게 알 수가 있었단 말인가. 눈앞에 닥친 일에만 급급하게 살기에 바빴다.

그 2년 전에 나는 부모의 집을 떠나온 후로는 줄곧 떠돌이 같은 신세였다. 지금에서야 그 때의 일을 '라다크의 순례'에 비유해 글을 쓰고 나름의 성찰로 가져올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몇몇 필요한 물건을 담은 배낭과 몇 푼 안 되는 돈으로는 앞날이 캄캄할 뿐이었다. 그래도 가슴에는 이상스레 불안보다는 앞으로 잘 될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 같은 게 있었다. 어찌됐든 내 힘으로 살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었던가. 집 나오기 전 아는 형이 준 전화번호로 주소를 받아놓은 곳이 있었다. 경상도 상주에 위치한 명상공동체였다. 그곳에서 봄나물을 뜯으면 먹고 재워주고 한 달에 150만원을 준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일용직에 비하면 형편없는 돈이었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신세가 아니었다. 이왕 짐 싸들고 나온 거 발길 닿는 대로 가능한 한 멀리 떠돌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50일여 정도 일한다고 그랬으니 가진 돈과 합치면 300만원 정도가 생기는 것이었다. 그러면 당분간은 떠돌아 다녀도 밥 굶을 일은 없었다.

상주에 도착하니 '위파사나'라는 명상을 열흘간 통과한 사람들에게만 나물 뜯기를 시켜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까짓 거'하고 하루 해봤다. 정말 죽을 맛이었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더니, 애초에 명상이라는 것도 난생처음이었지만 나의 머릿속 명상이란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편안하게 힐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새벽에 5시 반에 일어나 저녁 9시 까지 식사 시간을 빼고는 종일 2시간 명상과 10분간 휴식을 반복해야 했다. 평소 10분만 양반다리를 해도 다리가 저려서 곤혹스러웠던 내가 아니나 다를까 처음엔 다리가 아파서 등과 손에 땀이 났고 그 후엔 허리와 무릎이 아파서 자세를 자주 바꿨다. 그렇게 2시간에 지옥과 10분간의  짧은 천국을 번갈아 맛보면서 5일째 되던 날 명상 지도하는 선생님 앞으로 기어가 "저는 더 이상 다리가 아파서 못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같이 명상을 하던 사람들이 다 들었을 것이다. 좀 창피하긴 했지만, 아니면 정말 짐 싸들고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다음 날 6일째부터 힘들 때는 뒤에서 의자에 앉아 명상을 할 수 있게 해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 부터 명상을 해왔었다. 그런 사실을 몰랐던 나는 앞을 보고 양옆을 봐도 다들 잘 견디고 있었기에 미련스럽게 참아왔던 것이었다.

그 해 상주의 3월은 새벽 들판에 나가 오줌을 싸면 어둠 속에서도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추웠지만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보면 빼곡히 덮은 별들은 정말 아름다웠다. 당시에는 열흘간의 위파사나가 부모의 집을 떠나 겪게 된 첫 번째의 고난이자 나물 뜯기를 위한 통과의례라고 여겼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오랜 열망이었던 자기 삶을 살고 싶었던, 나에게 찾아 온 첫 번째 행운이자 공부하는 삶을 위한 통과의례였던 것 같다.

미얀마로 들어가기 위한 여비를 마련하고자 나물 뜯으러 온 '그대로님(명상 공동체에서는 별칭을 만들어 사용했다)'이라는 분이 있었다. 미얀마에서 스님으로 십 여 년 있다가 스님 계를 내려놓고 모국인 한국에 왔지만 여러 피치 못할 사연들로 인해 다시 미얀마로 들어가려고 했다. 나는 그대로님과 저녁 9시에 명상을 마치면 몰래 플래시를 들고 깜깜한 산길을 따라 30분여 정도 마을로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이야기꽃은 조그만 구멍가게에 이르러 맥주 한 캔씩을 다 비울 때까지도 끝이 날 줄을 몰랐다. 구멍가게 앞 평상을 비추던 가로등 밑으로 머리를 빡빡 밀은 두 사람이 있었다. 한사람은 얼마 전까지 미얀마 스님이었고 또 한사람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늘 불교와 연이 닿는 사람이었다. (십여 년 전 인도 캘커타에 오기 전 나와 똑 닮은 도플갱어 티베트 스님이 기차역에서 차 한 잔을 건넸다며 신기하게 나를 쳐다보던 친구와 연인이 되었고 몇 년 전 영험한 무당이라며 사람들과 재미삼아 갔던 곳에서 ‘부처님의 자식이라며 팔자에 결혼이 없다’라는 악담을 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재작년에는 라다크 길이 막혀서 예정에 없던 다람살라에 가서 달라이라마를 뵙고는 뜬금없이 눈물이 났었고 어릴 적 불심이 깊던 할머니는 조계사 절 중 가장 큰 곳이라며 날 데리고 가서는 붉거나 노란 등에 식구들 이름을 써서 달고는, 후끈후끈한 온돌방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관세음보살'을 외치며 함께 잠들었었다.) 그렇게 절친이 된 그대로님은 어느 날 "서울에 올라가면 삼돌님(내 별칭이었다)은 책을 좋아하니 ‘감이당’이라는 데를 찾아가 봐요. 거기 고미숙씨라는 분을 내가 만난 적이 있는데 좀 깨친 분 같더라고, 아마 도움이 될 거예요."라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흘려듣지 않고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상주에서 나물 뜯기를 마친 후 가까운 영주에 살고 있는 지인을 만나러 갔다가 마침 96세까지 손수 밥을 지어드실 정도로 건강하게 생활하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촌집이 나왔다길래 일백만원에 샀다. (그리고 그 밖에도 이 집을 얽힌 아름다운 여러 사연들이 있었다. 그 사연들이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 싶다. 어떤 사람의 사연을 고스란히 안고있는 집을 산다는 것은 단순히 도시에서 집을 사고 파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이 이야기는 나중을 위해서 남겨둬야겠다.) 하지만 손수 집의 낡은 것을 뜯고 부수고 깨고 보니 다시 고치고 붙이고 바르는 수리비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수중에 돈이 다 떨어질 때 쯤 친동생한테 전화가 왔었다. "형 전라도 쪽에 몇 달 알바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몇 달 측량알바를 해서 번 돈으로 집을 마저 손보고 겨울에 되었을 때 쯤, 잠시 몇 달만 머물 요량으로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그 때 그대로님이 했던 말을 잊지 않고 바로 시작할 수 있었던 감이당의 '천 개의 고원' 세미나를 등록하게 된 것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접하는 철학책으로 들뢰즈의 천 개의 고원이 될 줄이야' 사전 지식이 없던 초행자는 무모했다. 도대체 하나도 읽히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독파하면 뭔가 있겠지 하고 억지로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그 세미나 덕에 규문 비기너스의 부천 팀 샘들과 친해져서 함께 산책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엔 푸코를 듣고 싶다고 그랬더니 규문을 소개해서 왔던 것이었다.

애초 서울 부모님에 있을 때 일찍이 규문을 알았더라면 세미나는 등록했을지 모르지만 매일 나와 공부하겠다는 발심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상주와 영주, 전라도를 떠돌다 서울에 왔을 때 나는 공부할 수 있는 정신과 조건들이 되었던 것 같다. 여하튼 부천 팀 샘들의 꼬심, 그것이 규문과의 첫 인연이었다.

규문에서의 나와 가장 다른 사람을 짚으라면 규창샘일 것이다. 평소 매일 머리를 쥐어뜯는 포스로 공부를 하는 건화샘과 민호샘을 생각하면 규창샘은 굉장히 안정적으로 티도 안내면서 할 거 다하는 우등생의 이미지가 있다. 전에 규창샘이 자신이 운전면허시험 볼 때 도로 주행했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감독관이 옆에서 뭐라고 하던 간에 채점구간이 아니라면 저속으로 천천히 운전했다는 것이었다. 즉 딱 점수에 관여된 것에만 집중해서 시험을 치렀다는 것이었다. 이 사례만 봐도 규창샘의 점수와 관계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분별력과 외부의 힘에 흔들리지 않는 마인드컨트롤을 엿볼 수 있었다. 반면 나는 얼마 전 도로주행을 할 때 옆에서 감독관이 채점구간이 아닌데도 속도 느리다고 한숨을 쉬며 "내 원 참" 혼잣말한 것에 마음이 흔들려 실수를 연발하고 떨어져 재시험을 치렀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하기에 규창샘이야말로 가장 여린 속을 지녔다. 막연히 보면 그런 여린 부분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만큼 자신이 드러나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거리를 사람들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필요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같이 탁구를 하다보면 규창샘이 불필요한 몸동작을 하지 않으며 계산적으로 볼을 방향을 생각해서 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나는 가장 불필요한 동작 투성이다. 탁구 초보인데다 뭔가 "요시"하는 기합 따위나 오버액션은 승패에 상관없이 그 상황을 그냥 즐기게 만든다. 그런데 그렇게 습관적으로 내가 "요시"하거나 재밌는 손동작을 하면 규창샘도 따라서 해준다. 가끔 귀여운 의성어를 내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그 여린 한쪽에는 아이 같은 심성도 숨어있는 듯싶다.

스타워즈에서 로봇 ‘알투티투’와 친구인 금색의 키다리 로봇친구가 있다. ‘쓰리피오’라고 하는데.. 비록 로봇이지만 인간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겉은 로봇 같지만 가장 인간적인 내면을 가졌다고 할까. 규창샘에게 그런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그도 인간인지라 간혹 흔들리는 날들이 있다. 며칠전 여자 친구와 사이가 안 좋아져 종일 심란하다는 그의 말을 들으니 역시 규창샘도 여자 친구 앞에선 약하구나 싶었다. 아주 흔하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탁구에서 유난히 실수가 많았던 날도 있었다. 그의 표정에서 뭔가 상념이 많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어찌 보면 그 누구보다도 규창샘의 여린 속은 외부의 충격에 쉽게 전쟁터가 될 요지를 가지고 있어서, 스스로 자신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내면에 견고한 성을 쌓았을 수도 있겠다 싶다.

나는 요즘 규창샘과 함께 한자를 외우고 있다. 조목조목 무엇이 틀렸고 어떻게 써야할지 가르쳐주고 확실히 외웠다 싶을 때까지 반복해 쓰도록 격려했다. 하기로 한 양보다 적게 외워 와도 그것을 탓하기보다 외워온 만큼의 그것을 완전히 숙지할 수 있게 도와줬다. 함께 오금희할 때도 그랬다. 상대가 배우는 속도에 따라 여러 번 반복해서 보여주고 할 수 있을 만큼만 진도를 나갔다. 사려 깊은 가르침이랄까. 나는 그런 점에 규창샘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상주에서 그대로님이 나에게 공부할 수 있는 연을 만들어줬던 것처럼 규창샘 덕분에 동양철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기반인 한자를 배우게 된 것이다. 혼자서 하려면 끙끙 앓으며 힘겨워할 것을 규문의 식구들의 도움으로 하루하루 공부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기적인지. 그리고 상주에서부터 줄곧 이어온 나의 행운을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축복받았는지. 그저 모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나 또한 받아온 것을 다른 이에게 틈틈이 베풀면서 살아야할 듯싶다.
전체 5

  • 2020-11-23 09:11
    오오. 규문에 오기까지 수많은 만남들을 가지셨군요. 가끔 누가 어떻게 규문에 오게 됐냐고 하면, '우연히 오게 됐다'고 했을 뿐 긍정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훈쌤은 그 과정들 속에서 규문에서 공부할 조건을 갖췄다고 보시는군요. 오오... 개인적으로 놀라운 통찰로 느껴졌습니다. 그나저나 우등생 같은 이미지라니, 이거 감당하기 힘든 이미진데요. 하하;; 어쨌든 숨겼다고 생각했지만 훈쌤께 저의 속내를 들켜버리고 말았군요! 훈쌤과 함께하는 것이 저에게 명상의 기회가 될 수 있겠습니다.

  • 2020-11-23 09:41
    훈샘의 일대기는 동화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하네요ㅎㅎ 집 밖으로 나서니 온갖 마주침들과 시련들이 이어지는군요! 얼른 다음 이야기도 듣고싶습니다

  • 2020-11-23 11:31
    규창이가 쓰리피오인 건가요?ㅋㅋㅋㅋ 탁구공 하나를 받아치면서도 약한 내면을 감지하는 훈샘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글입니다! 다음 관찰대상은 누구인지 기대되네요 ㅎㅎ

  • 2020-11-23 21:48
    배움이 역량이 정말 풍부하신 훈쌤.. 주변에 훈쌤을 위한 사람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훈쌤의 시선으로 보는 규문 식구들이 또 새롭게 보입니다.

  • 2020-11-24 15:48
    우등생 규창이와 쓰리피오 조합이라니 ㅎㅎ. 관찰일기에 공부여로에 나선 두 청년들의 건강함이 뿜뿜 묻어나네요. 영락없는 부처님의 짜식들이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