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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의 관찰 일기> 4화 "첫 여행과 건화"

작성자
김훈
작성일
2020-11-29 23:51
조회
252
"훈이의 노동일기"에 이어 "훈이의 관찰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4n세 훈님이 연구실의 친구들과 세미나들 관찰을 빙자하여 자신의 얘기를 하는 코너가 될 듯합니다.^^



<훈이의 관찰 일기> 4화

첫여행과 건화


#1

올해 여름 사회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됐을 때였다. 나는 더 이상 커피숍과 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던 터에 유일하게 집 외에 실내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곳은 규문이었다. 전에도 하루 정도 규문에서 공부한 적이 있었지만 건화샘이 수시로 가져다주는 간식에 배는 부르고 잠만 쏟아졌었다. 특히 다른 사람을 의식하게 되는 낯선 환경에서 책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었다. 삼시세끼가 내 집에서 손수 해먹는 것보다 맛있고 푸짐했다. 게다가 제 돈이 들지 않다니, 매일 싼 식자재를 사기 위해 야채 집 마감시간에 맞춰서 가야 하고, 때때로 어떤 반찬을 만들어 먹어야 할지 가성비를 따지고 사서는 좁은 주방에서 긴 시간을 들여야 했다. 그리고 커피숍이나 도서관에서 고정적으로 지출하던 한 끼 값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니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당연히 규문에서 공부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안락한 호사로움에 이질감을 느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낯설고 불편했다. 이런 공동체 생활도 처음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부모의 집에서 떠난 후로는 늘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립적으로 살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그 하루 규문에 갔다 오고 나서는 마음이 더는 동하지 않아 혼자서 공부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점차 '그것도 내가 틀 지어놓은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고민하게 되었고 언젠가는 그런 틀을 스스로 깨고 나와야 한다고 자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2단계만 했을 때도 삼성동 별마당 도서관은 유일하게 개방을 했던 곳이었다. 사는 불광동에서 삼성동은 멀었지만 익명성이 보장된 곳에서 들고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책을 읽는 것이 좋았다. 그마저도 불가능해지니 내 운명은 혜화동의 규문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상황이 그렇게 맞물려 가면 '이건 운명인 것 같다.'라고 받아들이고 그것에 적응하기 마련인 것 같다.

건화샘에게는 가끔 아는 형 같이 '괜찮습니다.' 하고 상대의 등을 토닥여줄 거 같은 뉘앙스가 풍길 때가 있다. 하지만 반면에 빡빡 밀은 자신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으며 혼자서 고뇌하는 소년 철학자 같은 모습도 있다. 또한 그는 탁구를 치면 승부욕이 유독 발동하는데 지지 않기 위해 가장 열심히 치는 모습을 보면 그가 공부하는 스타일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잘하고 싶은 마음, 공부라는 게임에서 승리를 쟁취하고 싶은 소년 철학자? 혹은 인정욕? 어찌됐든 그가 욕망하는 만큼 공부가 되지 않을 때는 스스로 얼마나 자괴감을 느낄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연극을 그만 둔 이유도 일 년의 오십만 원을 받았지만 생활고 보다는 재능의 회의를 느껴서 관뒀기 때문이었다. 배고픈 것은 어떻든 견디지만 연극배우에게 재능이 없다는 것만큼 치명적인 것은 없다. 하지만 이것은 누구나 겪는 문제이기도 했다. 이 고비가 잘 견디고 넘어가는 친구들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됐다. 그때는 몰랐었다. 자기에게 가장 한계치나 위기일 때 큰 성찰을 이룰 수 있는 지점이라는 것을.., 탁구장 가던 길이었던가? 건화샘이 그제 나에게 여행했던 때를 질문했었지만 함께 걷던 시간이 짧아 제대로 답을 못해줬었다. 그 때 심란해하던 몇 달 전 건화샘의 얼굴이 겹쳐 떠올랐다. 오늘 저녁밥을 먹으면서 나는 "건화샘과 규문은 어떤 관계입니까?"라고 건화샘에게 물었었다. 그의 대답은 "안에 있고 싶지만 밖으로도 나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수수께끼 같은 대답의 의미를 나는 짐작할 수 있었던지라 "이런 욕심쟁이!"라고 농을 쳤지만 그는 고뇌하는 소년 철학자의 모습 외에도 자신의 틀을 깨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같은 모습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내부 투쟁은 진행형인 것이다. 하지만 그 투쟁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2

한 달여 정도면 올해가 마무리된다. 예전 같으면 길거리엔 캐럴송이 들리고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요란했을 터인데 코로나 2단계 인해 연말 분위기는커녕 가게들이 일찍 문을 닫는 통에 귀갓길 한산한 거리의 추위는 더 매섭게 느껴진다. 오전에 지하철을 타고 규문에 오는데 어느 아줌마의 손에 들려진 커다란 검은 봉지 위로 크리스마스트리가 살짝 삐져나온 것이 보였다. 가만히 그것을 보고 있자니 왠지 그 트리엔 온갖 반짝이는 장식보다는 집 안에 쓰고 쌓아둔 마스크들을 달아놔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건화샘이 그제 나에게 여행에 대해 물었지만 잠깐 함께 가던 길이었기에 자세히 들려주지 못했다. 내가 여행을 처음 했던 것은 34살의 늦은 막한 나이였다. 나는 언제나 변화를 원했다. 사는 현실도 나의 모습도 늘 불만에 차 있었고 이것은 근본적으로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연극도 그래서 시작했던 것이었고 여행도 그런 일련의 과정이었다. 연극을 관두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인도의 바라나시'라는 다큐를 본 적이 있었다. 인터넷을 뒤지니 비행기티켓은 80만 원이였지만 현지 한 달 생활비는 30~50만원 밖에 들지 않았다. 넉넉잡고 150만원이면 한 달 여행이 가능했다. 줄곧 무슨 일이든 놀지 않고 일을 했었기 때문에 사정이 어려운 집을 도와주고도 가능한 금액이었다. 인도 관련 사이트에도 가입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배낭과 필요한 물품들은 조금씩 준비해나갔다. 그런데 여행 일자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집에 급전이 필요해 여행을 포기해야했었다. 근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부모님 사정이야 어찌됐건 간절했다면 가고야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막상 가려니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여권도 처음 만드는 것이었고 비행기도 처음이었다. 낯선 나라를 간다는 것은 더더욱 인생의 최대 모험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 가려고 다 준비했다가 집에 또다시 사정이 생겨 못 가게 된다. 그렇게 두 번이나 포기했던 인도 배낭여행을 2009년에 실현하게 된다. 그것이 이 맘 때 겨울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막 지났을 무렵에 인도 델리로 in하게 된다. 그리고 2010년의 새해를 바라나시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낯선 이방인들과 함께 맞이했다.

건화샘이 여행에 대해 물어봤을 때 미처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여행도 각자의 시절인연이 다 있어서 간절히 원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때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때의 여행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값진 경험들을 안겨준다. 나의 첫 여행인 인도에서의 3개월이 그랬었다. 비록 한 달을 계획하고 갔지만 3개월까지 연장할 수밖에 없었던 많은 사연들이 있었고 그것들은 평생 잊지 못할 내면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다음 회부터는 인도에서의 3개월을 이어가 보려고 한다. 그때의 3개월 벌어졌던 모든 일이 그 이후 십년 동안의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그 때 예언되었던 일들이 하나둘씩 실현되는 것을 체험한 나는 인간에게는 정말 운명 지어진 인연이란 게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하나 둘씩 그때의 이야기들을 풀어가는 과정 속에서 규문의 식구들의 이야기들도 함께 엮어봐야겠다.
전체 3

  • 2020-11-30 08:36
    엄청난 본편을 앞둔 예고편 같은 느낌의 관찰일기이군요! 건형을 소년 철학자처럼 보는 삼촌스런 시선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마르지 않는 훈샘의 관찰일기, 다음화도 기대됩니다~~

  • 2020-11-30 10:09
    회마다 관찰대상에 대한 비유가 빠지지 않아서 좋네요! ㅋㅋㅋ 이번에는 데미안 같은 모습이라...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군요. 어쨌든 건화형이나 훈쌤이나 규문에 오게 된 건 간절한 바람의 결과라는 것이라는 거죠? 관찰대상에 대한 훈쌤의 이야기도 궁금하지만, 훈쌤이 겪은 운명적인 이야기도 계속 기대됩니다~

  • 2020-12-01 08:15
    훈이의 관찰 일기는 지난번 글들보다 더 재미있어졌는데요~흥미진진합니다~화이팅이요~양파같은 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