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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 동사서독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07-09 17:26
조회
117
170715 동사서독 공지


[외편]은 <장자> 중에서도 희한한 파트입니다. <장자> [내편]에 보였던 유머러스함 보다는 심각함이 부각되어 있고 유가와 묵가, 법가에 대해서도 타협하는 것 같다가도 결사반대 하는 것 같이 굴어서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텍스트 이름은 <장자>랍니다. 대체 이게 어디가? <장자>를 읽으면서, 그리고 토론을 하면서 늘 걸리던 지점 중 하나였지요.

이번에 읽은 [천도天道]편은 거의 법가와 유가와 비슷한 <장자>였습니다. ‘왕이 무위無爲하는데 신하는 유위有爲’하는 구도는 딱 법가의 시스템을 닮았고 하늘을 법 삼아 통치하는 것은 유가를 연상시킵니다. [내편]에서 어떻게 이런 텍스트가 나온 것일까요? 이 이질성을 설명해내는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것도 <장자>를 읽는 과제 중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다. 장자 후학들은 법가가 통일한 제국, 제국의 몰락, 유가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국가의 출현 등을 보았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진시대의 장자학파와는 다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그런데도 자기들은 장자학파라는 정체성 하에서 여러 각도로 고민한 흔적이 우리가 [내편]과 너무도 다르다고 생각한 [외편]의 논조들 아니었을까요.

이번에 읽는 부분은 <장자> [외편] 중에서도 ‘황로학파’에 해당되는 편입니다. 그전 무군파는 국가라든가 정치체에 대한 부정을 말했다면 황로학파는 군주와 통치의 존재를 인정하고 또 어떻게 통치하면 되는지 생각합니다. 단, 무위無爲의 이름으로. 바로 노자가 연상되는 부분이죠. 하지만 완전히 노자적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오히려 법가에 가깝게 보이기도 하고요. 즉 현실정치에 대한 고민이 분명 드러나는데 어느 파에 속한다고 똑 부러지게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외편]의 뉘앙스는 대개 이런 식인 것 같습니다. 앞에서 심각하게 주장한 것을 뒤에서 바로 뒤엎는 것이 나오며 읽는 이가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외편]이 심각하고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장자>인 이유는 이런 모호함도 한몫 하는 것이 아닐까요? [외편]의 저자들은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정치라고 하는 영역을 흩어놓는 것입니다. <장자>에서는 기본적으로 안 되는 것을 억지로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학의 다리를 자르지 말고 오리의 다리를 늘리지 말라는 것이 <장자> [외편]에서의 주장이었죠. 모두를 동일하게 하려는 것, 즉 ‘통합’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본성을 어지럽힌다고 경고하는 것이 <장자>라는 텍스트인 것. 이런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면 유가와 타협을 하든 법가와 타협을 하든 <장자>라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들뢰즈의 표현을 빌리면 <장자>는 ‘탈영토화 계수’가 높은 철학입니다. 사상의 경계가 넓은 것이죠.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보편선입니다. 누구나 옳다고 여기는 차원이 있다고 생각해야 통합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보편선은 애초에 없으며 각자의 관점만 있다면? 그럼 우리는 어떤 것도 하지 말아야 할까요? 아니면 각자의 관점만 고집해야 할까요? 이때도 윤리적인 고민은 필요합니다. 내가 선이라고 생각하는 가치를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펼치는 것이죠. 그리고 나와 다른 집단과 만나는 지점, 공통적인 것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장자>에서 정치를 본다면 불균질적인 지점을 해석하면서 이런 생각을 계속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편화 하지 않으면서도 선善을 실천할 수 있는가.


다음 시간은 [천운天運] 편 읽어옵니다.

공통과제 써 오시고 에세이 프로포절 준비해서 만나요~

간식은 쿤우쌤, 완수쌤

후기는 규창이


다음 시간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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