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비정규 알바생 “훈이의 일기”] 3화 

작성자
김훈
작성일
2020-09-30 17:31
조회
257

규문의 최고령 인턴 4n세 훈샘이 내년 공부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 출장을 떠났습니다.
훈샘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에서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삶, 훈 샘이 읽고 계신 책 이야기까지 다양한 썰들을 가볍게~ 풀어볼 예정입니다. 
무려 주 2회! 매주 수, 일 저녁 6시에 연재될 예정이니 애독을 부탁드립니다~




_비정규 알바생 “훈이의 일기” 3화

2020년 9월 25일 일요일

측량 알바는 '변수'가 많다. 아무리 다음날 계획을 잘 잡아도 항상 예측할 수 없는 변수로 인해 그날 측량의 오차값이 생겨난다. 그리고 지리원이 허용하는 오차 범위 안에 들지 않으면 재측(현장 용어로 다시 측량한다는 뜻이다.)을 해야한다. 측량에서 단가는 측량한 거리에 비례하기 때문에, 재측이 나온다면 그날 쓴 인건비를 비롯한 모든 경비에 손해보게 된다.

그 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변수'로 측량 시간이 길어지면 그 만큼 체력 부담이 커진다. 새벽에 일찍 작업을 시작하는 것도 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오전 중에 마치려는 것이다. 또한 땡볕으로 달궈진 지면의 아지랑이는 측량의 오차를 야기해 일을 지연시킨다.

측량에 관계하는 수많은 변수들을 넓게 살펴보면 자연, 문명, 사람이라는 세분류로 나뉜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면 측량기계는 무력해진다. 또한 도로가 비포장이거나 경사지고, 통행량이 많은 현장이라면 그날 오차값에 영향을 끼친다. 현장에서 같이 일하는 직원과 일용직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사소한 오해나 다툼 그리고 근무조건과 일당에 관한 불만은 빈번히 일어나는 변수다. 즉 이런 자연, 문명, 사람 간의 복합적인 관계의 장에서 발생한 변수는 측량을 지연시키거나 오차를 발생시킨다. 물론 그런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유리하게 변수들이 작동하면 한대가리가 일찍 끝나기도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변수란 부동하는 것에는 존재할 수 없다. 날씨는 나날이 다르고 모든 지물은 그 날씨와 관계하면서 끊임없이 변한다. 이런 변화하는 날씨와 지물은 또한 사람과 관계한다. 사람은 자신의 편의를 위해 지물들을 부수고 변형시킨다. 그로부터 나온 인공의 쓰레기들은 자연을 오염시키고 날씨에 영향을 끼친다. 이런 유기적이고 복합적인 변화 속에서 사람의 신체와 마음도 끊임없이 움직인다. ‘모든 것이 변화한다’라는 맥락에서 볼 때 변수란 인간 삶의 자연스런 순리인 것이다.

오늘은 최악의 날이었다. 일하러 온 날 ‘납품 기한이 빠듯해 어쩔 수 없다’며 보통은 정오 전까지 하던 일이 이번에는 오후 1~2시까지 일을 해야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측량구간 3킬로 이내로 끝나는 것이 암묵적으로 합의가 돼있었다. 그런데 오늘 직원이 사전에 아무런 말도 없이 1킬로를 더 간 것이다. 1킬로를 더 간 덕분에 뜨거운 해를 피할 길이 없었다. 가방을 멘 등은 땀에 차고 더위를 먹은 탓에 두통이 일었다. 지면의 아지랑이와 나쁜 도로 사정까지 더해져서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측량 팀 4인 중 한명이 직원이다. 그리고 이 직원은 내 오랜 친구이기도 하다. 나는 평소대로 3킬로를 갔으면 일찍 마칠 수 있었음에도 물량 욕심을 낸 친구에게 뭐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변명 어린 어조로 ‘물량이 안나와서 그렇다.’, ‘현장 사정상 변수가 많다는 거 알지 않느냐.’라며 날 설득하려 했지만, 나는 ‘일이 늦게 끝날 것 같으면 사전에 협의가 있어야 한다. 이기적으로 회사 입장만 생각하지 말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렸다면 오늘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둘의 말다툼을 지켜보던 다른 알바생들도 그건 ‘당신네 입장만 생각하는 거’라며 날 지원해준 덕에 다툼이 더 커지지는 않았다.

이런 힘이 부치는 날이 더는 없길 바란다. 어찌보면 직원의 마음도 사전에 예측하기 힘든 변수 중 하나다. 그 직원의 마음이 현장에 내려와 있는 사장에게 잘보이기 위한 욕심이었든 뭐였든 간에 사람의 마음이 변수로 작용하면 측량의 오차처럼 삶에도 오차가 생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변수’가 ‘나의 읽고 쓰고 삶을 고민하는 것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변수는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삶의 맥락에서 이해될 때 유용해진다는 것을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즉 측량처럼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주체는 예측할 수 없는 많은 변수들과 관계하고 있으며 그 변수들이 자연, 문명, 사람 간의 복합적이고 유기적인 작용이라는 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을 때, 능동적인 읽기와 쓰기로서 삶에 유용하게 작동한다.

생계라는 금전적 변수로 측량 알바를 하게 됐지만 내가 겪는 일용직을 전체적인 삶의 맥락으로 살펴봤을 때, 그것은 삶의 순례와 닮았고 그것으로 일기를 썼을 때는 유용한 공부가 됐다. 즉 나에게 변수는 유용하게 작동했다.
전체 4

  • 2020-10-03 13:24
    추석 전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엌에서 노동절을 보낸 후, 파란 하늘에 쭉 뻗어 솟아있는 노란 스타프의 사진을 보고 눈이 시원해졌었답니다.
    금전적 변수로 측량 알바를 하시고, 규문 인턴 변수로 훈이의 일기를 쓰고 계시는 가운데 예상치 못하게 한 장의 사진이 누군가의 침침한 눈을 시원하게 하는 변수도 생기나 봅니다. ㅎㅎ

    • 2020-10-03 16:37
      무심코 올린 작업 사진이 누군가의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유용하고 아름다운 풍경사진이 될 줄을 몰랐습니다. ㅎ 따시아마님의 사물을 보는 온화한 시선이 변수를 유용하게 작동시키셨네요. ^

  • 2020-10-03 16:41
    추석연휴는 잘 보내셨나요?
    "변수란 부동하는 것에는 존재할 수 없다."라니!!! 잠을 깨워주시는 지혜로운 한마디 감사합니다. 사진을 첨부하시니 '아 이런 일을 하시는구나' 하고 이해하기 쉽고 좋아요.

    • 2020-10-03 21:38
      추석연휴 규문에서 잘 보내고 있습니다. 변수란 유동하는 삶의 일부로서 받아들일 때, 자기에게 유용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ㅎ그렇다면 담에도 사진첨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