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n

12.28 수업 공지

작성자
수경
작성일
2015-12-24 19:28
조회
634
크리스마스 이브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전 화엄경 읽으며 홀~리하게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만 ㅎㅎㅎ
다들 아시겠지만 다음 시간 진도는 화엄경 73권까지, 붓다와 더불어 유니크한 크리스마스 되시길요 ^_^

지난 시간, 드디어 선재동자가 배움을 구하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문수보살의 설법을 들었던 당시 수많은 청중 중 오직 단 한 사람, 선재만이 진정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냈던 거죠.
그런 그가 기특하고 어여뻐, 그를 맞이한 선지식들 역시 선재만큼이나 이 만남을 귀하게 여기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그들 모두가 각기 다른 방편으로 지금의 깨달음을 얻었던지라 선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도 가지각색이고, 또 스스로 이를 잘 알아 다시 선재에게 다음 번에 찾아야 할 스승을 가리켜 보이는 것도 인상적이지요.
채운쌤 왈, 스승의 역할이란 이처럼 제자에게 자신의 배움을 전하는 것뿐 아니라 다른 가르침으로 다시 제자를 인도하는 것...!

아무튼 지난 시간 핵심은 선지식, 그리고 선근입니다.
어느 한쪽이 없다면 배움은 일어날 수 없으며, 사실 어느 한 쪽이 없다면 당장 다른 한쪽도 존립 불가능합니다.
이를 설명하는 게 관건인데, 사실 선지식은 그렇다 쳐도 선근을 설명하는 게 쉽지 않네요.
선지식은 곧 스승, 그러니까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서 내게 필요한 他力입니다.
선재에게 문수보살은 일생일대의 선지식이었지요.
그는 문수보살을 통해 처음 구법의 길에 올랐고, 모든 선지식들을 통과한 뒤 그가 다시 돌아간 자리도 문수보살 앞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선재는 자신이 무엇을 버렸고 무엇을 새로 만났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답니다.
하지만 처음 선재가 문수보살 앞에 앉아 있었을 당시, 문수보살 앞에는 선재만 있었던 게 아니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한 장소에서 동시에 문수보살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유독 선재에게만 그 말이 와서 꽂힌 겁니다.
채운쌤은 여기서 선근을 논할 수 있다 하시네요.
선재를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 문수보살은 선지식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에게 선근이 심어져 있지 않아서랍니다.
선근이 없이는 아무리 위대한 선지식과 만나도 내 존재의 방향을 선회할 욕망이 일지 않습니다.
그 말인즉, 그들에게는 선지식과의 만남이 애당초 없었던 것과 매한가지라는 거죠.
문수보살은 그날 그 장소에서 오직 선재 한 사람에게만 선지식이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제 아무리 훌륭한 말을 들어도 이를 내 존재에 대한 어떤 압력으로 감각하지 못하는 한, 그것은 타력이고 뭐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선근이란 自力인 거냐... 여기서 애매해집니다.
굳이 나눠 설명하자면 배움은 선지식과 선근에 의해 가능하며, 선지식은 타력이고 선근은 자력이라 말하겠지만,,, 오해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선근이 자력이라 할 때, 이는 개체가 의지대로 발휘하고 갈고 닦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게 결코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거죠.
내가 의지가 있어서 어떤 위대한 말이 내 마음에 쏙 들어오고 아니다 싶은 말을 확 내치고, 인간이란 그렇게 생겨먹지 않았잖아요.
선재보다 많이 배운 붓다의 열 제자가 있고, 선재보다 나이가 많고 연륜이 많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수보살의 말씀 하나에 선재가 '능력자'처럼 그 자리에서 대오각성한 것도 아니고요.
다만 선재는 그 말에 감응해 움직이기 시작한 겁니다.
그때부터 그가 한 일은 보장된 것 없는 여정을 시작하는 것,  50여명 되는 선지식들을 만나기 위해 세상을 주유하는 것이었습니다.

채운쌤은 선근이란 '마음을 내는(發心) 힘'이며, 이건 자유의지에 따라, 밑도 끝도 없이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들으면 억울한 말이죠...
노력을 거듭해서, 큰 것 바라지 않고 개미처럼 나아가면 언젠가 깨달으리라 생각하고 묵묵히 매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선근은 아무한테나 주어지는 게 아니라니요.
심지어 '조상 공덕' 운운하는 소리가 나오면 더더욱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하지만 선근을 꼭 너무 거창하게, 외부에서 주어진 어떤 조커 카드 같은 거라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요.
전에 어딘가에서 한 말이지만, 길에서 폐휴지를 줍는 할머니를 봤을 때, 새벽 네 시 가까운 시각 술에 취한 채 24시간 패스트푸드점에 앉아 첫 차를 기다리며 졸고 있는 십대들을 봤을 때, 뉴스에서 일제 검거된 부산이나 대구 무슨무슨 파 조직폭력배들을 봤을 때,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저 사람들은 이변이 없는 한 죽을 때까지 이 책을 읽을 일이 없겠구나, 학교(내지 공부하는 공간) 문턱을 넘어 들어올 일이 없겠구나, 내가 좋아하는 이 저자의 이름조차 들어볼 일이 없겠구나...
그럴 때면 유독 책 앞에서 다소나마 숙연해진달까 더 진지해진달까 소중함을 느낀달까 암튼 그렇게 됩니다.
채운쌤이 말씀하신 선근이란 일단 이런 것이라고 저는 이해하려 합니다.
공부하는 장에 들어올 인연 - 그건 내 힘으로, 내 의지대로 선택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닐 겁니다.
'나' 이전에 존재하는 어떤 기운들? 기억들? 힘들? 같은 것이 모여 내 욕망이 그리로 흐르게 한 덕분일 뿐.
'나 이전'이라는 의미에서 이를 충분히 조상 공덕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그려^^

그러므로 선근이란 내 자유의지의 문제도 아니거니와 일반적으로 말하는 '재능' '머리' 같은 문제도 아니죠.
수행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공부를 잘하는 게 아니라(머리 좋은 아이가 더 빨리 깨달았다는 사례는 아함경에도 없었어요;), 공부를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채운쌤 왈, 매번 발심할 수 있는 능력, 그게 선근이랍니다.
그러므로 이 선근을 잘 키워 매순간 마음을 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이루는 것 그 자체는 내가 보장하고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만, 이룸을 믿고(信心) 이 길 위를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 이것은 할 수 있고 오직 이것만을 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개체의 역량은 바로 이 지점에서 펼쳐진다죠.
선재의 여정이 우리에게 배움을 준다면 바로 이 지점 같아요.
선재는 도를 믿고, 따라서 매순간 발심하고, 그 덕에 그 길 위에서 매순간 '입법'할 수 있었답니다.

수많은 곳을 돌고 돌아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온 선재의 이야기를 생각하다 문득 <주체의 해석학>에서 푸코가 언급한 세네카의 문장이 떠올라서 한 번 찾아봤습니다.
선재의 배움이 수많은 곳을 거쳐 자신에게 돌아오는 여정이었던 것처럼, 세네카도 세계 전체를 두루 돌아보고 탐구함으로써 결국 인간을  탐구해야 한다, 그래야 한다고 했었거든요.
"도시와 국가 전체의 지배자가 된 사람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지배자가 된 사람은 참으로 적다. 이 세상에서 위대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운명의 위협과 약속 위로 영혼을 상승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수준에 있는 것을 운명에 전혀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맑은 하늘로부터 지하 감옥의 어두운 밤으로 이행하듯이 천상의 사물들의 정경으로부터 지상으로 추락하는 우리 시선이 오직 암흑만을 발견할 때 우리는 무엇을 소망해야 하는 것일까? 위대한 것은 역경 속에서도 마치 그것을 원하기라도 하듯이 모든 사건들을 받아들이는 굳건하고 평온한 영혼이다. 모든 사건들이 신의 명령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을 안다면 그것을 열망해야 되지 않을까? 위대한 것은 자기 발밑에 운명의 화살이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임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행복하다면 그 행복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행복하다면 그 행복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봐도 멋진데, 선재와는 좀 다른 게 세네카에게서는 체념의 정서가 아주 많이 느껴지는 것 같군요;
인간의 미소함을 인지하고 행복에 도취되지 않아야 한다는, 성숙한 노년이 되어야 한다는... 대강 이런 이야기입니다.
이와 다르게 나(아상)를 버리고 다시금 나(무아/부처/모든것/세계)로 돌아온 게 선재...
라고 단정 짓기에는 우리에게 아직 읽지 않은 5권이 남아 있지만.... 킁. 암튼 그렇습니다.
나를 떠나 나로 돌아오기.  이 테마가 그리스의 자기배려, 선재동자, 니체철학에까지 공통되게 등장하는 게 뭔가 재미있습니다.
이걸 이렇게 저렇게 풀어봐도 재미있는 주제가 되겠네요...

자, 암튼. 모두들 남은 5권도 부디 즐겁게 공부해주시어요. 1월 에세이 주간이 얼마 남지 않았답니다 ㅜ
다음 시간 간식은 정우진쌤께 부탁드리고요.
그럼 다음 주 월욜에 만나요. (만두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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