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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나 사이] 나카자와 신이치의 "곰이 가져온 것 : 근원을 더듬어가는 발자취"[1]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21-01-28 23:22
조회
186
새로 시작되는 '곰&나 사이'는 연구실의 삼십대 청년 혜원이가 올 한 해 신화학, 생태학,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관련 글들을 번역하고 씨앗문장으로 글을 써나가는 연재코너입니다. 제2, 제3의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만물의 상호연결성'을 저 무의식적 지평에서 다시 끌어 올리는 것이 아닐까요? 포스트 코로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코너가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곰이 가져온 것 : 근원을 더듬어가는 발자취 (1)*


 

하타나카 : 곰 특집을 기획한 이유는 곰에게 ‘쿠마몬’* 대히트로 대표되는 마스코트적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만, 다른 하나는 나카자와 씨가 2002년에 『곰에서 왕으로』에서 쓰신 것처럼(2001년 9․11 전부터 강의했던 이야기네요) 곰이라는 존재는 국가의 성립과 깊은 연관관계가 있고, 그것이 9.11에 대한 문제계에 실제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이하게도 그로부터 약 10년 후인 2012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 다시 한 번 그 점이 교차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3.11 이후 곰과 국가의 관계를 중심으로 다양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나카자와 : 『곰에서 왕으로』 강의를 하던 도중 9.11이 일어난 것을 확실히 기억하는데, 그당시 신비한 경위로 9.11 직후 『스바루(すばる)』(集英社)에 「절대적 비대칭」 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9.11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글이었는데, 불가사의하게도 글을 쓰고 있을 때 실제로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 1896~1933)의 책이 책장에서 떨어졌습니다. 그 책에 수록된 「빙하쥐의 모피」라는 작품이 눈에 확 들어왔죠. 9.11 문제를 적확하게 간파하고 있는 이야기로 말입니다.

인간이 동물세계에 압도적 지배력을 행사하며 그 세계를 관리하고, 동물은 극히 빈약한 생존상태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 지구의 생태권에서 발생하고 있는 격차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를 겐지는 생각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곰이 리더가 되어 쿠데타를 일으키는데, 인간들의 쾌적한 북방행 열차에 올라탄 동물들이 테러를 일으킬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동물들을 통합하는 신화적 리더가 곰입니다. 이 이야기는 여러 의미로 충격적입니다. 읽다보면 동물신화와 신자유주의의 문제가 단숨에 결부되는 기분이 듭니다. 인간세계에서 생겨난 절대적 격차 문제와(당시 스티글리츠(Joseph Eugene Stiglitz, 1943~, 미국의 경제학자) 등이 ‘비대칭’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죠) 인간과 동물 사이에 있는 절대적 비대칭 관계를 돌아보면, 9.11 사건 근저에 미야자와 겐지가 보여준 ‘절대적 비대칭’과 유사한 태도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거기서부터 『곰에서 왕으로』라는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자연계의 수장(首長)인 곰이 있고, 거기서 인간계의 수장인 왕이 출현했는데, 그로부터 생겨난 비약과 절단과 변증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에도 나오겠지만 곰이 테디베어나 곰돌이 푸처럼 아이들에게 가까운 애완동물이(‘펫pet’이 아니라) 되는 의미, 다시 말해 외경의 대상이자 친숙함의 대상인 상반된 존재라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곰은 인간 상상력의 근원에 있는 동물이며, 개나 고양이보다도 훨씬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유리이카ユリイカ」(靑土社) 곰 특집호(2013년 9월호)에 수록된 하타나카 아키히로(畑中章宏)와의 대담. - 역자

**구마모토현에서 만든 마스코트이다. 곰을 뜻하는 쿠마(クマ)와 사람을 뜻하는 몬(モン)을 합쳐 마스코트 이름을 쿠마몬이라고 지었다. 2010년 3월 홍보용 마스코트로 발표 되었고 큰 인기를 끌었다. -역자


하타나카 : 그 신비로움에 대해서는 이미 학문적으로 말씀하셨죠. 그런데 가령 아이누*의 경우 이요만테**와 같이 곰 신화나 의례가 많이 전해지지만, 아이누 이외 지역에서 일본인과 곰의 관계는 그다지 확실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카자와 : 제대로 명시되는 부분이 적을 뿐, 마타기***와 곰의 관계는 무척 깊습니다. 민속학에는 곰과 관련된 그들의 경험이나 전승이 방대하게 집적되어 있습니다. 민속학에서 곰은 단골소재이고, 다른 중세 기록물에서도 곰은 신화적 신으로 등장합니다. 대개 반달가슴곰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날의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의 동북지방, 러시아의 쿠릴 열도, 사할린 섬, 캄차카 반도에 정착해 살던 선주민이다. - 역자
**이요만테는 아이누인의 불곰에 관한 풍습이다. 겨울 말엽에 아직 월동 중인 곰굴에 들어간다. 새끼곰이 있으면 어미곰을 죽이고 새끼곰을 마을로 데리고 와 실내에서 자식처럼 키운다. 심지어 곰에게 모유를 먹였다는 말도 있다. - 역자
***일본 동북지방의 산간에 사는 사냥꾼들 - 역자

하타나카 : 그렇군요. 9.11로 드러난, 신자유주의의 문제, 절대적으로 비대칭적인 격차 문제는 3.11 발생 전후로 점점 부각되기 시작했고, 나카자와 씨도 매우 큰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지금 다시 한 번 곰과 국가, 즉 곰과 왕의 관계를 묻는다면 어떨까요? 그 전에 살짝 여담으로 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3.11과 관련해 신기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3월 1일 와카사(若狭)의 오미즈오쿠리(お水送り)*에 처음 갔습니다. 오오시마 반도 아랫자락에 있는 민박집에 묵었는데요, 그때는 잘 몰랐지만 그곳이 ‘원전 긴자(銀座)’**더군요.

나카자와 : 니소노모리(ニソの杜)***가 있는 곳입니다.

*‘물 보내기’ 라는 뜻. 나라시대 천태종 사찰인 와카사의 진구지에서 매년 3월 2일 여는 행사. 진구지에서 출발한 물은 10일 후 토다이지 니가츠도에 도착해서 그곳에서 ‘물 받기’ 행사가 열린다. - 역자
**원전 15개가 몰려 있어, 정부의 교부금과 원전 주변에 형성된 상권으로 호황을 누리던 일본 후쿠이현 와카사만을 가리키는 말. ‘긴자’는 도쿄의 상권이자 일본 번화가의 대명사. - 역자
***오오시마 반도에 위치한 숲. 오오시마 반도 개발에 참여한 24가문의 선조를 모시는 제사가 유명하며, 성지(聖地)로 불리고 있다. - 역자

하타나카 : 3월 5일에 쿠쿠노치 학교의 ‘쿠쿠노치 봄축제’에서 나카자와 씨의 ‘하루노 오가와(春の小川)*의 원리’라는 강의를 들었죠. 그때 신자유주의 문제를 이야기하시면서 영화 「잿더미에서 본 희망(2010)」**을 언급하셔서 이튿날 보았습니다. 3.11이 일어나기 전부터 그것에 관련된 사건에 계속 연루되어 있었구나 하며 신기해했죠. 9.11 이전 그리고 3.11 이후에도 곰과 인간의 왕(즉, 국가)의 강대한 힘 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도 누구도 그것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기분이 들 때는, 이거 큰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봄의 냇가(春の小川)’라는 노래. 1912년 발표. 초등학교에서 주로 가르치며, 봄의 풍경을 묘사하는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 역자
**원제는 「꿀벌의 날갯소리와 지구의 회전(ミツバチの 羽音と地球の回転)」(2010) 원자력 발전소 추진 계획에 맞서 싸우는 이와이 섬 주민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 역자

나카자와 : 정말 그렇습니다.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 마지막 권은 『대칭성 인류학』인데, ‘대칭성’이라는 키워드를 다루다보니 경제학에서도 ‘대칭성’을 도입하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형태의 본질을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개념장치를 사용해 고찰한 것입니다. 국가와 자본(금융자본)은 어떻게 연관되어 있을까? 그것이 인간의 공동체나 생태계와는 어떻게 연관될까? 이 전체 스케치를 ‘대칭성’이라는 개념을 기초로 그려보려 했습니다. 옛날부터 『자본론』을 몇 번이나 읽었는데, 그 연구는 상품에서 시작합니다. 『자본론』은 상품교환에서 시작하지만, 마르셀 모스나 레비-스트로스를 읽어온 인류학자로서 생각해보면 상품교환은 교환의 원초형태가 아닐 겁니다. 상품교환의 전단계로 증여교환과 같은 원초적인 것을 놓으면, 현대의 문제는 맑스가 생각한 기획에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상품을 출발점으로 하면 지금의 금융자본 원리와 같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변종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미야자와 겐지의 방식은 다릅니다. 때문에 ‘대칭성’이라는 개념을 가져온 것입니다. 특히 관심이 가는 것은, 인간권(人間圈)과 생태권(生態圈), 인간과 동물의 대칭성을 생각하면 곰이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곰과 인간의 관계는 구석기시대부터 이어집니다. 현생인류는 출현당시 동굴에 살았는데 거기에서 곰의 뼈가 잔뜩 나왔습니다. ‘이건 도대체 뭘까?’ 고고학자에게 그것이 수수께끼로 남았죠.

남아프리카에서는 구만 년 전 뱀 제사를 지낸 의례의 흔적이 더 전에 발굴되었습니다. 생과 사를 관장하는 근원동물이 남쪽에서는 뱀이라면, 북반구에서는 곰이고, 열대지방에서는 재규어입니다. 아마존 신화를 보면 재규어가 잔뜩 나오고, 사람과 재규어는 일체화됩니다. 아프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무지개뱀이라 불리는 레인보우 서펜트입니다. 이 동물들은 곰과 매우 많은 공통점이 있는데, 숲속이나 물속 곳곳에 살고, 자주 인간세계 가까이로 와서 가끔 인간을 먹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연의 힘이 지닌 양면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오랜 기간 동안 숲의 은혜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숲의 생명력을 보존하는 것에 무척 민감합니다.

본래 오래된 금기는 숲에 있는 생명의 근원을 줄어들게 하지 않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렇게 되면 숲에서 얻는 동물이나 과실이 줄어듭니다. 어떤 금기를 범하면 얻는 것이 감소된다는 것은 대개 인간의 섹스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과잉된 섹스처럼 무리한 행위를 하면 숲은 빈곤해집니다. 금기를 지키는 이유는 특별히 인간사회의 구조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숲의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함입니다. 숲에는 에너지가 무척 많이 공급되어 있는데, 그것은 태양으로부터 무상증여된 것입니다. 태양으로부터 증여된 과잉분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마존 신화에 확실히 철학화되어 있죠.

숲은 인간에게 양의적 장소로서, 풍요로움과 생명의 근원인 동시에 인간의 생활을 파괴하는 힘도 숨기고 있습니다. 곰은 그 숲의 왕이기에, 인간을 죽이는 공포도, 사슴과 돼지 같은 다양한 동물을 주는 큰 자비도 지니고 있습니다. ‘증여자giver’, 즉 주는 존재인 것입니다. 북방 사람들이 곰을 부르는 방식을 보면 ‘외삼촌’라든가 ‘할아버지’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친족구조에서 ‘증여자’가 외삼촌이기 때문입니다. 외삼촌은 말하자면 어머니의 형제, 자신들의 공동체에 여성을 주는 존재입니다. 더 큰 의미로 말하자면, 숲은 특정 씨족을 넘어 인간 전체를 부유하게 한다는 점에서 ‘외삼촌’입니다.





하타나카 : 강대하며 일방적으로 자비를 베푸는 존재로군요.


나카자와 : 요컨대 신입니다. 실증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곰’과 ‘신’은 일본어에서는 확실히 같은 어원에서 파생되었을 겁니다.

하타나카 : 디즈니의 「곰돌이 푸우」처럼 마스코트성이 강조된 것을 보더라도 역시 곰과 금기는 분리되지 않으니까요.

나카자와 : 인간에 의해 마스코트가 되기 이전의 역사는 기니까요.
곰은 최초로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최초란, 농경사회가 되어 도시가 만들어졌을 때입니다. 거기서 흥행사가 등장합니다. 퇴락한 사냥꾼이랄까, 사냥을 그만두고 마을에 살면서 돈벌이를 하려는 사냥꾼이죠. 그들이 흥행을 시작합니다. 중근동 일대에 있던 유랑예인의 계보를 보면, 그들은 곰을 데리고 걸었습니다. 그것이 전성기를 맞은 것이 로마인데, 로마의 원형극장은 로마인에게 있어 일종의 경계, 의식전도의 장소로서, 여기서는 인간과 동물의 안정된 격차구조가 사라집니다. 노예와 사자가 특별히 대등한 장소에 있는 곳이죠.

보통 도시에서는 인간이 보호받습니다만, 원형극장에서는 일부러 대칭 상태를 만들어냅니다. 거기서는 인간에게 ‘자, 사자를 이겨봐라. 이기면 노예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너무하죠(웃음). 그런 장소에서 곰이 재주를 넘습니다. 경계영역에 일종의 신화공간을 만드는 거죠. 그 안에서 환상적 대칭관계를 실현하기 위한 볼거리를 시연합니다. 곰이 일어서서 손에 방울을 쥐고 흔듭니다. 거기서 인간은 동물과의 통상적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즐깁니다. 구경거리는 대개 환상적인 대칭상태를 만들어내면서 신화와 결부됩니다. 신화는 그러기 위한 언어장치니까요.

이 곰을 데리고 다닌 예인은 떠돌이 예인이기 때문에 집이 없습니다. 유럽에서 천 년이 넘게 방랑예인으로 존재하고 있죠. 로마집시가 그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애초에 인도의 폭스 헌터라는 카스트 사람들입니다. 인도곰이라는 머리가 작은 곰이 있는데, 곡예를 가르치면 곧잘 알아듣습니다. 로마 사람들이 곰 곡예를 능숙하게 선보이면서 유럽 마을이나 길거리를 순회합니다. 이와 비슷한 게 일본의 만자이(萬歳)*인데, 그가 마을을 돌면 사람들은 ‘챠카포코챠카포코~’** 라고 하며 나와서 불결함을 제거합니다. 다이진(大尽)의*** 집에 적당히 아첨도 떨고요(웃음). 미카와(三河) 만자이의 원형을 보면 좀더 알기 쉬운데, 바로 불구로 태어난 아이인 에비스(恵比須)****입니다. 만자이는 그러한 모습을 하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더러움을 흡수하고 정화하며 주위를 건강하게 하는 예능으로. 그다지 멋지진 않습니다.

유럽의 곰을 데리고 다니는 방랑예인도 같은 기능을 했습니다. 그리고 곰의 체형은 인간 아이와 비슷하죠. 따라서 아이들에게도 무척 인기가 있었습니다. 곰은 실로 거대한데, 『곰에서 왕으로』에 이누이트와 곰이 서로 인사하는 그림이 있습니다만, 거기서 핵심은 곰의 허리가 둥근 것입니다. 가령 왜 일본인이 고질라에 매료되었는가 하면, 허리에 비밀이 있습니다. 인간은 파충류의 허리부분이 세워진 것만으로도 유아를 떠올립니다.

하타나카 : 완전히 직립보행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나카자와 : 고질라가 직립보행한다면 울트라맨이겠네요(웃음). 곰도 서 있을 때는 다소 불안정적입니다. 그 둥근 허리가 유아적 무구함과 동시에 인간을 넘어선 압도적 파워 양면을 나타내죠. 정말 신비한 동물입니다. 유아이면서 숲속 왕의 자손인 곰이 방랑예인을 따라다니며 악기를 연주하거나 인간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와는 다릅니다. 개는 그저 ‘1+3은?’하고 물으면 ‘멍멍멍멍’하고 짖을 뿐이죠(웃음).

*신년에, 에보시(烏帽子, 옛날 관리나 무사가 쓰던 모자의 일종)를 쓰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축하의 말을 해 주고 작은 장구를 치면서 춤추는 사람 - 역자
**‘챠카(チャカ)’는 도기나 유리를 두드릴 때 나는 소리, 포코(ポコ)는 배를 두드릴 때 나는 소리를 표현한 것. 만자이가 돌 때 흥을 돋우기 위해 의미없이 내뱉는 의성어인 것 같다. - 역자
***에도 시대의 큰 부자 - 역자
****에비스(恵比寿, 恵比須) : 풍어(豊漁)와 사업번창의 신. 바람에 접힌 에보시(烏帽子)를 쓰고 왼손에 도미를 안고 오른손에 낚싯대를 쥔 모습으로 주로 그려진다. -역자

하타나카 : 유아와 유사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러니까 불완전한 인간에 가깝다고 하신 거군요. 개는 그저 말해진 것을 할 뿐인 동물이고요. 그런데 원숭이도 인간에 가까워서 귀엽습니다.

나카자와 :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원숭이는 곰보다 금기 감각이 강하게 작동합니다. 프레이저(Sir James George Frazer, 1854~1854)의 연구를 보면, “원숭이를 웃게 해선 안 된다”라든가, “원숭이에게 인간의 언어로 말을 걸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금기가 곧잘 나옵니다. 필리핀의 니그리트*는 원숭이에게 말을 거는 사람에게 “너는 근친상간을 범했다”고 말합니다. 원숭이는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가장 침범하기 쉬운 동물로, 역으로 금기라는 느낌이 몹시 강하게 듭니다. 따라서 원숭이에게 재주를 부리게 하는 것은 어쩐지 무서운 행위죠. 이는 일본의 원숭이 재주꾼에 대한 금기의 감각을 보여줍니다.

원숭이 재주꾼은 보통 재주꾼과는 다릅니다. 곰은 적당히 거리가 있고, 거리가 있어도 선 모습이 인간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사냥꾼이 곧잘 말하는 대로, 곰은 가죽을 벗기면 그 신체가 의외로 여위고 작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색이 허연 것이 마치 여자의 나체 같습니다. 이것은 옛날부터 사냥꾼들이 알고 있던 것인데, 그런 곰이 모피를 입으면 인간과 적당한 거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숭이의 경우는 인간에 더 가깝습니다. 따라서 강한 금기가 필요할 정도로 위험합니다. 이와 달리 곰이 부리는 재주는 마을을 축원하러 오는 축복의 기예로서 힘이 있는 것입니다. 19세기까지 이 상태가 계속되었는데, 19세기 유럽에서 행해진 서커스가 그렇습니다. 이것은 대중예능의 대발명입니다. 구경거리를 선보이는 흥행단의 오두막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여기에 로마풍의 원형경기장을 도입한 곡마단이 등장합니다.

19세기 유럽에는 빈번한 전쟁으로 퇴역군인이 잔뜩 있었습니다. 곡마단은 그들의 재취직처였죠. 곡마는 말의 성질에 원형경기장이 더해진 것입니다. 그 원형에서 ‘시르크(circus)’라는 말이 나왔는데, 거기에 대칭성의 신화구조를 띤 온갖 퍼포먼스가 집합되어 있습니다. 어릿광대, 동물곡예, 초인적인 아크로바트... 이것들을 모두 모아놓은 대단한 신화공간이 만들어집니다. 문학가인 테오필 고티에(Jules Pierre Théophile Gautier, 1811~1872)를 필두로 19세기 작가들은 모두 서커스의 꿈속으로 빠져버렸습니다. 서커스는 시적(詩的, poetic) 상상력의 중요한 원천이었죠. 거기서도 가장 인기 많은 스타는 곰이었습니다.

러시아 주변의 어떤 나라에서도 서커스의 화려한 꽃은 곰이었습니다. 유럽의 경우 북방계 숲에 가까이 살았기에 곰과의 반목이 길었습니다. 그런 의미로, 곰의 대칭성 기예는 퍼포먼스로서 일등이었죠. 곰의 퍼포먼스를 연출하는 조교로서는 러시아인이 발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그대로 볼쇼이 서커스로 이어졌고, 볼쇼이 창단에서 모스크바 올림픽의 미샤**까지는 시간적으로 그리 멀지 않습니다. 소비에트 연방 붕괴 직전에 볼쇼이를 본 적이 있는데, 역시 곰은 각별하더군요. 단장은 피에로(어릿광대)로 분했는데, 두 번째 나왔을 때는 곰조련사였습니다. 또 곰들은 어찌나 아름답던지! 정말 훌륭했습니다. 곰 곡예와 발레는 러시아 예술의 정수라고 생각합니다. 미야자와 겐지의 상상력도 북방세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북방세계의 대칭성 사고, 신화사고의 체현자는 곰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패딩턴이나 테디베어가 나오는 것이지요.

*동남아시아에 거주하는 흑인종 - 역자
**1980년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의 마스코트. 곰을 모델로 하고 있다. -역자

전체 4

  • 2021-01-29 10:01
    어떤 금기를 범하면 얻는 것이 감소된다는 것은 대개 인간의 섹스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과잉된 섹스처럼 무리한 행위를 하면 숲은 빈곤해집니다. 금기를 지키는 이유는 특별히 인간사회의 구조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숲의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함입니다". 숲에는 에너지가 무척 많이 공급되어 있는데, 그것은 태양으로부터 무상증여된 것입니다. "태양으로부터 증여된 과잉분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마존 신화에 확실히 철학화되어 있죠."

    오오 모든 철학의 원류는 자연학인 것을 깨닫고 있는 요즘 이 부분이 참 재미있네요.

    P.S 웅녀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받는다는 속담이 자꾸 떠오르네요. 동아시아는 한자 문화권이 아닌, 곰 문화권 인 것같습니다.

  • 2021-01-29 15:16
    인류학에서는 섹슈얼한 것-인간의 윤리-자연과의 관계가 단번에 연결되네요. 특히 섹슈얼한 것이 적극적으로 다뤄지는 게 재밌네요. '과잉된 섹스'를 도덕적인 타락, 나태함 같은 것이 아니라 존재의 빈곤함 같은 것으로 다룬다는 것을 더 듣고 싶습니다!

  • 2021-01-29 22:08
    재미지다 재미져!
    둥근허리로 구부정하게 서 있는 곰님의 모습이 진짜 막 걸음마 뗀 울 조카 생각나네요. 게다가 푹신한 털에 파묻히면 얼마나 따뜻할까요?
    인자하면서도 경외심이 느껴지는 게 곰이 대지의 왕이란 말이 실감나네요.

  • 2021-02-04 08:56
    곰 캐릭터가 인기를 끄는 것에 이토록 심오한 의미가... 재밌네여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