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강좌

주역과 노자 54장 ~ 60장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7-07-04 13:41
조회
181
언제 81장 다 읽을지 약간 막막했는데 어느 샌가 60장이 지났네요. 그런데 머리가 빠개지는 고통이........ 한 장을 보기 위해서는 앞과 뒤, 『도덕경』 전체를 망라해야 하더군요. 앞으로 계속 노자를 읽으려면 81장은 다 외워야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건 차근차근 1년 정도 길게 잡고 해봐야겠어요. (되지 않을까요.....?) 아직 못 한 21장은 한 주 쉬고 7월 15일에 바로 시작하니 뒷부분이 궁금하신 분들은 얼른 와주세요~

 

54

善建者不拔, 善抱者不脫, 子孫以祭祀不輟. 修之於身, 其德乃眞 ; 修之於家, 其德乃餘 ; 修之於鄕, 其德乃長 ; 修之於國, 其德乃豊 ; 修之於天下, 其德乃普. 故以身觀身, 以家觀家, 以鄕觀鄕, 以國觀國, 以天下觀天下. 吾何以知天下然哉? 以此.

 

잘 세운 사람은 뽑을 수 없고, 잘 감싸 안은 사람은 벗길 수 없으니, 자손의 제사가 끊이지 않는다. 몸을 닦으면, 그 덕이 진실해지고, 집 안을 닦으면 그 덕이 여유롭게 되고, 마을을 닦으면, 그 덕이 넉넉해지고, 나라를 닦으면, 그 덕이 풍성해지고, 천하를 닦으면, 그 덕이 널리 퍼지게 된다. 따라서 몸으로써 몸을 보고, 집으로써 집을 보고, 마을로써 마을을 보고, 나라로써 나라를 보고, 천하로써 천하를 본다. 내가 어떻게 천하가 그런 줄 알겠는가? 이것으로이다.

 

발(拔)은 ‘뽑는다’는 뜻입니다.

포(抱)는 앞장에서도 여러 번 나왔는데, ‘내면에 품는다’는 뜻입니다. 건(建)이나 포(抱)의 대상은 도(道)입니다. 27장의 잘 걷는 이, 말 잘하는 이, 계산을 잘하는 이와 연결됩니다.

우쌤은 자손의 제사가 끊이지 않는 것은 물질적 조건이 풍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소박한 삶 가운데서도 안정적으로 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수지(修之)부터는 『대학』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주석에서는 자신의 몸으로 다른 사람에 미친다고 했는데, 이것은 나의 윤리의 확장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데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餘)와 장(長), 풍(豐)은 모두 ‘넉넉하다’는 뜻입니다.

보(普)는 보편(普遍)이란 단어에도 쓰이는데, ‘널리 퍼지다’라는 뜻입니다. 사서에서는 보(普) 대신에 평(平)을 많이 쓴다고 합니다.

이신관신(以身觀身)부터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앞 내용과 연결하면 개인의 윤리의 확장으로 천하에까지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읽을 수 있지만, 법가에서는 이를 단계마다 적용할 수 있는 윤리가 따로 있다는 것으로 읽는다고 합니다. 법가의 논리에 따르면, 마을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몸이 아니라 마을 차원의 정치가 필요하고,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천하 차원의 정치가 따로 필요하다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차(以此)는 21장에도 나왔는데, ‘도(道)로써 보겠다’는 뜻입니다. ‘도(道)로써 보는 것’에 대한 설명으로 주석에서는 ‘자신을 살펴서 그것을 알 수 있으니, 밖에서 구하지 않는다. 소위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아는 것’은 47장에도 나옵니다.

 

55.

含德之厚, 比於赤子. 蜂蠆虺蛇不螫, 猛獸不據, 攫鳥不搏. 骨弱筋柔而握固, 未知牝牡之合而全作, 精之至也. 終日號而不嗄, 和之至也. 知和曰常, 知常曰明, 益生曰祥, 心使氣曰强. 物壯則老, 謂之不道, 不道早已.

 

두터운 덕을 안은 사람은, 갓난아기와 비견된다. 벌과 전갈과 살모사와 뱀이 그를 해치지 않고, 사나운 짐승이 덮치지 않고, 독수리가 붙잡지 않는다. 뼈는 유연하고 근육은 부드럽고 손은 견고히 쥐고, 수컷과 암컷의 합을 몰라도 온전히 성장하니, ()의 지극함이다. 하루 종일 울어도 목이 잠기지 않으니, ()의 지극함이다. ()를 아는 것이 도()의 항상된 법칙()이고, ()의 항상된 법칙()을 아는 것이 명()인데, [세상 사람들은] 삶을 더하는 것을 상서로움이라 하지만, 마음을 쓰는 것은 강포한 것이다. 물이 성대해지면 곧 쇠하니, 이것은 도()가 아니고, ()가 아니면 일찍 사라진다.

 

함덕지후(含德之厚)는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하나는 ‘덕(德)을 안은 것이 후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덕(德)의 후함을 껴안다’입니다.

비(比)는 ‘비하다’, ‘비견된다’라는 뜻입니다.

적자(赤子)는 직역하면 ‘빨간 아이’입니다. 예전에 우쌤이 설명해주신 것을 되살려보면, 예전에는 어린아이를 옷을 벗겨서 키웠는데 그 때 피부가 빨갰다고 합니다. ‘빨간 아이’라는 것은 옷을 벗겨서 키운 갓난아기를 뜻합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갓난아기는 ‘구함도 없고 욕망도 없으니, 다른 것들을 해치지 않아서, 독을 쏘는 물체가 그 아기를 해치지 않는다. 두터운 덕을 안은 이는 다른 물체를 해치지 않으니, 그 온전함을 해치는 물체가 없다.’라고 합니다.

봉(蜂)은 ‘벌’, 채(蠆)는 ‘전갈’, 훼(虺)는 ‘살무사’, 사(蛇)는 ‘뱀’입니다. 확조(攫鳥)는 직역하면 ‘붙잡는 새’인데, ‘독수리’라고 하는 용례가 있다고 합니다.

석(螫)은 ‘벌레 등이 독을 쏘다’이고, 거(據)는 ‘덮치다’이고, 박(搏)은 ‘붙잡다’, ‘짚다’입니다.

골근(骨筋)은 뼈와 근육을 말합니다.

악고(握固)의 악(握)은 ‘쥐다’라는 뜻으로, 손을 꽉 쥐는 것입니다. 『장자』의 「대종사」를 보면, 거기에 도(道)를 깨달은 사람은 발바닥으로 숨을 쉬는 것이 양생법으로 나오는데, 손을 꽉 쥐는 것도 양생법 중 하나라고 합니다.

빈(牝)은 ‘암컷’을 뜻하고, 모(牡)는 ‘수컷’을 뜻합니다.

호(號)는 ‘호령하다’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크게 울다’로 쓰였습니다.

지화왈상, 지상왈명(知和曰常, 知常曰明)은 앞의 16장과 33장과 연결됩니다. 16장을 보면, 뿌리로 돌아가는 것(歸根)을 정(精)이라 하고, 항상됨을 아는 것(知常)을 명(明)이라 했습니다.

익생왈상(益生曰祥). 이 구절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우선 왕필에 따르면, “백성들이”라는 주어가 생략된 것으로, “백성들은 삶을 더하는 것(益生)을 상서로운 것(祥)으로 안다.”로 해석했습니다. 반면에 진고응은 상(祥)을 ‘재앙’으로 풀어서 “생을 연장하는 것은 재앙이다”라고 해석했습니다.

심사기왈강(心使氣曰强)에서 강(强)은 ‘강하다’, ‘굳세다’가 아니라 ‘강포하다’, ‘기운을 확 쓰다’의 의미입니다.

물장즉노, 위지부도, 부도조이(物壯則老, 謂之不道, 不道早已)는 30장에도 나왔습니다. 이(已)는 ‘그치다’가 아니라 ‘사라지다’, ‘소멸되다’의 뜻입니다.

 

56.

知者不言, 言者不知.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分,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故不可得而親, 不可得而疏 ; 不可得而利, 不可得而害 ; 不可得而貴, 不可得而賤 ; 故爲天下貴.

 

()를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 알지 못한다. 욕망의 구멍을 닫고, 욕망이 출입하는 문을 폐쇄하고, 날카로움을 꺾고, 분쟁을 누르고, 유달리 드러나는 것을 누그러뜨리고, 먼지와 같아지니, 이를 일러 현묘하게 같아진다고 한다. 따라서 가까워질 수도 없고, 멀어질 수도 없고, 이롭게 할 수도 없고, 해롭게 할 수도 없고, 귀하게 여길 수도 없고, 천하게 여길 수도 없으니, 그러므로 천하의 귀함이 된다.

 

『도덕경』에서 글자들은 맥락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데, 지(知)는 그 대표적인 글자 중 하나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자기중심적인 앎, 자연과 어긋난 앎으로 쓰일 때도 있지만, 여기서는 ‘도(道)를 아는 것’의 의미로 사용됐습니다.

언(言)은 ‘법령’, ‘간섭’ 같은 의미로 사용됐는데, 5장의 다언삭궁(多言數窮)과 연결됩니다.

색기태, 폐기문(塞其兌, 閉其門)은 52장에도 나왔고,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挫其銳, 解其分, 和其光, 同其塵)은 4장에도 나왔습니다. 여기서 해기분(解其分)의 분(分)은 4장의 분(紛)과 다르지만 똑같이 ‘분쟁’이라는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광(光)도 여러 의미가 있는데, 52장에서 백성의 미혹됨을 없애는 것으로써의 광(光)이 아닙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특현(特顯), ‘유난히 드러내는 것’으로서의 광(光)입니다.

『도덕경』은 뒤로 갈수록 앞에 나온 구절이 반복되는데, 착간으로 추정되는 것을 어떻게 할지가 노자를 읽을 때 중요한 지점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우쌤은 빼지 않고 그대로 두고 봐도 괜찮은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현동(玄同)에서 현(玄)은 ‘다 알 수 없음’을 뜻하고, 동(同)은 『장자』 「제물론」의 만물제동(萬物齊同)을 뜻합니다.

득(得)은 ‘얻다’보다는 능(能)의 뜻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합니다.

친(親)은 ‘가까이 하다’라는 뜻으로 인간이 처하는 조건입니다. 우쌤은 도(道)에 따라 사는 사람은 친(親), 소(疏), 리(利), 해(害), 귀(貴), 천(賤)에 대한 구별이 없고, 이런 존재를 현동(玄同)의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57.

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 吾何以知其然哉? 以此. 天下多忌諱, 而民彌貧 ; 民多利器, 國家滋昏 ; 人多伎巧, 奇物滋起 ; 法令滋彰, 盜賊多有. 故聖人云 :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바름으로 천하를 다스리면, 속임수로 군사를 쓰게 되니, 무위(無爲)로 천하를 취한다. 내가 어떻게 그런 줄 알겠는가? 이것으로이다. 천하에 감추고 금기하는 것이 많아지면, 백성은 더욱 가난해지고, 백성이 이로운 물건을 많이 찾으면, 국가에 더 혼란스럽게 되고, 사람들이 기교(技巧)를 자주 부리면, 기이한 일이 일어나게 되고, 법령이 더욱 드러나면, 도적이 많아지게 된다. 따라서 성인은 이렇게 말했다. : “내가 무위(無爲)하면 백성들은 [스스로 그렇게 되도록] 욕심을 버리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스스로 바르게 되고, 내가 일을 벌이지 않으면 백성들은 스스로 자족하게 되니,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지만 백성들이 스스로 순박하게 된다.

 

정(正)은 56장의 친소(親疏)와 이해(利害), 귀천(貴賤)을 기준으로 했을 때 나타나는 ‘올바름’입니다. 우쌤은 정(正)을 내세우는 정치는 18장의 도(道)가 사라진 이후에 나타난 인의(仁義)를 내세우는 정치와 같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9장을 보면, “장차 천하를 다스리려고 할 때, 그것을 인위적으로 한다면, 나는 그것을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正)으로 하는 정치는 천하를 다스릴 수 없음을

기(奇)는 궤(詭)와 통용되는데, 병법에서 속임수, 전략을 뜻하는 글자로 ‘속이다’입니다.

이차(以此)는 보통 앞의 내용을 받았는데, 우쌤은 여기서는 뒤의 내용을 설명해주는 것으로 읽는 게 더 정확하다고 하셨습니다.

기(忌)는 ‘꺼리다’라는 뜻이고, 휘(諱)는 ‘숨기다’라는 뜻입니다. 정치하는 사람이 꺼리고 숨기는 것이기 때문에, 의역하면 ‘법으로 금지하는 것’, ‘법령’입니다.

미(彌)는 ‘더욱’, ‘매우’를 뜻합니다.

자(滋)는 ‘불어나다’라는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미(彌)와 같이 ‘더욱’이란 뜻으로 쓰였습니다.

기(伎)는 기녀 및 연주가들의 재주를 뜻하는데, 그 점에서 기술 기(技)와 통용된다고 합니다.

창(彰)은 ‘발표하다’라는 뜻입니다.

우쌤은 노자가 우민정책을 펼친 것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노자의 시대의 정치가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그 욕망을 줄일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노자의 시대나 지금시대나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습니다.

노자의 무위(無爲)와 더불어 또 중요하게 봐야 하는 글자는 자(自)인 것 같습니다. 통치자가 간섭하지 않아도 백성이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 성인은 그렇게 되도록 판을 마련해주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58.

其政悶悶, 其民淳淳 ; 其政察察, 其民缺缺.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 是以聖人方而不割, 廉而不劌, 直而不肆, 光而不燿.

 

정치가 어리숙해지면, 백성들은 순박해지고, 정치가 빈틈이 없어지면, 백성들은 교활해진다. 재앙은 복에 의지하며, 복은 화에 숨어있다. 누가 그 끝을 아는가? 그 정해진 것은 없다. 규칙이 다시 속임수가 되고, ()은 다시 재앙이 된다. 사람들이 도()를 잃으니, 그 날이 오래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올바름으로써 사람들을 이끌지 해치지 않고, 청렴함으로 이끌지만 상처 입히지 않고, 곧지만 상황에 따라 돌아가고, 그 혼미함을 없애지 횃불을 들이대지 않는다.

 

민(悶)은 ‘번민하다’, ‘고민하다’라는 뜻인데, 20장에서 도(道)를 깨달은 사람의 고민하는 모습이 마치 ‘어둡다’, ‘어리숙하다’라는 의미에서 민민(悶悶)을 사용했습니다. 여기서는 정치하는 사람이 정치를 각박하게 하지 않는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순(淳)은 ‘순박하다’라는 뜻입니다.

찰(察)은 ‘꼼꼼히 살피다’라는 뜻으로, 20장에서 자신의 덕을 보존하지 않고 외물을 구하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것으로 사용됐습니다. 여기서는 물 샐 틈 없이 촘촘한 정치로 백성들의 삶을 규제하는 정치를 표현한 것입니다.

결(缺)은 ‘이지러지다’, ‘모자라다’라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교활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됐습니다.

극(極)은 ‘끝’, ‘한계’라는 뜻과 ‘원칙’, ‘표준’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끝’의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요즘 기무정(其無正)에서 정(正)은 ‘정해진 것이 없다’라는 뜻에서 정(定)으로 보는 주장이 많다고 합니다. 정(定)으로 봤을 때, 정해짐이 없는 것이 도(道)의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復은 ‘다시’라는 뜻에서 “부”로 읽습니다.

요(妖)는 ‘재앙’입니다. 우쌤은 정(正)이 기(奇)가 되고, 선(善)이 요(妖)가 되는 것을 시간적 흐름, 『주역』의 변(變)이라고 하셨습니다.

미(迷)는 ‘미혹하다’를 뜻하는데, 우쌤은 이를 실도(失道), 도(道)를 잃음이라고 풀어주셨습니다.

방(方)은 ‘올바름’입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사적인 것(邪)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41장에 대방무우(大方無隅)와 통합니다. 우쌤은 이를 성인은 올바름으로 이끌지만, 그것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여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렴(廉)은 청렴(淸廉)이고, 귀(劌)는 ‘상처입히는 도구’입니다.

직(直)과 사(肆) 둘 다 ‘곧다’를 뜻하지만, 45장의 ‘가장 곧은 것은 마치 굽은 것 같다’는 것을 참고하면, 선이 휘지 않고 ‘곧음’ 자체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주석에서는 편벽됨, 치우침을 없애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쌤은 곱게 이끌어도 상황에 따라 돌아가는 것이 성인이라면서 직이불사(直而不肆)와 대직약굴(大直若屈)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광(光)은 백성의 미혹됨을 비춰주는 거울(鑑)입니다. 하지만 그 내면에 깊숙한 것까지 비추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쌤은 이를 37장의 자화(自化)로 설명해주셨습니다.

요(燿)는 요(耀)와 똑같이 ‘빛나다’라고 쓰이는데, 우쌤은 여기서 요(耀)가 아니라 요(燿)가 쓰인 이유를 설명해주셨습니다. 요(耀)는 해와 달이 만물을 비추는 것처럼 자연적인 것이지만, 요(燿)는 모닥불로 사물에 들이대서 비추는 인위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우쌤은 성인은 인위적이지 않기 때문에 억지로 횃불로 들이대서 일부러 밝히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59.

治人事天莫若嗇. 夫唯嗇, 是以早服. 早服謂之重積德. 重積德則無不克, 無不克 則莫知其極. 莫知其極, 可以有國. 有國之母, 可以長久. 是謂深根固柢, 長生久視之道.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받들기로는 농부만한 것이 없다. 농부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를 일러 일찍이 도()를 따름’(早服)이라고 한다. 일찍이 도()를 따르면 덕()이 무겁게 쌓인다. ()이 무겁게 쌓이면 능하지 못함이 없고, 능하지 못함이 없으면 그 한계를 알게 된다. 그 끝이 어딘지 알지 못하면,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 나라의 근본이 있으면, 가히 오래될 수 있다. 이를 일러 뿌리를 깊고 견고히 하는 것이니, 오래살 수 있는 도().

 

색(嗇)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왕필은 ‘농부’라고 풀었고, 진고응은 ‘인색하다’, ‘보존하다’로 풀었습니다.

우쌤이 주석을 잘 설명해주셨는데, 중요한 것 같아서 정리해보겠습니다. 막약(莫若)은 ‘지나치지 않음’이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잡초들을 제거하고, 만물을 가지런히 해서 하나로 돌아가게 한다(萬物濟同), 스스로 그러함을 보존하여, 흉년(荒)과 병(病)에 흔들리지 않고, 그렇게 되지 않도록 원인을 제거한다. 위로는 천명(天命)을 받들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데, 이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주석에 따르면, 조복(早服)은 상(常)입니다. 앞의 내용을 참고하면, 상(常)은 도(道)의 항상된 법칙으로, 삶의 방향을 도(道)에 맞추는 것이 조복(早服)입니다.

중적덕(重積德)도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왕필은 ‘두텁게 덕(德)을 쌓는다’로 풀었고, 다른 해석은 ‘덕(德)을 쌓는 것에 힘쓴다’입니다.

극(極)은 ‘한계’로 사용됐습니다.

유(有)는 취(取)의 의미입니다.

모(母)는 무위(無爲)입니다.

장구(長久)는 ‘안정된 상태’로 도(道)를 따른 결과입니다.

 

60.

治大國, 若烹小鮮. 以道莅天下, 其鬼不神. 非其鬼不神, 其神不傷人. 非其神不傷人, 聖人亦不傷人. 夫兩不相傷, 故德交歸焉.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작은 물고기를 요리하는 듯이 한다. ()로써 천하를 다스리면, 귀신이 펼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귀신이 사람을 해하지 못한다. 귀신이 사람을 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성인 역시 사람을 해하지 못한다. 둘 다 사람을 해치지 못하니, 따라서 덕이 다시 돌아간다.

 

팽(烹)은 ‘요리하다’, ‘굽다’라는 뜻입니다.

리(莅)는 ‘군림하다’, ‘다스리다’라는 뜻에서 치(治)와 통용됩니다.

귀(鬼)는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존재를 말합니다.

신(神)은 여기서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됐습니다. 하나는 ‘펼치다’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귀(鬼)로 보는 것입니다.

비기귀불신, 기신불상인, 비기신불상인, 성인역불상인(非其鬼不神, 其神不傷人. 非其神不傷人, 聖人亦不傷人.)에서 비(非)는 ‘~뿐만 아니라’라는 뜻에서 비단(非但), 비독(非獨)으로 봐야합니다.

상(傷)은 ‘상처 입히다’라는 뜻으로, 도(道)에 따르면 귀신과 같은 존재도 인간에게 간섭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인(聖人)이 해를 끼친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데, 우쌤은 도(道)를 깨달은 사람으로서의 성인(聖人)이 아니라 무당으로서의 성인(聖人)일 것이라고 얘기하셨습니다. 성인(聖人)의 성(聖)은 귀(耳)와 입(口), 왕(王)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하늘의 말을 듣고, 그것을 입으로 내뱉는다는 뜻이죠.(이게 맞는지 갑자기 모르겠네요. 댓글로 도와주세요...!) 그리고 성인은 위망(威望)을 펼치는 존재라고 했는데, 우쌤은 위망(威望)을 위협적인 법망이라고 해석해주셨습니다.

우쌤은 60장을 17장과 연결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17장에서 ‘최고의 정치는 백성들이 왕이 있다는 것만을 안다’고 했던 것처럼, 귀신이 귀신이 되는 줄 모르고 성인이 성인이 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도(道)의 최고 수준이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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