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12.14 수업 공지

작성자
수경
작성일
2016-12-10 19:58
조회
302

지난 시간에는 열한 번째 고원, 리토르넬로 장을 마저 읽었습니다. 핵심은 한 마디로 一以貫之! 생각할수록 오호 그렇구나~ 싶습니다.
한 사람의 삶을 설명하는 것, 그것은 그가 주창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그가 쌓은 지식과 그의 신념이 아니라, 바로 ‘스타일’이라고 들뢰즈+가타리는 말하지요.
그러니까 스타일이란 겉으로 드러나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우리가 보통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경우) 어떤 존재로 ‘되어가는’ 고유한 방식. 채운 쌤은 그것을 ‘차이에 대한 일관된 양식’이라 설명하셨네요.
이것이 좋으니까 이것을 취하고 저것은 싫어하니까 저것은 멀리하고… 이런 걸 고름 내지 다짐, 스타일이라고 부를 수 없는 건 그 때문입니다. 관건은 차이화하는 방식, 새로운 것과 접속하고 해석하는 고유한 욕망에 있는 것이지, 차이 자체를 거부하거나 그로부터 도피하는 게 결코 아니니까요.
문제는 어떤 이질적인 음표, 코드와 만나 새로운 리듬을 창출하는가, 새로운 선을 그리면서 탈영토화하고 재영토화하는가에 있는 것이지 모든 리듬과 코드를 하나의 박자 안에 때려 박는 게 결코 아니라는!
문제 내지 사건 앞에서 내처 달아나는 자를 두고 자신의 스타일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이유가 여기 있지요.


책 625페이지에 이런 구절이 보이네요.
“질료에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재료를 점점 더 세련되고 풍부한 것으로 바꾸어 고름의 정도를 높여야 한다. 그에 따라서 점점 강렬한 힘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재료를 점점 풍요롭게 해주는 요소는 이질적인 것들을 공존시키면서도 비등질성을 잃지 않게 하는 요소와 같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공존시키는 요소는 진동자, 최소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신시사이저이다. 그것은 간격을 해석하는 분석기이자 복수의 리듬을 동조시키는 싱크로나이저이다.”


많은 분들 아시겠지만, 종종, 여기저기서 채운 쌤께서 반복하시는 말씀 중 하나가, 삶에서 중요한 것은 도덕이나 올바름이 아니라는 거죠. ‘올바름’이라는 말을 시간을 들여 새롭게 규정하지 않는 한,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란 대개 상식과 양식에 부합하는 삶을 사는 이를 뜻하지요.
헌데 채운쌤에 따르면 삶에서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오히려 상식과 양식으로부터 떠나는 자, 기존의 관습과 앎에 균열을 내는 자, 그런 자들이야말로 삶을 예술로 만드는 자라는군요.
삶을 예술로 만드는 자, 스스로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자. 그러니까 이 세계를, 존재하는 모든 것을, 육박해올 모든 것을 완벽하게 긍정할 수 있는 역량을 펼치는 자, 그런 이야말로 자연 안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사는 이라는 거죠. 장대한 리트로넬로를 들려주는 이 우주 안에서, 우주의 리듬에 맞추어 사는 자는, 제도와 통념에 기대어 일정한 영토 안에 정주하는 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질적인 것을 향해 열려 있는 자, 그럼으로써 기존의 것을 교란시키는 자랍니다.
예술가란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는 자가 아닌 거죠. 예술가는 우주 안에서 자기 스타일대로 차이를 구성하는 자, 차이나는 것들을 반복하는 자랍니다.
그러니까 예술가에 가장 근접한 존재는 어쩌면 철학자와 산악인일 지도. ^^


채운 쌤께서는 붓다를 예로 들어 이를 설명하셨죠. 백 명의 서로 다른 바라문, 각기 다른 질문들과 만나, 그것들과 완벽하게 융합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스타일대로 그것을 다지는 모습을 우리는 많은 불교 경전들에서 목도할 수 있잖아요.
생각해보면 고전 작품 안의 유명한 주인공들도 그렇죠. 저 멀리 오이디푸스부터 시작해 햄릿과 리어 왕, 돈키호테, 그리고 라스콜리니코프까지, 모두가 자기 고유한 스타일로 사건을 해석하면서 사건과 더불어 자기 존재를 변형시켰지요. 하여 작품들은 그들의 고유한 리듬으로 넘실댑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주제니 소재니,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능!)


자, 그래서 一以貫之입니다. 하지만 이게 도그마화와 다르다는 것, 도그마를 가지고 모든 것을 잿빛 평면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은, 따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겠지요?
문제는 존재의 고유한 욕망과 그에 따른 비전에 있습니다. 그에 따라 스스로를 미학적 존재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 나를 있어본 적 없는 예술작품으로 가꾸어 나가는 것, 삶에서 문제는 결국 이것 하나가 아니겠느냐는 것이 모든 위대한 철학자와 종교인들이 자기 삶을 통해 직접 전한 가르침이지요.
산다는 것, 그것은 존재를 유지‧보존하는 게 아니라, 독특한 리듬 속에서 끊임없이 어떤 것이 되어가는 과정일 따름입니다.
들뢰즈+가타리의 예술론이 존재론이자 윤리론인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답니다.


자, 다음 시간에는 이어서 전쟁 기계 함께 읽습니다.
지난주에 중반까지 읽었을 때 뭐랄까, 개념들이 많이 어지럽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고, 암튼 그랬는데… 끝까지 읽으면 좀 나으려나… 나았으면 좋겠다… -_-;;;


자, 간식은 정옥쌤과 건화. 이번 주 후기는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혜원이가 올려줄 테니 기대하셔요.


돌아오는 수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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