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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 원한을 넘어가는 길 : 양의 싸움과 아침놀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21-01-07 18:49
조회
275
 

원한을 넘어가는 길 : 양의 싸움과 아침놀


글 / 성민호(절탁 NY)


 

싸움을 시작하며

‘싸움’이라는 단어는 내게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니체는 자신의 특징을 싸움이라고 썼고 나는 언제나 승리하고 있는 것과 홀로 맞붙는다고 하는 그의 싸움법을 동경한다. 맞다. 자기 자신을 넘어가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를 안주하게 하고 길들이는 것들과 싸워야 한다! 하지만 나는 싸움이 싫다. 니체적인 의미로도 상식적인 의미로도 나는 싸우지 않는다. 타자와의 다툼부터 마음속의 갈등까지 모든 종류의 불화는 내게 피로감과 괴로움을 준다. 나는 불만이 생기고 화가 나도 그것을 터뜨리지 않는다. 서로 흥분하며 싸우는 것을 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은 떳떳하게 마음속 불만을 말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심리적 조작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깎아내리려는 것 말이다. 사실 내가 싸우지 않는 것은 그것이 올바르거나 좋다는 이해 때문이 아니라 나의 감정이 상하고 찌꺼기가 남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과 그 사람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지는 상황은 정서적으로 굉장한 불편함과 손실을 준다. 나는 다치고 싶지 않기에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는다. 이런 감각은 아마 여러 공동체를 거쳐오면서 경험적으로 습득하게 된 것일 수도 있고 유난히 근심이 많은 기질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싸움을 일으키지 않는 습관이 불만과 화가 생겨나는 것까지 막아주진 못한다. 오히려 표현되지 않은 불만은 머릿속에서 계속 리플레이된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분노를 터뜨리며 보복하지 않는 나에게 선함을 쥐어주며 마음을 달래고 힘을 확인해왔다. 하지만 니체를 배우고 연구실 생활을 하면서 그것이 기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기억의 되새김질은 출구가 없어졌다. 올 여름 『도덕의 계보』를 공부하면서 원한 도덕의 메커니즘을 알게 되었다. ‘해를 입히지 않은 선한 나’라는 사고가 원한에 기반한 교활한 도덕적 트릭이었다는 것을 내 손으로 적고 나니, 이제 나는 더 이상 선하지조차 않은 양이 되었다. ‘싸우지 않는 나’에 대한 자부심은 ‘싸우지도 못하는 나’에 대한 한심함으로 바뀌었다.

나는 원한을 진단했지만 그것은 니체적인 진단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병리학적인 진단이었다. 즉 나는 원한을 정상성에 반대되는 예외로, 다시 말해 개인의 특수한 생리적 장애로 간주했다. 병리학적 판결의 특징은 더 이상의 질문과 관찰을 막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어설픈 처방들이 제시된다는 것이다. 어서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리는 것만이 중요해진다. 머릿속을 맴도는 말이나 행동들이 표상을 덧붙이며 재생되는 것을 멈추기 위해 나는 주의를 돌리는 명상을 활용하거나 각별히 더 마찰을 피했다. 일시적인 효과는 있었으나 같은 답답함이 소재를 바꿔가며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었다. 이제까지 취해온 회피의 방식은 궁지에 몰렸고 그 정서적 지출은 만만치 않았다. 차라리 화가 난 그 순간에 다 표출해버리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든 분노를 터뜨리는 식의 반응은 여전히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문제는 싸우느냐 참느냐, 화를 터뜨리느냐 마느냐가 아닐 것이다. 그보다 우선적인 문제의 지점은 불쾌 혹은 불만족스러움을 제거하고 없애야 할 것처럼 간주하는 나의 태도에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상 생기기 마련인 감정적 찌꺼기를 전혀 감당하지 않으려는 나의 왜소한 평화주의가 문제가 아닐까? 이 같은 회피의 본능은 나만의 온전한 시간과 평온한 컨디션을 더 많이 소유하려는 탐욕의 발현일 수도 있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낯선 상황에 놓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니체는 겁 많은 사람들은 “재기와 침착함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복수는 절멸시키는 것 이외의 출구를 알지 못한다”(『아침놀』, 410절)고 말한다. 그들은 순간순간의 대응과 매번의 분출을 감당하지 못하기에 고통을 주는 것 일체를 제거해버리거나 그것이 아예 없는 상태를 상상한다. 이런 겁쟁이의 태도는 내게서 원한 자체에 원한을 품는 데까지 이어졌다. 그런 나를 꼬집는 듯한 니체의 당부. “그대는 그대의 정열을 떠나려 하는가? 그러나 그것에 대해 증오심을 품지 말고 그렇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제2의 정열을 갖게 되는 것이다.”(같은 책, 411절)

이제는 없애고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는 식의 겁에 질리고 증오서린 처신보다는, 오히려 그 불구대천의 적을 있게 두고, 똑바로, 있는 그대로-보는-법을 배워야 한다. 정말 싸움을 치러야 한다. 원한은 어떻게 자라서 어떻게 사라지는가? 원한으로 굳어지기 이전, 나는 왜 누군가에게 불만을 느끼고 상처를 받는가? 근본적으로 거기에는 ‘그 자’가 하지 않을 수도 있던 그 행동을 했다는 대상의 의지에 대한 믿음과 그런 행동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나’에 대한 표상이 있다. 강하게 실체화된 이분법이 있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옳은가 그른가, 얼마나 보편적인가를 떠나서 나는 왜 이렇게 사물과 사람과 사건을 ‘이래야 함/이래서는 안 됨’에 가두는 사고를 하는지, 그런 사고가 내게 어떤 이익과 불이익, 쾌감과 불쾌감을 주는지를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원한의 메커니즘을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되새김질 병을 만들어온 인식의 전제들과 마음의 습관들, 그리고 그런 습관을 형성하게 된 조건들을 캐묻고 그것이 어떤 힘과 힘에의 의지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인지 파고 들어가야 한다. 도망가지 않고, 손실을 계산하지 않고, 망가져가며 진흙탕 싸움을 벌여야 할 지점은 여기인 듯하다. 그렇게 하다 보면 더 큰 문제에 닿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원한과 가책의 관점에서 사유하길 계속해왔다”며 들뢰즈는 말한다. “진실로 말해서, 우리는 원한 없는 인간이 무엇인지 알 수조차 없다. 현존을 비난하지도 비하하지도 않을 인간이 여전히 인간일 것인가, 그를 여전히 인간으로 생각할 것인가? 그는 이미 인간과는 다른 것, 거의 초인이 아니겠는가?”(질 들뢰즈, 『니체와 철학』, 79쪽)

나는 나의 원한을 확인하고 서둘러 심판했지, 그것을 재료 삼아 더 사유를 밀고 나가려 하지 않았다. 즉 그것을 특이한 인간들의 예외적 정서로만 취급하고 어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임시처방만을 해왔지, 그것으로부터 인간 자체에게까지 의문을 확장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원한의 문제는 정말 크다. 그것은 인간 차원의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나의 병으로부터 이 지점까지 가보고 싶다.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부터 제기한 생성의 무죄함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그가 붕괴하기 직전까지도 놓지 않았다. 그의 말년의 유고에는 존재와 존재자, 주체와 의도에 대한 분석이 용어들과 뉘앙스를 조금씩 바꿔가며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계속 반복되는데, 이 모든 것은 현존을 비난하고 비하하는 인간의 사고, 즉 원한과 싸우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원한을 넘어가는 문제는 클로소프스키의 말대로,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라는 분별과 규정성들을 허무는 착란의 경지까지 사유를 몰아붙이는 탈인간적인 훈련을 요구할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오래도록 말이다.

물론 나는 이제 겨우 나의 병을 알아차린 수준일 뿐이다. 그리고 니체가 했던 것과 같이 혹독한 여정을 감행할 절실함이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 정도로 나의 자리가 고통스럽진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싸움이 니체에게 그랬듯 내게도 중요하며 지금의(어쩌면 일생의) 목표로 삼을 만하다는 생각은 든다. 니체의 중요한 자부심인 “원한에서 해방되고, 원한의 진상을 규명했다는 것”(『이 사람을 보라』, 341쪽)은 대체 어떤 체험일까? 니체는 그 승리를 있게 한 자신의 오랜 병에 얼마나 감사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번 에세이에서 나는 니체가 어렵게 어렵게 뚫고 간 그 지하의 굴을 따라가며, 병으로부터 어디에까지 이를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소화불량의 역사

피부로 느껴지는 가장 직접적인 문제로부터 출발해보자. 그것은 흙탕물 속 먼지처럼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기억들이다.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역류하는 잔상들, 생생해지기만 하는 표상들, 메아리, 되새김질, 소화를 끝내지 못하는 “대장의 유독한 기억(『니체와 철학』, 210쪽). 원한의 요람은 기억이다. 비난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흔적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원한의 인간을 특징짓는 것은 ‘놀랄만한 기억력’, 다시 말해 ‘잊는 데 있어서의 무능력’이다. 이것은 트라우마의 기억과는 다르다. 정말 별것도 아닌, 그래서 거기 사로잡혀 있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인 자극들이 늘 내 마음속에 얹혀 있다. 탈이 나거나 체한 것이 아니라 만성적인 장 트러블이다. 너무나 자주, 너무나 작은 것들이 내게는 흔적을 남기며 끊임없이 의식으로 침투한다. 니체는 이것을 망각의 능력이라는 저지 장치가 파손된 결과라고 말한다. 잔상들을 잊어버릴 수 없는, 그 되새김질로 인해 다른 자극들의 영향을 받을 수 없는 소화불량 환자. “그는 그 무엇도 ‘해결’할 수 없다.”(『도덕의 계보』, 395쪽) “인간과 사물은 집요하게 그에게 접근하고, 체험들은 깊은 충격을 주며 기억은 곪아버린 상처가 된다.”(『이 사람을 보라』, 341쪽)

물론 경험하는 모든 사건이 내게 흔적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살아 있는 것조차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기억의 흔적에 지배되고 있음은 동시에 다른 경험들이 배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양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었던가? 오로지 맹금과의 관계 속에서밖에 자신을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양의 세계를 채우는 것은 맹금에게서 받은 상처이지 그가 이미 그리고 계속해서 형성하고 있는 다른 생명들과의 관계나 체험들이 아니다. 양은 땅을 밟고 풀을 씹고 있음에도 하늘을 보고 맹금의 존재를 되새김질한다. 평가, 비교, 비난, 우월감을 강화하면서. 원한의 인간의 ‘놀랄만한 기억력’은 언제나 특정한 것들에 대한 기억력이며, 그렇기에 그 외의 것들에 대한 무관심과 무시를 낳는다(또는 거기에 기반한다). 따라서 내가 문제 삼아야 할 것은 기억력 자체가 아니라 그 기억력을 강제하는 맹금의 존재와 그것과의 관계다. 특정한 유형 또는 코드를 가진 말, 표정, 행동은 왜 내게 늘 맹금으로 나타나고 나는 그것을 잊지 못하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되어야 한다. 즉 나의 기억이 강력하게 형성되는 지점은 어디이고 그 기원은 무엇인가? 어디에서 망각 장치가 파손되었는가? 이것은 내가 무엇에 겁을 먹어왔고 그것에 대해 어떤 방어막을 쳐 왔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힌트를 얻기 위해 현재 나 자신의 취약점을 점검해보자. 그것은 나의 고질적 문제인 허영심이다. 나는 내가 평가, 즉 칭찬과 비난에 취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인식 자체는 니체를 읽으며 ‘난 약자야’라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 더 들어가야만 한다. 어떤 것에 대한 칭찬 혹은 비난인가? 내게 골을 남기는 평가는 어떤 종류의 것인가? 나는 무엇에 과민하게 반응하는가? 물론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상황이 어떠냐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럼에도 경향성을 추려내 보면, 나는 외모나 능력, 개개의 행위에 대한 평가보다는 ‘인격’, ‘양심’, ‘됨됨이’ 같은 나 성민호라는 인간에 대한 전체적 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못생긴 애, 공부 못하는 애, 가난한 애라는 말은 참을 수 있어도 바르지 못하다거나 싸가지 없는 애라는 말은 참을 수 없다. 물론 실제로 그런 말을 듣는 일은 많지 않음에도 나는 도덕성에 대한 평가를 비상등을 켜고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 왤까? 왜 나는 니체의 도덕 비판에 그렇게 끄덕였음에도 여전히 나 자신이 도덕적이지 않게 되는 경우는 이토록 두려워하는 걸까? 재능이나 외모는 몰라도 예의나 올바름이라는 이미지만은 잃을 수 없는 걸까? 내가 손가락질 받는다니, 내가 누굴 언짢게 한다니, 내가 못된 놈이라니, 생각만 해도 고통스럽다. 이 민감함은 상호의존관계에 대한 통찰이나 윤리적 양심이라기보다는 생리적 취약함과 맞닿아 있다. 또한 싸움을 싫어하는 성격, 즉 그 불화의 찌꺼기를 감당하지 못하는 성향과도 한 맥락일 것이다.

이 난관의 윤곽이 조금 잡힌다. 나의 유독한 기억력은 나라는 존재의 전체적 도덕성과 관련해서 강하게 작동한다. 또 그 도덕적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서 감정들은 멋대로 표출되거나 뻗어 나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질문되어야 한다. 그 도덕적인 나를 유지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 그렇지 못한 것이 왜 그렇게 공포일까? 물론 기질 때문이라고 답할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날 때부터, 코흘리개 시절부터 인성에 대한 평가를 두려워하고 싸움을 싫어하는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 기질이라는 단어는 인식과 지각의 어떤 메커니즘으로 이뤄지고 습관화되는가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단순화와 왜곡을 위험을 무릅쓰고 이 문제의 실마리를 나의 짧은 과거에서 찾아보려 한다. 이 소화불량과 되새김질은 어떤 조건 속에서 어떤 과정으로 강화되어 왔는지, 내가 맹금을 학습한 조건은 무엇인지. 이 유독한 기억력의 기원은 어떠한지.

철이 든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점은 내게 초등학교 3학년 때의 변화만큼 분명한 전환점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때 구구단을 완전히 외웠고, 나눗셈 때문에 나머지 공부하는 것이 부끄러웠고, 책을 다 읽지 않고 독서 목록을 채웠으며, 청소기를 돌리고, 새벽 기도를 나가기도 했다. 몇 명 안 되는 반에서 처음으로 1등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 싸우지 않았다. 더 이상 말과 손과 감정을 맘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즈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예배시간에 종종 들어온 ‘영(靈)이 안 좋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처음 이해하기 시작했다.

열다섯 살 때까지(그러니까 십 년 전까지) 나는 시골의 한 교회공동체 안에서 자랐다. 산골 개척교회들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은 가족 개념이 흐릿했다. 개척자들의 혈연만이 가족으로 우대되었다. 나를 포함한 다른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라는 건물에서 돌보아졌다. 여느 남자애들처럼 나는 친구들과 이리저리 산과 개울을 싸돌아다니며 쌈박질하고 화해하며 나름대로 건강하게 자랐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부엌 건물이나 예배시간에 잠깐 보는 것이 전부여서 나는 솔직히 부모님과의(그리고 부모님 간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잘 몰랐고, 같이 보낸 시간이 없으니 이렇다 할 가족적인 애정이 생기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예배시간에 아버지의 이름과 함께 영이 안 좋다, 마귀 들렸다는 말이 귀에 들리기 시작한 것은 좀 이후였다. 그것은 아마 그즈음 아버지가 교회 밖 다른 수련원이나 공동체를 경험하셨기 때문일 것이다(아버지는 15살에 집을 나와 교회로 들어와 30년을 교회를 위해 일했다). 영이 안 좋다는 선고는 이탈이나 저항에 대한 교회 측의 일종의 공동체적 매도 혹은 규탄이었다. 거기에는 물론 사업 수완과 관련된 더 복잡한 이해관계와 힘관계가 있었지만 다 쓰자면 끝도 없다. 당시 나는 이런 내막까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그 말이 일거수일투족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종의 경고라는 것과 그것이 성 집사의 아들인 나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른들의 눈초리나 은근한 멸시 정도는 열 살 무렵인 아이가 알아채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물론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영 상태에 대한 그런 방식의 온도차는 ‘어린이집’에서도 존재했고 특히 식탁과 강대상 앞에서는 극명했다. 나보다 다섯 살 위인 형은 ‘어린이집’에는 잘 들어오지도 않았고 매일 교회 욕을 달고 살았다. 교회를 떠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랬다.

너무 어둡게 그리고 있지만 분명 밝은 면도 많았다. 이 시기 내가 차별받았다느니 불행했다느니 하는 해석들은 그때가 아니라 그 이후에 덧붙인 것들이다. 분명 당시 나는 잘 먹고 잘 놀았다.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앞에서 말한 열 살 때의 변화다. 어느 순간 나는 아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나눗셈을 억지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화가 난다고 주먹질을 하면 안 되었고, 밥을 남기거나 예배시간에 졸아서는 안 되었다. 벌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회초리와 훈계 같은 벌은 줄곧 받아왔으니. 그보다는 어떤 시선들과 그 시선이 말해주는 일종의 타락 같은 것이 의식되었던 것 같다. 나는 무엇이 틀린 것인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분명히 기억해야 했다. 의지할 만한 뒷배는 없었다. 나는 부지런히 금지와 금기들을 새겼다. 물론 그런다고 온도차가 극복된 건 아니었지만, 누구 집사 아들 운운하며 혀를 차는 소리는 덜 들을 수 있었다.

“기억 속에 남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달구어 찍어야 한다.”(『도덕의 계보』, 400쪽) 아마도 나의 망각 장치는 이때쯤 닳아버린 게 아닌가 한다. 어떤 말이 나에 대해 하는 말인지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눈칫밥도, 그 말을 간직하고 새겨둘 준비를 하는 경향도 이런 조건들과 더불어 강화되어 왔을 것이다. 나의 영은 어떠한가? 어떻게 얘기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교회 공동체라는 배경 속에서 나는 영이라 표현되고 도덕성, 예의, 성격 등으로 평가되는 코드들을 읽었고 기억했으며, 그로부터 내가 어떤 놈인지 내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점검하고 그려보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신기하게도 이런 경향은 내가 행동하는 만큼 인정받을 수 있었던 대안학교 공동체에서 빛을 발했다. 그곳에서 나는 성실하고 예의 바른 성격이라고 불렸다. 이런 피드백은 내게 힘을 느끼게 했다. 몇 년 동안 다양한 인간관계도 맺고 나름대로 많은 칭찬을 받으면서 나는 교회에서의 경험들을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게 밝음으로 여겨지는 이 청소년기도 도덕성에 대한 촉각을 강화했다는 점에서는 어둠으로 여겨지는 유년기와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 긍정적 평가에 힘입어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보다 무엇을 더 잘 해야 하는지에 더 치중했을 뿐이다. 여전히 나의 영이 어떠한지를 묻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종류의 기억력과 민감함을 키워왔던 것이다.

이제 그 어느 사소한 표현들도 내 거미줄에 걸린다. 저 말, 저 표정, 저 몸짓이 나에 대한 비난인가 칭찬인가, 공격인가 호의인가? 이 부지런한 판결들이 온통 내 시야를 채우고 나의 세계를 구성해왔다 ‘들을 귀를 갖지 않을 현명함’이라는 단편에서 니체는 말한다.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매일 듣는 것은,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파멸시키고 만다.”(『아침놀』, 385쪽) ‘들을 귀’를 열심히 키워온 나는 별로 강하지도 않았을 스스로를 꽤 오랫동안 망쳐 온 것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진단하는 내 소화불량의 역사다. 다시 말해 특정한 흔적(주로 ‘나’의 도덕성에 대한 평가)에 붙들리는, 그래서 다른 자극들을 수용할 수 없는 증세가 어떤 조건에서 생겨났는지에 관한 나름의 추측이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한가? 물론 현재 나 자신을 이해하고 적어도 원한을 원망하지 않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이것은 또 다시 내 증세를 특수한 경험의 결과로, 개인적인 문제로 환원시키는 진단이 아닌가? 그러면 전처럼 출구 없이 “그랬었다”로 끝나버리는 것 아닌가? ‘이렇게 해서 어떤 기억력이 강해졌다’는 인과추론은 잘해봐야 완화제이지 치료제는 아니다. 아래로 더 내려가야 한다. 소화불량이라는 상태 이전에, 어떤 것을 소화시키거나 소화시키지 못하는 필터 자체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그러니까 특정한 자극을 붙드는 거미줄은 대체 무엇인가?

 



 

자아와 원한

마치 나만의 독특한 경험인 양 특권화해서 적었지만, 몇 가지 구체적 조건들만 다를 뿐 이것은 청소년기에 누구나 겪는 ‘자아 형성’ 과정일 것이다. 열 살 무렵이면 누구나 눈치가 생긴다. 자신의 힘의 크기를 알게 되고,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이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인지에 대한 관념이 생긴다. 아이이길 그친다는 것, 즉 자아를 형성한다는 것은 누구나 통과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우리 중 누구도 아이가 아니다. 누구도 울다가 웃고, 아무거나 입에 넣고, 아무 데서나 놀거나 잠들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순간의 충동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아니, 순간의 충동대로 행동하지 않도록 하는 충동에 따른다. 우리가 복종하는 충동들은 특정한 코드들에 의해 오랜 세월 반복되어 견고하게 굳어져 있다. 우리는 너무나 무거운 “해야 한다”를 몸에 새기고 나서야 비로소 아이이지 않게 된다. 이 자아 형성 과정은 겪지 않는 사람이 드물기에 당연한 발달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니체에 따르면 이것은 정신에 있어서의 하나의 중대한 사건이다. 차라투스트라가 말한 ‘정신의 세 변화’에서 가장 첫 번째, 정신이 낙타가 되는 변화가 이것이기 때문이다. 말랑말랑한 아이가 무겁고 단단한 골격을 갖는다는 것. 비유적으로든 실제적으로든 여기에는 단절이 존재한다.

자아를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생각”(『아침놀』, 132쪽)이라 한다면, 그것은 일차적으로 동물 차원에서 발달된다. 동물도 자신이 다른 동물의 마음속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며, 이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을 배우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배운다.(『아침놀』, 42쪽) 하지만 동물은 그러한 ‘자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확장시키지도 지속시키지는 않는다. 그것은 생존의 차원을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에게서 그 생각은 비교도 안 될 만큼 복잡해지고 기이해진다. 인간은 익명의 누군가의 말 한마디 혹은 댓글 하나에 며칠을 앓기도 하며, 지구 반대편의 알지도 못하는 아동에게 기부하며 뿌듯해 하기도 한다. 또 젊었을 적의 영광에 늙어서도 연연하는 경우를 보면, 자아는 시간과 공간 바깥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신(scene)이 바뀌고 막이 달라져도 ‘나’는 이어진다. 심지어 몸을 구성하는 세포가 전부 죽고 바뀌어도(6개월이 걸린다) 여전히 나는 나로 있다. 다시 말해 우리를 구속했던 특정한 조건이 변해도 기입된 판단들과 관념들의 실타래는 변하지 않고 연속된다. 그것들은 울타리를 넘어온다. “시간의 두루마리에서 한 장씩 끊임없이 풀려서 떨어져 나와” 현재로 “다시 훨훨 날아든다.”(『반시대적 고찰2』, 290쪽) 따라서 자아를 갖는다는 것은, 겪고 있는 체험과 하고 있는 행위 배후에 연속되는 동일한 기억의 다발을 축적하게 되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자아라는 이 기억의 연속과 더불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그것이 우리의 체험을 구성한다. 다시 말해 감각된 자극을 부풀리거나 축소시키면서 채색한다. 우리에겐 어떤 현상도 날것으로 경험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단순한 소리로(혹은 음파)로 듣지 않고 표정을 단순한 형상(혹은 산란된 빛)으로 보지 않는다. 그 음파나 빛이 감각되는 순간 관련된 기억이 불려나오고 의미와 의도가 따라붙는다. 가령 “쯧쯔쯔”하는 소리를 들을 때, 나는 그것을 ‘나’라는 상(像) 속에서 듣는다. 바로 그때 좀 전까지 잘 느껴지지 않던 ‘나’가 너무나도 선명하고 생생하게 등장한다. ‘저 사람’이 ‘나’에게 왜 저러는지, ‘나’를 무시하는 건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등 자아를 둘러싼 생각들의 잉여들이 피어오른다. 만일 그 소리가 그냥 흥얼거리는 노래였다면 무시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사건과 사물은 언제나 우리 자신과 연결된 표상, 관념, 흔적들의 데이터베이스 속에서 경험된다. 물론 여기서도 동물적 차원의 지각과 단절이 있다. 인간의 지각은 단순히 자신의 생존에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을 분별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우리는 나타난 현상에서 그 배후에 있을 동기나 목적, 의미, 본질 등 원인에 해당하는 부분을 추출하고, 사회적인 기준을 참고하여 그것을 좋다 나쁘다, 아름답다 추하다, 선하다 악하다는 식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판단과 가치평가들이 축적되어 우리는 특정한 사물이나 행위에 대해, 타인과 자기 자신에 대해 그것이 어떠어떠하다 혹은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식의 사전적 판단(사실상 편견)의 체계를 형성한다. 이미지와 언어, 표상과 규범들로 이루어진 이러한 선(先)판단의 체계가 우리의 경험에 동원된다. 자아, 즉 거대한 기억망의 형성. 바로 여기에 원한의 토대가 있다. 니체는 그 과정을 이렇게 묘사한다.

“과거와 미래의 울타리 사이에서 행복한 맹목성 속에 놀고 있는 아이 (...) 그러나 그의 놀이도 방해를 받고야 만다. 너무 일찍 아이는 망각으로부터 불려 나온다. 그리고 아이는 “그랬다”라는 말을, 투쟁, 고통, 권태와 함께 인간에게 다가와 그의 존재가 근본적으로 무엇인지 -결코 완성되지 않는 미완료 과거임을 상기시켜주는 저 암호를 배운다.”(『반시대적 고찰2』, 291쪽)

아이를 망각으로부터 꺼내오고, 투쟁과 고통과 권태를 안겨주고, 그의 존재의 본질을 일러주는 암호는 “그랬다(it was)”이다. 하지만 대체 “그랬다”가 뭘까? 이것은 우리가 사물과 사건과 우리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이 아닌가? 그것이 무슨 잘못이 있길래 아이를 고통에 빠뜨리는 걸까? 왜 차라투스트라는 “그랬었다(it was)” 일체를 전환하지 않으면 생이 구제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걸까?

우선 이 표현 자체가 지시물의 존재를 상정한다. “그랬었다”의 세계는 경험되는 대상들과 동시에 경험하는 자기 자신이 설정된 세계이다. 또한 그것은 어떤 자극이 그 형태와 질감 등의 특성을 가진 채로 기억됨을 전제한다. 이제 세계는 ~한 것, ~인 것, ~일 것 등 이름을 가진 대상들로 분할되고 아이는 다음에 맞이하는 순간에도 그 정보들을 참고한다. 따라서 “그랬었다”는 위에서의 기억과 선판단의 체계다. 아이는 짓고 허무는 망각과 놀이의 세계로부터 불려 나와 시간과 기억의 세계로 나온다. “그랬었다”가 붙들어놓은 과거는 아이가 어찌할 수 없는 바위로서 가로놓인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다음 순간에도 나타난다는 점에서 ‘결코 완성되지 않는 미완료 과거’다. 아이가 이것을 하다가도 저것을 하도록 만들고 이런 존재인 동시에 저런 존재이게 하던 충동들, 쉼 없이 그를 스치고 변형시키는 힘에의 의지는 그 기억들에 갇히고 비통해한다.

““그랬었다.” 의지의 절치와 더없이 쓸쓸한 비애는 이렇게 불리고 있다. 이미 행하여진 일에 손을 쓸 수 없는 의지, 그것은 일체의 과거에게는 악의를 품고 있는 관망자이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36쪽)

뜻대로, 바람대로, 충동대로 하지 못하고 그럴 수 없음. 그럴 때 정신은 “하고 싶다”에 반하는 “그랬었다”를 “너는 마땅히 해야만 한다”는 판단으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짐을 진다. 무게가 없는 의욕을 가두기, 그리고 당위와 의무로 바꾸어 짐 지기. 사실 이것은 매일매일 내게서 일어나는 일이다. 찰나마다 나를 통과하는 대부분의 충동들은 언제나 내가 누구고 여기가 어디고 지금이 언젠지를 상기시키는 “그랬었다”와 “해야 한다”에 의해 부딪혀 말라버리고 만다. 그래서 “해야 한다”에 부합하는 해묵은 충동만이 보호된다. 이런 상황이 오래 반복되면 충동들도 일단락되어 편해지지 않을까? 근면한 낙타는 별다른 고통이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가 이미 힘으로 이뤄져 있고 세계의 모든 것들이 힘이라면, 제아무리 같은 방식으로 살아도 매 순간 다른 힘의 배치에 놓이고 우리의 충동도 다르게 조합된다. 힘들의 각축장에서 언제나 다른 모양으로 피어나는 것이 충동이기에 그것은 자신을 붙드는 것들에 적의를 품는다. 니체는 이것을 시간과 시간의 “그랬었다”에 대한 의지의 적의, ‘앙갚음의 정신’이라 말한다. 이렇게 원한은 기억, 자아, 정신의 문제와 닿아 있다.

정리해보자. 자아의 형성은 기억의 형성, “그랬었다”라는 표상과 이미지 더미의 형성, “해야 한다”라는 판단 체계의 형성을 의미한다. 더 정확히는 그것이 현재의 체험 안으로 계속 침투함을 의미한다. 이럴 때 의지는 자신을 증대시키지 못하고 이 기억들의 감옥에 갇힌다. 거기서 의지는 앙갚음의 의지, 즉 원한으로 변모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갖는 한 자아는 소화불량의 토대일 뿐 아니라 사라지지 않고 늘 회귀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소화불량일 것이다. 들뢰즈에 따르면, 원한이란 새로운 자극들이 아니라 특정한 기억의 흔적들에만 줄곧 반응하고 있는, ‘영향받길 중단한’ 의식의 상태다. 자아 또한 폭은 넓지만, 기억되고 있는 정보가 아닌 것들로부터 영향받지 못하는 의식의 교착상태다.

결국 다시 기억이 문제인데, 기억을 어떻게 문제 삼아야 하는가? 기억을 잊고, 자아를 버리고 다시 순수한 망각의 상태로 가야 하나? 아마 그럴 수도 없고 만일 그렇게 되어버린다 해도 곤란할 것이다. 그건 기억 상실과 무슨 차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런 뚱뚱한 자아를 가지고 소화불량을 앓으며 살아가는 내게 윤리적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망각의 능력과 조형력

지금까지는 기억의 소화불량에 대해서만 말해왔다. 그렇다면 소화를 시킨다는 것은 대체 뭘 말하는 걸까? 니체는 우리의 의식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앞서의 자극을 잊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겐 저장된 기억이 다시 해석되어 우리 머릿속 혹은 마음속에 떠오르지 않도록 비할성화시키는 수문장 역할을 하는 적극적인 작용이 있다. 니체는 그것을 ‘망각의 능력’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자극에 대한 반응들 사이에 망각이 없다면 우리는 어떤 ‘정상적인’ 행위도 할 수 없다. “모든 행위에는 망각이 내재한다.”(『반시대적 고찰2』, 292쪽) 망각의 능력은 우리가 새로운 자극들에 영향을 받을 수 있도록, 그럼으로써 잘 반응할 수 있도록 해준다. 내가 바라는 것은 적어도 의식의 이런 평상시의 상태였다. 하지만 ‘정상적 의식 상태’라는 것은 언제든 그 정상성 체계에 어긋나는 체험 앞에서 원한으로 돌아설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 아닐까? 비록 정서적 문제 없이 산다 하더라도, 바로 그런 문제를 겪지 않았음 자체가 다음 순간에 가장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다. 정상성이라는 것은 언제나 시대적이고 문화적으로 규정된 것이며, 잘해봐야 인간적인 관점에서 구성된 협소한 틀 아닌가? 언제나 비정상 앞에서 무너질 준비가 된 정상.

따라서 내가 바랐던 것처럼 정서의 반복을 그치고 ‘정상적인’ 의식 상태로 돌아가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망각의 능력’은 단순히 잘 까먹거나 기억을 상실한다는 의미보다 더 적극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것은 기억 형성 이전으로, 즉 아이와 같은 망각의 상태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기억을 외면하거나 비껴가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떠오르는 기억들뿐 아니라 아직 무엇인지 모르는 기억들까지 그 색채와 의미와 형태를 갈아엎는 작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 “그랬었다”로 매듭지어진 모든 이미지, 판단, 표상, 가치평가들을 재평가하고 다시 의미화하는 작업. 그 결과는 그것이 좋다, 나쁘다, 이러하다, 저러하다는 식이어선 안 될 것이다. 그럼 또다시 “그랬었다(it was)”로 귀결되고 “해야 한다”가 출현하며 원한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래서 니체가 기억에 가하는 최후의 일격은, 그 과거 전체가 다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살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그렇다”라고 대답해버리는 결단이었다. 그럼으로써 모든 것을 “내가 원했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전환이었다.

“일체의 “그랬었다”를 “나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로 전환하는 것”(『차라투스트라』, 236쪽)은 계산의 결과도 아니고, 체념적 인정도 아니며, 말장난이나 트릭도 아니다. 물론 과거가 너무 좋아서 가능한 장난도 아니다. 평생을 병에 시달린 니체에게 과거가 뭐 그리 아름다웠겠는가? 구토와 발작, 반(半)마비상태와 두통에 시달리면서도 그런 운명 전체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뭘까? 그런 삶을 영원히 반복하겠다고 답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 커다란 질문에 조금이라도 힌트를 얻으려면 그 순간 니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내 실존은 끔찍한 짐입니다. 만약에 내가 그러한 고통과 거의 완벽한 체념의 상태 동안에 지적이고 도덕적인 영역 안에서 아주 유익한 실험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오래전에 그것을 던져버렸을 것입니다.”(피에르 클로소프스키, 『니체와 악순환』, 43쪽)

거의 완벽한 체념의 상태와 밑바닥의 생명력 속에서 니체는 ‘아주 유익한 실험’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것은 신체의 진동에 집중하는 동시에 도덕, 종교, 인간, 과학, 문화 전반에 걸친 인간의 가치들에 질문을 던지는 일, 니체 자신의 ‘아침놀’을 열어 줄 사유의 실험이었다. 이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적고 있듯, 그렇게 아프지 않았더라면 할 수 없었을 실험이었다. 신기하게도 니체에게 병은 언제나 어떤 것을 못하게 하는 요소보다는 새로운 것을 하도록 하는 요소가 되었다. 불규칙하게 엄습하는 두통은 니체를 책상 앉아있지도, 긴 호흡의 글을 쓰지도, 심지어는 자기가 한 메모를 보기도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니체는 거기서 쓰기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렇게 의식의 안정된 리듬이 끊어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사유와 글쓰기를 시도했다. 종이와 펜을 들고서 몇 시간이고 걷고, 휘갈겨 적고, 친구들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것. 변화 앞에서 할 수 없게 된 것들에 절망하고 있는 게 하니라 할 수 있게 된 것에 집중하는 것. 달라진 힘들의 배치에 영향받기를 기꺼이 택하는 것. 그럴 때 병은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고, 벽이 아니라 뒷문이, 강물이 아니라 다리가 된다. 그러니까 병을 감사해야 할 무엇으로 만들고 장애를 사관학교로 만드는 것은 그것을 겪는 순간과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에 무엇을 하는가다. 바로 그 문제를 겪지 않고서는 결코 할 수 없었을 일들을 그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 그 발디딤이 질병, 고통, 장애 뭐라고 불리든 그 체험과 기억의 흔적들의 의미를 전도시키고 또 구제한다. “이제부터 저는 저 자신의 의사가 될 겁니다”라고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에 적는 동안, 니체는 아마도 자신의 그런 생 전체를 정말 스스로 원했던 것으로 변형하고 채색하고 있었을 것이다. 원한을 넘어간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그랬었다’ 일체를 ‘나는 그러하기를 원했다!’라고 말하는 것이 ‘창조하는 의지’라고 말한다. 창조하는 의지는 기억을 변형시키고 전도시킨다. 망각의 능력이 향해가야 할 지점은 바로 여기가 아닐까? 정상으로 되돌리거나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완전히 다른 의미와 이름을 부여하기.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니체는 조형력이라고 말한다.

“조형력이란 스스로 고유한 방식으로 성장하고, 과거의 것과 낯선 것을 변형시켜 자기 것으로 만들며, 상처를 치유하고 상실한 것을 대체하고 부서진 형식을 스스로 복제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반시대적 고찰2』, 293쪽)

그렇다면 나에게서 이런 조형 작업은 어떻게 가능하며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할까? 과거의 것, 즉 내게 잘 잊혀지지 않는 말 표정 행동이 남긴 흔적을 낯선 것과 함께 변형시킨다는 일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그것들을 나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 즉 더 이상의 표상이나 감정적 잉여를 낳지 않고 오히려 ‘없어서는 안 될’ 경험이자 지혜로 만든다는 것은 어디서부터 시도되어야 할까?

 



 

보는 법을 배우기

지금 나는 교회공동체나 대안학교에 살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거기서 형성되고 그 조건에서 유용했던 판단체계와 가치평가가 지금도 빈번하게 소환되고 있음을 느낀다. 이는 아마도 아직도 내가 사물들과 사람들을 그리고 나 자신을 그러한 영-도덕과 관련된 필터를 끼고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리 것이다. 지금은 불필요하고 강제되지도 않는 그러한 기준들에 따라 심판하고자 하는 힘 의지가 체험들을 해석하고 있는 것. 그런 의지의 기원과 그 무의미성을 살펴본 이상 나의 실험이 시작되어야 하는 지점은, 바로 그런 식의 해석 의지와는 다른 방식의 해석 의지가 활성화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것은 눈으로 하여금 평정에, 인내에, 그리고 자신에게-다가오게-놔두는 일에 익숙하게 하는 것이다 ; 판단을 유보하고, 개별적인 경우를 모든 측면에서 다루어보고 포괄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 사람들은 적의 어린 평정 상태에서 모든 종류의 낯설고 새로운 것을 자기에게 다가오게 한다.”(『우상의 황혼』, 138쪽)

나의 훈련은 우선 선판단의 개입을 중지시키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내 마음의 많은 정서는 의식의 통제 바깥에서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하지만 사후적이나마 습관적인 판단과 표상들이 특정한 자극들을 특정한 패턴대로 해석하고 있음은 알아차릴 수 있다. 핵심은 그것이 알아차려지는 단계에서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그 자극이 어떻게 부풀려지고 어떻게 줄어들며 해석되고 있는지, 그와 더불어 어떤 감정과 신체적 변화들이 나타나는지, 혹시 그런 반응들이 또 다른 재료로 해석되어 증폭되고 있진 않은지. 즉각적이고 실체적인 반응양식에 자신을 내어주지 않는 연습이 시도되어야 한다. 해석이 낳고 있는 해석들에 휩쓸리지 않고, 그렇다고 딴청 피우거나 관찰하기를 그만둬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나의 싸움이다. 적의 어린 평정 상태로 나 자신과 대적하기. 니체 말대로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오래된 병의 치료는 서서히 일어난다고 했으니까.

 
전체 4

  • 2021-01-08 16:08
    왜소한 평화주의가 내 탐욕의 발현이다. 공감합니다. '자신의 고통을 제거해 버리거나 아예 없는 상태를 상상한다'...,공감합니다. 저도 민호샘처럼 '겁쟁이 태도'를 가지고 살아왔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되새김질병을 만들어 인식의 전제들과 마음의 습관들'을 가지고 '원한'을 가지고요...글이 섬세하고, 그러면서도 부드럽고 설득력있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잘 알지못하는 니체임에도 공감이 가는 글이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니체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키는 글이네요~~~^^

  • 2021-01-08 17:02
    이번 에세이에서 민호쌤과 비슷한 지점을 두고 각자가 겨뤄본 것 같아요. 니체가 말한 원한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저도 매번 새롭게 고민한 것 같아요. 민호샘은 원한에서 해방되는 경지를 '그랬었다'를 '내가 원했다'의 경지까지 가는 걸로 해석했네요. 제겐 뜻깊은 해석이었답니다. 올한해도 민호샘한테 많이 기대서 공부해나가려고 해요...소울 메이트니 당연히 그래주겠지요.?

  • 2021-01-08 22:42
    민호의 글을 보니 그 자체로 좋은 경험, 사건, 환경이란 건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긍정하고 넘어갈 것인지만이 문제라는 생각. 함께 또 각자 경험을 지혜로 만드는 일을 계속 해보십시다~ 수시로 도움을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 2021-01-08 23:26
    '그랬었다'는 내 전문이었기에 뜨끔했네요. ㅎ
    읽는 중에 푸코의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삶을 조형한다'는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니체의 조형술이 '나는 그러기를 원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면 앞으로 취할 민호샘만의 고유한 조형술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