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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 속박된 정신과 욕망에서 벗어나기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21-01-08 15:54
조회
256

속박된 정신과 욕망에서 벗어나기



글 / 현주(절탁NY)



 1. 속박된 정신


내가 중‧고등학생이었던 1970년대 80년대, 그때는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항상 초만원인 버스를 타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서로 먼저 올라타겠다고 몰려들었고 버스 안내원은 매달려 있는 사람들을 버스 안으로 힘껏 밀어 넣었다. 발 디딜 틈조차 없었던 그곳에 올라타는 순간,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버스를 놓치지 않고 탔구나’하면서. 지금의 20, 30대에게는 낯선 광경이지만 TV와 같은 매체를 통해서 소위 제 3세계라고 불리는 나라들에서는 아직도 엿볼 수 있다.

이런 한국 문화는 내가 90년대 중반 독일에 가기 전까지 당연시 해왔다. 하지만 거기서 본 독일인의 질서의식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서로 몸을 부딪치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했고, 차를 탈 때에는 모든 사람이 다 내리고 차례대로 한 사람 한 사람씩 올라탔다. 두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 이게 선진국의 시민의식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질서를 잘 지킬 때 쾌적함을 느낄 수 있음을 경험했다. 불필요하게 먼저 타겠다는 성급한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고 순서대로 줄 서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문화, 그게 선진 문화지.

그때부터 나는 질서를 지키지 않는 한국인을 보면 화가 나면서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다. 이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무질서’가 수치로 다가와서 질서를 지키지 않는 한국인을 경멸했다. 그들에게 “내린 다음에 타라고” 한마디 할 때도 있다. 이러한 마음은 식사 예절에까지 이어졌다. 현재는 좋아진 상태지만 2000년대 독일에서 갓 돌아왔을 당시에는 한국의 식사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다. 모든 음식을 같이 먹는 문화에 대한 거부 반응이 일어났고 그래서 서양식으로 개인 접시에 덜어 먹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빈축을 사기도 했다.

나는 독일인의 질서의식에 매료되었기에 그것을 배우고 싶었다. 그들의 질서의식은 대중교통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상생활 영역으로 스며들어 있었다. 어쨌든 독일인의 질서의식을 한국인 모두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것을 배우지 않으면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사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모두가 수긍할 줄 알았다.

내가 질서의식을 강조하면서 서양인을 의식하고 수치심을 느끼는 것도 서양인의 시선에서 우리를 판단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수치심을 느끼고 싶지 않기에 더욱 ‘우리 모두 질서의식 있는 자가 되자’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것 같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왜? 서양인에게 당당해지고 싶어서? ‘우리도 너희와 같아’라고 말하고 싶어서? 그런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다. 요즘 내가 코로나19 국뽕 유튜브에 빠진 것도 그것을 통해서 나의 수치심이 상쇄되는 쾌감을 받기에 그런 것 같다. 나는 비교하지 않고는 스스로 당당함을 느낄 수는 없는 것인가?

사람들은 대부분 권위 있는 사람들(아버지, 친구, 교사, 군주)의 신념에 무조건 항복하는 쪽을 택하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에는 일종의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442쪽)

그러면 나도 서양이라는 ‘권위 있는’ 자들이 질서의식을 중시하기 때문에 그것에 무조건 항복하여 질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 수가 없다. 내가 그들을 모방하지 않으면 계속 뒤처지고 진일보할 수 없을 것 같은 ‘자기 부정의 감정’을 느낀다. 서양인처럼 우리가 진일보할 좋은 기회라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길을 같이 가자고 독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질서의식을 고양시키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질서의식을 강조했던 것도 일상에서 누구보다도 일사불란한 것을 선호했기에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할 때도 누군가가 어물거리고 해야 할 일을 제때 하지 않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하면 나는 화가 나면서 그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성향으로 주변 사람들과 마찰이 생기기도 했다.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내 욕망대로 착착 움직여주길 바랐다. 나와 사람들과의 욕망을 단일화하는 것을 질서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만큼 지지부진하고 흐트러진 상태를 용납하는 것이 힘들었다. 일사불란하지 못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었으나 그게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독일의 질서정연한 상태에 환호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독일인의 질서의식을 숭배한 것도 일사불란한 상태를 갈구한 나의 욕망과 일치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질서의식이라는 것은 문화의 범주에 속하는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독일인에 대한 이미지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힘들 속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문화에 대한 이미지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각각의 민족들은 ‘이러저러한 것이 질서다’라는 의식을 구축해가며 그것을 문화라고 일컫는다.

니체는 ‘이러한 구축된 질서에 대한 열광은 속박된 정신의 특징으로 그 정신에게는 옳고 그르다는 두 가지의 가치 판단만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독일인의 질서의식은 우리를 쾌적하게 하기에 옳은 것, 그 외의 무질서는 불쾌하게 하기에 나쁜 것으로 판단하는 속박된 정신은 “자신의 샘에서 물을 긷는 것”(같은책, 286쪽)을 하지 못하고 오로지 권위있는 자를 모방하려 할 뿐이다.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의 모습만을 바라보면서도 서양인과 동일시하고 싶은 열망에 휩싸여 있는 나, 그러나 어떻게 ‘권위있는’ 자들의 신념에 무조건 항복하지 않는 나 자신이 될 수 있을까?

 



 

 2. 허영에 휩싸인 나

나는 독일에서 돌아온 후 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거기서 누가 요구하지도 않은 일까지도 일사천리로 알아서 하기도 해서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나에게 감탄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한 가지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기에 나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음, 난 일 잘하는 사람이야, 추진력도 있고 일의 성과도 있어, 그래 모두 나 같이 일을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음만 먹으면 나처럼 일을 잘 할 수 있을 텐데 왜 하지 못할까, 그들이 게을러서 그런 건가, 아니면 왜 그런 건가라는 궁금증도 있었다.

그렇게 되기를 원했던 나의 욕망은 직장 동료와의 갈등을 야기했다. 나랑 갈등이 생기는 동료들은 대부분 느리거나 빠릿빠릿하지 못한 사람들로 일사불란한 것에 대한 욕망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일 처리를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알게 모르게 그들을 경시했다. 지금의 직장에도 10년차인데도 매번 반복되는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직원이 있다. 그 직원이 그럴 때마다 나는 화가 난다. 그래서 그 직원에게도 일사불란하게 일을 잘 처리하는 ‘유능한’ 나처럼 되라고 요구한다. 나의 욕망을 그 직원에게 투사하고 있다. 나는 우리 모두 다 같이 단일한 욕망을 갖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한 마음, 한 뜻으로 빨리 결정해서 일을 수행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을 한다. 뭉그적거릴 필요가 있을까?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주어진 대로 수행하면 우리가 서로 충돌할 이유도 없고 좋고 편하잖아, 합리적이기까지 하잖아, 이렇게 생각하며 직장생활을 해왔다. 내가 일사불란을 합리적인 것으로 여긴 이유는 그것을 통해 안정감과 쾌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관계해왔던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행동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나의 욕망을 좇도록 하면서, 그러니까 그들의 희생을 통해서 나 자신의 쾌의 느낌을 갖고자 했다.

인간의 가장 가깝고 가장 자연스러운 감동이 이단시되었던 시대부터 이미 일종의 도덕 검열과 같은 것이, 우리 도덕주의자들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몇몇 단어에 내재해왔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사회라는 물결 위에서 우리는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것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간주하는 것에 의해서 좋은 항로로 나아가거나 난파를 겪게 되는 것이라고 믿는 근본 신념은─이것은 사회와 관련된 모든 행동을 위한 키가 되어야만 한다는 신념이다─ ‘허영심’(...)이라는 가장 일반적인 단어로 표현되고 낙인찍힌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Ⅱ』, 269쪽)

일종의 도덕 검열과 같은 것이 우리 “인간의 가장 가깝고 가장 자연스러운 감동을” 이단시하고 있다. “인간의 가장 가깝고 가장 자연스러운 감동”이란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것이란 다양한 충동이 넘쳐나는 생성의 세계를 말한다. 그런데 일종의 도덕 검열 같은 것이 우리가 좋다고 간주하는 충동만으로 우리의 모든 행동을 위한 잣대가 되어야만 한다는 신념을 갖도록 한다. 그 외의 것은 모두 ‘악’으로 간주하도록 한다. 그런 기능을 하는 것이 허영심이라는 단어다. 도덕 검열의 기능을 하는 허영심은 당연히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의견만을 고수하도록 한다. 일사불란한 것을 선호하고 그 외의 지지부진하거나 뭔가 정렬되어 있지 않은 것을 부정하는 나 역시 스스로 도덕 검열을 완고하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사불란한 것이 좋다는 나의 의견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그것은 70, 80년대 경제 개발을 위해 효율성을 중시한 우리의 사회적 가치를 내면화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나는 그런 가치를 배웠고 또 내가 그렇게 행동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평이 좋았다. 그런 기억을 가진 나는 그것에 대해 긍지를 가지며 내 의견을 고수하려 했다. 일사불란은 나의 아이콘이며 나의 정체성이었다.

때론 나 자신도 느긋하게 일상을 보내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느긋함이란 게으른 거야’라는 편견을 갖고 있어 그런 상태에 있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니 해야 할 일을 미리미리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그래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싫다. 결국 나는 불안감과 불쾌감 대신 안정감과 쾌감을 느끼고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어쩌면 나는 직장에서 기계처럼 효율적으로 일을 수행하도록 최적화된 사람은 아닐까? 그렇기에 널브러져 있고 지지부진하고 왠지 모르게 비효율적일 것 같은 충동들에 대해서는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다. 그런 상태에 놓이면 시간을 낭비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효율적인 자가 쓸모가 있다고 여겼다. 그래야 어디 가서라도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좋은 평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처럼 타자에게 대접받고 좋은 평을 받고자 하는 자기 보존 충동이 바로 허영심이다. 이런 허영심에 휩싸였던 나, 그런 내가 좋은 대접을 받으려면 상대방도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일사불란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그래야 내가 더 돋보일 것 같았다. 나의 쾌를 위해, 나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모두 그렇게 행동하자고 말했던 것이다. 일사불란을 절대 가치로 여기며 ‘난 이런 사람이야’라고 다른 사람들을 현혹시키고자 했다. 그것을 내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허영심에 휩싸여 있는 사람은 자신의 힘을 증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힘에 대한 신뢰를 끊임없이 증대시키려는 욕망, 바로 변화를 거부하는 충동을 가지고 있다. 힘에 대한 신뢰는 어떤 구축되어 있는 것에 대해 끝없이 찬미하려는 우리의 세계관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신뢰받고 있는 어떤 상태를 지속해서 유지시키려는 욕망, 즉 무조건적 믿음은 우리 스스로 우리의 힘 자체를 증대시키는 일보다 훨씬 쉬울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믿음과 신봉과 숭배만 있으면 된다. 회의하는 힘은 불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오로지 확실성과 정확하게 독점된 개연성만을 머릿속에 가지”(『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448쪽)려 한다. 이것이 자기 보존 충동이다.

내가 일사불란한 사람이 되고자 했던 것도 그것을 통해서 타자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자기 보존 충동의 발현이었다. 허영심은 이런 자기 보존 충동을 강화한다. 허영심에 휩싸여 있던 나는 일사불란하게 일 처리 하는 것을 ‘유능함’으로 여겼다. 유능한 자가 되고 싶다는 충동 뒤에는 ‘품위있는’ 자가 되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품위있는 자가 되려면 유능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그래야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다고. 유능한 문화인이자 “이동하는 백과사전”처럼 앎을 내장한 교양인, 나는 이것을 ‘품위있는’ 자로 여겼고 그것에 대해 외경심을 갖기 시작했다. 내가 우리나라를 폄하하고 독일을 숭배했던 것도 교양인에 대한 갈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보다 더 교양인으로 보였다. 하지만 니체는 내가 높게 평하는 문화의 표본인 현대적 교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현대적 교양의 비밀이 폭로되고 공개적인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현대인이 우리 자신에게서 얻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가 낯선 시대들, 관습들, 예술들, 철학들, 종교들, 인식들로 우리 자신을 채우고 넘쳐나게 함으로써 우리는 무언가 고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다시 말해 이동하는 백과사전이 되며, (...) 백과사전의 가치는 책의 외면에 있는 것, 책의 장정이나 표지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것, 내용에 있다. 그렇게 현대 교양 전체는 근본적으로 내면적이다. (...) 거기서 실제 사물들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습관이 생기고, “약한 인격”이 생겨난다.(『반시대적 고찰』, 319~320쪽)

니체는 내가 숭배하고 있는 현대적 교양의 비밀이 폭로되고 공개적인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한다. 왜 그런 것일까? 교양의 바탕은 앎이다. 그리고 현대적 교양은 우리에게 백과사전이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지식을 쌓으라고 요구한다. 우리의 학교 교육이 바로 그러하다. 우리는 그로 인해 ‘다양한 지식을 습득할수록 사회적 위치가 높아지고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배우게 되면서 그것에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하지만 그러한 지식은 니체의 지적처럼 우리 자신에게서 얻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평균적이고 상식적 앎으로 우리의 내면을 가득 채우는 일이 된다. 그렇기에 “현대 교양 전체는 근본적으로 내면적”이라고 한다. 내면적으로 비대해진다는 것인데, 니체는 왜 그 지점을 비판하는 것일까? 교양이 내면적이라는 것은 “단지 우리가 낯선 시대들, 관습들, 예술들, 철학들, 종교들, 인식들로 우리 자신을 채우고 넘쳐나게 함으로써” 우리의 인격을 약하게 형성하는 것과 관련된다. 약한 인격을 형성하게 하는 문화를 니체는 낮은 문화의 징후로 보았다. 약한 인격은 “실제 사물들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습관”을 만들고 단지 관습에 따라 가치 있다고 판단되거나 그렇게 보이는 것을 모방하여 자신을 포장하려는 허영심에 차 있다. 그런 그는 자신을 과시하려 한다. 자신을 과시하려는 자는 자기 스스로 자신에게 만족할 수 없다. 그는 타자의 평이 필요하다. 타자에게 좋은 평을 받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사회가 좋다고 제시한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다. 우리 대다수가 대중이며 대중은 사회적 가치에 종속되어 있기에 내가 외경하는 문화인, 교양인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된다. 현대 교양이 우리에게 그런 자가 되라고 하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대중을 지배하고자 하는 누군가의 충동으로 대중이 그것에 봉사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지배욕이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왜곡되어 우리를 현혹하고 있다. 약한 인격은 기꺼이 이것에 봉사하고자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의 평을 통하여 스스로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확인하고 싶어”한다는 말처럼 나 역시 ‘품위있는’ 자가 되고 싶으나 스스로 그럴 수 없으니 교양과 질서정연한 문화라는 외피를 내 몸에 걸치려 했다. ‘자신을 탁월하게 만들고, 공적으로 그렇게 보이기를 바란다’는 마음, 특히 “전자가 결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자를 갈망”하는 것, 그것 또한 허영심이다. 자신을 탁월하게 만든다는 것은 백과사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을 통해 체득하는 것, 즉 “우리 자신에게서 얻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사실 난 내가 허영심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사물들을 판단한다고 보았고 자기 과시를 싫어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나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하지 않을 뿐,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듣고 경탄의 대상이 되고 싶은 충동을 내면화하고 있는 허영심에 휩싸인 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근본적으로 허영은 커다란 유용성, 즉 보존을 위한 최강의 수단”으로서 우리에게 약한 인격을 형성하도록 한다. 허영심은 현 상태의 우리 자신을 고수하는 방식으로 힘을 사용하도록 하면서 일관성있다고 여기도록 한다. 나 역시 ‘품위있는’ 자가 되기 위해 나 자신을 탁월하게 만드는 일은 하지 않고 그렇게 보이기를 바라고만 있었다. 일사불란한 힘만을 재생산시켜 나 자신을 일관성있는 자로 입증하고자 했다. 그런 자가 신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보았기에. 일관성있는 자로만 있고자 하는 완고함 역시 자기 보존을 위해 허영심이 만들어 놓은 관념이다. 이렇듯 허영심은 자기 보존의 발로다. 그렇다면 자기 보존 충동이 아닌 변형의 충동이란 어떻게 가능할까?

 



 

 3. 높은 문화, 삶에 대한 탐구 충동

나는 지금까지 질서정연하고 반듯한 형태의 것을 ‘높은 문화’로 여기고 있었다. 내가 ‘높은 문화’로 여겼던 것은 한 마디로 보기 좋은 이미지를 가진 것이어야만 했다. 질서정연한 것은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쾌의 감정을 준다. 높은 문화’는 논란의 여지없이 많은 사람이 수긍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기에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어떤 ‘불협화음’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불협화음’이 있다는 것은 조화롭지 않아서 사회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거나 무질서가 유발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어떻게 보면 ‘높은 문화’를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형태의 질서를 가진 상태로 여긴 것은 아니었을까? 앞으로만 나아가고 퇴화란 있을 수 없는 형이상학에 기반한 문화 말이다. 우리의 삶이 그 안에서 정돈되기를 욕망했다. 그런 문화는 ‘이건 이거다’라는 영속성, 바로 “관습을 자기편에 두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어떤 근거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Ⅰ』, 232쪽)들을 산출하고 그들을 사회의 뜻에 예속시킨다. 그들의 행위 근거는 오직 관습이며 그 외의 것들은 자동으로 배제된다. 그들이 중시하는 가치는 여러 통찰을 통해서 선택된 것이 아니라 관습적으로 좋은 것으로 여겨지기에 그것을 좋게 여기는 것뿐이다. 견해를 구속하는 낮은 문화는 동일한 힘만을 재생산하게 한다.

지적 충동 외에는 단지 습관이 된 종교적 충동만을 하나 더 가지고 있는 학자들처럼, 자신의 악기에 줄을 두 개만 매어놓고 있는 사람은, 더 많은 현으로 연주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더 낮은 사람들에 의하여 항상 잘못 해석되는 것은 많은 현을 가진 더 높은 문화의 본질에 속한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Ⅰ』, 276)

니체는 높은 문화의 본질을 악기에 비유한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의 악기가 있다. 어떤 자는 두 줄의 현으로 어떤 자는 더 많은 현으로 연주한다. 그 악기의 현이 바로 우리의 충동이다. 악기에 단지 두 개의 줄만 매어놓고 있는 사람은 “정상상태라고 생각하는 것(...)에 합치되는 것처럼 보이는 징후들만을 자신의 것들이라고 동의한다.”(『니체와 악순환』, 54쪽) 어떤 것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는 것, 그것이 두 개의 현만을 가진 자의 사물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 거기에는 “습관이 된 종교적 충동”이 강하게 작용한다. 그 충동은 일종의 종교적 감정, 즉 맹목적인 신앙이다. 질서를 잘 지키고 교양을 쌓아 문화인이자 교양인이 되고자 했던 갈망을 정상상태에 합치되는 것으로 보면서 그 외의 것은 비정상상태에 있는 것이므로 배척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 일종의 맹목적인 신앙이다. 명백히 나는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두 개의 현만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고 판단하려 했다. 그런 방식 외에 다른 사유 방식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경험했던 것 가운데 가장 ‘멋지게’ 보였던 독일인을 표본으로 삼아 그들과 같이 되는 것을 정상, 그렇지 않은 것을 비정상으로 여긴 것이다. 악기의 현이 두 개일 경우 A 아니면 B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불협화음이 없는 질서의식, 교양 등을 정상상태에 있는 문화로 여겼던 것과는 달리 니체는 문화란 종(鐘)과 같이 좀 더 조잡하고 저속한 물질로 된 틀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자아와 모든 개별적인 민족의 불성실, 횡포, 끝없는 확장 등이 이 종의 틀이었다고 한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Ⅰ』, 245쪽) 그렇다면 “자아와 개별적인 민족의 불성실, 횡포, 끝없는 확장” 등이 문화의 틀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것은 클로소프스키가 “문화는 더 많이 축적될수록, 더 스스로에게 예속된다”(『니체와 악순환』, 12쪽)라고 한 말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 내가 정상성이라며 강조하는 문화는 표면이다. “영혼의 음조”, 즉 심연의 활성화를 억압하는 기제로 사용되는 표면이다. 이런 문화는 “더 많은 현으로 연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로부터 빼앗아간다. 우리에게 단지 두 개의 현으로 된 악기를 연주하면서 삶에 대한 온갖 환상을 안고 살아가라고 한다. 문화를 축적한다는 것, 문화인이 되고자 한다는 것, 그것은 문화를 주조한 사상을 숭배하고 그것에 예속되고자 함이다. 그 사상은 형이상학일 수도 그리스도교일 수도 있다. 이것 모두 절대적 진리가 실재함을 강조하면서 그것에 대한 맹신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그러므로 문화는 우리를 예속하고 획일화하려는 기능을 내포하고 있다. 유동적인 것을 굳어버리게 하면서 훌륭하고 유익한 충동들과 더 고상한 심정의 습관들도 안정되게 한다. 니체는 획일화된 문화 틀 속에서 그것을 숭배하며 살기보다는, 그 틀을 벗어버려야만 한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우리 자신의 통찰을 통해 여기서 결단을 내리고, 우리 스스로 대규모의 땅을 통치하는 일에 착수해야만 한다고 말한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Ⅰ』, 245쪽) 그것이야말로 니체가 말하는 높은 문화이자 고귀한 문화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을 통찰한다는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통찰해야 할까? 그것은 “더 낮은 사람들에 의하여 항상 잘못 해석되는 (...) 많은 현을 가진 더 높은 문화의 본질”을 그리고 “서로 다른 삶의 상태의(상이한 나이, 상이한 감정, 불편함)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앞의책, 433쪽)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고정되고 불변하는 한 개인으로 다루지 않음으로써 많은 것들의 삶과 본질에 대해 인식하면서 관심을”(앞의책, 433쪽) 가질 때 우리의 인식은 풍부해진다. 우리는 그때 두 개의 현으로만 이 세상에 대해 규정짓지 않게 된다. 나처럼 두 개의 현만이 있는 자는 삶을 지나치게 정확히 보려하지만, 오히려 정확히 볼 수가 없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인식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일정한 거리로 물러서서 삶을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뒤로 물러나서 관찰한다는 것은 익숙치 않은 상이한 충동을 우리 자신에게 침투하게 하는 일이다. 이것은 자기 보존 충동을 넘어 변형으로 나아가는 것, 즉 삶에 대한 탐구 충동을 활성화하는 일이며, 이때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의 상태의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서로 다른 삶의 상태의 낮은 목소리란 차이를 말한다. 차이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독자적인 견해를 가져다준다. 니체가 말한 대규모의 땅이라고 하는 것도 차이가 산출되는 충동의 집합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곳에는 온갖 낯설고 이질적인 것들이 득실거린다. 낮은 문화는 그런 이질성을 매끄럽게 다듬어 규정할 수 있는 하나의 틀로 만들려고 전력을 다할 것이다. 반면 높은 문화는 낮은 문화에서 만들어놓은 그 규정성을 파괴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문화를 일구고자 할 것이다. 이것이 대규모의 땅을 통치하는 일로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힘을 가꾸는 일이기도 하다. 니체는 이러한 높은 문화의 특성을 “과감한 춤”에 비유한다. 우리가 상이한 충동 사이에서 지쳐 하나의 충동만을 사용하려는 견고함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사유해내기 위한 힘과 유연성을 지녀야 한다는 의미다. 상이한 충동은 배제되어야 할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에게 서로 다른 두 가지 힘이 작용하고 있으며 그것이 본성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서로 대립하고 있는 힘들을 억압하거나 속박하여 쳐부수지 않고, 어느 정도 친화력을 지닌 다른 강력한 집단의 힘으로 서로 융화할 수 있도록”(앞의책, 273쪽) 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서로 다른 삶의 상태에 대해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습속에 따라 동일성을 향해 갈 때, 내가 훌륭하다고 여기는 것을 따라갈 때, 나 역시 훌륭해질 것이라는 동일성의 기제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질서의 문제도 그러하다. 독일과 우리의 삶의 상태는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도 독일과 같이 질서정연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두 개의 현으로 악기를 다루는 자처럼 이것 아니면 저것이 옳다는 생각 하에 안 좋다고 생각한 상태를 제거하고자 함이었다. 독일은 우리보다 몇십 년 앞서가는 선진국이었고 우리의 70, 80년대는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 개발에 온 힘을 쏟던 시기였다. 폐허가 된 나라에서 경제를 부흥시키려면 질서가 필요했다. 사람들을 질서있게 움직이게 하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그래서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삶을 위해 때론 학교로 때론 일터로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난 이런 두 나라 사이의 다른 삶의 상태에 대한 숙고없이 독일의 질서정연한 상태를 ‘정상’으로, 우리의 ‘무질서한’ 상태를 비정상으로 바라보면서 우리도 ‘정상’의 상태로 나아가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문화를 정상과 비정상, 좋고 나쁨의 척도로 문화의 우위를 정할 수 있다는 내 생각은 문화의 표면만을 중시한 결과다.

질서와 관련해서 내 속을 부글부글 끓게 하는 일이 또 있다. 그것은 ‘낭비하는 사람’들을 볼 때다. 나는 내 물건이 아니더라도 아끼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공중화장실에 있는 휴지나 물도 필요한 것만큼만 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나처럼 사용하지 않고 손을 닦은 후 한꺼번에 2, 3장을 연달아 뽑아 쓴다. 양치질할 때도 물을 계속 틀어놓고 사용한다. 그럴 때마다 화가 치밀면서 ‘잠시 수도꼭지를 잠가도 되지 않겠어요’ 또는 ‘휴지는 한 장만 써도 되잖아요’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른다. 이렇게 낭비하는 자들을 ‘비정상’이라고 생각해왔다. 지금도 우리 주변의 물건들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절약하는 것의 좋고 나쁨의 문제를 떠나서 낭비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화가 나는 이유는 그들이 다 나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에 그렇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아야 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정체성을 굳건히 하려 한다. 그러므로 나와 다른 사람들, 예를 들면 화려하거나 절약하지 않거나 일사불란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회에 적을수록 좋다는 근거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모순되고 이질적인 것들을 동일하게 만들려는 욕망이 있다. 서로 다른 삶의 상태, 즉 차이를 탐구하기보다는 배제하려는 마음이 크다. 이처럼 나는 모든 것을 동일화, 집단화하려는 충동이 지배적이다. 클로소프스키는 이 충동을 무리짓기라고 일컫는다. ‘니체에게 병든 것이란 무리짓기이다. 동일성과 정체성을 움켜쥐고 살아가는 상태야말로 병든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적대적인 것이 오면 그건 다 나쁜 것이 된다.’(채운, 11.20, 강의록)

높은 문화는 내가 생각하듯 하나의 정돈된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다. 도달해야 하는 지점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이질적이고 미지의 땅을 경작하는 일을 착수하는 것과 같다. 이질적이고 미지의 땅을 경작해야 하는데 어떻게 동일한 힘만을 재생산할 수 있겠는가? 미지의 땅을 경작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내어야 하겠는가?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온갖 충동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춤을 추듯 유연성이 발휘되어야 하는 곳, 이행이 일어나야 하는 곳, 그곳이 높은 문화가 탄생하는 지점이자 변형의 충동이 활성화되는 지점이다.

강렬한 대조, 주야의 급격한 변화, 뜨겁게 타오름과 색채의 화려함, 모든 뜻하지 않은 것, 신비로운 것, 굉장한 것에 대한 숭배, 돌발적인 폭풍의 속도, 여기저기에 사치스럽게 넘치는 자연의 보물들 : 반면 우리 문화에는 밝지만 빛나지는 않는 하늘, 맑고 거의 불변하는 대기, 날카로움, 게다가 때로는 추위: 이렇게 두 지대는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Ⅰ』, 237쪽)

높은 문화는 강렬한 대조, 주야의 급격한 변화, 모든 뜻하지 않는 것들을 배제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쇠락에 대한 긍정이다. 대조적인 “힘들이 서로 섞이고 서로에게 침투하고, 서로를 불투명하게” 만든다. “이 힘들은 하나의 목적으로부터 멀어지고 벗어난다.”(『니체와 악순환』, 37쪽) 퇴화, 악덕, 신체적 또는 도덕적 결손까지도 우리를 다른 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것들은 제거해야 할 악이 아니며, 우리가 “더 많은 현으로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해준다. 그것들은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속해 있는 우리의 본성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너무 평범하다거나 퇴화되어 간다는 이유로 이것을 애써 지우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장점으로 활용하는 자가 니체가 말하는 문화인이다. 그들은 “여기저기에 사치스럽게 넘치는 자연의 보물들”을 사유의 소재로 삼는다. 우리가 보잘것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자연의 많은 사소한 것들에서 해마다 보물스러운 열매를 맺는 경작자, 그가 고귀한 문화인이다. 그는 대조, 변화, 뜻하지 않는 것, 돌발적인 폭풍, 불구와 기형, 한 기관의 현저한 결함 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연이며 우리 인간이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것들이다. 그는 그것을 긍정하며 나아간다. 그는 약화되고 쇠락하는 것에게서 격렬한 힘과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지성적 상상력을 발휘하며 새로운 것의 감염을 받아들여 그것을 장점으로 동화시킨다. 그에게 결함, 부족은 죄가 아니다. 우리가 결함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은 그에게 또 다른 사유의 길을 낼 수 있는 샛길이 된다. 나는 부족하고 결함이 있는 것을 ‘죄’로 생각했다. 그래서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 그렇게 질서와 교양을 갈망했던 것이다.

 



 

 4. 하나의 새로운 건강의 길

내가 정상병에 휩싸여 있었던 것은 그것을 통해서만 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구원은 사회적 코드에 가장 적합하게 행위를 할 때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기독교적 구원에 대한 신뢰라고나 할까, 그런 것에 대한 믿음이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구원은 타자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던 것. 우리 인간은 죄인이고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메시아라는 기독교의 교리를 진리로 받아들인 결과다. 나는 성장하면서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왔고 알게 모르게 그것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기독교의 구원이 누군가의 말에 복종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라고 할 때 우리는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타자의 인정이 곧 구원과 동격이 된다. 그런 까닭에 난 사회적 코드에 따라 살아가는 길이 나의 구원을 위해 최선이라고 간주했다. 사회적 코드에 기반한 삶을 내 영토로 삼고 견고하게 구축해갔다. 동시에 내 영토를 확장하면서 타자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었다. 그러니 타자는 나의 말에 동의해야 한다고, 우리는 같은 길을 가면서 같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이런 내 생각이 옳다고 간주했다. 그 결과, 나는 타자들에게 ‘나를 따라라’하고 수없이 마음속으로 외쳐도 된다는 ‘정당성’의 확보에 이르게 된 것이다. 아마도 타자를 지배하고 싶은 욕망과 나 혼자서는 구축된 영토를 지킬 자신이 없고 뭔가 두렵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구원받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불완전하다고 여겨졌다. 완전하지 못하니 무리 속에라도 섞여서 구원되길 바라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나는 완벽함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질주해왔다. 내가 그렇게 질서를 중시한 이유도 가지런히 나의 영토를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어떤 우연도, 어떤 결함도, 어떤 불안정함도 없는 질서를 구축하는 것을 완벽함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결함투성일 수밖에 없었고 그것에 대한 자책과 원한 감정으로 나 자신과 타자들을 바라보았다. 특히 어딘가 모르게 나와는 대조되는 일사불란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적대적이었다. 그들의 ‘느긋’하거나 ‘불투명’한 행위를 견딜 수 없었다.

삶의 역량은 각각의 불안정한 조합을 통해 존재 속에 비할 데 없는 힘, 끈기, 투지를 가지고 자신을 긍정합니다. 위대한 사상가들을 보면 그들의 개인적인 삶이 무척 깨지기 쉽고 건강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분명히 단정지을 수 없는데도, 그와 동시에 그들이 절대적 역량의 상태 혹은 ‘위대한 건강’ 상태의 삶을 영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기한 일이지요.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 고유의 조합으로 된 숫자입니다.(들뢰즈&파르네, 『디알로그』)

들뢰즈는 “삶의 역량은 각각의 불안정한 조합을 통해 존재 속에 비할 데 없는 힘, 끈기, 투지를 가지고 자신을 긍정”하는 것과 관련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인간의 어리석음은 인간의 영리함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운명이다 : 운명의 믿음에 대한 불안 역시 운명인 것이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Ⅱ』, 270쪽)라는 말과 연관되어 있는 듯하다. 불투명한 것, 비합리적인 것, 우연적인 것 또한 우리 인간의 운명이다. 그런 운명 속에 있는 우리 인간의 삶은 어리석음, 영리함, 불투명함, 투명함, 비합리적, 합리적인 것들의 조합을 통해 각각의 존재 속에서 역량으로 발휘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투명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일사불란한 행위도 불안정한 것으로, 그렇지 않은 것과 조합될 때 비로소 우리의 역량은 커진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운명을 긍정하는 일이다. 우리의 운명은 불투명함 그 자체다.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알 수 없는 것, 미지의 것을 긍정하는 것, 그것은 불투명함을 긍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삶의 역량은 존재 속에 있는 힘, 끈기, 투지를 가지고 불안정한 것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하여 자신의 힘으로 변환한다. 이것이 긍정이자 필연이자 단일한 욕망을 해체하는 길이다. “특정한 변화가 모든 것을 바꾼다”(프레히트, 『사냥꾼, 목동, 비평가』, 50쪽)라는 말처럼 각각의 불안정한 것의 조합 역량인 필연은 모든 것을 바꾼다. 필연은 변혁의 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꺼이 불안정한 우연적 마주침을 긍정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삶의 역량은 우리가 완벽해지는 만큼 커진다고 생각했었다.

들뢰즈가 말하고 있듯이 위대한 사상가들은 각각의 불안정한 조합을 통해 ‘위대한 건강’ 상태의 삶을 영위한다. 그들은 내가 생각하듯 완벽한 인물들이 아니다. 그들의 개인적인 삶은 아프기도 하고 퇴락하기도 해서 무척 깨지기 쉽고, 건강의 여부조차 분명히 단정지을 수 없음에도 ‘위대한 건강’을 발명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우리가 병이나 결함으로 느끼는 것들을 조합하며 자신을 긍정한다. 이것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니체의 예를 들어보자. 니체는 두통과 발작으로 자기 스스로 자신의 실존을 끔찍한 짐이라고까지 표현할 정도로 고통에 시달렸다. “끊이지 않는 고통, 뱃멀미와 유사한 느낌, 몇 시간 동안 말하는 것이 곤란해지는 반마비상태, 이런 것들이 격렬한 발작과 서로 번갈아 가며”(『니체와 악순환』, 43쪽) 며칠 동안 엄습해서 죽고 싶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고통의 한 가운데에서, 모든 것이 희미하고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는 살아갔다. 읽지도 못하고, 음악도 못 듣고, 그 누구도 만날 수 없는 그런 와중에 그가 한 일은 산책이었다. 아니, 죽을 정도로 아픈데 산책이라니. 의구심이 든다. 그가 진짜 아팠던 것 맞나? 니체는 ‘왜 나한테 끊임없는 두통과 발작이 생겨 나를 고생시키는 거야, 두통과 발작을 제거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물론 니체도 초기에는 다른 사람들의 조언에 귀 기울이며 두통을 치료하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를 해보았다. 하지만 그 방식이 자신을 위한 치료법이 아님을, 오히려 자신에게 해롭거나 쓸모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스스로 치료법을 발명하기 위해 실험을 해나간다. 걷기가 바로 그에게 실험이었다.

더 이상 그는 기존의 영토에서 자신의 두통을 치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두통으로 책상에서는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글은 책상에서 쓰는 거야”라는 지성의 질서로부터 과감히 박차고 나와 고원의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하면서 글감을 적기 시작했다. 동시에 섭생하면서 자신의 신체성을 변환시켰다.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그 많은 니체의 글이 산책을 통해서 생산된 것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두통에 대한 탐구, 그 치료법을 알고자 하는 의욕으로 니체의 기분은 즐거워졌다. 그것이 그의 모든 고문과 절망을 이겨내도록 한 힘이 되었다. 두통은 그에게 더 이상 삶을 무겁게 하는 짐이 아니었다. 두통이라는 불안전성을 지닌 채 그는 하나의 새로운 사유의 길, 바로 ‘위대한 건강’의 길을 발명해갔다. ‘위대한 건강’은 타고나는 것도 주어진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긍정적 조합으로 발명되는 것이다. 니체는 자신의 병약한 상태를 긍정했다. 어딘가 모르게 위태롭게 보이고 곧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그의 힘과 끈기와 투지로 중심을 잡고 자신의 건강을 발명하며 살아간 니체, 그는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유의 조합으로 된 숫자로 살았다. 그가 고유한 조합으로 된 숫자라는 것은 그에게는 삶에 대한 어떤 규정성도 없었다는 뜻이며 거기에는 사건에 대한 자신의 고유한 해석만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는 생성하고 이행하는 충동을 일깨운 자이다. 이렇게 ‘위대한 건강’을 발명하고 영위하는 자가 품위있는 자요, 자기 자신의 의사이다. 자기 자신의 의사가 된다는 것이 바로 자신을 긍정하는 일이자 자기 구원을 하는 일이다. 또 그것은 자신의 병 상태를 긍정하고 그것을 진단하겠다는 의지를 뜻한다. 그래야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병을 부정하는데 어떻게 그것에 대한 탐구 충동이 활성화될 수 있겠는가?

나도 부단히 타자의 의견을 따르고자 했고 끝내 그 충동을 내면화하여 나 자신을 보존하고자 했다. 자기 보존은 하나의 의견을 고수하는 일이다. 그것이 마치 진리나 되는 것처럼. 그렇다면 자기 보존 충동에서 변형의 충동으로 나아가게 하는 하나의 새로운 건강의 길을 난 어떻게 발명할 수 있을까? 하나의 새로운 건강, 이것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신체성과 연관된다. 내 속에도 때론 일사불란함을 때론 널브러짐을 욕망하는 상이한 충동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보는 것, 그것에 대해 죄의식을 갖지 않고 긍정하는 것, 그것이 하나의 새로운 건강의 길이 되지 않을까? 내가 고수했던 것을 기꺼이 다른 충동들과 조합하면서 차이를 생산하며 나의 삶의 역량을 증대하는 것, 그것이 건강의 길일 것이다. 이제는 나의 충동의 배치를 바꾸고 싶다. 타자의 인정이나 경탄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충동에서 벗어나 내가 그동안 경시해왔던 부분들에 대해 탐구를 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또는 어떤 조합이 되어 나에게 기쁨이 될 수 있는지를 알고 싶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 그것들은 차이 나는 다양한 힘들로 내 신체를 관통하고 있다. 관계 속에서 순간의 조합을 통해 매 순간 다른 힘으로 나에게 작동하고 있다. 그 힘은 일정한 강도와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 힘은 때론 ‘긍정적’으로 때론 ‘부정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선도 악도 아니다. 그 힘은 알 수 없는 그 무엇으로 실재할 뿐이다. 그것들의 우연적 조합으로 발생하는 일들에 대해 편견이나 습속으로 판단하는 이성의 질서에 틈을 내는 ‘건강의 길’을 난 원한다. 나 자신의 결핍이나 병이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새로운 사유의 길을 낼 수 있는 재료로 조합하는 자가 되길 원한다. 이것이 단일한 욕망을 해체하는, 그러니까 구축된 질서를 넘어가는 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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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08 17:42
    현주쌤의 성실성은 제가 참 배우고 싶은 역량이예요. 쌤과 다르게 저는 아직도 널 뛰듯이 풀썩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니체를 공부하면서 매번 공통과제를 올리는 것도 시간을 어기는 적이 별로 없었고, 글도 팀티칭하면서 완성해가는 것이 저로서는 정말 놀라운 일이었죠. 저는 공부 특히 글은 개인적인 작업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아직도 사실 그 부분에서 저는 썩 제 자신을 설득시키려고 하지 않는 면이 있거든요. 쌤을 보면서 내 태도를 또 고쳐 생각해보곤 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2021-01-12 09:37
    "타자의 인정이나 경탄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충동에서 벗어나 내가 그동안 경시해왔던 부분들에 대해 탐구를 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또는 어떤 조합이 되어 나에게 기쁨이 될 수 있는지를 알고 싶다."라는 말에서 진심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봐온 현주샘 글들 중에서 가장 유연함이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ㅎㅎ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