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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cloud in Deusch(최종) : 베를린의 남은 이야기들 그리고 엔딩.

작성자
채운
작성일
2020-01-13 06:30
조회
527

지난 번에 못다한 베를린의 박물관/미술관 얘기를 하겠습니다.
베를린에는 다종다양한 박물관과 미술관이 그대로 '밀집' 있습니다.
특히, 슈프레 강을 따라 페르가몬 박물관, 보데 박물관, 신박물관, 구박물관, 국립미술관 등등이 모여 있는 곳은 '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박물관 밀집 구역입니다.
그래 바로 여기야! 베를린으로 떠나기 , 걸어서 10분이면 있는 곳에 숙소를 잡아두고역에 내리자마자 뮤지엄 패스를 구입했습니다.
베를린에는 '뮤지엄 패스'라고, 연속 3일간 베를린의 박물관과 미술관 60 곳을 마음껏 다닐 있는 29유로짜리 카드가있거든요.
보통 박물관이 8유로에서 12유로 정도 하니까, 잠깐만 생각해도 엄청난 이득인 셈이죠.
베를린에 머무르는 동안 몸이 부서져라 다니겠노라 각오를 하고, 겨울에 쌀가마니 비축해 놓은 사람마냥 뿌듯해 했습죠.
우선 미술관 먼저 섭렵하고, 자연사 박물관이랑 영화 박물관, 유대인 역사 박물관도 가봐야징!
그러나 제가 연속 3일간, 박물관이 오픈하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점심도 먹고 다닌 최대치는 고작 4개였습니다ㅠ.
물론 그래도 결과적으로 뮤지엄 패스를 구매한 '합리적'이었습니다.
문제는 패스의 가격이 아니라 박물관의 규모입니다.(사진은 구박물관과 구국립미술관)



(TMI.우연히 들었습니다만, 제레미 아이언스가 나오는 무슨 영화 촬영 중이라던가...)


 


저처럼 보고, 찍고, 방마다 앉아서 메모하는 식으로가 아니라 초스피드로 대표작만 눈도장을 찍고 다니더라도, 3일간 10 이상은 도저히 불가능한 규모입니다.
박물관과 미술관 수가 많기도 많거니와, 하나하나가 막대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
우리나라 현대미술관이나 국립박물관 같은 생각하시면 됩니다.)
신국립미술관이 당분간 보수 공사 중이라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했음에도
국립회화관Gemäldegalerie 보고나서 금세 뿌듯해져 가지고는,
, 정말 알차다... , 많이 들여서 깨알같이 모아놨구나... , 사는갑네... 하는 정도에서 그쳤지요.
그런데, 페르가몬 박물관에 들어서는 순간 저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이겁니다.
"이것들이 정말!"


베를린 박물관 하면, 다들 페르가몬 페르가몬 합니다.
헬레니즘 미술의 절정이라 이르는 페르가몬 신전을 통째로 옮겨왔다고 하는데,
사진으로 보고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퍼온 이미지입니다.)



지금은 페르가몬 박물관이 대대적으로 보수공사 중이라 전체를 수도 없습니다만,
공개된 일부만 보고서도 놀라움을 금할 없었죠.
제가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론 유적과 로마 유적 일부, 그리고 이슬람 유적이었는데요,
유적들을 거의 통째로 옮겨다놨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어마어마합니다.
페르가몬 신전을 니들이 가지고 있냐, 본국에 돌려줘야 하는 아니냐, 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싶습니다.
바빌론의 유적 역시 1900년대에 발굴한 돌이나 유적들을 가져와서 그대로 복원을 해놨더군요.




그런가 하면, 우리가 작년에 갔던 이란에서 독특한 사원양식이었던 '이완' 그대로 옮겨놓기도 했구요.
또 페르가몬 신전 정도는 아니지만 5세기경의 로마 신전이 통째로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저는 어떤 물건이 '우리꺼'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식의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물건도 사람처럼 지가 살고 있는 데가 고향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복잡해진 , 2017년에 감이당 샘들과 함께 그리스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철학이며 문학이며 미술 할것없이 모든 서양 문화의 '원류' 있는 그리스의 박물관엔 뭐가 있을지 내심 기대를 했었더랬죠.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휑하기가 이를 없더군요.
많은 그리스 조각들은 어디로?
이란의 박물관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뭔가 초라하다는 느낌을 지울 없었습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갔던 기억이 오버랩되더군요.
대학원 들어가 열나게 도판으로만 보던 중국 회화와 불상, 서양 현대미술에 영향을 줬다는 아프리카와 남미의 민속품들까지,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모두 거기 있더구만요.
영국, 독일, 미국, 일본까지... 결국 문화란 제국의 독점물이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
벤야민은 사물의 전시가치가 예배가치를 대체하는 순간 특유의 아우라가 사라진다고 했습니다만, 글쎄요...
제가 박물관에서 아우라가 사라진 사물이라기보다는
화려한 방식으로 아우라가 부활된 사물들이었던 같습니다.
예컨대, 이란에서는 너무 흔해서 그냥 그런가보다 하던 이완들이,
쾌적한 박물관에서 적절한 조명에, 그럴듯한 설명과 더불어 '전시' 보니,
흡사 예의고 뭐고 없이 내내 같이 뛰놀던 친구가 행색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나 존대말을 쓰고 있는 같달까요.
그것도 사물들의 운명이겠죠.
유명한 '애꾸눈' 네페르티티와 독수리 석상은 어쩌다 여기 와서 이런 '호사' 누리고 있는 것인지...
(아래 사진은 네피르티티의 이미지를 팝적으로 전복한 펠트만의 작품입니다.) 




아무튼, 신기하고 좋은 보면 기어코 집에 들여 놓고 두고두고 보고 싶은 소유욕이 '국가' '문명', '학문' '탐사'외피를 쓰고 나타나는 보는 기분은 적잖이 씁쓸했습니다.
문화를 '보존'한다는 뭘까요...
사카구치 안고가 <일본문화사관>에서, 자신은 일본 전통 다도 따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고, 조국의 찬란한 고대문화의 전통 같은 것은 없어져도 그만이라고 생각한다고, 교토와 나라의 유적이 없어진대도 곤란할 없지만 전차가 움직이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일갈했을 , 내심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을 느끼며 신나게 학회발표문에 인용했던 10 전의 일이네요.
슬퍼할 고대문화가 상실되는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생활이 상실되는 거라던 안고의 말에  여전히 동의합니다.
그런데도, 바빌론의 부분이, 로마의 신전 일부가, 이슬람 사원의 경건하면서도 넉넉한 기도공간이 베를린의 뮤지엄에 모두 모여 있는 보면서 어쩐지 씁쓸했습니다.
(공감이 전혀 안 되실지 모르겠으나) 유명한 셰프들이 차려 놓은 화려한 뷔페를 다녀온 뒤에, 집은 떡볶이도 없고 김치찌개도 없고 정말 먹을 것이 없었어, 라는 생각이 드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달까요ㅋㅋㅋ


하지만, 베를린에서 시간을 재고 재다 찾은 데사우의 바우하우스는 간만에 가슴을 뛰게 만드는 공간이었습니다.
'
바우하우스'라는 교육공동체이자 예술가공동체(?) 만들어진 1919년이니까 작년으로 100주년 되는 해였습니다.
처음에는 바이마르에 세워졌다가 데사우로, 이후 정치적 탄압으로 인해 베를린으로 옮겨지게 되는데요, 데사우는 바우하우스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칸딘스키, 클레, 모홀리-나기를 비롯해, 20세기의 가장 실험적인 이론과 작품을 생산한 작가들이 함께 모여 있었죠.(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지면을 통해...)
그들의 네트워크, 그들의 공부, 그들의 배움, 그들의 활동, 그리고 그들이 던진 질문들을 보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글을 쓰는 공동체를 그런 식으로 실험한다면 어떤 형태일 있을까....
문탁의 길드다 청년들 생각도 나고, 규문의 청년들 하나하나가 몹시 생각나는 하루였습니다.
이제 고민들을 어떻게 풀어내야 하나, 이게 고민입니다.ㅋㅋ


아래 사진은 근대건축과 디자인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바우하우스의 건물입니다.



마지막으로, 독일 미술관 투어의 대미를 장식할 드레스덴에서는 고전 거장 회화관 Gembaldegalerie Alte Meister과 근현대 미술이 전시된 알베르티눔 미술관 Albertinum 곳을 둘러볼 작정이있습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1 5일부터 고전 거장회화관이 대대적 보수공사를 시작했더구만요.
라파엘과 아잌을 있을 거라고 잔뜩 기대했었는데 말입니다..



(아는 분만 아시겠지만,  모르셔도 전혀 상관없지만, 저런저런 작품들을 볼 수 있을 걸로 기대했던 거죠.)


 그러나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행운을 만나듯이, 예기치 못한 불운도 있게 마련인 .
어찌 보면, 여행와서 만난 것들이, 아니 여행 자체가 예기치 못한 행운인 것을,
기대한 만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여간 한심한 아닙니다. 반성.
만나지 못한 때문에 아쉬워할 필요가 조금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떠나가는 것들 때문에 슬퍼하고 화낼 이유도 없고요.
떠나가는 것들은 이미 나와 만나진 것들 아니겠습니까.
그랬으면 거죠.
이미 만난 것들이 많으니, 아무것도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드레스덴은 동독에 속하는 곳입니다.
여기는 유적도 많은 곳이고 하니 안전하겠지 싶어 2 대전 당시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왔다고 하는데,  그만 ' 방에' 도시 전체가 잿더미가 되었다네요.('블록버스터'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됐다는 일설이 있기도 합니다.)
예전 작센 왕국의 수도이고 보니, 17-18세기의 건축과 유물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폭격과 함께 폐허가 되고 겁니다.
드레스덴 주민들이 힘을 모아 도시를 복원한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가 갔던 독일의 다른 지역들과 달리, 도시가 아주 깨끗하고 널찍합니다.(관광 특구라는 얘기죠.)
와서 먹고 산책하고 쉬기는 그만입니다만, 저는 강행군 끝에 이제 '여가' 보내려니 오히려 온몸이 쑤시기 시작합니다.
오히려 빨리 돌아가고 싶을 뿐, 그닥 재미도 없습니다.
남의 유적, 그것도 '작센'이라니... 듣도보도 못한 유적에 그닥 흥미를 느끼지도 못하겠고요.
다만, 곳에서도 무상을 봅니다.
불에 까맣게 그을린 건물들, 건축이라기보다는 타고 남은 잔재같은 돌덩어리들...
세상에 어느 하나 영원한 것이 없음을.
전쟁이든 자연재해든 노화든, 있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사라지게 되어 있다는 .
있는 것은 언제고 '있었던 것'이 된다는 것. 



(위 사진을 보시면 건축에 조각된 신상들이나 조각들이 삼겹살 끄트머리가 탄 것처럼 불에 그을린 게 보입니다.^^)


엘베강가를 따라 늘어선 아름다운 잔재들 너머로 다리 하나를 건너면,
(건너서 관광객들이 드나들지 않는 곳까지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그곳엔 아직 동독의 느낌의 물씬 풍기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저 여기에 사람이 '살았었다' 느낌만 있는,
손님 없는(혹은 폐쇄된) 상점들이 즐비하고 하릴 없는 청년들이 어슬렁거리는,
드넓고 깨끗하고 모든 것이 구비된 신도시로부터 배제되어 있는 자들의 영토.
그곳을 걷다 보면, 사진이나 찍어대는 '관광객' 신세가 ... 허망하게 느껴집니다.




드레스덴의 유적은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그림이 된다 싶으면 찍었습니다.
혜원이가 문자로 '위에서 굽어보는 천사' 궁금하다 하니, 금박 천사를 비롯해 흔하디 흔한 관광객 시점의 풍경사진 올립니다.
(
그래서 영혼없이 멋있기만 합니다.)






저와 오선민은 지금 프라하로 가는 기차에 있습니다.
객실을 같이 쓰는 예쁜 여학생이 자기는 오가며 종종 풍경이라며 우리에게 창가 자리를 양보해주네요.
그녀의 마음씨는 곱지만, 사실 풍경은 (제가 보기엔) 없네요.
감탄하며 창밖 풍경을 음미하는 선민에게,
", 모양 빼면 강원도 가는 기차에서 보는 풍경하고 뭐가 달라?"라면 쿠사리를 주고 있습니다;;
(
설마 강원도랑 같겠습니까. 제가 돼서 그러는 거죠...)



(위 사진 : 프라하행 기차에서 바라본 풍경)


보름 내내 해를 날이라고는 이틀, 그것도 시간뿐이었는데,
드레스덴에서는 아침부터 줄곧 맑음입니다.
쨍하고 추운 겨울. 제가 좋아하는 날씨네요.
이런 날씨에 프라하행 기차라니.... 되게 부러우시죠?
남이 하는 원래 부러워보이는 겁니다.
저는 뜨뜻한 집에서 밥과 김치와 국을 드시며 공부를 미리(!) 음미하고 계실 여러분들이 부럽습니다.^^
돌아가면 연휴고, 연휴가 끝나고 나면 올해 일정이 시작됩니다.
떠돌다가 돌아갈 곳이, 돌아가서 해야 공부가 있다는 얼마나 고맙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올해도 많이 괴롭혀 드리겠습니다.^^(물론 저도 괴롭겠습니다!)



엔딩 :  장의 사진과 세 개의 구절.


  1. 예술가의


아래 사진은 아돌프 멘첼(1815-1905)이라고, 우리는 모르지만 독일에서는 사랑받는 작가의 그림입니다역사화에서 풍경화,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에 이르기까지 나름 전천후의 활약상을 보인 화가지요. 개인적으로 그의 그림에 끌리지는 않았습니다만, 그의 그림 인상적인 작품 하나 보여드립니다.
제목은 <예술가의 >.



이야기를 지어내고 형상을 빚어내고 사상을 만들어내는 손과 머리가 아니라 발인지도요.
타이밍에 떠오르는 니체의 단편 :
"발로 쓴다. 나는 손으로만 쓰는 것은 아니다. 발도 항상 쓰는 사람과 함께하길 원한다. 발은 확고하고 자유롭고 용감하게 들판을, 종이 위를 달린다."


  2. 독일에서 만난 <노자> <장자>, 그리고 도서관


베를린에서 머물던 숙소 근처에 대형서점(우리로 치면 교보문고) 두스만Dussmann 있더군요. 지나칠 없겠죠?
, 별다른 없더군요. 아렌트가 핫한지 매대에 깔려 있었고, 나머진 soso... 우리도 보는 것들이었습니다.
와중에 얘들은 어떤 동양책을 읽나 찾아봤습니다.


  


동양철학 코너에 있는 달라이라마와 틱낫한 스님의 에세이들, 그리고 선불교를 위주로 불교개론서 약간. 그리고 <노자> <장자> 전부더군요.
기존에 나와 있는 <장자>('즉흥성/자발성의 '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네요) 외에 최근에 새로 나온 <장자>에는 '도교적 지혜의 '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논어 구절 일부와 함께 동양의 '현자' 공자를 소개한 두어권 정도 외에 유학 관련 텍스트는 찾아볼 없었구요. 무식한 오랑캐들 같으니라구.


서점을 지나 브란덴부르크 문을 찍고 다시 걷다 보니 근사한 건물이 나타나더군요.
훔볼트 대학이었습니다. 멋졌습니다. 그래봐야, 대학이지만요.ㅋㅋ
나치 집권 당시, 나치당이 유대인들의 책과 함께 좌익, 종교개혁가들의 책을 분서하는 사건이 있었다죠.
루터, 마르크스, 에밀 졸라, 카프카 등의 책을 포함해서 2만권에 달하는 책이 불탔다고 합니다.
광장을 걷다 보니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는부분에 책꽂이가 보이더군요.





그리고 옆에 하이네의 구절이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철판 왼쪽 윗부분) :
이것은 서막일 뿐이다. 책을 불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인간도 불태운다.”


  3.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마지막 사진은 게하르트 리히터의 <9개의 있는 판유리>입니다.
그대로, '투명한' 유리판이 9 세워져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움직임에 따라 중층적 차원의 이미지들이 나타나고 사라집니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생멸하는 이미지들.



그래서, 무엇을 보았느냐고요?
무수한 그림들 - 환幻을 보았습니다.^^
"모든 있다고 하는 것은 , 환상, 물거품,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으니라.”



(위 사진 : 드레스덴의 프라우엔 광장에서 비눗방울 퍼포먼스 하던 분이 만들어낸 비눗방울-환)

전체 3

  • 2020-01-13 21:35
    와 오랑캐눔들! 허긴 겨울에 저렇게 해를 못 보는 척박한 오지에서 일찍 문명을 이루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드네요. 내세울 건 힘과 뻔치밖에 없으니 남의 나라 좋은 물건 가져와 그럴듯하게 진열이라도 해 놓는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예잇 호랑말코같은 놈들!
    아래 비누거품 사진 뒤에 하늘이랑 건물과 대비되면서 괜히 아련해지네요. 저 단단해보이는 건축물도 언젠가는 비누방울과 다름없이 스러질 테니까요...
    김치와 미세먼지가 있는 고국의 품으로 얼릉 돌아오십시오. 스승님!

  • 2020-01-14 20:29
    아 이런 아름다운 엔딩이라니, 마지막 비눗방울 사진은 찬란한 슬픔 같아요 선생님.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온통 덧없음 뿐인데 어떻게 허무주의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 2020-01-18 10:04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 을 가끔 듣는데 거기 '여행자의 노트'라는 코너가 생각났습니다. 을씨년스런 곳을 누비고 다니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남의 고생은 제 호사이기도하네요. ㅎ
    지금쯤 돌아오셔서 뜨듯한 국에 하얀 이밥에 김치 얹어 드셨겠군요. 기운 빵빵하게 충전해오신 선생님께 찰싹 달라붙어서 올한해 공부 같은 공부를 해 볼 의욕이 불근!!1 저도 극에 밥에 김치로 아침상을 차리겠습니다~~ 오늘, 이따 뵐 수 있으려나..니체 마이너스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