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후기

10.29 여시아문 후기

작성자
이문정
작성일
2015-11-01 22:41
조회
3521
지난 강의는 에스토니아의 작곡가 아르보 페르트에 대해 보았습니다. 특히 새로오신 분들과 또 분홍 쌤이 직접 만드신 달콤한 마카롱과 함께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당~) 아르보 페르트의 음악은 듣기가 훨씬 수월했는데요. 리듬도 없이 그저 흐르는 듯 했던 존 케이지의 음악과는 달리, 아르보 패르트의 음악들은 확실하고 단순한 주제가 있었죠. 분위기들은 극과 극이었습니다. 비장한 멜로디를 반복하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타블라 라사' 곡들이 있는 반면, 정말 편안한, 오직 기본 화음들만이 반복 연주되는 ‘알리나', '거울 속의 거울' 같은 곡들도 있었죠. 타블라 라사를 듣고 각자의 여시아문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제일 인상깊었던 쿠누쌤.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단칼에 확 베어버리고는 피가 사방으로 튀는 이미지를 떠올리셨다고... ㄷ ㄷ 원일샘은 죽음 이후를 생각하게 된다고 하셨는데요. 이 곡을 들려준 에이즈 말기 환자들이 계속 듣기를 원했던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인 것 같다고 하시면서요. 원일샘은 음악이 죽음 너머를 말하고 싶어하는게 아닐까 생각하십니다. 음악은 (또는 명상은) 영원이나 침묵같은 근원적 상태, 일명 '환하고 고요한 상태'에 이르도록 해서요. 영원과 죽음 너머는 왜 영성의 안과 밖이라 말씀하셨을까요? 아직 영원이 무언지도 잘 모르겠네요. 세계의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모여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요? 개인에게 그렇다고 느껴지는 상태? 허허 그렇다면 나의 죽음 이후엔 나의 '영원'이란 없을 텐데 왜 영원과 죽음 이후를 관련지어 얘기하는 걸까요...  원일 샘의 저 말씀에 대해 더더 여쭤볼 걸 그랬습니다..

후자의 곡들은 아르보 패르트의 ‘tintinabuli’스타일이라고 하네요. 일명 ‘종’ 스타일. 기본 삼화음 (도-파-라-도-파-라~)의 진행이 마치 은은한 종소리와 같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요. 멜로디도 좋았지만, 특히 절 긴장시켰던 건 그 멜로디를 둘러싼 곡의 여백이었어요. 단순한 선율 아래 깔리는 무거운 베이스 음에 곡이 무게있으면서도 평온하죠. 이 틴티나불리 스타일의 곡인 알리나를 발표하자마자 사람들은 곡이 너무 단순하여 놀랐다고 하네요. 하지만 아르보 페르트는 단순한 박자, 음 전개만으로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걸 발견했고 그것을 곡으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단 하나의 음, 조용한 박자, 또는 하나의 소리 없는 순간‘들이 나를 만족시켰다.' 그 후 그의 작곡 철학이란 음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었습니다. '풀잎 하나하나가 꽃보다 중요하도록'이라 비유해서 얘기하는 데, 이는 더 이상 귀를 사로잡을 만한 멜로디를 만드는 것이 그에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알리나에도, 거울 속의 거울에도 멜로디가 진행되는 느낌은 없고 음들은 혼자서, 화음 없이, 공간에 동동 떠있는 듯이 느껴지네요.

이번 강의의 주제는 ‘영성spirituality’이었는데요. 아르보 패르트의 곡들과 영성이란 주제는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궁금했지요. 원일샘은 ‘영성’을 가장 단순하게 말하자면, ‘무언가를 갈구함’ 이라 하셨는데요. 아르보 패르트에게는 그것이 깊은 신앙심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때 신앙심은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천국을 보증해주는 신을 향한 마음이 아니라, 신인 자연과 하나되길 바라는 마음이죠. 음악은 그것의 표현이었구요. 그래서 아르보 패르트는 몸과 마음이 그 신성의 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비우는 자세로 작곡에 임했다고 합니다. 원일 샘도 이번 화엄음악제를 준비하시면서 깨달은 바가 바로 그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을 비워냄으로써 자연과 하나되기. 종은 비어있기 때문에 다른 소리의 울림에 쉽게 동조되듯이요. 하지만 비워낸다는 말은 제게 여전히 수수께낍니다... 비워낸다는 것, 존 케이지가 추구했던 좋고 싫음으로부터 떠나는 것, 니체를 공부할 때 배웠던 선판단에서 벗어나기. 모두 연결되어있는 것 같은데... 결국 어떤 것을 기억, 습관 없이 보고 듣는 것 같은데요. 그 과정에서 멜로디 하나가 들리고 글귀 하나가 떠오르는 거겠죠. 작곡이나 글쓰기는 그 기억과 습관에서 벗어나려 분투하는 것이구요. 아르보 패르트의 모습을 담은 영화를 보면, 이 분은 참 작곡을 하는 모습이 평온해보이는데, 그러면서도 뭔가 습작도 무섭게 하고, 그것을 기록한 노트도 다 가지고 있고.. 비워냄이란 열심히 손을 움직이고 머리를 쓰는 것과 다르지 않아보이네요.. 영성 또한 그 뒤에 이르를 수 있는 어떤 곳 같구요.

다음 시간에는 다양체manifold 라는 주제로 리게티 죄르지란 아티스트와 그의 곡들을 들어봅니다. 담주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전체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