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후기

11.19 여시아문 후기

작성자
문정
작성일
2015-11-23 02:40
조회
3512
지난 목요일엔 진은숙 씨의 음악들을 들어보았습니다. 원일샘은 진은숙 씨야말로 한국에서 가장 높은 정신적 차원을 지니신 분들 중 한 분일 거라 말씀하셨는데요. 정신적 차원이 높다는 말을 들으면, 스님이나, 달라이 라마같은 분들이 생각납니다. 삶을 깊이 통찰하고 계신 분들? 원일 샘은 진은숙 씨도 그런 분들 중 하나일 거라는 말씀이신거죠. 그는 스승인 리게티의 장점만을 흡수했고, 특히 곡들마다 풍부한 음색들이 특징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여성이기 때문에 가능한 음색이라고. 원일 샘은 이렇게 말씀하시며 은근 진은숙 씨를 부러워하는 눈치셨습니다.ㅎㅎ

총 세 개의 음악들을 들었는데, 말의 유희와 생황 협주곡, 그리고 씨 였습니다. 말의 유희는 총 7악장으로 구성되었는데, 각 악장의 제목이 참 가볍고 재밌습니다. 1악장이 숨바꼭질, 3악장은 무려 로꾸꺼 을간시, 즉 시간을 거꾸로라는 제목의 곡이었습니다. (혜원언니와 전 슈퍼주니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죠..ㅋㅋ) 이 곡들은 곡의 제목 그대로 ‘말의 유희’가 담긴 곡들이었습니다. 독일어인지라 왜 유희인 건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6악장 ‘임의의 놀이’에서 잠깐 알 수 있었던게, 이 임의의 놀이란 바로 알파벳 놀이였습니다. A 부터 Z 까지를, 음을 달리하며, 빠르게 부르다가, 갑자기 느리게도 부르는 곡이죠. 주제가 되는 멜로디는 역시!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들어왔던 곡들이 거의 다..ㅎㅎ) 반복되는 리듬이나 멜로디가 없이 계속 새로웠던, ’카오스’의 곡(이라고 정현석 샘이 고급스럽게 표현하신 ㅎㅎ) 이었습니다. 참 알파벳이지만 친숙하지 않고, 끝엔 사실 웃음이 피식 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곡의 악보를 본다면 웃는 것이 참 부끄러운 일인게. 진은숙 씨는 악보를 손으로 직접!그리시는데, 보면 아주 정교하게 (사실은 조금 병적으로 정교하신듯. 진짜 이건 인쇄된 악보 같거든요.) 그리시거든요. 그리고 사실 진은숙 씨의 곡들은 불협화음들이 가득입니다. 어느 누구에게 불협화음은 우연적인 실수인 것처럼 들리죠. 저도 그런데, 진은숙 씨에게는 새로운 소리의 체험이고, 그래서 그의 불협음들은 아주 의도적인 겁니다. 이 점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뭐, 지금까지 들어온 곡들이 마찬가지였지만, 이 날은 그 점이 새삼스레 더 대단해 보이더라구요. 화음의 선택지보다 불협의 선택지가 훠얼씬 많고, 그렇게 선택된 음이라면 한 음 한 음 정말 각고의 고민이 들어있지 않은 음이 없을 거라고요.
‘말의 유희’는 진은숙 씨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감명을 받아 쓴 곡이라고 합니다. 그는 그 이야기를 음악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부터 받은 감명이란 그 작품에서 펼쳐지는 ‘이성 너머’의 다양한 모순, 언어유희, ‘난센스’. 또 다른 물리적 법칙이 작용하는 꿈의 세계를 일컫는 것입니다. 이 꿈의 세계가 그에게는 삶의 최대 기쁨이라고, 일상적인 경험보다 더욱 존재론적인 경험이라고 말합니다. 니체를 배울 때의 제가 생각났습니다. 소설 같은 것들은 일상적 경험의 법칙이 작용하지 않아 제게 ’허구’의 세계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에세이에 한번 썼었던 것 같은데, 그는 그 반대로, 허구의 세계를 ‘다른 물리적 법칙’이 적용되는 세계라고 말하며 오히려 삶의 최대 기쁨이자 자신의 존재를 느끼게 하는 세계라 말합니다. 이렇게 다릅니다 ㅎㅎ 다른 물리적 법칙이 적용된다고 말하는 그 곳도 결국 이 세계이고, 그래서 허구인지 아닌지의 의미는 없는 것이라 진은숙 씨가 증명을 해준듯 합니다. 꿈을 현실처럼! 예술이 바로 꿈의 세계 하나를 뚝딱 만드는 작업인 것 같습니다. 진은숙 씨에게는 앨리스의 세계가 예술적 영감으로, 그로부터 한 음 한 음 신중하게 쌓아 올려진 그의 곡은 하나의 세계인 것이죠.
그래서 그 곡은 잘못된 것일 수 없고, 혹은 낯선 것, 불편한 것일 뿐이 아닙니다. 더 이상 강좌마다 듣고 있는 현대음악들을 불편하다, 불협화음들만 있다, 웃기다, 라고만 감상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음악을 들으며 ‘불편하다’고만 하는 건,  그 음악을 듣는 각각의 경험을 모두 동일한 것으로 만드는 경직된 신체라 인증하는 거 같아서요. 음악을 듣는 순간순간은 하나도 동일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불편할 거야'라고하는 무언가를 휙 내던지는 듯한 쉬운 판단을 그만두고, 지금 흘러나오는 음악에 일단 귀를 내맡기기. 에고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원일 샘의 말씀이 바로 이런것 같아요. 또, 원일 샘이 음악을 듣고 느끼는 모호한 감정들을 계속 언어화 해보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데서 깊은 반성을 했습니다. 나의 경험으로부터 시작해 표현해보려고 하지 않고 습관적인 감정과 관련된 단어들을 빌려와 그 순간을 뭉개버리고 마는, 이 태도는 더 이상 다른 어떤 새로운 감상도 발생시키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요. 소리들에 대해 느낀 바 충실히 얘기해보려는 데서, 그 음악을 제대로 만나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다음 시간이면 벌써 5번째 강의가 됩니다! ‘음향 조각sound sculpture’ 이라는 주제로 ’브라이언 이노’라는 아티스트에 대해 알아 봅니다.
간식은 유선아 쌤이 맡아주실 겁니다. 원일 샘 좋아하시는 매우 럭셔리한 간식들을 준비해올 거라시니, (혹은 해와야 하니ㅋㅋ) 기대합니다!

그럼 담주에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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