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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이야기] 내 마음의 교만을 보기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20-11-18 10:37
조회
198

내 마음의 교만을 보기


글 / 수늬


대보살들의 설법을 듣던 사리불이 식사할 때가 되었음을 생각하자 이를 알아챈 유마힐은 미묘한 향기로 된 음식을 먹는 향적여래의 중향세계를 보여준다. 유마힐이 보낸 화신이 중향 세계에 도착하고 음식을 얻어 떠나려하는데 그곳의 보살들이 사바세계로 함께 내려온다. 법의 향 가득한 음식을 먹으며 정법의 세계에 사는 보살들이 오탁악세로 물든 세계로 건너오는 것이다. 이 때 향적 여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선남자들아, 그대들이 가고 싶다면 지금이 좋은 기회이다. 그러나 그대들 모두는 스스로 몸의 향기를 거두고 나서 사바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그곳 중생들이 향기에 취해 방탕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대들 모두는 스스로 자신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숨긴 채 사바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그곳 보살들이 부끄러워하는 생각을 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또 그대들은 저 사바 세계에 대해서 경멸하는 생각을 일으켜 혐오하지 않도록 하라. 왜냐하면, 선남자들아, 일체의 불국토는 다 허공 같기 때문이다.(중략) 사실상 모든 불국토는 근본적으로는 청정해서 차별이 없는 것이다. -<유마경>




 

청정한 것처럼 보이든 오염된 것처럼 보이든 결국 모든 세계는 근본적으로 청정한 하나의 세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다. 바로 앞 품에서 불이의 법문을 설하는 대보살들 앞에서 침묵을 지킴으로써 진리의 하나됨을 보여준 유마힐의 향적여래 버전이다. 그런데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보살들이 사바로 떠나기 전에 취해야 할 행동이다. 그들의 초점은 근기 낮고 쾌락만을 좇는 중생들에 맞추어져 있다. 중생이 향기에 취해 방탕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몸의 향기를 먼저 거두어들이고, 부끄러운 생각을 내지 않도록 아름다운 모습을 숨기라고 한다. 또한 그들의 눈에 거칠고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경멸하거나 혐오하지 말라고 한다.

이 말들의 핵심은 우리들 마음 속에 깃든 교만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정법의 향을 매일 먹고 사는 보살들도 자신들의 분별로 경멸과 혐오의 생각을 일으킬 수 있다. 자신의 몸에서 나는 향기를 뽐내고 아름다운 모습에 취하여 악취를 풍기거나 추한 것들에 대해 차별하는 마음을 낼 수 있다. 보살행의 시작은 먼저 그런 분별이 어떤 마음에서 생겨난 것인지를 보는 것이다. 그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는가? 나 이것 알아요, 이것이 중요하고 그래서 옳고 그렇지 못한 당신은 틀렸소라는 식의 교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며칠 전 경험이 있다. 어떤 분의 강연회에 갔어야 했다. 국어 교과서에 자신의 문학 작품이 실려 있고 곧 영어 교과서에도 실릴 예정이라는 그 분의 강연은 아름다운 말들로 가득 찼다. 그런데 중간에 고 3딸의 수시 원서 준비에 골몰한 경험을 곁들였다. 이미 세 학교에 떨어지고 강연 직전에 딸로부터 온 두 학교의 불합격 소식을 전하며 딸에게 보낸 위로의 문자까지 핸드폰을 꺼내 읽어 주었다.

내가 보기에 수험생 딸을 둔 학부모로서의 그 분의 말들은 강연에서 들려준 작가로서의 그분의 말과 많은 부분 모순되었다. 사실 나도 곧 고등학생이 될 딸의 진로에 대해 어떤 조언을 해주어야 할지 잘 모르겠기에 그냥 어떤 길도 다 열려있다고 막연하게 말해줄 수 있을 뿐이다. 삶의 길은 예측한 대로 반드시 흘러가는 것은 아니며, 어떤 인연의 길이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기에 학교와 그 밖의 어떤 것도 꼭 고집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말로 아이의 심적 부담을 덜어주려 하고 있다. 이런 나의 입장에서 대학이 필수의 코스이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은 시간을 보낸 딸이 허비한 시간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를 것이라고 단언하는 모습은 불편했다. 무슨 일이든 대가는 반드시 치른다는 점에서 일견 그 말은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런데 그 시간이 허비라는 생각은 어디서 온 것인가? 대학이 필수라는 자신의 생각에 대해 한 치의 의심이 없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그 분의 말을 듣는 나의 태도다. 그 분의 말을 내가 그렇게 해석했다고 해서 그 해석이 일단 사실에 부합하는지 알 수 없다. 또 그렇게 말했다고 하더라도 내 말이 그럴 때가 있듯이 복잡한 여러 측면 중 일면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 일면을 부각하다보니 그렇게 표현되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 분의 생각에 개입할 수 없다. 남는 것은 나의 분별이다. 분별에 깃든 교만이다. 내가 옳고 당신은 틀렸다는 생각에 기반한 경멸과 혐오의 악취를 풍기는 마음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이 지혜에 기반할 수도 있다. 다만 그 마음의 방향이 향적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상대를 향할 때이다. 중생이 방탕할까봐 향기를 숨기고 중생이 부끄러워할까봐 아름다운 모습을 감춘 것처럼 자기의 마음을 조복해야 한다. 보살의 지혜는 거기서 비롯한다.
전체 2

  • 2020-11-22 15:18
    가려는 곳에 여전히 자신의 향기와 아름다운 모습을 지우지 않고 간다면, 그들에게는 방탕과 부끄러움이, 우리 자신에게는 경멸감과 혐오가 일어난다는 내용이 생각거리를 던져주네요. 내가 옳고 당신은 틀렸다는 교만이 풍기는 악취에 대해서도 곰곰 곱씹게 됩니다. 놓이는 자리마다 넓은 이해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바꾸고 처신할 것인가 하는 자각도 중요한 지혜인 것 같습니다.

  • 2020-11-23 13:03
    모든 것이 객체가 아닌 저마다의 복합적인 관계와 다른 조건 속에서 있음을 헤아릴 수 있을 때 바로 분별할 수있는 지혜가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자신이 혹여나 교만하지는 않았나 돌아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