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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벅차게 맞이한, 그러나 늘상 있는 하루처럼 그냥 담담했던 <周易> 책걸이 (2017.3.18. 洗冊日 後記)

작성자
다음엇지
작성일
2017-03-25 17:54
조회
319

함께했던 '內閣本' <周易>과 1년 간 쌓인 노트들


1.

<周易>을 시작했던 것이 2015년 10월 3일이네요. 532일, 1년 5개월 하고 15일이 걸렸습니다.

늦깍이 다음엇지는 작년 4월 23일 이괘(頤卦)부터 참여했습니다. 乾권이 마무리되던 시점에 합류해서 그래도 절반은 넘는 60% 남짓 되는 329일이라는 시간을 밥벌이에 매이지 않는 한 늘 주말 저녁에는 규문으로 왔습니다. 頤卦의 彖傳인 "天地 養萬物 聖人 養賢 以及萬民 之時 大矣哉"라는 구절처럼 "禹子養賢 以及愚民"했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공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지요. 제대로 된 공부는 우리 앞에 놓인 텍스트를 한 눈 팔지 않고 그 텍스트 앞에 머물면서 그대로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겠지만, 몽매한 학인들은 이해가 안되기 때문에 입문서를 찾고 해설서를 찾고 헤매고 다니다가 결국 자신만의 상상에 빠져 '走火入魔'에 이릅니다.

그렇기에, 지난하지만 더욱더 성실하게 주어진 텍스트를 제대로 읽고 정리하고 개념을 철저히 따져 강의해 주시는 시간이 소중했습니다. 구석구석 색연필 자국이 있고, 쌓여 있는 노트들을 보니 뿌듯하기도 하고 자신이 대견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끝까지 지치지 않고 함께 이 시간을 지키고 같이 해 주신 同門  學人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

마지막 시간은 긴 시간 우리가 매달렸던 '텍스트' 자체에 대한 정체성을 확인해 봤습니다. 그리고, <易>에 대한 해석이 어떤 길을 걸어 왔는지 살펴 봤습니다.

책을 끝낸 시점에서 <易>의 해석의 역사를 문제 삼는 것은 <易>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지를 다시 물어 보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읽어 온 <易>은 조선 성균관에서 발행했던 '內閣本'으로 지금으로 치면 '국정교과서'입니다.이는 명나라 영락 연간에 程伊川의 '易傳'인 〈程傳〉을 기본으로 朱子의 註인 〈本義〉를 삽입한 '大全本'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즉, 兩派(義理, 象數), 六宗(占卜, 禨祥, 造化, 老莊, 儒理, 史事) 중에 儒理의 입장을 기본적으로 수용했습니다. 象數를 보완하는 本義를 참고 하기는 하였으나, 줄기를 이루는 해석의 관점은 程傳이였지요. 감히 伊川의 요점을 크게 세가지로 본다면, 1) <易>에는 性命의 이치가 갖추어져 있다, 2) 卦爻象의 변화는 때에 따라 다르고 그 義理도 때에 따라 바뀌나 道에 위배되지 않으므로 그 뜻을 따른다, 3) 聖人(공부한 사람)은 變易의 이치를 깨닫고 吉凶의 由來를 설명하며 사람의 삶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처리(정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天理또는 理에 부합되느냐의 여부나 天理를 따르는 것을 기준으로 길흉을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理가 있으니 氣가 있고, 氣가 있으면 數가 있으니' 變易의 이치를 깨닫는 다면 卜筮 따위는 필요없습니다.  易은 개인의 일상과 사회/정치적인 상황 속에서 합당한 이치에 따라 삶을 영위하는 이상을 제시하는 경전이고, 그 방법은 자신의 구체적인 삶의 경험을 통해서 의미를 해석하고 이해합니다. 그래서 易이 그토록 잡다하고 어지럽고 시시콜콜한 것이지요.

伊川선생께서 <易傳>을 전하시면서 "伊川以易傳示文人曰, 只說得七分, 後人更須自體究" 라고 하셨다죠. 伊川과 禹子께서 70%를 채워 주셨으니 나머지 30%를 삶에서 어떻게 채워 나갈지는 이제 우리들의 몫인 셈입니다.

3.

앞으로의 우리의 공부는 <書>의 <洪範>을 거쳐, <老子>, <莊子>를 발췌아닌 完讀에 다시 도전합니다. 이제 가방을 꾸려 나가야 하는 시간입니다. 오늘의 강의는 개인적으로는 정확히 10년전에 선생님께 발췌로 <書>를 배운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홍범 뿐이기는 하지만 완독을 시작하는 설레는 날이기도 합니다. 조금 이따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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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禹선생님의 강의 노트

전체 1

  • 2017-03-26 00:33
    와아ㅡ 주역수업을 돌아보는 뭉클한 후기를 올리셨네요.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장담할수 없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모든 것에 용두사미인 제가 끝까지 참여한건, 같이 수업끝에 더듬더듬+낭랑한 목소리로 본문을 읽어주시는 샘들과 우샘의 정겨운 강의 덕분이죠.. 모두 고맙습니다. 홍범도 끝까지 화이팅!! Ps. 근데 다들 글씨는 어쩜 저렇게들 잘 쓰시는지..?!